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126, Mar 2017

이상한 날들

France

Strange Days
2017.1.19-2017.4.16 파리, 현대미술지방재단 프락 일드프랑스, 르 플라토

뉴 밀레니엄 시대를 코앞에 둔 90년대 후반, 운명의 장난처럼 인류 모두에게 시한부 선고가 떨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나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내용인즉슨 인류가 새천년을 맞이하지 못한 채, 곧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내용도 다양했다. 요한계시록 구절에 근거한 종말론부터, 1999년 지구의 멸망을 주장했던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대 예언, 일명 ‘와이 투 케이(Y2K)라고 불린 밀레니엄 버그에 이르기까지, 불안한 예측들이 세계 곳곳을 뒤덮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기말적 혼돈을 찬양하는 암울한 음악들과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그린 SF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종말론자들이 내뱉은 불길한 예측들과 감독들의 지나친 상상력으로 빚어낸 시나리오들은 민망하리만큼 모두 빗나갔고, 우리는 아무 탈 없이 21세기의 문턱을 넘었다. 새천년을 맞이하고도 그새 십 년이 웃도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면, 유난스러웠던 ‘세기말 신드롬’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당시, 개중에는 새천년에 관심조차 없었던 자들, 반대로 장밋빛 21세기를 꿈꾸는 자들도 있었다. 종말과 새 시대의 경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종말론이 불러온 세기말의 혼돈과 방황, 그 묘한 긴장감을 기억하리라. 이미 억측과 오류로 밝혀졌음에도, 우리는 왜 이토록 종말론에 집착하는가? 아마도 이 집착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르 플라토(Le Plateau)제공

Francesco Gennari '2,77' 2008 ⓒ Francesco Gennari, collection frac île-de-france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Tags

종말은 오는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 하나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는지 모른다. 비단, 지식인들만의 문제도 아니요, 특정한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도 아니다. 생존과 종족 번식이라는 자연적 욕구와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분명, 난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도 그렇다 할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고, 숱한 풍문들만 나돌았다. 마치, 도돌이표처럼 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종말론 진실 여부에 지쳐버린 어떤 이들은 세상사는 신만이 아는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자기 동족의 앞날을 신의 영역으로 속 좋게 전가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힘으로 이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온갖 과학적 이론과 수식들을 대입하며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있다. 이미 세기말 신드롬을 두 차례 치러낸 바 있지만, 종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현재 프랑스 현대미술지방재단, 프락 일드프랑스(Frac, île-de- France)의 르 플라토(Le Plateau)에서는 끝나지 않은 이 종말론을 테마로 전시가 한참 진행 중이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제작된 캐스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1995년 작과 동일한 타이틀이 붙은 <이상한 날들(Strange Days)>전은 종말을 바라보는 현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담았다. 





Installation view of <Strange Days> at frac île-de-france, 

Le plateau, Paris 2016 Photo Martin Argyroglo





특히, 프락 일드프랑스에서 가장 최근까지 수집한 소장작들로 기획되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현대미술계에서 현재 주목하고 있는 화제와 이슈, 컬렉션 동향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의 구성내용 역시, 우리가 익히 아는 여타 종말론들과는 그 접근방식이 달라 신선함을 더한다. 우선, 이들 예술가의 시각에는 신과 같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정신적 매개체에 의지하려는 ‘믿음(faith)’이 빠져 있으며, 과학자들의 이론처럼 딱 부러지는 논리체계도 없다. 그렇다고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처럼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믿음도, 논리도, 상상도 부재한 예술가들의 <이상한 날들>은 그럼에도 강렬하다. 


