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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3, Apr 2020

제임스 케이스비어
James Casebere

달려가 사랑으로 구하라

제임스 케이스비어는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각과 사진, 건축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공간을 제작해 사진을 찍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초기 종이와 하드보드지로 제작됐던 작품 속 건축물들은 점차 석고와 스티로폼 형태로 견고해져 갔고, 그 안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심사를 더하며 실재적 공간을 완벽하게 구현해내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현실적 공간의 재현을 넘어 보다 본질적이고 개념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언뜻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 그리고 그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희망이 있다. “나는 계속해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왔고,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곤 한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스스로 이 문제들을 생각지 않고서 나는 예술가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갤러리 템플론(Galerie Templon), 션 캘리 갤러리(Sean Kelly Galler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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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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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가 파리 갤러리 템플론과 뉴욕 션 캘리 갤러리에 선보인 On the Waters Edge (2018-) 시리즈에는 환경파괴에 직면하게 되는 인간의 미래 모습이 담겨있다. 기후변화나 환경파괴를 이야기하는 현대미술가나 그들의 작품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케이스비어의 작품은 위기의식 각성과 경고의 메시지 차원을 넘어 어쩌면 나이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재앙 앞에서의 조용한 낙관론(a quiet optimism in the face of catastrophe)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환경파괴라는 단어 앞에 우리가 쉬이 예상하고 그려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On the Waters Edge 시리즈 속 건축물에는 변화하는 환경의 맥락 속 기하학적인 구조와 형태, 화려하고 경쾌한 팔레트의 색상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야기된 위협적인 현실에 대항하는, 미래의 인간을 위한 이 상징적인 공간은 구상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모습으로 환상의 세계 속 어딘가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Bright Yellow House> 2018 Pigment print 

160×126×5.7cm Edition of 5+2 AP 

© the artist, Galerie Templon Paris & Brussels 





케이스비어의 작품은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그는 반사판 스티로폼 폼 코어(foam core)와 페인트, 회반죽을 조합해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물의 흐름을 연출하기 위해 도장한 나무 받침대 위에 합성수지를 올려놓은 뒤 히트 건으로 조심스럽게 모양을 디자인한다. 이렇게 형상을 만들어낸 케이스비어는 인공적인 빛이 아닌 자연에서 채광되는 빛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한다.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 그가 제작한 형태들과 물에 반사돼 왜곡되는 형상이 함께 사진에 담기고 마치 추상화 작품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렇게 촬영된 사진 위에는 포토샵으로 작업한 배경이 덧대어지게 된다. 대부분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배경들은 각기 다른 날에 촬영한 하늘의 모습이 마구 섞이기도 하고, 그가 가진 이미지가 혼합되기도 한다. 케이스비어의 작품에서 초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그의 작업 과정 자체가 현실과 환상의 혼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Orange House on Water> 2019 

Framed archival pigment print mounted to dibond

125.9×160.3×5.7cm Edition of 5+2 AP 

© the artist, Galerie Templon Paris & Brussels

 



케이스비어는 주로 아열대성 기후의 건축 양식과 색상을 택한다.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현대식 주택을 차용한 작품 <Yellow House on Water>(2018)는 열대성 기후와 지역의 자원, 기술적 한계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 양식 열대 모더니즘(tropical modernism)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Bright Yellow House on Water>(2018), <Orange Guesthouse>(2018), <Orange House on Water>(2019) 1946년부터 1961년 사이 아열대성 기후에 맞춰 설계된 미국 건축가 폴 루돌프(Paul Rudolph)의 플로리다 집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이렇게 단순하고 가벼운 성질의 자재와 오렌지, 옐로, 라임 그린 등 화려한 원색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자연과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건축적 구조로서 자리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가올 위기와 위협에도 그것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의 강인함과 끈기를 건축물에 투영하고자 하는 케이스비어의 의지가 담겼다. 비치하우스, 인명 구조대, 목욕탕, 호스텔, 비상 쉼터 등 다양한 형태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건축물의 총체는 그가 제안하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간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뒤섞인 모습이 마치 넓은 공터에 있는 미완성 구조물(예를 들면 모델하우스와 같은)처럼 보이지만, 케이스비어는 재앙이 닥치게 되는 어느 때에 사람들이 찾는 안전한 피난처를 상상했고 그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고 이야기한다.





