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벨기에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 기드온 키퍼(Gideon Kiefer). 키퍼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활동 기간도 길지 않지만, 몇 해 전 큰 병으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이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예술가의 길을 택한 특별한 이력의 작가다.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예술을 만난 키퍼. 남들과는 다른 인생사를 겪고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작업하는 이 화가에게 예술은 단순히 표현수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을 뜻한다. 이렇듯 키퍼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저항하며 가능성을 확장시켜 왔다. 죽음이라는 경험에 작가 내면의 감정들을 더해 독특하고도 차별화된 시각과 표현력을 낳는 그는 일반적인 캔버스가 아닌 책의 내용물을 뜯어낸 책 표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Monument pour deux Arbres Morts>
13..I.2015 1976AD 책표지에 연필, 과슈, 아크릴,
먹 22.5×30.5cm
본래의 내용을 모두 지우고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이는 바로 그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 돌아왔듯이 책에도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의 끝에서 경험한 절박함과 두려움을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한 작가의 작품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죽음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만 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키퍼의 그림을 통해서는 가능하다. 한편 그의 전시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캡션에 작품의 실제 제작 년도를 적는 대신, 작가가 ‘자신이 다시 살아난 날’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어나가 기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는 이 전시는 4월 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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