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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8, Jan 2019

보고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

U.S.A.

SARAH LUCAS: au naturel
2018.9.26-2019.1.18 뉴욕, 뉴 뮤지엄

1988년 영국 런던의 한 낡은 창고에서,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프리즈(Freeze)'전이 열렸다. 기존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을 자아내는 이들의 작품은 순식간에 화두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미술 잡지 『아트포럼(Artforum)』의 마이클 코리스(Michael Corris)는 이 젊은 예술가 집단을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라고 명명한다. 이후 미술계의 악동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를 필두로 한 이 그룹은 짧게 yBa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대 미술의 중심에 섰다. 지금, 명실공히 yBas의 대표 작가인 사라 루카스(Sarah Lucas)의 첫 미국 내 회고전이 뉴욕 뉴 뮤지엄에 마련돼 있다.
● 정하영 미국통신원 ● 사진 New Museum 제공

'Au Naturel' 1994 Mattress, melons, oranges, cucumber, and water bucket 33 1/8×66 1/8×57in (84×168.8×144.8cm) ⓒ Sarah Lucas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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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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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부터 뉴 뮤지엄의 2-4층은 사라 루카스가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들어낸 150여 점의 조각, 사진, 인스톨레이션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영국에서 루카스는 이미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미국 내 대중에게 그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뉴 뮤지엄 큐레이터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와 마고 노튼(Margot Norton) 2017년 말 시작된 #metoo 운동으로 양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금 사라 루카스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큰 울림을 자아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오 나튀렐(Au Naturel)’은 루카스가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를 함축한다. 전시 제목은 그의 동명의 초기작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루카스는 1994년 낡은 침대 매트리스에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물체들(이 작품에서는 멜론, 오렌지, 오이, 그리고 양동이)을 놓아두고 이를    <오 나튀렐(Au Naturel)>(1994)이라 이름 붙인다. 작품에 쓰였던 매트리스 브랜드명이기도 했던 이 타이틀은자연 그대로혹은날것 그대로 요리 양념을 거의 쓰지 않는 요리법을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로, 미술사에 있어 이는 남성 화가가 그린 비스듬히 누운 여성 누드화를 지칭해 왔다. 매트리스 위에서 소품들은 각각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그려내는 은유적 장치로 사용되며, 이성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권태감에 주목하게 한다. 관람객은 익숙한 타이틀과 낯선 풍경 사이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러한 방식으로 루카스는 이전 미술사에서 문제의식 없이 담겨온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 2층 초입, 이 작품이 놓여 있는 전시장의 벽면에는 타블로이드 매체에서 다룬 여성의 누드 이미지를 따온 <세븐 업(Seven Up)>(1991)이 배치되어 루카스의 의도를 더욱 명확히 전달한다.





<Nahuiolin> 2013 Cast bronze 

18 1/2×16 1/2×23 1/4 in (47×42×59cm) 

ⓒ Sarah Lucas. Custom Copyright:

 DALiM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뒤엎으려는 그의 시도는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으로 드러난다. 1990년 루카스는자화상(self-portraits)’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작업을 시작한다. 이 사진들의 주제는 루카스 그 자신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사진을 찍은 사람은 대부분 친밀한 타인이다. 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바나나를 먹는(Eating a Banana)>(1990)은 당시 루카스의 연인이었던 게리 흄(Gary Hume)이 바나나를 한입 물며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루카스의 찰나를 잡아낸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루카스는 소품이나, 자세, 시선을 사용해 관람객이 그의 의도를 눈치 채도록 사진의 세부 사항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걀 프라이와 자화상(Self-Portrait with Fried Eggs)>(1996)에서 그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양다리를 벌려 앉는다


