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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임무를 완성하고 자신의 시대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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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SUIJIANGUO: Touchable
2015.7.9-2015.8.22 베이징, 페이스갤러리

수이지엔궈(SUIJIANGUO)는 2012년 작가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회고전격의 개인전 '수이지엔궈'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 'Touchable'전은 베이징 페이스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대리석, 철, 브론즈 등의 전통적인 조각재료가 아닌 주로 과정에서 쓰이는 석고와 우레탄을 주 재료로 한 4점의 입체작품과 8점의 평면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수이지엔궈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새겨진 빨간 공룡 작품으로 중국 정치 팝아트 대표작가로 알려졌다. 그의 최근 소식이 국내에 전해진 바 없기에 이 같은 수식을 당장 바꿀 수 없지만, 사실 그는 그 후로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며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글은 그를 고정된 수식어로 기억하기보다 현재진행형의 행보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 조혜정 중국통신원

'Gravity Field(detail)' 2015 Sculpture, mixed media 1,700×800×540cm Photographer: Pace Beijing, Wang X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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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목격자


우리가 386세대, 88만 원 세대 등으로 세대구분을 하는 것처럼, 중국은 링호우(零後)”란 호칭으로 세대를 나눈다. 1956년생의 수이지엔궈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의 급변을 모두 겪은 우링호우(50년대 생) 세대의 인물로, 문화혁명 중 8년간 방직공장 노동자의 삶을 살기도 했다. 적절한 시기에 정당한 교육과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급변하는 현실 속에 있는 모순을 몸소 겪어낸 진정한 시대의 목격자로,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에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흥분했다.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는 자신이 놓인 시대적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지난 30여 년간 시대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를 조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묵묵히 수행해왔다. 


2014 10월 뉴욕 퍼블릭아트 펀드의 후원으로 그의 작품 <맹인초상>이 중국작가로는 최초로 센트럴파크 도리스 프리드먼 플라자(Doris Freedman Plaza)에 전시되었다. 최근 작품을 기존의 것과 비교했을 때 우선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기에, 동일 작가의 작품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이 주장해온 것을 전복시키기도 하며 새로운 언어를 모색해왔다




Installation view of <Suijianguo: Touchable> 

Photographer: Pace Beijing, Wang Xiang 




<맹인초상> 2008년부터 시작된 맹인조각(Blind sculptures)’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조각이 시각으로 호소하는 것을 포기하고 어떠한 이성적 컨트롤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손끝의 느낌과 흙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흔적을 조각의 표면에 남기고자 했다.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것은 이차원의 도상이지만,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조각이 된다라 말하며 조각에서 외형으로서의 외형이 사라졌을 때 그 자체에서 오는 순수함을 표현해내고자 두 눈을 가렸다. 


<만질 수 있는(Touchable)> 이라는 타이틀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최근 작품들 역시 맹인조각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작품에 작업과정과 작가의 손이 스쳐 간 흔적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넓이 17미터, 높이 8미터의 대형 입체작품 <Gravity Field>는 이번 전시가 열리는 공간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것으로 전시 3주 전부터 갤러리 내에서 바로 제작한 것이다. 견고한 조각적 재료가 아닌, 별도의 캐스팅이 필요 없는 형상을 만듦과 동시에, 바로 굳어버리는 성질의 재료인 석고와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파기된다. 이는 굳이 다다이즘적인 파괴적 태도의 개념적 행위라기보다는, 거대한 사이즈 때문에 파기하지 않으면 전시장 문밖을 나갈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와 재료 자체의 선천적 결함 혹은 가능성이 작가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자극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Earthly Force> 1992-1994 




수이지엔궈 VS 수이지엔궈


사실 수이지엔궈는 중국 컨템포러리 조각에 있어 누구보다도 많은 시대적 아이콘을 생산해 냈다. <세속적 강요(Earthly Force)>를 대표로 하는 90년대 초 작업에는, 단단한 것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듯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개혁개방의 경제적 풍요가 함께 가져온 경박한 사회적 풍토와 천안문 사태 이후 다시 박탈당한 자유를 상징한다. 그 후 수이지엔궈는 1997, 인민복을 조각화한 <중산복(Legacy Mantle)>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중국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으로, 작가는 중산복이야 말로 지난 100년간의 혁명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중국인들은 아직도 중산복을 입고 있다고 말하며 혁명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을 형상화했다. 또한, 그는 아카데미에서 중시하는 사실주의적 조각언어가 단지 재현을 위한 테크닉이 아닌, 동시대성을 표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신념을 끌고 나가며, 마침내 그리스조각에 중국식 인민복을 덧입힌 <옷주름 연구(Drapery Study)> 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사실주의적 조각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국제무대에 알려지며 자연스레 해외에 드나드는 기회가 많아진 그는, 외국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대량생산의 저렴한 상품으로 취급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중국제 공룡 장난감을 구매해 3미터의 크기로 부풀려 배에 메이드인 차이나를 새겨 넣었다. 무시무시함을 상징하는 공룡은 케이지에 갇힌 채 위상은커녕 몸집만 커다란 무력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됐다. 개혁개방 후 근대에 잃어버렸던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자부하던 중국인들에게 작가는 다시금 타자화된 시각에서의 중국을 보여주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미술의 붐이 정점에 다다랐던 2006년을 기점으로, 그의 작업은 시대의 아이콘 생산이 아닌 작가 개인의자아완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작가 스스로도 불안감이 들 정도로 그의 작품은 만들어내기 무섭게 바로바로 팔려나갔고, 밀린 작업량을 소화하느라 매일 공룡과 인민복에 페인트로 도색을 하던 그해 어느 날, 수이지엔궈는 우연히 철사를 페인트 통에 담그며 <시간의 형상>이라는 장기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작업인생의 후반전에 진입하게 된다. 가는 철사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테가 쌓이듯 크기가 커져 현재는 커다란 풍선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되었다. 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매일 아침 작업실에 오자마자 하는 일은 페인트 통에 작품을 담가 한 겹을 입힌 후 시간과 크기를 기록하는 일이다. 이 작품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작가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지속된다. 제목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시간의 형상은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형상화 되었다. 




