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전반적인 인상은 작년 ‘베를린 비엔날레(Berlin Biennale)’와 상당히 흡사하다. 두 전시 모두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어딘지 모르게 음울하며 비인간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디스토피아적인 심상을 반영한다. 실제로 당시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와 총 감독을 맡았던 DIS의 웹사이트에 포함되어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작품에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3D 렌더링 이미지, 두서없는 텍스트들의 조합, 몽환적인 내러티브 목소리, 다큐멘터리, 광고, 증강 현실, 게임, 어플리케이션 등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인터넷에 부유하는 파편적인 조형들이다. 우리가 매일 수시로 보게 되는 인스타그램(Instagram), 페이스북(Facebook) 같은 SNS와 유튜브(Youtube)에 떠도는 영상, 테드(Ted)가 제공하는 강의 등 사이버 공간에서 마주치는 이미지들의 형식과 내용 자체가 작품에 사용되기도 한다.
다만 두 전시 모두 테크놀로지와 디지털이라는 커다란 테마를 공유함으로써 전시 작품들에서 조형적, 내용적인 유사성이 보이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면 이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이 전세대적이고도 전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Sophia Al Maria Installation view of <Sisters> 2015
Triennial Surround Audience, New Museum, New York, Courtesy
ⓒ Photo: Benoit Pailley
밝고 경쾌한 색으로 처리된 세 스크린들 사이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 관람객들은 여성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자유롭게 그 사이를 오가면서 디지털 영상을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작년 ‘베를린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 관 샤오(Guan Xiao) 역시 인터넷에서 이미지들을 수집하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개인의 관점에 맞게 배열해서 나름의 문맥을 만들어가는 인터넷 서핑을 하는 관람자적인 위치에서 작업한다. <Weather Forecast>는 세 개의 채널이 나란히 설치된 영상작품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보다는 시각적으로 정제된 영상들을 사용됐으며, 병치된 이미지들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면, 얼음 동굴 이미지, 푸르른 언덕 바로 옆에 게임 화면에 나올 법한 배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사용된 사운드 역시 인터넷에서 찾은 것들로 효과음, 음악, 내레이션 등을 사용됐다. 이렇게 수집, 편집된 영상은 한 CF 같다가도 다큐멘터리나 뉴스, 비디오 게임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안느 드 브리스(Anne de Vries)의 <Submission>은 디지털 매체에 반응하는 사람의 모습에 집중한다. 인간 두상은 각 부분이 나뉘어 따로 설치되고 스크린과 스피커가 안팎으로 설치돼 있는데 여기서 출력되는 영상은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장소들이라고 한다. 작품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다소 그 방식이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으나 디지털이 주는 정보들이 사람들에게 심기다시피 하는 현상을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조형적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전시 공간 막바지에 이르면 보이는 해골 이미지들은 알렉산드라 도마노빅(Aleksandra Domanovi助⃝)의 <untitled>다.
Anne de Vries <Submission> 2016
Mixed Media Installation in <dataspheres>
ⓒ ZKM | Zentrum fur Kunst und Medien, Photo: Jonas Zilius
작가는 현대적 페미니즘의 개념인 사이버 페미니즘(Cyber feminism)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작품에 반영해오고 있다. 여기서 사이버 페미니즘이란 사이버 공간과 기술의 발전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페미니즘 사상으로 2015년에 제작된 이 작품에서 역시 이것이 드러난다.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포일에 인쇄된 해골들은 얇은 코트를 걸치고 자신 있게 무엇인가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것은 바로 3D 프린터 ‘Ultimaker.’ 이 기계는 생명의 탄생을 은유하고 있으며 여기서 해골은 생명력을 상실한 존재가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프린터에서 무엇인가 뽑아내고 있는 해골들은 천연덕스럽고 유희적이기까지 하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 떠도는 메시지들, 행복, 자아성취, 금전적 성공에 대한 공허한 외침을 전하거나 디지털 문학을 기반으로 설치된 작품 등 디지털과 기술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전시 서문에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post internet art)’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사실 기존 인터넷 아트와 비교했을 때 본 전시의 작품들에서 내용이나 형식적으로 크게 새로운 특징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여러 관점들과 가능성을 수용하고자 제시한 설명은 주어와 몇몇 단어만 바꾸면 다른 수많은 전시들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고 원론적이다. 현재 통용되는 디지털 형식이 충실하게 반영된 작품들이 비슷비슷한 느낌을 주는 속에서 어딘가 모르게 아득한 느낌이 든다. 큐레이터가 화두로 제시한 주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이며 예술은 무엇을 전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마치 디지털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글쓴이 한정민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알토 대학교에서 현대미술과 이론 석사학위 과정을 밟던 중 현재는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학교(Hochschule für Gestaltung)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