<Santa Teresa White Duplex> 2019 

Framed archival pigment print mounted 

to dibond 126×170.7×5.7cm Edition of 5+2 AP 

© the artist, Galerie Templon Paris & Brussels




주로 과거의 역사적 공간이나 실제적 공간의 재현에 초점을 맞췄던 그의 작품이 이렇듯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멕시코의 성장과 변화의 시기 한 가운데서 현대적인 삶의 형태를 구축해낸 건축가이자 엔지니어 루이 바라간(Luis Barragán)이 있다. 바라간의 작업에서 영감과 영향을 받은 케이스비어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춘 건축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거대한 대피처로서의 미래지향적 건축 이미지를 구현해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부상하는 사실에 보호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기 시작한 케이스비어는 일련의 작품들을 모아 Emotional Architecture(2016-2017) 시리즈를 선보인다. 가히 바라간을 기리고 바라간에게 바친다고 할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건축가 바라간을 향한 케이스비어의 열렬한 탐구와 노력의 결과물과 같다. 





<Yellow Overhang with Patio> 2017

 Framed Archival Pigment Print mounted to dibond 

119.4×175.7×5.7cm Edition of 5+2 AP 

© the artist, Galerie Templon Paris & Brussels




그리고 그 후속작과도 같은 이번 시리즈의 전체적인 작품 맥락 속에서도 바라간의 건축적 구조와 형식을 엿볼 수 있다. <Blue House on Water>(2018) 역시 루이 바라간이 마티아스 고에리츠(Mathias Goeritz)와 협업해 만든 실험예술공간 엘 에코(El Eco)의 몇 가지 요소가 녹아져 있다그렇다고 해서 케이스비어의 작품이 단순히 복제와 재현의 범위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그는 건축물의 형태와 양식을 차용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그리고 그 저변에는 인간을 향한 믿음이 깔려 있다케이스비어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현실의 것을 넘어선 탈공간의 세계인 동시에 우리의 삶과 본질적으로 맞닿아있는 장소다. 그는 현실을 바꾸고, 상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초점을 두고 미래지향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Installation view of <James Casebere: Emotional Architecture> at Galerie 

Templon, Brussels 2018 © the artist, Galerie Templon Paris & Brussels




사회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창조해왔고 살아가고 있는 생활을 이뤄냈다. 그러기에 위기에 처했을 때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유의지 역시 우리 안에 있다. 케이스비어는 말한다. 너무 야심적이거나 과장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 안의 운동가적인 면모를 빌려 말하고 싶다. On the Waters Edge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강인함을 깨닫고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큰 역경에 굴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비단 기후변화나 환경파괴와 같은 전 인류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혐오와 차별, 공포와 싸우며 서로를 경계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매일이 투쟁인 위태롭고 메마른 현실 속에서 아직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어리석을 만큼 순진하고 새삼스러울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끊임없이 희망과 사랑을 목 놓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예술뿐이고, 결국 케이스비어가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온 질문의 해답과도 같은 예술의 본질이자 예술가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소와 비관으로 점철된 사회에 아직은 감히 전하고 싶다. 달려가 사랑으로 구하라, 그러면 평화가 따라올 것이다(Run to the rescue with love, and peace will follow).*  

 

[각주]

* 23세의 나이로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가 17살에 작성한 가사(Quotes by River Phoenix)

 

 



제임스 케이스비어

James Casebere, Photo: Andrea Wallace Anderson

 



작가 제임스 케이스비어는 195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자랐다미니애폴리스 예술디자인대학(Minneapolis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하고 이후 LA로 건너가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와 함께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공부했다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구겐하임 미술관휘트니 미술관테이트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미국 국립예술기금위원회(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와 뉴욕예술재단(New York Foundation for Arts)으로부터 3개의 펠로우십을구겐하임 재단(Guggenheim Foundation)으로부터 1개의 펠로우십을 받았다지난해 4월 로마 아메리칸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in Rome)에서 아비가일 코헨 로마상(Abigail Cohen Rome Prize)을 수상했고현재 뉴욕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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