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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4, Sep 2023

앨리슨 카츠
Allison Katz

호흡하거나 혹은 정지하거나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Hauser & Wirth 제공

[Milk Glass] 2022 Oil on linen 170×220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Eva Herz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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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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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에 초대된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에게 한 패널이 감독 이름의 발음과 우리나라 단어를 연관 지어 덕담을 했다. 패널은 ‘놀란’이란 발음이 한국말 ‘놀라운(surprising)’과 비슷함을 강조하며 그가 늘 대중이 감동할 만큼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더니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발음이 한국말 ‘논란(controversy)’과도 사뭇 유사하다며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여러 주장을 유발하는 감독의 재주를 칭송했다. 그러자 놀란 감독은 점잖고 간결하게 감사를 표했다. 동음이의어, 유사 음운, 도치,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하는 언어유희가 지나치게 예의 바르게 전개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좀 어색하여 코웃음이 났다.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언어는 그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 관습적 체계 안에 스스로 갇히기도 하고 과감히 벗어나기도 하며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금 세계 현대미술계의 주목을 끄는 앨리슨 카츠(Allison Katz)가 아주 흥미롭게 다루는 소재 중 하나도 바로 언어(낱말)이다.



<Interior View I> 2021 Oil on linen 160×145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Plastiques photography, Lewis Ronald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59th Venice Biennale)’ <The Milk of Dreams> (2022)전에 초대받은 카츠는 ‘Venice’와 거의 동음이의어인 <Be Nice>를 기획했다. 화면 안엔 얼굴을 맞댄 두 마리의 수탉이 있다. 벼슬을 바짝 세우거나, 날개깃을 부풀리진 않았지만 치켜든 꼬리와 곤두선 발톱에서 두 닭 모두 경계태세임이 느껴진다. 그들 사이엔 알곡으로 가득 찬 항아리가 놓였고, 이미 부리로 알곡을 집어 물었음에도 서로 경계를 늦추긴 커녕 금방이라도 싸울 태세다. 두 싸움닭 사이의 휴전을 통해 작가는 금융과 예술이 교차되는 도시 베니스의 역사적 중요성을 언급하는 동시에 이득을 위해 항상 다툴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재현한다.

리넨에 유화로 그린 2022년 작품 <Milk Glass>에는 유리 문어 둘이 손을 잡고 있다. 의도적으로 화면을 반으로 가른 작가는 양쪽에 주는 빛의 양을 차별하여 두 객체의 색은 물론 리플렉션(reflection)까지 전혀 다르게 연출했다. 우유가 가득 담긴 문어 머리는 여성의 풍만한 가슴처럼 보이는데 아닌 게 아니라 머리 꼭대기에 젖꼭지처럼 톡 튀어나온 형태까지 있다. 작가는 베니스 무라노의 유리를 끌고 와 그림을 완성하곤 ‘Glass’가 포함된 제목을 지었다.

이렇듯 작가는 특정 단어, 낱말에서 문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형식대로 과감하게 그것을 이용한다. 대개의 작가가 기획자나 평론가 혹은 관람객의 지적에 대응하기 위해 단어와 대상의 연관 관계, 낱말이 파생시키는 은유 등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과 달리 카츠는 장난스럽지만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그것을 구성한다. 그는 주관적 내러티브와 가정을 세우고 모티프와 텍스트를 결합시킨다.



<Stage Cock> 2020 Oil, acrylic and rice on linen 
160×145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Plastiques photography, Lewis Ronald



사뭇 다른 스타일의 작품도 있다. 위 작품들과 함께 <The Milk of Dreams>에 걸린 한 그림은 특정 언어를 바탕으로 삼기보다 작가의 호기심과 인식에 기반을 두어 완성됐다.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아트하우스 공포 영화인 1973년 작 <Don’t Look Now>에서 이야기의 구성원을 따온 작품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girl(s)>(2022) 말이다.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줄거리에서 카츠는 어떤 감상을 쏙 추출해 붉은 코트를 입은 자신의 어린 모습이 마치 스스로 유령을 낳는 것처럼 여러 번 겹치도록 렌더링 했다. 사건이나 상황, 사물 등을 주제로 그림으로 띠를 잇는 카츠는 이처럼 자신의 그림에 들숨과 날숨으로 구성된 호흡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는다.  

기존 개념을 확장하는 장난스럽고 탐구적 터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해석이 모호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카츠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다. 그의 작업은 제시된 내용을 드러내는 것과 숨기는 것 사이의 시적 공간에서 작동하며 그림의 표면과 주제에 존재하는 의식의 여러 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Blondie> 2021 Oil on canvas 
and acrylic on linen 2 parts, 180×140cm (total)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Eva Herzog  



한편 카츠의 작업엔 물리적, 시각적 방해를 유도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는 작품 내부와 건축적 개입 등을 통해 나타난다. 예컨대 이는 모래나 쌀이 안료에 섞여 그림의 자율성을 깨뜨리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컷, 일시정지, 원근법을 만들기 위해 전시 공간 내에 구축한 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카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창문과 입은 정보의 감각적 소비와 지성적 소비 사이의 이중성을 다루며, 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인터페이스를 구성한다.

