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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1, Dec 2015

파일럿 프로그램 터와 길

2015.10.29 – 2015.11.27 옛 제주대학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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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아라리오뮤지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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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숨과 숨비소리 사이, 생과 사의 얇은 



해녀와 예술가의 공통점.   하나 의지해 일을 한다. 은퇴가 없다. 고달프고 힘들다.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계속 일한다. 연로하거나 몸이 아파, 혹은날씨가 나쁘다며 모두가 말려도 끝내 바다로 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해녀처럼, 온갖 간난고초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작업하는 삶을 택한 작가들. 좀체 버티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들을 버티는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서고 말겠다는 고집에서 나오는 걸까.  아트센터로 단장을 마치게 ,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그룹전 <파일럿프로그램-터와 > 감상하는 내내 거친 공간에서 낭랑하게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가진 힘의 원류가 새삼 궁금해졌다. 고승욱, 김옥선, 나기, 루니, 박정근, 변금윤, 서인희, 손몽주, 옥정호, 임흥순, 이병찬, 조습, 재주도좋아까지  13명의 작가들이 인생을 저당 잡히고현실과  타협 없이  꿈의 채취물들. 어찌  노릇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망망한 대해에서 호오이 숨비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물질을 해내는 해녀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르는 것도 막을  없었다. 해녀의 심상이 자꾸만  사고를 막는다면,  심상에 의지해 얘기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해녀에게 가장  공포는 상어, 그리고 바닷 속에서 만나는 이상한 물고기라고 했다.” 숨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이마신다.  잠수를 준비하는 상군해녀의 준비자세처럼. 바닷물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좁은 문을 지나 지하로 몸을 넣는다. 좁은 듯한 계단을 지나 왼편에서 미지의 생물을 마주친다. 물속에서만났더라도 한참을 숨을 멈추고 바라봤음직한 신비로운 형상은 스스로 천천히 숨을 채우고 뱉어내고를 반복한다. 이병찬의 <도시 생명체_공간 왜곡-로얄>이다.  깊은 지하로 내려보  설치된 공간 안에서 비닐과 광섬유를 이용한 재료가 어떻게 공간을 장악하며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주변엔 공사재료가 드문드문 놓여있고, 위태로운 난간에 간신히 빈약한 끈으로 혹시 모를 추락을 방지해  상태. 한참을 물속에 가라앉은  속에 숨어 오래간 주인 노릇을 해온 생명체가 방문객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닐까 괜스레 걱정스런 마음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물질을 시작하는 아기해녀들을 향한 선배들의  가르침은 전복을 따는 기술이 아닌  숨을 조심하라 ,  바다에선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하여,  여인들은 숨을 참고, 자신의 욕심을 자르고, 욕망을 다스리며 바다 속에서 평생을 늙어간다.” 지하 오른편 방을 살펴봐야  텐데 이번에도 한참을잠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조습의 우스꽝스런 사진들은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으니까. 사진에 등장하는 주요소재가 다시 <자리돔>, <갈치>, <문어>, <소금>  제목이 되는데, 등장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이 과장되고 익살맞다. 제주 밤바다를 배경으로, 제주에서 공수한 해산물을 제재 삼아, 얼굴에 검댕을, 머리는 하얗게 칠한 작가 자신과 보조출연자가 화면에 등장한다. 척박한 자연을 이겨내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제주인들을 표상해낸다.  자연이 부각되는 제주의 이미지를 벗어나 사람 초점을 맞춘 사진이라는 점도 주목할  하다. 조습의 사진엔 언제나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스토리와  컷의 사진으로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극적 장치들이 놓여있게 된다.   , 혹은 4컷에서 7컷으로 이뤄진 파노라마 형식의 작품들이 펼치는 서사의 밀도는  괜찮은 단편영화  편에 맞먹는다. 

숨을 넘어서는 순간 바다는 무덤이 된다.” 조금  깊이. 변금윤의 <등을  의자> 석고붕대에 둘둘 감긴 의자다. 자혜의원이었다가, 해방 직후엔 제주도립병원으로, 가장 최근엔 제주대학병원으로 변신하며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주의 대표의료기관 노릇을 하던 . 건물의 이전 기능이 다분히 반영된 작품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역사적 산물인 ‘5.16도로 프로젝트  본래 제주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낼  알던 작가다. 이번에도 병원이었던 공간이 가진 특징을 간접적으로 환기시키며, 치유와 소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등받이를 가운데 두고 등을 맞대고 앉게 만들어진 의자는 같은 공간과시간에 있지만 다른 곳을 보며 가까이 있으면서도 분리된 모양으로 배신과 관계단절 등의 은유를 내포한다. 동시에  관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서로의 다름에 상처받지 말라는 치유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가깝게,  멀리, 그렇게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가늠해 내는  관계의 핵심이다. 성장한다는것은 그렇게 중용이란 멋진 말로도 표현 가능한 적당함 익혀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관계나 사회라는 안전망을 가장한, 도처에 위험이 내재한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변금윤은 친절하게 많이 아팠느냐고,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데, 전시공간 천장으로 노출된 파이프로  흐르는 소리가 지나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콘크리트 건물을 널찍한 바다로상정한 상상에 힘을 더해줬다. 



