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본연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전시. 인간이 그린 그림 ‘회화’,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삶과 물리적 세계가 투사되어 있고 동시에 그의 삶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된다. ‘인간과 사람’은 역사를 운영하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작품에 등장하는 개인에 주목하고, ‘재담’은 사람 냄새 나는 소담한 한국의 인간상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에는 30대부터 90대까지 넓은 연령층의 작가 15명이 참여해 회화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그중 작가 정병국은 인간과 사물의 관계 속 역설하는 이미지의 무게를 시각화하고 언어를 앞서는 이미지의 힘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웅크리고 있는 인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현실의 무거움을 직면하게 하고 닫힌 시선으로 관람객의 눈을 긴장시킨다.
임만혁 <강릉이야기16-1>
2016 한지에 목탄 177×133cm
임만혁은 설화적이고 문학적인 화면 안에 가족을 등장시킨다. 서로를 등지고 시선을 피한 채 각자의 행동에 몰두하는 이들은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소시민의 일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그런가하면 민중미술 2세대로 1990년대 리얼리즘 회화에서 시작해 줄곧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춰 온 방정아의 작품엔 유쾌함보다 씁쓸함이 배어 있다. 세탁소와 복덕방을 운영하던 류해윤은 71세 때 우연히 달력 종이 뒤에 펜으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베껴 그리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 횟수가 반복되면서 작품 활동이 왕성해졌고, 이제 그림 그리기는 그의 주된 일과가 됐다. 전시는 평범한 한 사람의 내러티브가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두가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회화의 힘’을 느껴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