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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 아트 아이템_큐레이터 63(31-63)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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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art item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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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권정민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전시디자인과 교수

<Finn Juhl 탄생 100 주년 기념전_북유럽 가구이야기>(2012, 대림미술관),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2013,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2014, 대림미술관) 등 기획


[슈타이들]


독일 괴팅엔(Gottingen)에 있는 출판사 슈타이들(Steidl) 1970년도부터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독일에서 슈타이들 출판사의 대표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이 직접 전화를 걸어 같이 전시 진행을 할 테니 다음 주에 서울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했던 2010년이 그와의 첫 인연이었다. 국내에서도 몇 번 상영된 다큐멘터리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워커홀릭에 완벽주의자인 그와 3년의 세월 동안 2개의 전시를 기획하는 시간은 물론 힘들었지만, 큐레이터로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절대 타협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밤새워 일해도 아침에 제일 먼저 전시장에 나와 일하고 있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모든 미술관 직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또한,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을 디지털 매체가 지배한 현시점에 종이로 만든 책의 소중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하고 또 종이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며 본인이 가진 모든 노하우를 가르치고 싶다던 그는 바쁜 일정에도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제작자이자 한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임에도 좋은 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만져보고 소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본인이 직접 종이 회사에서 후원 받아 책 제작에 관한 모든 중요한 정보가 담긴 300페이지가 넘는 전시 도록을 한 장 한 장 컨트롤해서 제작, 한국으로 보내 회사에 수익 없이 학생들이 지출 가능 한 금액으로 팔아달라던 그의 큰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몇몇 아티스트는 독재자라고 그를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뚝뚝한 그이지만, 젊은이들과 소통하고자 베를린 미테(Mitte)에 오픈한 서점 ‘Do you read me’와 얼마 전 타계한 귄터 그라스(Gunter Grass)의 뮤지엄을 운영하고, 예술 서적뿐만이 아니라 독일에 고전 문학을 출간하는 데도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No.32

황아람 교역소 운영자

<상태참조>(2014, 교역소), <수정사항>(2015, 교역소), <굿-> (2015, 세종문화회관) 등 기획


[패치노트]


상봉동이라는 외진 동네에서 미술 공간을 운영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퍼블릭아트」는 창간 10년이고, 교역소는 설립 1년이다. 이 적지 않은 틈 사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필자의 사전으로 그것을 패치(Patch)’라고 말하고 싶다. 본래 패치란 뚫린 곳을 막는 땜질을 뜻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지금,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와 더불어 만들어지고 있다. 핸드폰 애플리케이션, 소셜네트워크 사용자 인터페이스, 네트워크로 연결된 맞춤형 TV 광고, 더 나아가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까지 소프트웨어의 변화는 곧 우리 삶 자체가 변한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란 작게는 모임, 조직, 합의, 규율 등이며 크게는 정책, 제도, 기관, 정부 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어느새 사용자의 동의나 개입 없이도 자동으로 수정, 보완되고 있다. 이는 미술계에서도 동일하게 기능한다. 미술의 언어, 표현, 개념, 행동, 환경, 흐름 등 모든 부분이 소프트웨어를 매개하고 있다. 


패치에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사후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과 인식체계는 그것이 순종적이든 반항적이든 소프트웨어의 변화에 따르도록 프로그래밍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 패치가 아니라 패치노트(Patch Notes). 어떤 패치가 이루어졌는지 기록한 노트. 소프트웨어의 패치노트는 언제나 길고 복잡하며 번거롭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무심코 암묵적인 동의 버튼을 누르거나 아예 인식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변화는 결코 어느 한순간에 예고 없이 오지 않는 법이다. 변화는 수정을 필요로 하며, 수정은 징후를 전제로 하고, 징후는 다시 문제점을 시발점으로 한다. 요컨대 변화는 어떤 상태 자체가 아니라서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은 이미 어떤 흐름의 분기점에 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는 10년 동안 있었던 굵직한 패치노트를 찾아볼 테고, 누구는 근 1년간 있었던 작은 패치노트를 눈여겨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흐름의 기록을 읽는 것, 소프트웨어의 패치노트를 찾아 읽어보는 것이다. 변화의 흐름에 반응하는 것이 이젠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현실적으로 직시한다면, 무엇이 수정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지금의 요구되는 ‘it’이 아닐까 생각한다.