우리가 무의식중 남성적인 자세라고 인식하는 이러한 포즈를 취하며 동시에 루카스의 가슴 언저리에는 여성의 유방을 떠올리게 하는 달걀 프라이 두 개가 놓여 있다. 이처럼 그는 사진 속에서 사회 통념상 당연히 그러하다고 여겨지는 갖가지 성적 코드를 그만의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뒤틀고 있다. 언급한 몇 가지 작품에서도 이미 보이듯, 루카스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그의 작품을 제작해왔다. 특히 초기작부터 지속해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였다. 발견된 오브제는 흔히 기계로 만들어진, 일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작가에 의해 그 자체로 미술 작품 혹은 미술 작품의 일부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대상을 의미한다.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소변기 혹은 제설용 삽과 같은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은 본격적으로 이러한 발견된 오브제를 탐구한 예라 할 수 있다. 뒤샹은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작가의 신체적 활동보다는 작품을 구상해내는 아이디어 자체에 의미를 싣고자 이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이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이어 루카스가 속한 yBas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끊임없이 발견된 오브제가 갖는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Me Bar Stool> 2015 Plaster and cigarette stool 

39 3/8×23 5/8×22in (100×60×56cm) 

ⓒ Sarah Lucas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루카스가 빈번히 사용했던 발견된 오브제는 담배, 소변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오브제는 여성용 스타킹이다. 1990년대 초 루카스는 동료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과 런던의 한 낡은 가게 자리를 빌려 약 반년간 임시 상점 겸 인스톨레이션을 선보였다. 이곳에서 루카스와 에민은 그들 각각이 제작하거나 협업한 작품들을 판매하곤 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케밥이다(She’s kebab)”와 같은 논란이 될 법한 문구를 박아 넣은 티셔츠, 혹은 그들의 동료였던 데미안 허스트의 사진을 바닥에 붙여넣은 재떨이 등이었다. 이번 전시 포함된 <크고 뚱뚱한 무정부주의자 거미(Big Fat Anarchic Spider)>(1993)   <문어(Octopus)>(1993)도 이 공간을 운영하던 시기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낡은 스타킹에 신문지 조각들을 넣어 그 형태를 만들었다. 스타킹은 일상에서 흔히 보일 법한 재료일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에서 성적 은유로 사용되는 상징물 중 하나다. 루카스는 이런 오브제를 활용해 마치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예를 들어, 유아적이고 단순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물 인형들)과 유사한 형태로 재탄생 시키며 오브제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1997년 런던 사디 콜 갤러리(Sadie Coles HQ)에서 루카스는버니, 곤경에 처하다(Bunny Gets Snookered)’라는 타이틀을 내건 전시를 연다. 이 전시에서 그는 당구의 일종인 스누커 게임을 할 수 있는 당구대 위와 그 주변에 의자를 놓고, 각 의자에 사람의 형상을 닮은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에로틱한 자세로 배치한다. 솜을 채워 넣은 스타킹은 불완전한 형태지만 사람의 신체 일부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이 조각들이 초현실주의 독일 작가 한스 벨머(Hans Bellmer) 1930년대 제작한 사진 시리즈 ‘La Poupee(인형)’에서 담아낸 해체되고 재결합된 인형의 몸을 닮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루카스는 이 시리즈에서 발견된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접목하며 오브제가 담을 수 있는 의미의 폭을 넓힌다. 1990년대 후반 런던 내에는 여성 접대부가 있는 남성 전용 당구장이 한창 유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기존 사회적 관념을 전복시키기 위한 도구로 당구장이라는 공간을 재현시켜 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Nature Abhors a Vacuum> 1998 Toilet and cigarettes 

16 7/8×15×20 7/8in (43×38×53cm) 

