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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8, Sep 2015

리경
Ligyung

비우고 채우는 빛의 마술

새롭게 자리 잡은 리경의 작업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작가를 닮았다. 넓고 탁 트인 공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다양한 조명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넓은 무대로의 변신, 벽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만든 반쯤 열린 창문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으로 치환시켜 온 작가의 흔적을 담고 있다. 특히나 한편에 자리한 자개로 마감된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2014년 도쿄 에르메스 전시장 르 포럼(Le Forum, 이하 르 포럼)에서 소개한 개인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의 부산물이다. 르 포럼은 층고가 높고 마치 벽돌처럼 차곡차곡 구조화된 유리 창문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공간이다. 빛을 다뤄온 작가에게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창문을 가리지 않는 한 조도를 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가장 도전적인 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는 이 곳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광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다. 바로 빛이 제 존재를 더욱 빛낼 수 있도록 배경을 구성한 것이다.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 사진 서지연

Ginza Maison Hermès Le Forum installation view 2014 ⓒ Nacása & Partners Inc.
Courtesy of Fondation d’entreprise Herme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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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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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포럼, 이 공간을 변모시킨 신작 <뱀의 키스(Serpen tines Kiss)>는 바닥 전체를 나무로 덮고 그 윗면을 통영 자개로 촘촘하게 채워 완성되었다. 빛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바닥에는 그림자 하나 없이 거울처럼 창문을 반사시켜 무한 확장되는 깊은 공간이 탄생되고, 빛이 내려질 때에는 기둥의 그림자가 크기와 방향을 바꿔가며 바닥에 형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변화를 이끄는 주역은 바로 그림자다. 남편 아사달이 만든 석가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치기만을 기다렸던 아사녀(무영탑)의 이야기는 이번 신작을 구성하는 모티브였다. 바닥에 설치된 스피커는 해가 뜨는 방향에서 지는 방향으로 사운드를 옮겨, 저 뒤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림을 준다. 


착시의 공간은 르 포럼의 다른 방에서도 재현되었다. <선악과(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2001)는 바닥 면과 벽면이 닿는 직각의 공간을 둥글리고 강렬한 조명을 설치한 작품으로 성곡미술관에서의 전시 <에덴의 동쪽>에서부터 이어져 온 작품의 재구성이다. 작가가 영국에서 귀국한 후 소개한 첫 전시이자 처음으로 빛을 이용한 작품이다. 눈을 뜨기 힘들만큼 강렬한 빛 아래에서 관객은 잠시 공간감을 잃고 위와 아래, 옆과 바닥을 구분하지 못한다. 눈이 빛에 적응되기까지의 짧지만 불안한 그 시간, 관람객은 무의식적으로 잠시 인식을 잃었다가 되찾는 듯한, 마치 전원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것 같은 리부팅을 경험하게 된다. 




<more Light> 2012 

780×780×310(H)cm 코리아나미술관

  


 

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과정, 중세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성당건축의 역사가 말해주듯 빛과 공간의 구성을 주제로 삼은 점, 작품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독교와의 연관성 등에서 작가의 삶을 추측해 본다. 종교에 대한 부분은 작가의 삶과 작업을 지탱해 준 한 축이었음은 분명하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는 창세기에 대한 어린 시절부터의 관심은 딱히 종교적인 배경 때문은 아니었다. ‘리경’이라는 작가 명을 지어준 삼촌은 큰 스님이셨다.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 그리고 빨간 실이 꽂힌 멋스러운 성경책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이 있었다는 작가의 독백은 스토리를 구상하고 이를 세련된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작가만의 스타일이 이미 그 때부터 내재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독교와의 인연은 영국 유학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삶의 어려운 순간에 작가의 삶과 작품을 지탱해주는 큰 힘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 과정을 관통해 나온 듯하다. 2012년 코리아나 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에 붙인 <more Light>라는 타이틀은 바로 그 변화를 천명한다. 이 말은 평생을 신앙에 대한 회의와 빛에 대한 연구로 보낸 계몽주의자 괴테가 죽으면서 남긴 단어다. 우리말로는 계몽주의라 번역하지만 ‘Enlightment’ 또는 ‘Sieècle des Lumières’ 라는 본래의 단어에 이미 ‘빛’을 포함하고 있을 만큼 빛에 대한 연구가 중심이 되었던 시대이다. 작가는 괴테의 말을 더 많은 진리, 욕망, 욕구를 추구하라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셔터를 열고 더 많은 빛을 끌어들이라는 괴테의 마지막 단어처럼, 작가는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빛과 진리를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빛을 탐구하려는 의지를 내보인다.  


종교적 관심 혹은 의미의 한계를 깨뜨리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작품은 바로 미켈란젤로(Michelan gelo) 의 <피에타(Pieta)>를 차용한 <그는 사람이라고 불렸다(He called to man)>(2005)이다. 직접 흙으로 빚어 캐스팅해낸 피에타의 이미지는 작업실에서의 우연한 발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실물 크기로 확대하여 창문에 붙여 놓았던 피에타 포스터, 어느 날 작가는 예수의 이미지를 오려내고 마리아 도상만을 남겨두었다. 예수가 증발된 포스터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던 무렵, 우연히 베란다에서 다시 실내로 들어오는 순간 바라본 포스터의 뒷면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맥락 없이 실루엣만으로 남겨진 예수의 육체는 남성 동성애자의 포즈와 너무나 닮아 있었고, 늘 익숙하게 보아왔던 이미지가 전혀 다른 존재로 비춰지는 시각적 충격, 가장 성스러운 존재가 가장 반대되는 것과 연결되는 양면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바라보던 죄수가 방향을 바꿔 뒤를 돌아본다면, 그것이 불빛에 비친 그림자일 뿐임을 깨닫게 될 수 있게 될 거라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우연한 계기에 작가가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다. 




