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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6, May 2016

돌아온 연금술사, 야니스 쿠넬리스

France

Jannis Kounellis
2016.3.11-2016.4.30 파리, 조폐국

어디서 굴러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못난 돌덩어리들, 검디검은 석탄 자루, 유리 공병, 스테인리스 선반이 미술관 안을 가득 메운다. 탄광촌 앞에 서 있는 것 마냥, 사방에 흩어진 이름 모를 돌들이 잿빛의 공기를 내뿜고, 살아있는 생쥐 대여섯 마리가 좁은 케이지 안에서 우글거리며 뒤척인다. 20세기 현존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나이 지긋한 한 아티스트의 전시장 풍경이다.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이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오브제들이 어떻게 미술관까지 들어오게 된 것일까? 사실, 새로운 예술적 시도와 다각적인 미학적 해석이 허락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그리 놀랍지 않은 광경일 수도 있다. 오히려 익숙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하찮은 오브제들이 미술관 문턱을 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잘 다듬어지지 않은 사물들이 미술관에 자리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인에게 버려진 것 마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오브제들을 예술작품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일뿐더러, 공들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탓에 어떤 이들에는 발칙하고 성의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롱 섞인 멸시와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이 값싼 오브제들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당당히 예술작품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현대예술의 가장 자주 등장하는 히어로로서 자리매김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사물이 예술작품으로 갑자기 돌변한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공병 하나가 고귀한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과거의 회화와 조각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는 적어도 수 천만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마침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향한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창조적인 도전정신과 과감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Sans titre' 2013 Lampadaire de couteaux, lit de camp sur lequel repose un sac en toile, plaques de fer. Toile peinte en jaune avec couteau suspendu a une barre metallique effleurant le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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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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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물은 예술이 있다. 소피스트들이나 할법한 궤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마그리트(Rene Magritte) 문구를 기억하는가? 누가 봐도 담배 파이프인 이미지를 캔버스 중앙에 하니 그려놓고, 바로 밑에 작가는 어처구니없는 글귀 하나를 남겼다. 이미지와 재현의 반역을 이토록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마그리트의 유명한 파이프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널리 회자하고 있지만, 조금만 넓게 해석해보자면 예술 전반에 던져질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이는 그대로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 대개가 그렇다. 실제로 인간의 감각 가장 발달한 것이 시각이다. 인류는 다른 감각능력보다 시각에 많이 의존했고, 시각을 통해 얻은 지식을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눈으로 것을 쉽게 믿는 것은 인간신체에 내재한 본성이자, 세기에 걸쳐 물려받은 오래된 학습의 결과이다






<Sans titre> 1973 Lucio Amelio Gallery, Naples

 Photographe: Claudio Abate Courtesy de l'artiste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시각에 의지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인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술 또한 그렇다. 본디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에서 태어나는 예술은 인간의 시각만큼이나 인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작업활동을 펼쳐온 작가가 있다. 바로, 그리스 출신의 노장 아티스트,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운동의 선봉에 섰던 그는 현재까지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계속 이어오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쿠넬리스의 예술사적 업적은 설치, 퍼포먼스라는 예술의 장르적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 개념미술, 과정미술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현재 프라다 예술재단(Fondazione Prada) 아트디렉터,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 1967 당시 가난한 예술이라고 명명한 아르테 포베라 운동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쿠넬리스는 운동 이름처럼 하나같이 볼품없는 오브제에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Médaille d'aritste Jannis Kounellis> Portrait à la bougie






