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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3, Apr 2020

한진수
Han jinsu

억압의 정제, 우아의 일탈

한진수의 작품을 읽으려면 우선 일반적 사고의 회로에서 과감히 이탈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은 언뜻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체계를 갖춘 것 같지만, 사실 표면에 드러나 있는 여러 단서들은 작가의 의도 및 작품의 핵심에 접근하는데 연막 혹은 복선으로 작용하며 확실한 도움을 방해한다. 오히려 이런 장치들은 섣부른 오독을 부추겨 본질을 왜곡하게 하는 위험한 ‘미끼’로 작용키도 하는데, 컨트롤을 내어주는 순간 관찰자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에 빠져버리거나 최악의 경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 정일주 편집장 ● 인물사진 작가 제공

'Pink voyage' 2011 혼합매체 500×200×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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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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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발단은 무엇인가? 작가 내면의 발현인가, 혹은 외부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혹은 일방적인 흐름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피력하며 작가는 말한다. 많은 작업들이 사실 무의미할 때가 많다. 단순 반복적이며 예측불허하다. 고양이가 장난감을 보듯 어딘가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은 별반 관람객들에게 제공할 것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경향을 좋아하는 것은 작업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무의식적 시간이 오히려 관람객들 스스로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관조적인 순간들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한 작품에 혼재할 수 있는 이러한 구조가 내겐 보다 실증적이다. 


외부의 요소들에 의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찰나가 한진수 작업의 시작이다. 이 순간은 내적, 외적 요소가 결합되는 것으로 여기에서 내적 요소란 결코 주관적 독단이나 감상을 뜻하는 게 아니다그의 작업은 동시다발적이고 총체적으로 진행된다. 스토리를 먼저 짜지 않고 고정된 프로세스 또한 없다. 다만 여러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나름의 기준은, 대상이 있음을 가장 섬세한 차원에 이르기까지 수용하고 최대한 방해 없이 온전히 바라보는 거리두기를 통해 발효와 숙성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아직은 중심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는 작가는 가능한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자 애쓴다. 어제 같지 않은 오늘 속에서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이지만 종국인 질문을 가지고 나름 변화의 의미와 가치를 입혀 색다른 작업 속에 담고자 고통하는 것이다. 작업의 종류와 방식은 각양으로 변주하면서도 변화라는 과정 자체를 예리하게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Sky generator> 2010 copper, glass, air pump 40×40×160cm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걸려들기 쉬운 오해는 일상적 소재를 차용해 로우 테크(low-tech) 방식으로 완성한 작품이 실은 더 고도의 기술을 비꼬는 대상이 아닐까 여기는 것이다. 미술, 특히 현대미술은 심오하며 한 번 더 뒤튼 메시지를 담아 의미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 여기는 이라면 분명 이렇게 험로를 통해 그의 심연에 다가서려한다. 아무렇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을 주인공 삼는 한진수는 그러나, 그것들에 현학적이며 전혀 생경한 개념을 부여하기보다 무디고 별 매력 없는 사물이지만 때로 강하면서도 순수한 진실로 다가오는 직관적이며 필연적인 상황을 간파 의도한다사물을 차용한 그의 작품들은 더러 형상성과 추상성의 경계지점에 서 있기도 하는데, 작가가 구체적이거나 모호한 것 사이의 날카로운 충돌 지점 그 발견에서부터 사고를 시작하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에서 개념이나 재료적 측면 모두에 불확실성이란 기준을 발견했다면, 일단 작품을 읽는 관문은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또 물질성, 연약함, 일시성, 가변성과 같은 단어들은 그의 세계에 이르는 지름길을 제공하는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Queen of scarlet> 2013 glass ball, air compressor,

