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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0, Mar 2019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France

Sugimoto Versailles Surface de Revolution
2018.10.16-2019.2.17 파리, 베르사유 궁전

작년 10월, 프랑스와 일본 수교 160주년을 기념하여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대적인 전시가 개최되었다. 수십 년간 프랑스 예술계를 이끌어 온 알프레드 파크망(Alfred Pacquement)과 팔레 드 도쿄의 디렉터 장 드 르와지(Jean de Loisy)가 공동기획 했으며 일본의 내로라하는 국보급 아티스트,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가 초대작가로 선정된 이 프로젝트는 시작 전부터 엄청난 라인업으로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2018년은 여러모로 양국에 의미가 깊은 한 해였다. 2008년 제프 쿤스(Jeff Koons)를 시작으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등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를 해마다 선보인 베르사유 현대예술전시가 10주년을 맞이했고, 또 때마침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엇갈리고, 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두 나라에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할 정치적·외교적 당위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해였으리라. 작가의 어깨가 무겁게 됐다. 왕이 곧 국가이자 태양으로 추앙받았던 곳. 스기모토는 이 황금빛 유산 속에서 양국의 영광스러운 만남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지금부터 들여다본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 제공

'Napoleon Bonaparte' 1999 Tirage argentique Courtesy de l’artiste ⓒ Tad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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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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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하면 단연 떠오르는 아티스트 히로시 스기모토.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발표한 초창기 사진 연작디오라마(Dioramas)’, ‘극장(Theaters)’, ‘부처의 바다(Sea of Buddha)’를 비롯해 1990년대 후반부터 밀랍인형으로 제작된 유명 인사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연작초상사진(Portraits)’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평생에 걸쳐 무채색의 작업만을 고수해왔다. 스기모토의 이미지 속에는 오로지 밝음과 어두움만이 존재한다. 엄격하게 지켜온 그의 절제된 색채 사용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작가의 사진에서 흑백 컬러는 단순히 이미지를 구성하는 조형적·심미적 요소의 기능을 넘어, 비물질적인시간성(temporalit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초월적 가상(transzendentaler Schein)의 세계를 여는 일종의 개념적·정신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포착한 것은 실제적 형태가 이미 소멸한 것들이다. 예컨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물들이나 이제는 멸종되어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동물들 혹은 인간의 마음 속에 믿음의 표상으로 존재하는 불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들은 흑백이 빚어내는 강렬한 명암 속에서 현실의 시간성을 초월해,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표류하는 불멸의 가상적 존재로 거듭난다





<Louis XIV> 2018 Tirage argentique 149×119.5cm

 Courtesy de l'artiste & Gallery Koyanagi (Tokyo),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London, Paris),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 Hiroshi Sugimoto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이 그린 헨리 8(Henry Ⅷ) 와 그의 여섯 부인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밀랍인형들을 촬영한 초상사진이 처음 공개될 당시, 사람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왕실 가족의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집요하리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스기모토의 사진술은 실제를 압도하고 선형적인 시간의 축을 허물어뜨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모델들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을지 확인할 길이 없음에도, 관람객은 작가의 초상사진이 실물이라고 믿게 되는 심리적 착각에 빠진다는 점이다.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거장, 16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홀바인일지라도, 그는 기껏해야 왕과 왕의 여인들을 더 젊고 더 아름답게 그려내야 했던 궁정화가에 불과했다. 왕 앞에 선 홀바인, 그의 눈과 손은 얼마나 정직했을까. 미화된 초상화, 그 초상을 똑같이 본뜬 밀랍인형, 그리고 그 밀랍인형을 다시 찍은 초상사진. 애당초 허상이었던 이미지는 실존하는 인물로 둔갑했고, 스기모토는 그 위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력을 덧발랐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이토록 말끔하게 지워버린 자가 또 어디 있었던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찬란한 시대를 누린 절대군주와 지배자들을 다시 소생시키는 데 이만한 적임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고, 그래서 민중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을지라도.