No.33

변지혜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미술관이 닫은 후>(서울시립미술관), <로우테크놀로지>(서울시립미술관) 연계 사운드아트, 퍼포먼스 비디오 기획 및 <100파티>(서울시립미술관), <Transform Today>(서울시립미술관) 등 진행


[<Danser sa vie>(2011-2012, 퐁피두 센터)]


미술관 큐레이터를 막연하게 꿈꾸던 시기에 만났던 전시 <Dan ser sa vie(Dancing through life)>는 주로 회화나 조각, 설치 등에만 관심을 가지던 필자에게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근본적으로 현대미술의 중요한 매개가 되는 신체가 설명 없이도 소통을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계기였다. 특히 춤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미술관의 퍼포먼스나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은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전시는 현대미술이 어떻게 춤과 만나게 되었는지를 1900년대 이후로 한정하여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전시를 영상, 설치, 혹은 춤을 표현한 회화, 조각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마티스의 회화 앞에서 이뤄지는 춤이었는데, 전시 전체를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다. 


단순한 색과 면만으로 구성된 마티스(Henri Matisse)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춤의 역동성과 그 앞에서 이뤄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작품과 교류하는 신체의 움직임은 미술관의 공연 기획이나, 퍼포먼스, 사운드아트,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가, 큐레이터, 퍼포머, 관객을 연결하는 요소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미술이 점차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미디어아트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로의 확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무엇보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영상이 등장하면서 움직임을 잡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 아우르는 예술가의 춤에 대한 관점을 담은 이 전시가, 오늘의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의 작은 움직임을 살필 기회였지 않을까. 무엇보다 격렬히 움직이는 댄서의 숨소리와 아름다운 움직임이 이런 방식으로든 저런 방식으로든 작품에 그대로 녹아든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에너지를 잔뜩 받은 순간인 것만으로도 좋은 전시였다.



No.34

강정하 포스코미술관 큐레이터

<현대미술사용설명서>(2012, 포스코미술관), <매화,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2013, 포스코미술관), <철이철철_사천왕상에서 로보트 태권브이까지>(2015, 포스코미술관) 등 기획


[백남준 <철이철철-TV깔대기, TV나무>(1995)]


10여 년 전, 수업시간 영상을 통해 봤던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1996)을 직접 보기 위해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센터를 찾은 적이 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빌딩들 사이로 포스코를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철과 유리로 만든 높디높은 포스코빌딩의 중압감에 안에 들어가 볼 엄두는 내지 못했고, 정문 앞에 있는 아마벨 앞에서 겨우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여기서 일하며, 이 빌딩 안에 있는 작품들을 관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필자가 꼭 소개하고픈 작품은 바로 포스코센타 1층 로비에 위치한 비디오아티스트 故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다. 우선 바닥에서 솟아오른 두 개의 철기둥을 볼 수 있는데 이 기둥은 나무를, 거기에 달린 TV 모니터는 꽃과 열매를 상징한다. 천장에 매달린 깔때기 모양 역시 비상과 도약을 의미하고 있다.  294개의 모니터 영상에는 다양한 꽃의 모습과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퍼포먼스, 포스코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95년 포스코센터 완공 당시, 백남준 선생님께서 포스코의 발전을 기원하며 만들어 주신 작품이다. 작품제목은 <철이철철>로 선생님만의 위트가 엿보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은 원형 보존이 힘들어지면서 모니터 교체 여부를 놓고 아직도 논쟁 중이다. 2년 전쯤 백남준 아트센터 관계자분들이 포스코센터를 방문해 함께 작품을 보고 논의를 한 적이 있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진 못했다. 다만, 국내에서 가장 훌륭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는 말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사실, 이건 순전히 포스코 사옥을 관리하는 전기기술팀 덕분이다. 이분들은 자체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기도 하고 삼성서비스센터를 통해 수리를 받는다. 또한, 단종된 모니터를 찾기 위해 지금도 청계천 또는 저 멀리 지방까지 다니고 있다. 아직도 꺼진 모니터들이 중간 중간 보이지만 지속적인 수리 및 교체를 통해 겨우겨우 빛을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하는 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10년 후 <철이철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또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요즘 종종한다. 정말 걱정 반, 기대 반이다. 



No.35

김선문 17717 프로젝트 프로듀서

<유령출판>(2015, 17717), <미확인 미학인>(2015, 홍장오 작가 작업실), <성북예술동물원>(2015, 성북도원) 등 기획


[『뿌리깊은 나무』]


필자의 모든 활동은, 버려지고 기억에서 사라진 것에 대한 관심과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 수집이 대표적이다. 20대 중반에 『뿌리깊은 나무』를 처음 접하고,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님의 삶과 생각을 다룬 책을 찾아 읽으며 한창기라사사람에게 이끌려 잡지 전권을 인터넷으로 수소문해 구했다. 한 사람이 일생을 바쳐 만든 잡지인데, 읽고 한번 미쳐 보자고 생각했고, 잡지를 함께 읽는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도 했다『뿌리깊은 나무』는 1976 3월에 창간돼 1980 8월에 신군부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된 불과 4년여의 짧은 생명을 가진 잡지였지만, 한글 중심주의를 표방하며 우리의 모습과 삶이 잘 담겨 있는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 주는데 많은 공헌을 한 소중한 잡지이다. 지난해에는 『뿌리깊은 나무』가 인터뷰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 그 맥을 이어가고자 했다.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버려진 전통과 옛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 그것을 흥미롭게 만들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일이고,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펼칠 수 있었다.


