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정착한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은 영국 문화와 사회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전의 파리에서 그들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하지만 카페보단 공원 문화를 즐기는 런던 사회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피사로의 <큐 그린(Kew Green)>(1892)은 풀밭 위에서 노니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공원의 모습조차 프랑스 스타일과는 확연히 달랐다. 작은 크기의 조밀한 광장으로 이뤄진 프랑스 공원들은 과거엔 풀밭에서 걷는 것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이와 달리 런던의 드넓은 공원들은 사회적 교류가 활발하고 자유로운 장소로 보였고, 그 풍경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국 사회의 규범과 전통도 프랑스 작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티소의 <갑판 위의 무도회(The Ball on Shipboard)> (1874)에서 보이듯이 보트 위에는 형형색색의 국기들이 늘어서 있다. 런던에서 의상이나 행동 규칙은 사회적 계급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이러한 전통과 규범에 관한 분명함은 대혁명 이후 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프랑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당시 달력에 항상 표시되는 필수 행사가 보트 경주와 조정 경기였다. 인상주의 작가들은 이러한 스포츠에 높은 흥미를 느끼며 작업 주제로 삼았는데, 이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굴욕 이후 건강 증진, 경쟁심, 협동력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Claude Monet <Houses of Parliament> c.1900 

Oil paint on canvas 812×928mm Art Institute of Chicago

또한, 전시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대외관계에도 주목한다. 그들은 런던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아트 딜러, 후원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작품 연구를 도와줄 수 있고 재정적 지원도 해 줄 수 있는 유명한 이들이 인기가 좋았다. 아트 딜러 중 핵심적인 인물은 프랑스인 폴 듀란드 루엘(Paul Durand-Ruel)이다. 그는 런던으로 망명한 이후 나이트 다리(Knight Bridge)에서 갤러리를 열었다. 그는 생전에 총 5,000점이 넘는 인상파 작품을 사들였는데 모네는 듀란드 루엘 덕분에 인상주의 작가들이 더는 굶주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아트 딜러와 작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후원자들이었다. 듀란드 루엘에게 모네와 피사로의 작품을 사야 한다고 설득했던 사람도 후원자 중 하나였던 찰스 프랑수아 두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였다. 두비니의 친구이며, 오페라 가수였던 장 밥티스트 포르(Jean-Baptiste Faure) 역시 인상주의 작가들을 재정난에서 구원한 중요한 후원자로 꼽을 수 있다. 

Camille Pissarro <Kew Green> 1892 Oil paint 

on canvas 460×550m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이러한 관계도에 포함되는 또 다른 주요 인물로 프랑스 작가 알폰스 레그로(Alphonse Legros)가 있다. 레그로는 1876년부터 1893년까지 런던의 슬레이드 파인아트 스쿨(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그의 작품 <땜장이(The Tinker)>(1874)처럼 농민 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프랑스 이민자들과 후원자들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했다. 자신의 후원자인 콘스탄틴 알렉산더 아이오니데즈(Constantine Alexander Ionides)와 칼라일 백작 9세 조지 하워드(George Howard)를 조각가 에메-쥘 달루(Aimé-Jules Dalou)에게 소개했다. 후원 활동 덕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쥘 달루는 그의 제자들과 에두아드 란테리(Edouard Lantéri), 레그로 등과 손잡고 영국 교육 기관을 형성했다. 그들의 모델링 방식은 영국 예술 교육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전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템즈(Thames)’다. 모네의 ‘국회 의사당(Houses of Parliament)’ 시리즈를 모아 놓았는데 빛과 안개에 따라 변하는 템즈와 강 주변에 대한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모네는 1871년 런던 정착 이후, 꾸준한 인상주의 회화 작업으로 1904년 예술적 정점에 다다른다. 모네의 작품들은 템즈와 런던이 어떻게 프랑스 미술의 핵심 주제가 됐는지 보여 준다. 

Camille Pissarro <Saint Anne's Church at Kew, London> 1892 

Oil paint on canvas 548×460mm Private collection

모네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강렬한 화풍의 작품은 프랑스 작가 안드레 드란(André Derain)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 역시 런던 명소들에 관한 것이다. 드란은 23세에 폴 듀란드 루엘의 갤러리에서 모네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그때부터 모네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에도 모네와 똑같은 주제를 선정함으로써 모네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 표현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후기 인상주의 방식을 택했다. 이 전시에서 두 작가의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성과 연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1904년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공식 평화 협정(The Entente Cordiale)이 맺어지기까지 많은 프랑스 인상주의 예술가들에게 런던은 피난처이자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들은 망명지에서 새로운 관계와 예술 표현 방식을 만들어 가며 인상주의의 꽃을 피웠다.  

글쓴이 제갈수연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킹스턴 대학(Kingston University)의 순수예술 과정인 Art&Space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디자인, 현대 민화, 페인팅, 설치미술 등의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현재 런던 거주 중이며, 국내에 따끈따끈한 유럽의 미술 소식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