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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2, Mar 2020

에텔 아드난
Etel Adnan

작은 우주들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 한 사람에 하나의 별 /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 70억 가지의 world / 70억 가지의 삶 도시의 야경은 / 어쩌면 또 다른 도시의 밤 / 각자만의 꿈 Let us shine /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 One” 우연히 마주한 화면 속 파란 눈동자 소녀가 또박또박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단지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이는 우리를 읽고 이해하는 공감의 장”이라고 소녀는 주장한다.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는 가사 한 음절 음절이 별 같다. 샛노랗고 눈부시게 파란 에텔 아드난의 그림을 보자 '소우주'의 노랫말이 떠오른 건 이 때문일 거다. 그가 만든 동그라미와 네모 그리고 사다리꼴 평면 모두 반짝이는 별 같아서. 시인이자 수필가 그리고 조각가이자 화가인 그가 화면에 담은 것이 어떻게 단지 그림이겠나. 그것은 삶이고 위로이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인 셈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화이트 큐브, 캘리쿤 파인 아츠 제공

'The Bay on the Bay' 1986 Ink and water color on paper 6.5×81.5 in (16.5×207cm) © the artist and Callicoon Fine Arts,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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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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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어머니와 시리아 무슬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에텔 아드난은 부모님의 언어를 번갈아 사용하다 5살이 되던 해 프랑스 주재 레바논 가톨릭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인식했다고 한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오래도록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40대 중반 돌연 자신이 태어난 베이루트로 돌아와 신문 편집자로 일했다. 1977년 레바논 내전을 주제로 쓴 소설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 그이지만 알제리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어로 글쓰기를 중단하기로 한 1960년대 중반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에 더 매진했다


그를 소개하는 단 몇 줄이 이렇게 변화무쌍하듯 아드난은 생과 사, 절망과 희망의 한 중간에서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숙고하고 체험한 인물이다. 이는 1966년 발표한 『Moonshots』부터 『The Indian Never Had a Horse(1985), The Spring Flowers Own & Manifestations of the Voyage(1990), There: In the Light and the Darkness of the Self and the Other(1997), Seasons(2008)까지 지금껏 발표한 여러 권의 시집으로도 고스란히 증명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가 캔버스에 완성한 초현실적 이미지는 단지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을 넘어 질기고 강력한 줄거리의 은유적 도약으로 인식된다.  





<Untitled> 2014 Oil on canvas 12 13/16×15 13/16 in 

(32.6×40.1cm) 14 3/8×17 5/16×1 9/16 in 

(36.5×44×4cm) (framed) © the artist Photo: White Cube (Jack Hems)




아드난은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하여 테이블 위에 놓인 캔버스에 유성 페인트를 가로질러 단단히 문지른다. 작가의 색 구성은 강한 프랑스 에너지를 발산하며 러시아 예술가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ël)의 프랑스 풍경이나 파울 클레(Paul Klee)의 그림 속 블록 같은 색 모듈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소살리토에 머물던 중년의 아드난은 주변 풍경, 특히 자신의 집 창문에서 볼 수 있는 타말파이스(Tamalpais) 산에 초점 맞추기 시작했다. 마치 세잔(Cézanne)이 생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rie)에 천착했듯 그 산은 아드난의 화면에 불변의 기준점이 되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분위기와 모든 계절의 모습이 역동적 분위기로 포착됐다. 산에 대한 아드난의 명상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1986년 아드난의 책 『Journey to Mount Tamalpais』에 고스란히 담겼다.


명확한 사실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며, 장편소설처럼 하나의 탄탄한 줄거리를 지닌 작품으로 선보이는 아랍 작가들이 그렇듯 아드난 역시 망명과 정치, 사회 그리고 성별에 따른 불의의 본질을 다룬다. 예기치 않은 실험적 문장과 표현으로 시와 소설을 써내는 그는, 그림에는 각도와 순간에 따라 광활한 풍경이 되었다가 피폐로 가득 찬 슬픈 풍경이 되고, 혹은 무언가 간절히 기원하는 희망을 포커스로 내세운다. 언젠가 이란-이라크 전쟁의 최전방이었던 곳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본 적이 있다. 바이란과 이라크의 전쟁(1980-1988) 동안, 이란은 50만 명의 군인을 잃었는데 그 후 매년 수백, 수천 명의 이란인들은 그들이 잃은 가족을 기억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한다. Rahian-e Noor, 빛의 행렬이라 불리는 이 여행은 이란인들의 새해인 3월의 마지막 주, Noruz 기간 동안 행해진다. 예로부터 전쟁의 근거지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긴 여정을 달려온 어머니, 형제, 아버지, 부인, 친구와 가족의 비통함으로 사무친 극장이 되었다. 그때 본 작품엔 사랑하는 이들의 상실을 명상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런가하면 전쟁 격전지였던 불모지 한가운데에서 국기를 든 행위예술가가 토하는 전쟁 뒤에 남겨진 충격과 아픔에 대한 발언과 사막에 묻힌 대포와 탱크의 잔흔이 순례자들의 통한과 병치되는 장면도 목도됐다.