대표작으로 정갈하게 연출됐던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와 또 다르게 2022년 영국 캠든 아트 센터(Camden Art Centre)에서 선보인 개인전 <Artery>는 카츠의 세계관을 압축해 설명할 수 있는 전시다. 그는 수탉과 달걀, 사람이거나 혹은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의 형상, 거칠거칠한 질감과 매끄러움, 입체적이면서 평면적인 사물 그리고 평범한 풍경의 스냅샷이 겹쳐지거나 콜라주처럼 그려진 캔버스들로 전시를 구성했다.

그리고 각 이미지 전반엔 작가가 각도와 그림자의 사용을 억제하거나 원근법 혹은 이미지의 깊이를 작위적으로 변형시킨, 특징적 놀이가 적용됐다. ‘동맥’을 타이틀로 내건 작가는 한쪽 전시 공간을 비슷한 맥락의 작품들로 채웠다. 테두리에 열린 입의 윤곽이 그려진 그림들 말이다. 누가 봐도 작가 자신인 여성이 바닥에 앉아 클러치 지갑을 열며 정면을 응시하는데 그 옆에 감자, 배드민턴공 등의 기타 둥근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는 대체 우리가 누구의 관점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지, 누구의 입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Posterchild> 2021 Oil and acrylic on linen
 230×190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Eva Herzog




그런가 하면 쌀알로 덮인 치아와 잇몸 사이에 화려한 수탉의 몸체가 그려진 작품도 있다. <Stage Cock>(2020)은 우리 치아에 쌀이 있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을 통해 신체적 존재를 생각토록 유도한다. 실질적 에너지원으로 인간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쌀을 오톨도톨한 질감으로 표현한 것은 존재감과 공허함의 이중성을 강조하며, 이는 입을 사용하여 ‘본다’는 유희적 관점이 인식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케 만든다.

진부한 것과 기이한 상황이 뒤섞인 카츠의 화면은 마치 방금 전 내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닮아 있는 탓에 오히려 신선하다. 가슴에 와 꽂히는 그림은 나를 둘러싼 풍경 같으며 바로 누군가의 기억처럼 여겨진다. 주제 못지않게 구사하는 기법 또한 희한하다. 그는 색을 짧고 빠르거나, 길고 여유롭게 교차시킴으로써 뉘앙스를 형성하고 형태를 자르거나 과감하게 겹쳐 대상을 정지하거나 미세하게 번지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카츠의 그림은 결코 우울하지 않다. 그러나 더러 적막하거나 냉랭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작가가 선택한 스토리에 기인한다. 그가 지닌 대상에 대한 시선과 심리상태 등이 작품에 반영되어 단순히 적막한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치기 직전의 고요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카츠의 작품엔 에너지가 있다.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girl(s)> 
2022 Oil on linen 230×150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llison Katz Photo: Eva Herzog



대상과 몸 사이의 대화, 대상을 마주하는 몸의 기운 혹은 태도. 바로 이런 것들이 한 호흡으로 이뤄지며 기를 형성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낯설게 하기’다. 더 정확히는 ‘앨리슨 카츠스럽게’ 낯설게 하기인데, 그가 구사한 화면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카츠는 정적인 장면이건 특정한 오브제건 그 속에 어떤 은유나 심리적 긴장을 불어넣는다.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문화와 정보, 시스템과 미술사를 연결하고 흡수하는 방식을 조사하며 미적 실천을 해온 카츠. 그가 만든 다양한 이미지는 아이디어와 참조를 구축하는 상징과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회화, 포스터, 도자기 및 설치 매체 전반에 걸쳐 변형하고, 이러한 모티프로의 회귀, 복사, 변형, 재조형의 행위를 통해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의 계보와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는 작가는 허를 찌르는 주관성과 표현의 모호성을 탐색하고 있다. PA



Installation view of <Allison Katz> 
at Canada House, London, 2022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작가 앨리슨 카츠(Allison Katz)는 1980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몬트리올 Concordia University에서 공부한 후 뉴욕 Columbia University에서 MFA를 받았다. 지난 2009년 몬트리올 Battat Contemporary에서 <Ruthless in Chalk Farm>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20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Hauser & Wirth의 <Allison Katz. Westward Ho!>까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중국 등에서 30회에 달하는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지난해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The Milk of Dreams>를 비롯 유수의 기획전에 초대됐다. 2008년 뉴욕 Rema Hort Mann Foundation이 주최하는 ‘Emerging Artist Grant’와 런던 Max Mara Art Prize for Women의 ‘Shortlist’, 2022년 폼페이 Digital Fellowship의 ‘Pompeii Commitments’를 수상한 바 있다.



Portrait of Allison Katz
Photo: Eva Herz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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