<Drapery Study-Dying Slave> 1998




자신의 시대를 살다


수이지엔궈가 지난 30년간 자신의 예술적 이상 실현 보다는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감 수행을 우선시했다면, 현재 그는 온전히 자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그는 80년대부터 기록해온 실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적힌 작업 노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선보인 작품들은 더욱 실험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반항적인 날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는 누구보다 가장 조각적인 조각을 해왔지만, 최근 작품에서는 조각이 조각 같아야 하는 요소들은 배제되고, 오히려 조각스럽게 하는 요소들에 대해 반문을 던지고 있다. 


소위 그를 추상과 구상, 개념과 사실주의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허물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그에게 있어 애초에 경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로서의 행보, 교육자로서의 교육관을 막론하고 그는 늘 난처한 경계에 놓여 왔으나, 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그가 교수로 재직 중인 중앙미술대학은 유수의 작가들을 많이 배출한 중국 최고의 예술대학이지만, 애초 이 학교는 사회주의 문예방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술로 인민에게 기여하라(art for the people)’는 목적에 의해 설립된 학교이다. 그만큼 지금까지도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자칫 대립하기 쉬운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수이지엔궈는 학교에 남아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왔다.





<Blind Portrait> 2008 Cast bronze 500×206×230cm

 




중국미술, 그 폭풍 후


한번은 소위 중국미술의 사대천왕으로 불리는 작가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사대천왕으로 알려졌다.”고 말하자 작가의 표정이 굳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을 칭하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확고한 입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고정된 명칭이 작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올해 60세를 맞이한 수이지엔궈의 최근 작품에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기록하려는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미켈란젤로와 로댕도 말년에 가서는 작품 어딘가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그는 현재 베이징 외곽에 2,600평방미터의 작업실 겸 작품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을 짓고 있다. 대규모의 작업실이 자칫 사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스튜디오에 가보니 그의 작업량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다. 


여담이지만, 최근 몇 년간 그는 소위 돈 안 되는 작업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작업실 겸 개인 미술관 건립을 위해 소유하고 있던 집까지 정리하며 모든 열정과 돈을 이곳에 쏟고 있다. 최근 그의 작품 중에는 하루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십 년에 한번 등 일정한 기간을 정해두고 진행하는 작업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모두 작가가 생을 마감하는 그 시점까지 진행된다. 백 세를 외치는 시대에 벌써 사후까지 준비하는 회고적 태도가 혹시나 중국미술에 갑작스레 불어 닥친 폭풍이 작가에게 일찍이 노년의 상태에 접어들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든다. 





<Legacy Mantle> 1997 

Cast aluminum 244×179×122cm Edition 3 of 3





중국미술은 2000년을 전후로 세계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엄연히 말해, 등장이 아닌 그들이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뿐 계속 그곳에 존재해 왔다. 본격적으로 중국미술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시기에 그 중심인 베이징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필자 또한 시대의 목격자가 된 것처럼, 미술 시장에서는 연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정작 그 신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눈앞에 걸어 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와 같은 집중조명이 어쩌면 그들에게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을 수 있었겠구나 싶다. 지금 또래의 젊은 작가들과는 달리 당시 신화의 주인공들인 5~60년대 생 작가들은, 성공한 예술가가 무엇인지, 미술 시장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다. 중국미술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에 대해 거품, 혹은 한때 불었던 폭풍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끝난 것이 아닌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말로 시대가 남기고 간 질곡 혹은 무기 없이, 세계무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  



글쓴이 조혜정은 국민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베이징에 거주하며 한국과 중국에서 각종 전시기획 및 연구에 참여, 중국 주요미술매체 『ART 289, The Art Newspaper』 등에 기고했다. 현재 중국 청화대학교 미술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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