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09, Oct 2015
카라 워커
Kara Walker
문명과 인간, 자연의 관계방정식
1993년에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밤중 몰래 내린 함박눈처럼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정체성 이슈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자고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얀 설국으로 변하는 것처럼, 미술 판이 뒤집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 이 한 번의 행사가 인종, 젠더, 퀴어, 다문화 등의 모든 정치적 요소들을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모아내면서 이 사회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미술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그 시험은 합격했고, 이제 현대미술에서 정체성과 연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찾는 건 흔하디흔한 일이 됐다. 과거에 성취해낸 혁신은 그렇게 일상이 됐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다수의 발전을 위한 것, 발견되지 않은 더 많은 소수들을 찾아내려는 움직임도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성소수자인권 운동, 인종운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가시화됐다. 이 ‘가시화’에 미술을 위시한 각종 문화적인 움직임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아니다. 역으로 오직 문화로서만 시도 가능했던 이야기였기에, 문화적 움직임이 가시화를 이룩해낸 것일까?
● 이나연 객원기자 ● 사진 Kara Walker·Sikkema Jenkins & Co. 제공
'The long hot black road to freedom' 2005-8 Cut Paper(33 elements), paint on wall 430×4,500cm 고양아람미술관 [신화와 전설] 설치전경 ⓒ고양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