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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6, Jul 2015

공포가 예술에 물드는 사이, 더위를 잊다

It is made of what?

낮 기온 30도를 넘나드는, 바야흐로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헌데 당신의 더위를 날려줄 것이 비단 공포영화뿐일까? 여기 공포영화만큼 무섭거나 혹은 소름 끼치는 재료를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있다.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렸느냐가 더 중요해진 현대미술에서 획기적인 시도를 선보이는 작가들. 붓 대신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무엇일까? 독특하고 기발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예술 작업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차별화된 소재로 완성된 작품들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색다른 감흥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기획·진행 김유영 수습기자

모르텐 비스컴(Morten viskum) 'The New Hand-ONDA' 2011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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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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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일까, 가짜일까? 한 예술가가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그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니라 누군가의 잘린 손이라는 것. 논란이 된 그림의 제목은 <(Hand)>으로, 1965년생 노르웨이 현대 미술가 모르텐 비스컴(Morten Viskum)의 작품이다. 그는 1995년 선보인 </올리브 프로젝트(Rat/olive project)>전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노르웨이 대도시 20개 식료품점의 올리브 병 안에 올리브 대신 갓 태어난 쥐를 넣어 전시한 프로젝트다. 이로써 노르웨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예술가 중 하나가 된 그는 뒤이은 손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 번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다. 


1998년부터 시작된 그리기를 절대 멈추지 않는 손(The hand that never stopped painting)’ 연작의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절단된 손을 붓 삼아 동물의 피를 묻혀 캔버스에 칠한다. 그 다음 잘린 손의 손바닥에 반짝이는 금가루를 놓고 입김을 불어서 그림 전체에 흩뿌린다. 그 위에 같은 손을 이용해 한 번 더 다른 색을 칠하면 끝이다. 작업도구인 손에는 심지어 이름도 붙었다. 작가는 금반지를 낀 손(The hand with the golden ring)’이라고 명명한 이 손이 60대 이상 남자의 것이란 언급 외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진짜 사람 손인지 아닌지, 만약 진짜라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상태다. 덴마크의 한 갤러리에선 퍼포먼스 일부로 손도 함께 전시했는데 이것이 도난당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하니 그 화제성을 증명한 셈이다. 실제 사람 손이 맞다면 더 소름 돋고 혐오감이 들지만, 가짜라고 한들 여전히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마크 퀸(Marc Quinn) <Self> 2001 작가의 피, 

스테인리스 스틸, 퍼스펙스, 냉동 시설 205×65×65cm

 ⓒ Marc Quinn Photo: Stephen White Courtesy White Cube





토막 난 신체 말고도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재가 있으니, 바로 . 실제 피를 이용해 섬뜩한 예술 작업을 한 이는 영국 현대 미술가 마크 퀸(Marc Quinn)이다. 자신의 두상을 그대로 떠낸 뒤 그 속에 5년 간 추출한 자신의 혈액 4.5ℓ를 넣은 후 얼려 만든 1991년 작 <셀프(Self)>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서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실제 피로 제작된 만큼 보존을 위해 냉동 장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인데, 1996년 같은 과정으로 만든 두 번째 <셀프(Self)>가 냉동 기기의 전원 코드가 실수로 뽑힌 탓에 녹아버린 일화도 있다. 작가는 5년에 한 번씩 이 작업을 하며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했으나, 네 번째 작품을 선보였던 2006년 이후로는 어떤 이유에선지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그의 자화상은 비록 충격적인 작업 과정과 비주얼에 보기만 해도 긴장감과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그만큼 자신이 누구인지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기발한 시도였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때론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재료를 이용한 경우도 있다. 유년시절 얼굴 양옆에 손을 가져가 흔들던 귀신 흉내를 기억하는가? 이때 손등을 보이는 것은 귀신의 특징인 날카롭고 길게 뻗었다고 가정한 손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위협적으로 자란 손톱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두눈(본명: 변득수)은 손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예술작품으로 변환시킨다. <현시대의 양심> (2015) 등 그의 작품들은 모두 기부 받은 손톱을 그대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손톱이 곧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보는데, 사람들이 일상에서 손톱이 길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쉽게 잘라내듯 이 사회와 시스템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본래 순수한 마음 역시 소위 잘라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선 손톱이 더는 거부감이 드는 께름칙한 대상이 아닌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상징적 표현물이 된다. 그의 작품은 오는 930일까지 ‘2015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나 무>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케이트 맥과이어(Kate MccGwire) <Flail> 

2013 앤티크 캐비닛 안 까마귀 깃털, 혼합 매체

 61×61×92cm Photo by JP Bland ⓒ Kate MccGwire


 



이뿐만 아니라 최선의 <메아리>(2015)는 미용실과 동물병원 등에서 얻은 개와 고양이, 사람의 을 태워 남은 재로 전시장 벽면 전체를 칠한 작품이다. 수북이 쌓인 동물의 털과 인간의 머리카락이 타들어 가는 광경을 상상하면 징그러울 뿐 아니라 그 매캐한 냄새까지 떠올라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개를 산 채로 매달아 털을 태우던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던 시각적·후각적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했으며, 과거 어느 시점에 외친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과거의 기억을 환기한다는 의미를 담아낸다. 최선의 다소 기괴하고 파격적인 작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메아리>와 함께 선보인 <피똥(적분의 그림)>은 작가가 자신의 배설물 중 장식적인 형태를 찾아 이를 그림의 형식 속에 옮겨 놓은 것이며, <검은 그림>(2014)은 폐유로 그린 그림이다. 또 다른 작품  <쓴 침>(2014)은 물감 대신 캔버스 위에 침을 뱉어 말린 뒤 완성한 모노크롬 형식의 회화다. 이밖에 유골을 전시장 바닥에 흩뿌리는 등 그는 다소 엽기적인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미술작품이 예술로 분류되는 통상적인 재료나 표현방식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밖에도 굳이 직접 만져보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로 작업 활동을 하는 예술가도 있다. ‘한방 침을 이용한 작품을 만드는 손파가 그 주인공이다. 한의원에서 쓰는 침은 치료를 위한 것이지만 살갗을 따갑게 찌르는 과정은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공포를 유발한다. 작가는 침의 날카롭고 예리한 특성에 집중해 <Untitled>(2010)와 같은 투구, 갑옷 등 남성적인 느낌의 묵직하고 강렬한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바늘 수천 개가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침 외에 식칼, 소뿔 등을 사용해 날카로운 도구들이 유발하는 두려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출하기도 한다. 