<Untitled> 2015 Oil on canvas 10 5/8×13 3/4 in

 (27×35cm) 12 3/16×15 3/8×1 3/4 in 

(31×39×4.5cm) (framed) © the artist 

Photo: White Cube (George Darrell)


 


이처럼 사실이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존재에 대한 실존적 물음을 갖고 그것에 해답을 찾는 방식의 작업이 많은 아랍 작가들의 특성인 반면 아드난은 현실을 초월하듯 매우 시적인 방식으로 화면을 완성한다. 얼핏 특정한 풍경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은 사실 풍경 혹은 장면에 대한 기억이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배경으로 생생한 추상표현을 하면서도 예술은 삶을 향상시키고 삶에 대한 욕망을 가기 때문에 정치적 기능을 지닌다고 여기는 작가는 단지 시각적 메시지를 넘어 이성적 얼개를 선사한다. 실제로 아드난은 신이 형이상학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나에겐 형이상학적 존재로 색이 존재한다(colors exist for me as entities in themselves, as metaphysical beings, like the attributes of God exist as metaphysical entities)고 말하며 이 사고를 중심에 놓고 작업한다. 그에게 형과 색은 이야기를 품고 시간을 머금은 매체 그 자체인 셈이다





<Untitled> 2015 Oil on canvas 

10 5/8×13 3/4in (27×35cm)  12 3/16×15 3/8×1 3/4in 

(31×39×4.5cm) (framed) © the artist

 Photo: White Cube (George Darrell) 

 



그림과 함께 아드난은 스크롤처럼 수 미터 길이로 펼쳐지는, 주머니 크기의 책인 레포렐로(leporello)와 그림의 생생한 색상을 양모로 바꾸는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을 병행한다. 언어와 시각적 관찰을 결합해 화려하게 묘사한 레포렐로는 작가 자신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문학으로 저술한 아랍의 풍경과 해석을 근간으로 삼는다. 그는 한때 영국에서 기념품으로 판매됐던 아코디언처럼 접히는 소책자에 흥미를 느꼈는데, 각 하나의 그림이었다가 쭉 펼치면 파노라마 삽화가 되는 형식에 집중한 것이다. 아드난은 이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며 종종 출판되지 않은 시와 조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완성한 레포렐로 중 어떤 것은 완전히 확장되었을 때 6ft( 183cm)에 달하며 거기엔 아랍어로 시가 적혀있기도 하다.





<Untitled> 2014 Oil on canvas

 13 3/4×10 5/8in (35×27cm) 15 3/8×12

 3/16×1 9/16in (39×31×4cm) (framed) 

© the artist Photo: White Cube (Ben Westoby)




그는 한결같이 말한다. 자신의 글과 그림은 본인 마음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그러나 그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행한 것 또는 하게 될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고쳐 말하면 그의 글과 그림은 그가 겪은 시간과 역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엄청난 사랑과 행복, 자연에 대한 경외 등과 촘촘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다. 한편 아드난은 최근 기억에 더 몰두해 작업하고 있다. 생생한 경험의 잔상처럼 그의 풍경은 보다 결정적 특징을 지닌채 화면에 배치되고 있다. 수평선과 하늘은 두껍고 희석되지 않은 색으로 정사각형 덩어리 또는 삼각형의 피라미드 모양으로 표시되며 노란색, 주황색 또는 녹색으로 렌더링 된 원형 모양과 순수한 색의 태양, 바다가 펼쳐진다. 이는 그가 지낸 시절 속 베이루트와 캘리포니아의 그림자와 빛에서 기인하는 것이란다. 다차원적이며 동시적인, 여러 이미지가 하나의 장소에서 만나는 에텔 아드난의 감각은 보다 통합되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에텔 아드난 

Etel Adnan © the artist Photo: White Cube (Patrick Dandy)


 


1925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난 에텔 아드난은 소살리토와 캘리포니아, 파리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파리 소르본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그리고 하버드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1958년부터 1972년까지 샌라파엘의 도미니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아드난은 1972년부터 약 4년간 베이루트의 신문 편집자로도 일했다. 레바논 내전을 주제로 한 소설 『Sitt Marie-Rose(1977)France-Pays Arabes Award를 수상했으며 이 책은 10개에 달하는 언어로 출판됐다. 지난 2013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 13을 비롯해 2014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아랍 에미리트의 2015 샤르자 비엔날레에 참여한 그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아드난은 2014년 프랑스 최고 문화 명예인 Ordre de Chevalier des Arts et des Lettres를 포함하여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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