『뿌리깊은 나무』를 읽으면서 사회, 문화, 정치,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 우리 세대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우리의 바로 이전 세대들의 고민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닫힌 사회에서의 성과 사랑’, ‘아파트 생활이 빚는 문화병’, ‘동성애는 몹쓸병일까’, ‘성형수술 - 예뻐지려는 그 욕망의 허구 등의 글을 통해 필자와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껍데기만 낡았을 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분야에 상관없이 많은 것들이 치열하게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자신을 돌보며 나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뿌리깊은 나무』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아 줄 믿음직한 좋은 길잡이의 역할을 해줄 것이 분명하다. 꼭 한 번이라도 『뿌리깊은 나무』를 찾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이미 훌륭하고 잘난 것들이 많다. (필자는 2013년 『뿌리깊은 나무』 전권 53권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우리글방에서 전시한 바 있다.)



No.36

권미옥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전시기획팀장

<집을 생각하다(House&Home)>(2011,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진례다반사(Jillye)>(2013,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공공의 장소-우리가 함께하는 그곳(Public Places-Here and Now)>(2014,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등 기획


[일리야 카바코프 <안테나>]


1997년 여름은 아주 특별한 한해였다. 미술에 대한 시각이 채 영글지 않았던 때이자, 학부와 석사 사이에서 어느 길로 갈지 생각은 많고 방향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재수 좋게도 그해 여름 굵직한 세 개의 전시가 있었으니, 바로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리옹 비엔날레(Lyon Biennale),’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enster)’ 였다. 리옹에서 이불의 작품, 코를 찌르는 부패한 생선과 반짝이 스팽글로 기억되는 <화엄>을 보았고, 카셀에서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사진 아카이브 설치와 전설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심은 떡갈나무를 볼 수 있었고, 뮌스터에서는 온 도시를 누비며 20세기 최고의 설치, 조각 작품에 감탄했다.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해 여름 잊지 못할 최고의 아티스트는 일리야 카바코프(Ilya Kabakov)이며, 그의 작품  <안테나>. 


뮌스터는 인구 25만 명의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걸어서 도시를 헤집고 미술품을 감상하기에 작은 도시도 아니었으며, 지친 육신을 열정으로 달래기엔 모자람이 많았다. 인내심과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며 이제 그만을 외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작품이 바로 <안테나>. 언덕 위에 안테나 형상으로 높이 솟아 있었고, 안테나의 날개에는 와이어를 사용해 만든 글귀들이 영롱한 아침이슬이 맺힌 거미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앉아서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또는 하늘을 향해 누워서 볼 때 가장 멋진 작품이다. 그 호숫가 언덕 위에 살랑대는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누운 채 글을 읽는다. 하지만, 이내 정신은 맑고 더 넓은 하늘로 우주로 달아나버렸던 기억이 난다. ‘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카바코프의 의제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면서도 관람객에게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 모인 관람객 모두는 말하지 않아도 작품의 존재방식과 존재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이란 무엇이며, 작품은 어떠해야 하는지, 특히 공공미술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놓았던 그해 여름, 그리고 카바코프의 <안테나>는 지금 이 순간도 잇 아트. 



No.37

윤진섭 미술평론가·전시기획

<1,3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50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1회 포천 아시아미술제> 등 총괄


[마르셀 뒤샹 <Fountain>(1917) 그리고 Han Q]