고승욱 <말과 -갯깟> 2015 

피그먼트프린트 170×110cm



같은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을 숨비라고 하지.  , 같은 조류에 노는 사람들끼리  전시의 기획자이기도  고승욱의 말과  시리즈도 공간에 함몰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제주 주상절리들을 널찍한 배경 삼아 이름 없는 이들이 초로 만든  뒤에 숨어 빛을 낸다. 4·3사건의 희생자들을 염두에  , 이름 없는 이들을 애도하고자  작품에서 모순은 발생한다. 애도하자면 이름을 불러야하는데 애초 이름이 없으니 어떻게 애도를 해야 하나. 병원이라는공간에서 역시 무수한 익명이 삶을 새로 얻기도, 잃기도 했을 것이다. 생과 사가 모두 기록된  없는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시의 목적과 다시  닿는다.  터와 공간을 예술의 형식을 빌려 되살리려는 노력이다. 의료원의 전통을 가지기 전부터  터는 이아(二衙) 불렸다. 이아골의 지명은 목사가 집무하는 목관아를 상아(上衙)라고 부른데 반해 판관의 집무처를 이아(貳衙) 부른데서 기원한다. 상아가군사, 호적,  조세 등의 업무와 관련된 건물들로 이뤄진  반해, 이아에는 각종 공방들이 포함  있었다. 관덕정과 함께  터는 제주행정의 역사만도 600년이 넘는다. 4·3항쟁의도화선이 되었던 3·1발포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생과 사가 제주의  어느 곳보다 분주하게 오가던 활발한 공간이다.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던장소가 2009년부터 빈터로 남았다. 그리고 이제 재도약을 준비한다. 

그곳에 가면 허언으로 가득  우리의  다물게 하고 고열에 시달리는 욕망의 이마를 지긋이 눌러주며  나의 숨만큼  내가 숨을 참은 만큼만 내어준다.”

지하전시공간에서 3 공간까지 올라가는 길은 과거 병원이던 공간답게 휠체어가 오르내리기 편한 완만한 비탈이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도착한 목적지에선 루니의 신묘한 악기들을   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악기들에선 독특한 소리들이 나온다. 특유의 악기가 저만의 소리를 낸다. 재주도좋아가 비치코밍으로 모은 재료들로 만든 소품들도 볼거리고 손몽주의 고무밴드가 공간을 탄력 있게 장악한 연출도 놓쳐선  된다. 선들이 면이 되고, 공간이 다시 평면이 되는가 하면, 어느새 면은 선으로 다시 나뉘고 가는 선이 관객의 움직임에 부르르 반응한다. 임흥순의 <숭시> 다시 4·3 다룬다. 4·3 대학살이 일어난 1948 제주도엔 불길한 기운, 제주말로 숭시가 만연했다. 올챙이의 떼죽음이나  개의 샛별로 암시되던 어두운 징조들. 여성들의 이미지와 소리, 제주풍경을 교차하며 시적으로 만든 영상작품이다. 김옥선의 사진  나무는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빛나는 것들_제주 연작에선 작가가 이제껏 천착해온인물의 자리에 제주 원도심의 나무를 고스란히 대체한다. 나무의 초상인 셈이다. 원도심의 나무들은  공간의 건물과 시간을 보내며 서로 조금씩은 닮은모양새다. 박정근의 <물숨의 >  그대로 해녀의 물숨을 사진에 담았다. 잠수 직전, 숨을 가득 머금은 할머니 해녀들의 잠수경 너머 눈빛이 생생하게담겼다. 주름의 개수를   있을 만큼 선명한 이미지다. 자연과 인간, 욕망과 갈등이  표정에 새겨져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제주목관아의 건물들은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한 것이다. 관아회랑  쪽에 보물 652-6호인 <탐라순력도> 복사본이 있다.  관아 모습과 지역의 풍광들을 살펴   있는 그림으로 1702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의 관내 순시모습을 그린 41 채색화첩이다.     <탐라순력도> 이아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때  일대에 가득했다는 동백숲은 기록되지 않았다. 늦겨울에 붉은 꽃을 터트리던 동백은 그렇게 모두에게 잊혔다. 잊혀진 동백을 되살리려는 노력까지  전시엔 있다. 나기의 <이아의 동백>이나 서인희의 동백 판화가  공간을 차지한다. 장소는 필연적으로 기억을 품는다. 피고 졌던 꽃들, 뿌리의 범위를 넓혀가는 나무, 지어졌다 허물어진 집들,  위를 지나가는 것들, 향기들, 소리들,  위를 오가던 새들, 그리고 사람들. 모두들 제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하나의 .  터를 중심으로 쌓여가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남겨지지 않아 아깝고 아쉽다. 모두  말해질  없어도, 일부는 말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회자 되고 기록 되도 좋았을, 하지만 놓쳐버린 어떤 것들. 이번에 마련된 파일럿프로그램  예술적 기록을 위한 시험운행이다. 성공적인 시험운행이 안정적인 정상운행으로 이어지는  당연하다. 기대해본다.       

 


* 서인희 <곽지~바람 머물다> 2015 목판화 65×9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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