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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6, Mar 2017

도난당한 호주와 도둑질한 영국의, 아주 따뜻한 관계

U.K.

Helen Johnson: Warm Ties
2017.2.1-2017.4.16 런던, 현대미술학회

호주 멜버른 출신 작가 헬렌 존슨(Helen Johnson)의 개인전이 시드니 아트스페이스(Artspace)와의 협업으로 런던의 현대미술학회(이하 ICA,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에서 열리고 있다. 존슨은 과거 호주와 영국 간의 복잡한 식민 관계를 이미지를 겹치고 엮은 후 페인팅이라는 전통적 방식을 더해 보여준다. 호주에 잔재한 영국의 권력은 물론 난처하고, 꺼림칙한 문화적 관계를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런던의 중심, 더 몰에 자리 잡은 ICA는 영국의 동시대 미술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관이다. 더 몰은 영국 여왕이 사는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과 트라팔가르 광장(Trafalgar Square)을 이어주는 길목으로 다양한 국가 행사와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레드카펫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도로가 깔려있으며, 이 주변에는 특히 많은 국가 기관들과 기념비, 동상들이 있다. 헬렌 존슨은 호주의 식민화를 지시했던 여왕이 살던 길목에서 그들이 호주에 저지른 일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존슨은 이 공간에 대해 영국의 권력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맥락을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그의 전시에 힘이라도 실어주듯, ICA의 2층 창문에서 내려 보이는 국제 개발부 건물 바로 앞에는 영국의 항해가이자 지도 제작자인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양화선 영국통신원 ● 사진 현대미술학회(ICA) 제공

Installation view of 'Warm Ties' at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London 2017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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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선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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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년 전 영국의 ‘제1선단(First Fleet)’의 시드니 도착, , 쿡 선장이 호주에 상륙한 날을 기리는 1 26일 ‘호주의 날(Australia Day)’은 호주의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사람들이 파티를 열고 바비큐를 구우며 술 마시는 날로 공공연하게 인식된다. 좋게 말하면 영국인이 호주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날이지만 다른 시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침략이 시작된 날이고, 원주민 대학살과 강탈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아직도 ‘호주의 날’이 되면 즐겁게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뒤로 원주민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무리 등 전국 곳곳에서 기념일 축하 행위를 비난하는 시위대를 볼 수 있다. 전시장의 1층 공간에 들어서면 헬렌 존슨의 캔버스 천들이 천장 가까이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3m쯤 되는 높이의 천이 지그재그로 매달려있다. 지그재그의 형태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의 구획도에서 따온 방식이라고. 20세기 초, 호주 남부의 원주민인 나나왈(Ngunnawal)의 나라에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월터 버리 그리핀(Walter Burley Griffin)에 의해 디자인된 조립식 도시가 건설된다. 그리핀의 도시 계획에는 프리메이슨(Freemason) 상징의 각도가 스며들어 있는데, 이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Installation view of <Warm Ties> at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London 2017 Courtesy of the artist





존슨의 작품을 멀리서 언뜻 보면 선으로 그려진 만화적 이미지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표면의 결과 촉감이 이미지의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젖은 페인트 위에 옷감이나 밀밭에서 사용하는 끈, 실타래 같은 재료들을 눌러 표면의 독특한 질감을 얻어냈다. 그의 모든 그림에는 여러 이미지들이 겹겹이 겹쳐져 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미지들과 적절히 감춰진 이미지들, 의미 있는 형상들은 식민지화, 원주민 척결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과 이상화 사이의 단절 그리고 그 폭력성과 잔인한 과정들을 감추는 듯하지만 오히려 잠재적 이야기들이 강조되어 보인다. <무능한 관찰자(Impotent Observer)>(2016)에서는 식민자 차림의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호주의 국가(國歌)를 속삭이고 있다. 


‘우리는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한한 평야를 공유했습니다’라는 가사를 들으며 청바지와 스웨트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이 남자는 바지 지퍼 사이로 자신의 성기를 꺼내 자위를 한다. 이 직설적이고 강한 이미지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남자 뒤로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죄수들에게 사용했던 수갑, 채찍, 쇠고랑의 형상들이 같이 섞여 있다. 영국이 호주를 발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중 미국 독립군에게 런던의 감옥이 함락되자 죄수들의 유배지가 필요했던 영국은 해군기지 건설, 경제적인 목적 등의 이유를 들어 영국인들을 호주로 이주시키기 시작하였다. 전쟁 죄수 유배는 80여 년 동안 이어졌고 약 16만 명이 호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존슨은 이러한 죄수들의 유배 또한 아주 폭력적인 과정으로 행해졌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쇠고랑을 찬 채 호주로 보내졌고 도구개념주의적으로 이용당했으며 새로운 토지 약탈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Bad debt> 2016 Acrylic 