필자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Fountain)>을 언제 처음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짐작건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5년 무렵이 아닐까 한다. 남성용 소변기의 흰색 몸체가 검은색 배경 속에서 두드러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R. Mutt 1917’이라는 사인이 선명했다. 이 사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찍은 것으로 소변기 안쪽 짙은 음영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한 점의 오브제가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줄 당시만 해도 작자인 뒤샹을 포함, 아무도 몰랐다. 그 이전의 미술이 뒤샹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면 망막에 의존한 재현(presentation)’에 입각해 있었다면, 뒤샹의 이 거사 이후의 미술은 바로제시(presentation)’의 미학을 추종, 번성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백남준은 생전에 뒤샹에게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도대체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혼자 다 해 먹었기 때문에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사란 모래시계 한가운데의 잘록한 구멍을 탈출하자면 비디오 예술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남준 역시 아날로그 예술가였다. 그는 전자 메일에 관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서 있었다. 뒤샹 역시 전형적인 아날로그 예술가였다. 그는 팩스가 나오기 전인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 한 큐(Han Q)’는 디지털 패러다임 세상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디지털 맨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 초창기인 2009년에 소셜네트워크의 미학적 특징과 예술적 실천 방법에 대해 페이스북 체험을 바탕으로 두 편의 논문을 썼다. 그 논문의 핵심은 새로운 창조는 손끝에서 나온다(New creation comes out of the fingertips)’란 경구로 요약된다. 그런데 어느 날 페이스북 본사에서 이 말을 인용, 공지하기에 이른다. 이는 모바일 폰이 지배하는 디지털 혁명시대에 대한 서술이다. Han Q가 대장(大腸)의 미술사를 서술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이다.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미술사의 서술에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뒤샹의 혁명,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이어지고 드디어 Han Q의 소셜네트워크 Facebook, 디지털 매체의 총아가 막장(膜腸)을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퀴즈 하나. Han Q가 누구게?



No.38

김신애 신세계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아티스트 아뜰리에>(2013, 신세계갤러리), <박관욱_Sun Table> (2013, 신세계갤러리), <공성훈_In the Scene>(2014, 신세계갤러리), <마인드 스케이프>(2015, 신세계갤러리) 등 진행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기억]


불현듯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멍해진다. 그 짧은 순간, 과거 어느 순간에 대한 기억의 연상 작용이 강하게 일어난다. 얼마 전 햇빛이 강렬한 하늘을 바라보다 몇 해 전 여름 베니스의 기억이 그렇게 떠올랐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푸른 하늘은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자르디니 공원으로 향하며 기대감과 피곤이 교차했다. 좋은 작품은 메모하거나 사진 찍어두는 습관이 있는 필자에게 전시를 본다는 것은 공부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이건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그러나 가끔 이 모든 것을 싹 잊게 해주는 작품과 만나기도 한다. 그날의 기분, 기류가 그것(it)과 딱 맞아 떨어질 때, 강한 심장의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조선소를 개조한 아스날레의 붉은 벽돌 전시장에서 마주한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작품 <Untitled> 앞에서 한참을 멈추어 섰다. 이 작품은 16세기 조각가 잠볼라냐(Giambologna)가 사빈느 여인의 강탈을 주제로 만든 대리석 작품을 파라핀으로 차용한 것이다. 전시 개막과 함께 심지에 불이 붙고, 공간을 압도하는 납치의 극적인 장면 속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형상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로마 건국 후 여자가 부족했던 로마인들이 사빈느 부족을 축제에 초대해 여성들을 대거 납치했다는 전설은 푸생(Nicolas Poussin)을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인기 있는 모티브였다. 피셔는 원본을 훼손함으로써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반감을 주장하고,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이 작품은 시간의 흔적이면서 현재의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타닥타닥 작품을 바라보는 무심한 시간 속에서도 촛농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선형적, 파괴적으로 피할 수 없는 실존의 한계를 의미한다. 만물은 시간의 힘 아래 서서히 나이 들고 스러지고 잊혀진다. 그러나 이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 본질적인 세계로 우리를 귀결시키는 것이 바로 미술의 힘이 아닐까. 이것이 필자가 지금도 이 일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잇 아트를 발견할 때, 시간이 멈추는 그 떨림을 심장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No.39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Cre8tive Report>(2015, OCI미술관), <양정욱_은퇴한 맹인 안마사 A씨는 이제 안마기기를 판다>(2015, OCI미술관), <정희정_태우다, 태어나다>(2015, OCI미술관) 등 기획


[최현석의 그림]


인터넷 기사를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글줄 끝에 주렁주렁 영근 댓글이다. 장황한 기사나 댓글 아래엔 으레 한줄 요약 좀이 달린다. 빈곤한 독해력 탓에, 혹은 정말 딱 그 댓글 달 짬밖에 없어 그럴 법도 하나, 대개 현대인의 사고 회로, 감성 회로는 한 줄 안에 켜지 않으면 도무지 불이 붙지 않는다. 번개탄에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해야 타오를까 말까한 장작에 쌀 안칠 바에 굶고 만다. 꼭 찰나지간을 고집함은 아니어도, 일종의 직관적 수긍, 곧 납득이 절실한 것이다.미술은 홀로 고상하지도, 세속에서 유리되어 특별하지도 않다. 대상과 결과 모두 현실 안에 자리할 뿐이며 응당 그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인의 회로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묻건대, 좋은 그림은 무엇인가?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많은 도록과 인터뷰 추출물의 교집합은 보는 이의 가슴에 거리낌 없이 와 닿고, 그래서 연거푸 곱씹을 만한이라 이구동성 외친다. 와 닿고 곱씹을 만하단 것은 곧 그 자체로 납득의 가능성을 넉넉히 머금었단 이야기. 납득은 좋은 그림의 핵과 같다.