최선 <메아리> 2015 벽면에 개, 고양이, 

사람 털을 태워 만든 재 가변크기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Songeun Art Space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재료를 이용한 작품엔 또 무엇이 있을까. 공포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장소를 떠올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각종 의료 장비와 시체를 볼 수 있는 곳, 바로 병원이다. 한기창은 엑스레이 필름, 의료용 도구와 같은 의학 재료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는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던 자신의 아픈 기억과 연관된 작업이다. <뢴트겐의 정원>(2010)은 형상들을 가공해 식물과 사람, , 물고기 등 살아있는 생물들을 표현한다. 의료용 도구를 빌려와 떼로 전시하거나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고통, 나아가 죽음까지도 상기시키는 다소 두렵고 무서운 물건들이지만 그의 손을 거쳐 아픔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내년 3월부터 두 달 동안 독일 베를린 큐부스-엠 갤러리(Cubus-m gallery)에서 개인전을 가질 계획이다. 


폐가라는 공간 역시 공포 하면 빼놓을 수 없다. 폐가는 외진 곳에 있으면서 귀신 들린 집이라는 설정으로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사람의 발길과 손때가 끊긴 오래된 집에서 볼 수 있는 낡고 녹슨 자국이 일으키는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공포심을 배가시킨다. 하찮은 그러나 절대 만만치 않은 소재인 석탄, 철근, 콘크리트 등을 이용한 조각 작품으로 물질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고찰하는 작가 정현은 최근 녹물을 이용한 드로잉 작품을 탄생시켰다. 녹이라는 의외의 재료로 놀라움을 안겨주는 그림   <무제>(2014)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철을 캔버스에 묻히고 이를 긁어서 흠집을 낸 뒤,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뿌리거나 밖에 내놓아 비를 맞게 한다. 시간이 흘러 철판 위 녹이 아래로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것을 그대로 담아내면 완성이다. 거칠고 투박하게 자리 잡은 녹슨 자국은 시간의 흐름과 일의 흔적 또는 과정을 그대로 함축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얻게 된 아름다움을 수놓는다.





최선 <메아리(제작과정)> 2014 벽면에 개, 

고양이, 사람 털을 태워 만든 재 가변크기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Songeun Art Space 4

 




지금부터는 소름 돋게 무섭거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재료는 아니지만, 이색적이고 별난 재료로 청량감을 선사하는 작업을 소개한다. 햇볕이 맹렬히 내리쬐는 날씨에 여러분이 제일 떠나고 싶은 휴양지는 단연 바닷가일 것이다. 1969년생 미국 현대 미술가 조 맹럼(Joe Mangrum)은 해수욕장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모래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독특한 문양과 다채로운 색감이 인상적인 <Asynchronous Syntropy>(2012) 등은 바닥이나 어디에든 밑그림 없이 화려하게 물들인 다양한 색상의 모래를 즉흥적으로 흩뿌려서 만들어진다. 그의 작업은 별다를 것 없는 모래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로, 예술가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또 다른 예로,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국 출신 1964년생 조각가 케이트 맥과이어(Kate MccGwire)의 깃털 작업도 눈에 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 중 주변 야생 비둘기의 깃털에 영감을 받아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새가 털갈이할 때 버려지는 깃털을 하나씩 수집하거나 영국 전역의 비둘기 애호가들과 주변 농장으로부터 기증 받아 작품을 만든다는데, 2013년 작 <Flail><Shroud> 등은 새 깃털의 질감과 무늬, 색상 등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낸다.





한기창 <지혜로운 죽음>

 2012 , 유리, 의료도구 80×400×110cm





마지막으로 다소 더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소변을 이용해 만든 김도희의 <야뇨증>(2014)의 과감한 시도도 관심을 끈다. 전시장엔 커다란 가림막과 함께 후각적으로 불쾌할 수 있다라는 경고문이 쓰여있다. 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투명 비닐이 있는데 벌써 고약한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 이마저도 걷어내면 어둡고 차가운 공간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종이를 볼 수 있다. 이게 뭘까 생각하기도 전에 코를 찌르는 심각한 악취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얼룩 가득한 장지는 아이들의 오줌을 중첩해 만든 작품으로, 작가는 어린아이들의 더는 억압할 수 없는 경험들이 악몽을 빌어 오줌으로 배출되듯, 현실에서 은폐되고 설명되지 않았던 경험들을 지목하고자 한다. 오줌 냄새가 만만치 않으니 작품을 보기 위해선 마음의 준비가 필수다.


지금까지 무더위를 잊을 만큼 무섭고 기이한 재료부터, 내친김에 색다른 재료를 이용한 작업까지 살펴봤다. 그 작업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니면서도, 충격과 부담 그리고 난해함을 선사하는 게 사실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현대 미술가들에게 신선한 발상과 독특한 재료는 기본 덕목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유별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무더운 날씨 속, 이 글이 당신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앗아갔길 바라며, 더 나아가 창조적 발상을 하는 데 자극이 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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