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92, May 2014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France

astralis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 어느 누구도 조물주가 창조해낸 이 거대한 우주적 질서와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 시간 앞에서 소멸하는 삶과 육체가 지닌 유한성은, 인간이란 피조물이 감내해야만 하는 실존적 고뇌와 다가오는 죽음을 향한 두려움의 근원이다. 언제, 어디서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며, 인간은 오래 전부터 지구 너머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세계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세계와 직접 소통하고자 했다.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의 경계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난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는 창작이 곧 업인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화두이자, 예술작품의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파리, 루이비통 문화예술 재단에서 마련하여 오는 5월 1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아스트랄리스(Astralis)]전시는 환영적 세계를 테마로 한다. 이성과 과학의 논리가 철저히 배제되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공간. 총 12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창조한 우주 속으로 지금 들어가보자.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BØrre Sæthre 'Untitled[Arches of Solaris]' 2014 Fluorescent light arches, reflective black base, soundtrack 1000×80×70cm Courtesy : BØrre Sæthre & Galerie LOEVENBRUCK, Paris ⓒ Pauline Guyon / Louis Vuitton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Tags

합리적 판단과 이성으로 무장한 서구 근대사회에서 비현실, 비이성, 무의식의 세계와 같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은 그야말로 기나긴 암흑기를 맞이했다. 세계를 두 개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시각에 따라 혼령, 영적 체험,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늘 흥미로워하는 입방아거리로만 치부됐다. 이번 전시에서 삶과 죽음, 심신(心身), 흑과 백이라는 대립항으로 인식된 세상의 근대적 질서는, 작가들이 탄생시킨 ‘아스트랄리스’라는 회색지대를 통해 마침내 붕괴되고 해체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뒤엉킨 이 환영적 공간을 따라 우리는 아주 특별한 시·공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순백의 여섯 천사들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둥근 형태로 서로를 촘촘히 에워싸고 있는 천사들은 데이비드 알트메즈(David Altmejd)의 조각 작품 <마스크갤러리(The Mask Gallery)> (2010)다. 


프랑스 피레네산맥에 위치한 선사 유적지, 마스 다질(Mas d’Azil) 동굴에서 신성함이 감도는 성당과 인간의 두뇌를 떠올린 작가는 이들 사이에 영적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신성한 정신세계, 알트메즈의 환영적 공간은 다름 아닌 우리의 두뇌 속이다. 날갯짓을 잠시 멈춘 천사들이 인도하는 여행길은 곧 자신을 찾아 떠나는 내적 여정이 된다. 뒤이어 관람객은 건물의 꼭대기 7층(한국식 8층)의 본전시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조금 색다른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게 된다. 루이비통 메종(Maison Louis Vuitton)의 일부로, 일찍이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디자인한 이 엘리베이터는 빛 한줄기 없는 암흑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탓에, 마지막 층으로 이동하는 약 20초 동안 관객은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묘한 상승감을 맛보게 되며, 외부세계와 현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느낌을 동시에 체험한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긴 어둠의 정적을 깨고 화려한 네온 빛을 뿜어내는 아치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Jean-Luc Favéro <Stag-Transformed> 

