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을 생소하고 신비한 세계로 안내하는 전시가 펼쳐진다. 매일 보는 사람, 매일 먹는 음식, 매일 타는 전철. 우리의 일상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 홍명섭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을 보고도 기꺼이 놀랄 준비가 되어있다. 그에게 모든 사물은 처음 보는 것과 같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스어의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와 이성을 뜻하는 ‘로고스(logos)’를 접목시킨 단어 ‘토폴로지(topology).’ 홍명섭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상태를 뜻하는 이 ‘토폴로지’, 즉 ‘위상(位相)’의 개념을 빌려온다. 그의 <토폴로지컬 플레인(topological plane)>은 ‘토폴로지컬 드로잉(topological drawing)’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에 연필 가루(흑연)로 작업을 한 그의 작품은 마치 정밀묘사하듯 사각형(들)으로 접혀진 종이를 표현하기 때문.
<토폴로지컬 플레인(topological plane)> 2020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UM갤러리
하지만 단순히 종이에 접혀진 종이를 ‘재현’한 것이 아닌, 그것은 ‘실재(實在)’ 종이에 접혀진 종이의 ‘실제(實際)’다. 그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 1) 종이를 접는다. 2) 접은 종이를 편다. 3) 접혀진 종이 주름 위에 연필 가루(흑연)를 묻혀 연필이나 솜으로 문지른다. 4) 접혀진 자국이 있는 종이를 다림질해서 평평하게 만든다. 접혀진 종이를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접혀진 종이)로 나타나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위상적 평면(topological plane)’으로 명명한다. 이로써 관람객은 ‘실재’의 종이에 ‘실재’하지 않는 접혀진 종이를 ‘실제’하는 것으로 느끼게 되고, 그의 ‘위상적 평면’에서 평평한 종이와 접힌 종이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모두 ‘토폴로지컬 사유(topological thought)’를 관통하고 있다. 홍명섭은 우리 안에 깊숙이 심어진 상식을 뒤집기를, 그리고 상상력을 풍요롭게 확장시키기를 제안한다. 작가의 속삭임이 가득한 생소하고 신비한 세계는 4월 9일 시작해 5월 9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 문의 UM갤러리 02-515-3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