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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2, May 2014

바티 커: 나쁜 행실

China

Bharti Kher: Misdemeanours

“하얀 코끼리는 서양에서 우둔함을 상징하지만, 아시아에서는 행운을 의미한다.
지역에 따라 신화, 전설, 설화, 집단은 각양각색 이다. 난 단지 이러한 이야기들을 사랑할 뿐이다.”*.
● 권은영 중국통신원

'Not all who wander are lost' 2009-2010 Wooden stools, table, mechanised antique globes Overall dimensions variable Honus Tandijono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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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영 중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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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가대표급 동시대 여류 작가 바티 커(Bharti Kher)가 말한다. 그의 회화, 사진, 조각,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은 문화, 역사, 제도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을 꼬집는다. 파리 퐁피두 센터, 게이츠헤그 발틱 동시대 예술 센터, 리옹 현대미술관, 도쿄 동시대 예술 센터 그리고 한국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국제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 그는 지난 1월 11일부터 4월 20일까지 약 100일 동안 상하이 와이탄 미술관(Rockbund Art Museum)에서 중국 대륙에서의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12년 베이징 UCCA에서 <인도 고속도로(Indian Highway)>전을 통해 동료 작가들과 함께 중국 관객들에게 다가갔던 반면, 이번 상하이 전시에서는 홀로서기를 통해 보다 심층적인 대화의 장을 열 수 있었다.  


와이탄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전시장 북쪽 파사드에 설치된 대형 작품, <여왕 과녁(Target Queen)>(2014)이었다. 지름 4미터에 이르는 과녁처럼 생긴 16개의 원들이 파사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작품은 2007년 두 폭 제단화 <빈디(Bindi)>의 2014년 버전으로, 인도의 기혼 여성들이 이마에 붙이는 붉은 작은 점, 빈디에서 출발한다. 빈디는 미혼과 기혼 여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구분을 짓는 인도의 보수적인 전통을 오롯이 담고 있는데, 이 빈디가 영국에서 태어난 바티 커에게 준 깊은 인상은 1995년 이후 그의 작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티 커의 빈디가 전통 빈디와 다른 점은 다양한 재질의 정자의 형태를 띠고 있는 형형색색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2층 한 쪽 벽면에는 얼핏 보면 추상화 같은 원형 오브제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거울 표면 위에 빈디가 밤 하늘의 별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Lady with an ermine> 2012 

Fibreglass, granite, wood, leather, ceramic, 

fur 230×60×60cm Kiran Nadar Museum of Art India




<말해줘도 모를 것을 무엇을 이야기하나(What can I tell you that you don’t know already?)>(2013)라는 작품 제목을 마주한 순간 물음표가 머릿속을 채웠다. 바티 커는 말한다. “제 생각에 사실 당신은 벌써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알고 있는 것이 당신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요. 만약 당신이 주의 깊게 듣는다면, 고요함이 어떤 연설보다도 많은 것을 폭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당신’은 인간으로 확장되고, ‘당신’은 세계나 우주가 될 수 도 있지요.” 1992년, 인도 현대미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즈음, 4살 이후 처음으로 인도에 방문한 그는, 지금의 남편 수보드 굽타를 만나 인도에 정착하게 된다. 부모님의 나라, 인도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타자였고, 영국에서 타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는 몸소 동서 문화의 충돌과 융화를 체현하기에 이른다. <초콜릿 머핀(Chocolate muffin)>(2004), <천사(Angel)>(2004), <가족사진(Family portrait)>(2004), <자화상(Self portrait)>(2007), <망토와 방패를 든 전사(Warrior with cloak and shield)>(2008) 등 3층에 전시된 일련의 반인반수 사진 작업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성 생명체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혼성 시리즈에는 가사 도구들이 조금은 엉뚱한 모습으로 혼재하고 있었는데, 예컨대 <천사>는 개의 머리가 달린 진공청소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동서 문화, 전통과 현대의 혼성뿐만 아니라, 다신교적이며 애니미즘적인 인도의 전통 종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2012년, 베이징 UCCA에서 열린 <인도 고속도로>전에서도 선보인바 있는 <자애로운 분이 잠든 사이(And all the while the benevolent slept)>(2008)에 등장하는 여인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친나마스타(Chinnamasta) 신으로 본래 한 손에는 자신의 머리,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초승달 모양의 큰 칼을 들고 있다. 자기희생을 상징하는 친나마스타 여신은 정신적인 힘을 일깨우는 도상으로 여겨져 왔다. 작가는 인도 전설 속 여신의 언월도를 본차이나 찻잔으로 대체하여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인도의 지난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The skin speaks a language not its own> 