그들이 말하는 ‘이상한 날들’은 다름 아닌 우리가 이미 경험한 과거의 참혹했던 순간들이기 때문이며, 그 트라우마의 고통을 안고 사는 우리의 오늘이기 때문이다. 먼 데서 찾지 말고 가까운 데서부터 찾으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총 열네 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이상한 날들>전은 종말론이라는 미래적 주제에 ‘경험론적’ 시각을 대입해 사고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단순히 가상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벌어진 일들을 재사건화하고 현재화시킨 까닭에,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잔혹하게 파고든다. 네덜란드 출신 멜빈 모티(Melvin Moti)의 비디오, <코스미즘(Cosmism)>(2015)이 대표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사건들과 우주의 풍경을 반복,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이 작품은 증오와 폭력, 피의 연대기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Melvin Moti <Cosmism> 2015 

 Melvin Moti, collection frac île-de-france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이 제작한 첫 영화 <메리여왕의 처형(The execution of Mary, Queen of Scots)>(1895)의 충격적인 참수 장면부터, 9.11 테러와 이후 벌어진 이라크 전쟁의 참상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인간이 치러낸 수많은 희생, 피로 얼룩진 그 참담했던 역사를 되짚는 동시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촬영한 태양의 사진을 삽입하여, 인류의 위기와 우주 사이에 어떤 역학적인 힘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 19세기 말 일부 러시아학자들이 제기한 코스미즘(cosmism) 이론을 토대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사건, 무한대의 우주를 하나의 축으로 연결시킨 모티의 작품은 종말의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담은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영국의 두 여성작가, 로잘린 나샤시비(Rosalind Nashashibi)와 루시 스캐어(Lucy Skaer)가 공동 제작한 <우리의 목련(Our Magnolia)>(2009) 역시 미래의 위기와 공포의 근원을 과거에서 찾아낸 경우다.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당시, 종군화가로 이름을 떨친 폴 내시(Paul Nash) <목련의 비행(Flight of the magnolia)>(1944)을 적극 차용한 이 필름작업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내러티브 구조를 의도적으로 없애고, 실험적인 몽타주 편집기법을 통해 이미지에 부여되는 의미를 극대화했다. 클로즈업된 원작의 목련과 실제 현실의 목련, 차갑게 부서지는 파도와 바닷바람, 해변 모래밭에 남겨진 고래의 앙상한 뼈, 20세기 영국을 통치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의 사진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Zbynek Baladran <Another Five Exercises> 2014 

 Zbynek Baladran, collection frac île-de-france





각각의 이미지 사이에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목련>은 세계대전 도중 독일 공군의 폭탄투하공포를 견뎌야만 했던 영국의 상황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내시의 원작을 몽타주기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작품은 그 어떤 화려한 시각적 효과도, 드라마틱한 사운드 효과도 없지만, 영화 내내 굵직하게 흐르는 적막과 고요, 냉혹하리만큼 담담한 카메라의 시선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층 더 강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수는 알려진 것만 5000만 명이다. 누군가의 지나친 탐욕이 불러온 공포의 시대. 두 작가는 전쟁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종말 위기는 다름 아닌 인간이 자초했고, 그 광기 어린 역사의 대가는 고래의 잔해처럼 허무하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봄을 알리는 꽃, 우리의 목련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고 도리어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이유다. 유독 <이상한 날들>의 전시장에는 과거의 잔해들이 많다.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가 남기고 간 건물의 파편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몰락을 초래한 투기의 장본인 튤립, 수북이 쌓인 먼지와 온갖 부스러기에 가려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화포는 우리에게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의 흔적이다. 이안 카이어(Ian Kiaer)는 푸른빛을 띤 큐브 속에 여섯 종의 씨앗과 여섯 마리의 살아 꿈틀대는 지렁이와 거미를 풀어놓았다. 각 면에 출구가 있지만, 그들이 이 큐브를 탈출할 가능성은 2.77%. 눈앞에 탈출구를 두고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생명체들의 모습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공포 속에 갇힌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불길한 예측들을 뒤로 한 채, 예술가들이 과거와 현재의 문을 두드린 것 역시 아마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Erica Baum <Acropolis Columns Art 3 (Posters)> 2013 

 Erica Baum, courtesy Galerie Crevecoeur,

 Paris, collection frac île-de-france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Universite Paris VIII 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