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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2, Jan 2016

중성적 시대

2015.11.18 – 2015.12.16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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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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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부정(negative)하는  가지 방법



<중성적 시대>전은 우선  제목을 통해 특정한 시대 혹은 시간대와 거리를 둔다. 시대를 표방은 하지만 여기서 시대란 자의적인 규칙이자 숫자 불과한것으로 간주하며, 대표성이 무색하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 개인이 시대를 대표할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전시 소개 글에서 마치 세대를 대표하는 마냥 나열된작가  / 로와정, 최대진, 염중호는 실은 실제의 연령을 뒤집어 대표로 삼아도 무방한 상황에 놓인다. 시대라는 화두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고려하면 중성적(neutral)’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를 상쇄하다(neutralize)’라는 동사로 고쳐 읽을 법하다. 이렇게 일단 시대를 추상적 시간으로 환원한 이후에 보안여관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개입하되  특수성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에서는 /팀의 작가가 각기 다른 차원에서 등장인물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 우선 주목해보고자 한다. 


염중호는 전시 타이틀 이미지로 사용하기도  사진 작업 <어떤 > 중심으로 일종의 어떤  시리즈를 제시하며,  이미지를 직조하는  작가 본인 외에 다른 인물을 불러들인다. 가령 <기억 속의 풍경> 본인이 그린 그림과 삼각지의 직업 화가에게 의뢰한 그림을 병치한 작업으로, 전자는 추상적이고 후자는 키치적인데 양자 모두 사실성이 결여된 상상화이다. 여기서 다시 사진 이미지인 <어떤 > 돌이켜보게 된다.  집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바로  집인가 하고 말이다. 창이 나지 않은 콘크리트 벽면에 굵게 그어진 하얀 선은 바닥을 연장하여 무언가를 구획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기억 속의 풍경> 어린 시절 동네 이발소에서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라고 밝힌  있다. 그렇다면   점의 이미지 속에 등장하는 닮은꼴 집은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아닌가? 어쩌면 기억에 관해서라면, 그림의 허구성은 사진의 실재성으로 교란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발소 그림의 풍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기억 속의 풍경과 구분할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로와정은 기억의 이런 유령과도 같은 성격을 전면화한다.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으로서의 유랑 광대 여관에서 묵어간다는 설정 하에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영화 <> 부분을 조그마한 여관방 창문에 영사하고, 보안여관의 벽지 위에 여기 저기 눈에  띄지 않게 드로잉을 남긴  <유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런 구상은 자칫 보안여관을 무대로  단순한 스토리텔링에 그칠  있지만, 2 가장 안쪽 방에 설치한 <ártifex>에서 확장의여지를 찾아볼  있을  같다. 거울 위에 적힌  라틴어 제목은 전문가(expert) 어원이 되는 말로, 고대에는 노예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보안여관의 투숙객인 직업 광대의  과거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직업 예술가의 과거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대진은 <김추자 메들리>에서 여덟 곡의 노래 제목을 하나의 문장으로 종합하고 동시에  곡들의 재생시간을 24시간으로 늘어트림으로써 사실상 음성을해체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과거를 환기하는 김추자라는 아이콘은  이상 각각의 시그널송 아닌, 하나의 문장이자 온종일이라는 시간적 흐름으로 환원된다. 이름은 떠오르지만 인물은 부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정의 기억법은 <사빈(Savine) 기억>에서도 찾아볼  있다. 사빈은 벽에 걸린 초록색 원피스의 주인인 어느 소녀의 이름 같지만, 흑백 사진  이국의 마을을 일컫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빈은 누구이며 무엇일까? 작가는 사빈을 기억하고 있나, 아니면이름만 남기고 지우고 있나? 이름-언어만 남은 시간은 0 0 0초에 정지한 플립 시계의 이미지 <자정>으로 제시된다. <중성적 시대>전에서 염중호는 복수의 창작자, 로와정은 허구적 인물, 최대진은 없는-인물을 소환한다. 이들은 저마다 과거의 시간을 붙들어   있다는 자신감보다 그것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고,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향수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 현대와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계가 중세의 유물이라면 시간은 현대의 음화(negative)라고   있는데,  사진 속에 잃어버린/어린 시절을 세세하게 담아내려는 이유는 바로 선명한 시간성이 불가능함을 깨우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 최대진 <김추자 메들리> 2015 디지털 프린트  사운드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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