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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4, Sep 2023

이민선_Sculpture

2023.6.22 - 2023.7.29 씨알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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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시 이화여자대학교 예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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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어거지’가 창출하는 초현실주의적 유머


전시장에 비치된 리플렛이 이렇게 친절한 경우는 처음이다. 대부분의 전시 리플렛이 추상화된 전시장 도면만 제공하는 데 반해, 작가는 제목과 재료 등의 작품 정보 옆에 작품 모양을 드로잉 해 놓았다. 심지어 작품 지지체 - 입간판 - 의 형태가 유사한 소설 세 편과 영상 두 편을 서로 구별하도록 소설 첫 문장과 영상의 특징을 별도로 기입했다.

이는 모든 작품에 바퀴를 달아 관람객이 임의로 옮길 수 있게 한 전시 콘셉트와 무관하지 않다. 작품들이 전시장 한 곳에 붙박여 있지 않으니 고정된 작품 위치를 표시한 통상의 도면 정보는 무용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관람객은 리플렛의 작품 드로잉과 실물 작품을 견주어 보며 전시장을 돌아다니게 된다. 보물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그를 향한 길을 찾게 한다면, 보물 모양이 그려진 지도가 주변 ‘사물’들을 둘러보게 하는 것과 같다.

흥미로운 건 관람객이 수행하는 이 행위가 작가의 작업방식과도 구조적으로 상응한다는 것이다. 작가 이민선에게 ‘조각’은 주변에서 발견한 사물들을 재배치/재조합하는 일이다. 『글』이라는 소설은 글을 쓰기 위해 ‘사물을 문자로 보는 연습’을 하던 주인공 이야기다. 어느 날부터 그에게 세상이 글자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 대신 ‘세수를 한 나의 얼굴’이라는 글자가, 길에서 지인을 마주치면 ‘졸려 보이는, 커피를 들고 있는 000’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글은 눈보다 많은 걸 알려준다. 난데없이 삐친 애인 대신 ‘기념일을 잊어 화가 난 애인’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면 대처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나타나는 사물의 텍스트는 글을 고치듯 수정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주인공은 사물을 ‘주물럭거리며 마음에 들게’ 바꾸는 길을 택한다. 사물을 분해하고, 재조립하고, 색을 바꾸고, 공간을 변형함으로써 자신에게 나타나는 사물의 글을 수정하는 조각가. 이민선에게 조각은 그 수정 가능성을 통해 글과 연결된다.



<제보자(A Whistleblower)> 2023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HD 7분 45초



그러기 위해 조각은 육중하고 무겁게 어딘가 붙박여 영원히 자신을 주장하는 모뉴먼트가 아니라 가볍고 변형이 쉬우며 이동성을 갖춰야 한다. 선거철 정치인 마냥 팔을 뻗은 동상 모양의 뽁뽁이 완충재(<똑바로 딱 서서>),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수석을 캐스팅한 실리콘 거푸집(<물질적 물질>), 2.5m 높이로 쌓은 300개의 종이컵(<소원빌어>)처럼, 내용이라 할 만한 것들을 감싸는 빈 껍데기들이나, 좌대 위에 놓은 밀가루 반죽 (<먹지도 못하는 거>), 바벨탑이나 우주선 혹은 행성 모양을 한 장난감 모래(<가소로운 대결, 첫 번째 선수>, <가소로운 대결, 두 번째 선수>)처럼 쉽게 주물럭거려 변형 가능한 재료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가볍고 이동성을 갖춘 것들은 서로 연결되기 쉽다. 어떤 관람객이 <똑바로 딱 서서>를 <소원 빌어> 옆에 놓으면, ‘큰 뜻’ 글자가 새겨진 학교 책상(<큰 뜻>) 옆에 놓는 것과는 다른 의미 관계가 생긴다.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어떤 자리에 짝지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두 현실의 짝짓기”*는 기존 현실을 낯설게 만들어 넘어서려는 초-현실주의의 미적 전략이다. 이 전시는 관람객을 이런 낯선 결합의 시도로 초대한다.

이민선의 영상작업도 낯선 결합을 탁월하게 사용한다. “나는 정말 외로운 사람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바위 위에서 물구나무서는 남자의 영상과 연결(<방문자>)되고, 승용차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반려견의 모습이 ‘갑자기 산 짐승이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멘트와 결합(<제보자>)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현실을 결합하는 이 ‘귀여운 어거지’로부터 훌쩍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주의적 유머가 터져 나온다.

‘짤 더빙’이라고도 알려진 무빙 이미지와 음성 내레이션 사이의 이런 결합의 재료를 작가는 평소 마주치는 일상 풍경들에서 수집한다. 딱 절반으로 깨진 밥공기, 블라인드 속에 모습을 숨긴 감시 카메라, 수평이 맞지 않는 소화전, 플라스틱 대야를 모자처럼 쓴 시멘트 구조물 등 작가가 수집한 ‘낯설고 어색하지만 당연한’ 일상의 모습들이 작품 <4월 18일>로 전시되었다.

1930년 4월 18일은 BBC 라디오가 뉴스가 없다며 피아노 음악만 송신했던 날이다. ‘뉴스도 사건도 없는’, 좀처럼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 날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우리 현실에도 좀처럼 있을법하지 않은 미세한 틈이 있다. 그 틈을 채집하고 조합해 번뜩이는 초-현실의 순간을 창출하는 일. 이민선 작업의 매력은 여기서 나온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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