on canvas, wood 380×320cm Courtesy of the artist 





<이성의 향연과 영혼의 흐름(In A Feast of Reason and a Flow of Soul)>(2016)에서는 19세기 신사 복장의 남자들 모임이 열리는 그림 중앙에, 포트 필립(Port Philip)-멜버른의 옛 이름-의 전 주지사였던 찰스 라 트로브를 중심으로(Charles La Trobe) 서서히 부패의 원형이 나타난다. 뇌물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고, 주변 지역의 지도가 임의로 분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백인 남자에 대한 19세기의 이미지를 재탄생시켰다. 토착민들을 위한 역사적 유산의 설립자들이 아닌 잔인하고 악랄한 제국주의자이자 아첨꾼, 탐욕스러운 권위주의자로 말이다. 이는 여러 이미지가 얽히고설켜 거듭 보인다. 그의 그림에서는 비대하게 표현된 지주들이 땅 일부들을 분배 받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헬렌 존슨은 이 땅이 사실 훔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어떤 원주민과도 조약을 맺지 않았으며 주권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호주의 원주민이자 일명, 에보리진(aborigine)으로 잘 알려진 이들은 호주 대륙에서 약 5만 년을 살아왔으나 약 200년 전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발을 내디딘 후 단 2세기 동안 잔혹한 정복 정책과 약탈, 학살에 시달렸다. 원주민 보호법이란 명목 아래 인종청소와 다름없는 일을 겪은 후 자신들의 터전에서 학살당하거나 주변의 섬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젠 호주 전체 인구 중 3%인 약 7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 원주민들은 끔찍한 과거에 대한 보상을 받기는커녕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과 각종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항상 가난에 시달리며 이는 대물림 되고 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낮아져 사회 최하층에 자리하고 있고 심지어 존재감 자체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Impotent observer> 2016 Acrylic 

on canvas 380×240cm Courtesy of the artist  





백인우월주의로 인해 원주민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력들마저 있어 그들을 한 지역에만 살게 하고 그 지역 밖을 못 나오게까지 한다고 하니 20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인종차별이 예전에 비해 누그러졌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전체에 팽배하고 있음을 헬렌 존슨이 다시 한 번 환기해 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호주에 대한 점령을 합법화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자들이 사용한 의식의 이미지를 재사용하고 학살, 강탈, 섬세한 고대의 문화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가볍게 감싸주는 ‘문명화’된 절차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다. 배설물이 뿌려진 도둑이 든 방 안을 배경으로 한 작품 <악성 부채(Bad Debt)>(2016)의 표면에는 영국에서 흔히 보이는 동식물들이 사방에 흩어져있다.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 덩굴식물, 접시꽃, 토끼, 여우, 고양이들은 영국인들에 의해 호주로 침습된 것들이다. 이 작품의 뒤를 돌아가면 그림 뒷면에 빅토리아 주에서 유해식물로 분류된 식물의 목록이 적혀있다. 영국인들이 호주 땅에 이러한 동식물만 유입해 온 것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떠돌던 온갖 질병까지 가지고 오면서 면역력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은 천연두 등의 각종 전염병으로 인해 100년 만에 30만 명이 넘는 인구의 80%가 줄어 1920년대에는 6만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Installation view of <Warm Ties> at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London 2017 Courtesy of the artist





존슨은 고전적인 참고 문헌들을 좋아하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관련 자료는 대부분은 주립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으로, 잊혀져있던19세기 삽화나 풍자만화 같은 곳에서 가지고 온다고 한다. 그는 작품에서 이러한 과거에 잊힌 사실들을 다양한 도둑질로 표현했다. 토지약탈, 절도, 뇌물수령, 횡령 등이 각기 다른 화면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지만, 이는 모두 호주에 들어온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결국, 헬렌 존슨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과거를 잊지 말자고, 덮어두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호주를 식민 지배한 선조들의 태생지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그것도 여왕이 사는 궁전 바로 옆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였다면 당장 어떤 극우파들이 달려와 그림을 다 찢어버렸겠구나 싶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겠지만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주체는 그것을 인정하고,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사죄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존슨의 전시는 새삼 이 씁쓸한 명제를 깨닫게 한다.  

 


글쓴이 양화선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itns)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를 통한 회상, 향수, 흔적의 키덜트후드 연구」 논문과 회화 작품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스트런던유니버시티 (University of East London)에서 공간의 패러독스에 관한 논문과 회화작품으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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