2006 Fibreglass, bindis 142×456×195cm 

Kiran Nadar Museum of Art, India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족제비 털 가운을 갖고 있는 여인(Lady with an ermine)>(2012)에도 역시 찻잔이 등장한다. 차를 사랑한 영국에 대한 인도의 검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찻잔에는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의 여성이 갖는 가사 노동과 속박도 담겨있다. 본래 이 작품의 제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초상화 작품과 같다. 섬유 유리, 화강암, 목재 갈퀴, 가죽, 도자기 등 재료의 종류만큼 젠더, 정체성, 신화, 전설, 현실, 폭력 등 많은 개념을 뒤섞인 이 작업에서 작가의 혼성 미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성 생명체들로 가득한 3층을 지나 4층에 올라가면, 한국 예술 애호가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대표 작품,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The skin speaks a language not its own)>(2006)가 전시되어 있었다. 4미터 남짓의 대형 코끼리를 표현한 이 작품은, 역시 무수한 많은 빈디로 덮여 있었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성스러움, 지혜와 힘, 문명을 의미하지만, 정자의 형태를 띠고 반짝이기까지 하는 빈디로 뒤덮인 코끼리는 인도의 전통적인 상징성을 상실하고 젠더의 문제를 상기시키고 있었다. 




<Virus V> 2014 

Mahogany wood, brass, bindis 46×30.5×35cm

(box), 2m(bindi diameter) Courtesy the artist




동시에, 쓰러져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한 코끼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암시하는 정자 형태를 씌움으로써 관람객들을 생과 사의 문제에 대한 사색의 길로 인도했다. 거대한 코끼리는 대립적인 개념들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 기고 있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1층 전시장 입구를 지키던 하이에나 한 마리를 다시 만났다. 이번 바티 커 개인전 전시 제목이 되어준 <나쁜 행실>은 본래 이 작품의 제목이었다. 많은 작품 중 왜 이 작품이 전시 제목이 되었는지 작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죽 조각을 등에 얹고 있는 섬유 유리 재질의 하이에나는 바퀴 달린 짐수레 위에서 투박한 목재를 밟고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털로 뒤덮여 있어야 할 하이에나는 정작 반질반질한 섬유 유리 피부를 가진 채, 등에는 작은 가죽 조각을 걸치고 있었다. 덕분에 사실적인 하이에나는 박제가 아닌 조형물로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이에나 발밑의 목재와 짐수레 역시 작품과 현실사이에 경계를 지으며 조각 받침대의 역할을 하며 투박한 조화를 이뤘다. 뒤를 돌아 하이에나가 바라보는 것은 하이에나의 나쁜 행실일까? 인간의 나쁜 행실일까? 바티 커의 첫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을 되새기며 전시장을 나왔다.




<Target Queen> 2014 PVC, aluminium 

18×18m(dimensions overall) North facade 

of the museum Courtesy the artist  




이번 바티 커의 개인전을 준비한 상하이 와이탄 미술관은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동시대 시각 예술 중심의 사립미술관으로, 2010년 상하이 황푸구에 개관했다. 와이탄 미술관 건물은 1932년 영국 건축가 조지 윌슨(George L. Wilson)의 작품으로, 황실 아시아 협회(The Royal Asiatic Society)건물로 역할을 하다가, 2007년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미술관으로 보수한 것이다. 개관 후 줄곧 동시대 시각 예술과 관련한 연구 전시 및 교류 전시를 진행해왔으며, 2011년 호한루의 <불철주야>전을 연 것과 같이 외부 기획자를 초청하여 학술 전시를 선보이곤 했다. 작년 와이탄 미술관 관장 래리 프로지에(Larys Frogier)와 루브르 박물관 기획자 파스칼 토레스(Pascal Torres)가 함께 준비한 <손짓에서 언어로> 전 역시 동서양 평면 회화와 서예의 교집합을 연구한 학술 전시로 큰 호응을 얻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산디니 페다르 (Sandhini Poddar)가 기획한 이번 전시 역시 회화, 사진, 조각,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20점의 작품을 통해 바티 커와 인도 동시대 시각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글쓴이 권은영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회화과 학사, 동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정부 장학생으로 베이징에 소재한 중앙미술학원 인문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한국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문화정체성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미술사학보, 2009), 중국에서는 ‘한국 동시대 설치예술의 문화정체성’(중국국가미술, 2012) 등을 발표한 바 있으며,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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