<Surface of Revolution> 2018

 Aluminium, acier Courtesy de l’'artiste ⓒ Tadzio 

 



스기모토의 <혁명의 표면(Surface de Revolution)>전은 베르사유 궁전 측에서 수락한 최초의 사진전이자, 왕궁의 별채 트리아농(Trianon)을 전격 공개한 특별한 전시다. 왕실 가족의 사적인 용도로 쓰인 이곳은 루이 14(Louis XIV)의 애첩이었던 몽테스팡 부인과 맹트농 부인을 시작으로 루이 15의 여인들,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 퐁파두 부인, 그리고 그 유명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거쳐 간 곳으로 베르사유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스기모토는 먼저 마리 앙투아네트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았다고 전해지는 프티 트리아농에 그의 환영을 불러냈다. 다이닝 룸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왕비는 한 손에 부채를 든 채, 지그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꽉 조여 매어진 잘록한 허리, 그 밑으로 풍성하게 퍼지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왕비의 자태를 보고, 193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배우 노마 시어러(Norma Shearer)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서 소환된 사람은 궁의 안주인만이 아니다.





<Salvador Dali> 1999 Tirage argentique 

149×119.5cm Courtesy de l'artiste & Gallery Koyanagi 

(Tokyo),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London, Paris),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 Hiroshi Sugimoto 

 



 성 내부의 예배당과 정원 속에 위치한 프랑스 정자(Pavillon Francais)에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유명 인사들이 함께 자리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자신을 스스로 태양왕이라 칭하며 절대군주로 군림한 루이 14,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계몽주의 철학가 볼테르(Voltaire), 유럽을 제패한 전쟁영웅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독립국의 초석을 마련한 미국의 국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까지 시대를 뒤흔든 역사적 인물들은 스기모토의 카메라를 통해 재탄생했다뒤이어 왕비의 극장(Theatre de la Reine)에서는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극장>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 장 노출 촬영한 이 작업은 스크린 위를 지나간 수십만 장의 이미지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응축시킨 것으로 시간의 궤적을 물질적으로 치환해내는 한편, 빛의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사진과 영화의 매체성을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강렬한 형태로 드러낸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조명한 소피아 코폴라(Sophia Coppola)의 영화를 선택했다





<Glass Tea House Mondrian> Bassin du Plat-Fond, Versailles

2018 Commissionnee a l'origine par Pentagram Stiftung 

for LE STANZE DEL VETRO, Venice Architectes :

 Hiroshi Sugimoto et Tomoyuki Sakakida / 

New Material Reasearch Laboratory Courtesy

 de l'artiste & Pentagram Stiftung ⓒ Tadzio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왕비의 삶.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History)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발광하는 빛들만이 남았다. 스기모토는 한 편의 연극 시나리오를 구상하듯 베르사유 전시를 준비했다. 벨베데르 음악당(Belvedere)에 설치된 신작 <혁명의 표면>이 그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아닐지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네 개의 긴 창문과 네 개의 문이 만나 정팔각을 이루는 벨베데르의 정 중앙에 세 층으로 구성된 기묘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매끄럽지만 꽤 무거워 보이는 강철 조형물은 유클리드 공간에서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쌍곡선의 기하학을 현대의 기술로 구현해낸 결과물이다. 혁명이란 새로운 시스템을 고려한 통치의 힘과 사회적 질서의 반전이며, 원형, 혹은 타원형의 궤적을 따라 중심부 주변을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밝힌 바 있는 작가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듯하다


한적한 플라-퐁 연못(Bassin du Plat-Fond)에 찻집이 하나 떠 있다. 2014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선보인 <몬드리안의 유리 찻집(Glass Tea House Mondrian)>은 일본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다도에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구성을 접목해 지은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다도, 프랑스와 일본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기발한 장치가 아닐 수 없다. 한 변의 길이가 불과 2.5m 밖에 되지 않는 다도 공간, 너무나 소박해 웅장한 베르사유의 풍경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830헥타르의 이 드넓은 땅도 투명한 큐브 속으로 투영되고 만다. 여러 의미가 붙은 잔치판 속에서 스기모토의 절제 미학은 빛을 발했다. 스기모토와 베르사유의 만남이 전시에 더 적절한 수식어이겠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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