마치, 금속을 가지고 금을 만들어낸다는 연금술사처럼 그는 석탄, 목재, 유리, 철과 같은 소재들에 내재된 고유한 성질을 형상 밖으로 이끌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가치있는 무언가로 만들었다. 하필이면, 쿠넬리스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곳이 파리조폐국(Monnaie de Paris)이다. 전형적인 네오클래식 양식의 웅장한 외관과 황금빛이 가득한 화려한 실내장식을 자랑하는 조폐국의 공간이 과연 쿠넬리스의 전시장으로 적합하냐는 의구심이 법하지만, 오히려 작가 선정이 탁월했다는 평가다. 여러 가지 금속을 불에 녹이고 섞어 주조되는 동전 화폐의 제작방식이 쿠넬리스의 작업과정과 닮아있다는 점이 관객들에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전언이다. 르네상스를 필두로 17, 18세기 이탈리아 예술의 황금기를 가져온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캔버스에 심취했던 젊은 미술학도는 어느새 흰머리가 수북하고, 굵게 패인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만큼은 세월을 거스르는 듯하다. 여전히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전위적이며 도전적이다. 50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는 세상 어디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을 조폐국 전시장 안에 한가득 풀어놓았다






<Sans titre> 2016 Huit chevalets en fer sur lesquels sont posees

 des plaques en acier avec imprimees les dates de naissance 

d'artistes <Sans titre (Carboniera)> 1967 Charbonniere en metal avec 

charbon <Sans titre> 1969 Un lit de camp avec dalles en fer et 

combustibles Un lit de camp avec une cage abritant six rats 

<Sans titre> 2016 Base de clous  






입이 열린 검은 쓰레기봉투가 봉지째 놓여있는가 하면, 검은 석탄재 옆으로 생쥐들이 웅크리고 있다. 이미지라고 할만한 것이라고는 앙상한 나무 이젤들이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철로 캔버스 여덟 점뿐이다. 어떤 묘사도, 어떤 재현도 찾아보려야 찾아볼 없는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캔버스는 관객의 시각운동을 철저히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관객의 망막에 맺힌 상들이 아무런 의미도, 특별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니 혼란스럽기도 하다. , 눈을 뜨고도 장님이 상황이다. 그러나 혼돈도 잠시, 관객은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기관에 기대어 현실의 공간을 이탈하는 경지에 이른다. 귓가에 흐르는 소리와 풍기는 냄새를 통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있는 시간과 마주한 관객은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하기도, 자신의 현재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들을 예견해 수도 있다. 옷걸이에 외롭게 걸려있는 중절모와 두꺼운 외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찬장을 채운 수십 개의 , 짚으로 카펫과 같이 시작도 끝도 없는 오브제들의 궁금한 사연은 오로지 관객 각자만이 있다. 차례 벌어진 전쟁의 고통과 산업혁명을 겪은 21세기 인류의 가팔랐던 역사를 돌이켜보며, 쿠넬리스는 가장 소소한 일상을 통해 황폐해진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Kounellis écrit avec le feu> 1969 Courtesy de l'artiste  






모두가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있는 오브제들을 의도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그는 평범하다 못해 하찮은 미물도 충분히 심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순간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성과를 보여줬다. 갤러리에서 살아있는 열두 마리를 사육하고, 반쯤 지운 악보에 맞춰 즉흥적인 음악 연주와 발레공연을 선보인 작가의 과감한 도전은 예술은 고귀한 이라는 낡고 부르주아적인 전통을 전복시키는 것은 물론, 작품의 금전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당시 미국의 예술시장논리에 반기를 내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했던가. 쿠넬리스에게는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덕에 그가 평생 남긴 작품들은 어떤 물리적 흔적도 남기지 않고 거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벤야민(Walter Benjamin) 말한 지금, 여기(Hic & Nunc)에서 창출되는 예술적 아우라를 가장 실천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유독 그는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촛불을 사랑했다. 촛불이 소중한 이유는 아마도 언제 갑자기 꺼져버릴지 모르는 유한한 생명력 덕분이리라. 자신의 코를 모두 가려버릴 정도로, 얼굴 정중앙에 촛불을 놓고 자화상을 남긴 쿠넬리스, 그는 우리의 삶을 예술로 빚어낸 실로 대단한 연금술사이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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