Ginza Maison Hermès Le Forum installation view 

2014  Nacása & Partners Inc. 

Courtesy of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텅 빔을 채우기 


하지만 양면성의 극은 사실 작가가 본래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점에서 가장 극대화되는 듯하다. 시각적 일루젼에 천착하고, 대규모 공사를 감행하며 공간 전체를 탈바꿈시키는 스케일을 볼 때 서양화나 혹은 조소를 전공했을 법 하기에 본래 동양화 전공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평론가 이선영이 “동양화의 여백같이 하얀 공간”이라고 표현 하였듯이, 수긍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대상(오브제) 중심이 아니라 설치(여백)에 관심을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관객 자신이 경험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계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채우는 것이 아니고 비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로운 노력이 가득 찬 작품이 된다. 


설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동양화 기법을 활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장르에 대한 크로스오버가 쉽게 허락되지 않던 시절, 작가는 영국 유학을 택했고 한참 YBAs가 떠오르던 90년대 중반의 런던은 무엇이든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동양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도리어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 왜 굳이 동양화 대신 다른 것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작가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이 동양미술과의 깊은 연관성을 담고 있듯이, 작가는 첼시 미술학교의 졸업 작품으로 11m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를 먹으로 가득 채우는 작품을 완성했다(1997). 시작은 그림이었지만, 그것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그림 위에 투명 아크릴 판을 붙이고 반사되는 효과를 체험했다. 작품이 공간속에서 관객과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본 이후 작품은 자연스럽게 설치로 나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서울시립미술관의 설치작품 <보는 것이 믿는 것, 믿는 것이 보는 것(Seeing is believing, believing is seeing)>(2003)은 층고가 5m나 되는 공간이 2m 높이로 바뀔 때까지 바닥에 경사면을 친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15도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무엇이 작품인지 모른 채 걷다가 길의 끝에서 맞은 편 벽에 비친 거울을 통해서야 비로소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초자연>전시에서 선보인 설치작품 <more Light #Ver.2>도 관람객을 혼란시키기는 마찬가지였다. 커튼을 치고 들어가자마자 맞이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쳐 놓은 레이저 불빛의 라인을 따라 걷는다. 그것이 작품인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한 통로인지, 닫힌 공간인지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빛인지를 깨닫기도 전에 길처럼 보이는 선을 따라 앞 사람을 따라 나란히 걸어가는 행동에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달리고만 있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more Light-공의 관조도

2014 아트선재센터 설치전경



 

삶의 우화 


그래서 리경의 작품은 비물질적이고, 피상적이고, 감각적이라는 이유로 삶의 언저리를 떠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실 가까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모든 작품이 시나리오를 따라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미 촬영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무대 위로 관람객을 올려 버린다. 보는 이에 따라 이야기가 달리 해석될 수 밖에 없고, 아무 설명이 없이도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느 작품에서건 세련된 시각적 완성도를 추구하고 작은 부분 하나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열정도 작가의 현실감각을 대변하는 한 측면이다. 가장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삶의 유한함이라는 장벽 앞에서 허무주의자로 돌변할 수 있듯이, 리경의 커리어는 가장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만이 가장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뒤늦게 미술을 택하고, 전주에서 서울로 다시 런던으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작가 이면서도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에서의 전시회 기획을 추진해 내고, 완벽한 전시를 위해 미술관 예산을 뛰어넘어 온 재산을 쏟아 부어온 작가의 삶은 현실을 무시하고 꿈을 꾸는 몽상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모든 현실이 바로 작품이 되는 아이러니가 탄생되었다.  




<more Light #Ver.2> 2014 

국립현대미술관 설치전경





이번 여름 작가는 다가오는 10월의 서울역 광장 앞에서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을 맞이할 설치 작품과, 바쉐론 콘스탄틴과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준비하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이상적 이미지와 구체적인 방법론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간극이 컸던 30대는 머리로 하는 구상에 의존하며 작품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 힘들었지만, 이제는 도리어 느낌에 몸을 맡기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넘치는 4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했다. 알을 깨고 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편안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관람객도 함께 거기에 모든 감각을 온전히 맡길 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통찰의 순간을 얻게 될 것이다.  

 



리경




작가 리경은 1969년 생으로 경희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후 영국의 첼시 국립대학원의 석사과정과 연구과정을 마쳤다.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인도 등 국내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여섯 차례의 개인전과 유수의 기획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 그는 ‘보이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전제로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정신의 문제를 포괄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비물질적 재료인 ‘빛’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간을 채우는 날카롭고 사유적인 작업을 이어온 그는 최근 일본 도쿄 에르메스(Hermes)에서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개인전을 개최, 오픈 이래 최다 관객을 끌어 모으며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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