ⓒ Sarah Lucas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인스톨레이션 뿐만 아니라 루카스는 이 작품에서 언어유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인스톨레이션의 제목에 포함된버니는 성인 잡지로 유명했던 휴 헤프너(Hugh Hefner)의 플레이보이 버니(Playboy Bunny)를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곤경에 처하다(to be snookered)”라는 구절 또한 당구 용어임과 동시에 성적인 은어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루카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성적 상징물들을 버무리는 방식을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 이 작품 이후에도 그는 안을 채워 넣은 스타킹이 주는 형태 자체에 집중하는 ‘NUDS’ 시리즈를 제작한다. 폭신한 재료와 스타킹을 이용한 소프트 조각 시리즈뿐 아니라, 그 형태를 그대로 빌려오는 대신 브론즈를 사용해 아이러니가 주는 효과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발견된 오브제가 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한편 이번 전시에 포함된 루카스의 최근 작업은 그가 오브제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3층 전시장의 흰 벽을 이루는 <100개의 계란: 여성을 위한(One Thousand Eggs: For Women)>(2017-진행 중)이 한 예이다. 2017년 베를린에 컨템포러리 파인 아트(Contemporary Fine Arts) 2018년 멕시코 시티 쿠리만주토(Kurimanzutto)와 에 이어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18 9 13일 뉴 뮤지엄에서 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작품을 위해 참여자들은 전시장에 모여 벽에 날계란을 던졌다. 이 과정을 통해 흰 벽면에는 던져진 계란 자국이, 그리고 그 아래는 부서진 달걀 껍데기가 놓여있는 액션 페인팅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행위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지는 부활절 풍습 중 하나인 계란 던지기를 떠오르게 한다. 기독교에서 계란은 재탄생을 상징하며, 이를 던지는 행위는 마치 축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루카스 역시 이 퍼포먼스를 통해 불멸, 성장, 부활과 같은 개념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제목에서 보이는여성을 위해(For Women)”라는 구절이다. 영어 단어 ‘Egg’가 자궁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계란을 던지는 행위의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시킨다는 것은 결국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은연중 드러낸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Sex Baby Bed Base> 2000 Bed case, chicken, T-shirt, 

lemons, and hanger 70 7/8×52 1/2in (180×133.5cm) 

ⓒ Sarah Lucas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루카스의 작업은 관람객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 신체 일부를 떠올리는 분절된 형태들과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통념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누군가에겐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일 수 있다. 그런데도 세 층에 걸친 전시를 계속해서 보게 하는 힘은 그녀의 작품에 담긴 유머러스함이 아닐까. 그는 2015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다. 당시 <아이스크림 대디오(I SCREAM DADDIO)>라는 타이틀과 함께 선보였던 여덟 점의 석고 조각상이 이번 전시에 포함되었다. 이 조각상들은 그의 친구, 갤러러스트 등 그에게 영감을 줘왔던 주변인의 하반신 나체를 본떠 만들었다. 마치 세월의 풍파를 겪어 훼손된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이 주로 신체의 일부만 남아 발견되듯 말이다. 이 시리즈 역시 재현이라는 방식을 통해 암묵적으로 여성의 신체가 욕망의 대상임을 말한다


루카스 스스로 뮤즈들(muses)의 모습을 빌려왔다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인체들은 냉장고, 의자, 변기 같은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 허리를 굽히거나 혹은 기댄 자세를 취하고 있고, 인체의 구멍(예를 들어, 항문)에는 담배 개비가 꽂혀 있다. 달걀노른자와 같은 노란 벽면으로 둘러싸인 전시장에 놓여있는 뮤즈들은 이러한 여러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관람객이 실소를 머금는 동시에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끌림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는 뉴 뮤지엄 이후 6월 로스앤젤레스 해머 뮤지엄(Hammer Museum)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사라 루카스는 이제 50대 후반에 들었지만,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가 지난 세월 밟아온 길을 되짚어 볼수록 그의 새로운 작업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원초적 고민이 해결되지 않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글쓴이 정하영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한동안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이론 석사 취득 후 구겐하임 및 뉴욕현대미술관(모마)에서 뮤지엄 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트투어/컨설팅 회사 ITDA(잇다)를 운영하며 뉴욕 미술 시장에 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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