 bubble juice, dye, plastic tube 250×250×650cm 





1999년에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0년 중반까지 국내에서 완성된 초반 작업들 이후 2006년 유학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콘텍스트로 작업하고 있는 한진수. 설치작업 위주의 사회와 개인의 관계라는 주제로 3차례 개인전을 치른 당시 그는 실증주의나 사회철학 같은 지식들을 접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동시에 대중이라는 한계가 공존하는 모순적 상황을 크리에이터로서 민감하게 느꼈고, 대량의 노동 혹은 대량 생산의 방식으로 작업을 좀 더 개념적으로 상대했었다. 한데 생소한 문화적 충격과 작품의 제작 환경 자체가 전혀 다른 곳에서의 유학생활은 작품의 커다란 분기점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가변적 크기와 평범한 재료들로 이송이 용이하도록 가볍게 만들어진 조립식 작업들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또 다양한 세계의 차이를 체감하며 그 자체로 변화의 의미, 달라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천착 대비하면서 한 오브제 속에 복합적 사연들을 투영하기도 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다원성과 조합 그리고 균형감 등이 작업에 더해진 그만의 세계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Flying> 2015 Aluminum, steel, motor, 

controller, car doors 260×140×320cm 




형식적 제약은 오히려 득이 되었는데,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대상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 형사들이 쓰레기더미를 뒤져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을 확보하는 것처럼 흔한 것 혹은 버려진 것들을 통해 장소를 파악하고 오브제에 다가서는 방식도 터득했다. 무엇인가가 어디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증거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일상적 혹은 장소 특정적 재료들로 만들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작품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 수 있게 됐다시간의 흔적이 없는 디지털 파일들은 사람 손때가 묻을 리 없고 철저하고 완벽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결코 낡거나 사멸되지 않고 디지털 코드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환경은 흠집이 나고 흔적이 묻는 아날로그가 발견되기 최적화된 시간과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작품으로 일구어내는 한진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변곡점이 구축된 오늘날 사물의 숨어있는 가치들을 끄집어내며 숨어있던 의미들을 드러내고 있다.




<Dream fiend-5c> 2009 plastic model of a skull and 

animal, steel, wood, epoxy resin, ABS plastic, copper,

silver cup, speaker, radio receiver, motor, crow feather, 

steel wheel, chalk powder 65×50×78cm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두 개의 시대가 왔다가 사라지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오늘날, 이 둘의 비교는 서로에 대한 과잉과 부족을 더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상호에 대한 피드백은 쌍방향으로 해체시키고 재구성되며 노이즈가 정보가 되듯 언제고 전복될 여지를 지닌다. 그러기에 현재의 아날로그 매체의 탐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언제고 환골탈태한 그 변화의 의미를 예의 주시하고 주목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아날로그는 본래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하는 물리량을 뜻한다. 무한대 색의 다양성이나, 무한대 종류의 냄새나, 무한대 톤의 소리, 무한대의 공간적 위치 등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나타내는 아날로그는 상태보다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변하는 물리 값이 무엇인가로 치환되어 어떤 특정한 무언가를 지시하는 한진수의 예술은 그런 의미에서 특히 아날로그와 닮았다. 디지털이 판치는 세상임에도 그가 아날로그의 방식과 결과물을 선호하는 것은 아날로그의 매커니즘이 자신의 예술표현 양식에 들어맞기 때문이고 그것만의 매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수는 경직성, 정형성, 육중함 등을 멀리하고 있다. 삶의 꿈틀거림과 생동의 기운을 사물에 불어넣어 주고 싶은 그는 건조하고 번뜩이듯 차가운 대상을 오늘도 눈여겨본다.  

 




한진수 

 



작가 한진수는 1970년생으로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수학했다. 2007년 에드워드 라이어슨 펠로우십(Edward L. Ryerson Fellowship)을 받았고, 2008년 브루클린 트라이앵글 미술 협회(Triangle Art Association)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한 그는 뉴욕 마크 스트라우스 갤러리(Marc Straus Gallery), 서울 현대모터스튜디오베이징 포스갤러리(Force gallery)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첨단 기술에 집중하기 보다 이미 보편화된 기술 매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며 매체와 매체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는 그는 오는 7월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기술에 관하여>처럼 아트와 기술을 키워드로 한 기획전에 다종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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