2013 Stag skull and antlers, iron, chicken wire 

400×300×250cm Courtesy : Jean-Luc Favéro 

ⓒ Pauline Guyon / Louis Vuitton




제한된 공간에 단순한 오브제를 설치하여, 가장 스펙터클 한 미장센을 연출해내는 작가, 보르 사트르(Børre Sæthre)의 작품, <솔라리스의 아치(Arches of Solaris)> (2014)다. 미니멀리즘적 표현력이 돋보이는 그의 설치작업은 빛과 사운드 효과를 통해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한 층 더 고조시킨다.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taw Lem)의 SF소설 『솔라리스(Solaris)』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네온아치는 뉴테크놀로지를 통해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이와 같이, 환영적 공간은 종종 과학과 기술 문명을 기반으로 한 미래 세계로 묘사되기도 한다. 시오반 하파스카(Siobhan Hapaska)가 우주와 소통하기 위해 수정 네 조각에 광섬유케이블을 연결시킨 작품, <네 천사(Four Angels)>(2012)와 천체공간의 음계를 시각화한 베이서로드(Basserode)의 <은하수(Via Lectea)>(2012) 또한 미래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영적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의 주술의식과 전통민속문화에서 환영적 세계의 모티브를 찾는 작가들도 있다.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여,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소통하고자 치러진 제례의식에는, 영혼의 치유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클로에 피네(Chloe Piene)는 죽은 자의 두 상을 받침돌에 올렸던 전통장례의식을 본떠 해골조각상을 제작한다.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받침돌 덕분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해골상은 견고하고도 한없이 가벼운 영혼의 무게를 담아낸다. 찰리 케이스(Charley Case)는 영혼과 소통하며 심신을 치유했던 북부인디언의 전통의식 이니피(Inipi)의 공간을 돔의 형태로 재설계했다. 관람객은 돔의 바깥 면 곳곳에 남겨진 육체의 형상들을 통해 영혼들의 존재를 잠시나마 짐작해본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 역시 환영적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소재거리다. 물고기 뼈, 타조 알, 박제된 악어가죽, 호박색 빛 유리병, 전구와 같은 부조화스런 오브제들이 마구 뒤섞인 리나 베너지(Rina Banerjee)의 그로테스크한 조각들은 신화, 전설, 민담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재구성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순환고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작가들도 있다. 개울물 속에 잠긴 사슴의 머리를 보고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묘한 기운을 느낀 장-뤽 파베로(Jean-Luc Favéro)는 죽은 사슴을 다시 살려내기로 결심한다. 파베로의 손길이 빚어낸 사슴은, 비록 얇은 철망으로 엮어진 몸이지만, 코요테와 까마귀의 머리뼈를 통해 무한한 지혜와 정신력 그리고 더 강력한 생명력을 얻는다. 




David Altmejd <The Mask Gallery> 2010 

Plaster and jute linen Variable dimensions 

Courtesy : Collection FRAC Midi-Pyrénées, 

les Abattoirs, Toulouse & Andrea Rosen Gallery,

New York ⓒ Pauline Guyon / Louis Vuitton 




<변모한 사슴(Cerf-Transfigure)>(2013)에서, 어둠을 관통하는 강렬한 빛이 만들어내는 사슴의 그림자는 불멸하는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비디아 가스탈돈(Vidya Gastaldon)은 벼룩시장에서 사온 낡은 액자 속 그림을 덧칠하여 복원한다. 길거리를 배회했던 버려진 이미지들이 벽으로 복귀한 <힐링페인팅 연작(Healing Painting series>(2014)에서 가스탈돈은 덧칠하는 행위를 통해,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이 가능함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근거한 미래주의적 관점과 제례의식 속에서 보이는 주술신앙적 관점은 서로 다른 형태의 환영적 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끝없는 열정과 욕망, 바로 인간의 호기심이다.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인간은 오랜 시간 고뇌했고, 그 결과 해답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어두운 청색 빛이 진동하는 다미앙 드루베(Damien Deroubaix)의 페인팅 연작, <삶>,  <죽음>, <시간>, <천국의 남쪽>, <메시아>는 천장에 그려진 <아스트랄리스>로 향하기 위해 인간이 궁극적으로 거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시하며, 미리엄 메시타(Myriam Mechita)가 품어낸 눈부시게 성스러운 세상(Sacre) 역시, 죽음이란 희생(Sacrifice)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잠에 드는 순간 인간은 태어날 때 머물렀던 요람으로 되돌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하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우리 눈앞에 요람이 하나 놓여있다. 사다리를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아트 오리엔트 오브제(Art Oriente Objet, Marion Laval-Jean tet & Benoit Mangin)의 요람 속 세상은 우리가 도달하기에 너무나 높고 위험하다. 연약한 사다리 사이로 작가가 붙여놓은 ‘Pas encore(아직, 여전히)’라는 문구처럼, 우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기에 죽음의 잠이 들긴 ‘아직’ 이른 듯하다. 그저 마음속으로 그려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저 요람 속 세상을.  




Chloe Piene <Untitled(CB)> 2010 Cast iron 

38×38×96.5cm Courtesy : Chloe Piene & Galerie 

Nathalie Obadia, Paris / Bruxelles 

ⓒ Pauline Guyon / Louis Vuitton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