중세엔 신의 은총이 팍팍 와 닿아야 납득 가는 그림, 좋은 그림일 것이다. 너무 저급하고 노골적이면 안 된다. 뒷골목 어귀에 쭈그린 예수가 사탄을 삥뜯거나, 근처에 뒹굴던 베드로가 엉덩이로 예수을 쓰는 작품은 썩 좋지 못하다. 너무 텁텁하고 어려워도 안 된다. 시력이 반 토막 나도록 거듭 훑고, 대뇌피질이 피 질질 흘리도록 해골을 싸매야 감질 나는 은총 부스러기가 어렴풋이 느껴진다면, 중지는 몰라도 엄지를 호쾌히 치켜세우긴 망설여지리라. 이에 곱씹을수록 와 닿을 그림을 하나 제안한다. 최현석의 그림은 노동 집약적이라기 보단 관찰 집약적이며, 또한 수십 층 이야기의 무한 재구성 과정을 고려하면 사고 집약적이라 해야 적절할 듯싶다. 구구절절 안 풀어도 알아서 풀 수 있는 그림, 줄곧 볼 수 있길 염원한다.



No.40

이희준 노토일렛 운영자·기획자

<Prehistoric Loom>(2015, 노토일렛), <Unfolding Time>(2015, 노토일렛), <아지노모토: 가루양념>(2015, 노토일렛), <Beta Abs tract>(2015, 노토일렛) 등 기획


[『Documents of Contemporary Art』]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에서 발행하는 『Documents of Contemporary Art』 시리즈. 회화, 오브제, 전시, 시간 등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제목이 첫눈에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현대미술의 굵직굵직한 담론에 대한 에세이를 시대순 혹은 특정 개념으로 분류해 정리해 놓은 편집서다. 담론에 대한 기본서로 활용도가 높으며 전시를 준비하기 전 참고도서로도 좋은 책이다. 책별로 한 명의 편집자가 있고 담론에 대한 서문을 쓰는데 『ABSTRACTION』의 경우 내년에 있을 광주비엔날레 초청 큐레이터 마리아 린드(Maria Lind)가 편집을 맡아 서문을 썼다. 회화를 전공한 필자는 『PAINTING』을 시작으로 각종 주제에 관심을 두다 현재까지 11권의 『Documents of Contemporary Art』 시리즈를 수집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EXHIBITION』으로, 현대미술에서 전시의 개념과 다양한 형태의 전시 방식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또한, 현대미술의 전시 틀 안에서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있으며 작가이자 큐레이팅을 하는 작가/큐레이터 모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30개 이상의 주제가 현재까지 출간되었으니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모아보는 재미도 있다. 마치 아이들이 게임카드를 수집하는 것처럼 본인의 취향을 반영한 책을 늘어놓고 본다면 현대미술을 이해는 방법과 개인적인 취향까지 보일 것이다. 책은 아마존(Amazon)에서 구매할 수 있다.



No.41

이지원 독립큐레이터

<13 PROJECT>(2013, MASSISM GALLERY), <여름의 밤: 어느 젊은 화가의 독백>, <2014, Indie-art-hall GON), <AIR EVERYWHERE>(2014, WOWSAN107) 등 기획


[관찰]


관람객이 적은 전시장을 좋아했다. 아마도 학부생이던 스물한 살 즈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대체로 그런 곳일수록 실내는 조용했고, 그 조용한 실내환경 덕에 대부분 관람객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신발을 턱턱 거리고 걷는 법도 없었으며,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머물다 가는 것이 전부였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들이 떠나고 마지막에 나만 혼자 전시장에 남으면 묘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장의 작품들이 온전히 날 위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공을 들여 작품을 보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들여다보고, 그 앞에 앉아있었을 작가를 떠올려보며, 그래서 이 사람은 그때 이걸 왜 그렸을까. 따위의 물음들을 이어갔다. 게 중에 영상작품이라도 있을라치면 망설임 없이 바닥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몇 십 분이고 앉아 암호풀이 같은 영상을 뚫어져라 보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작품을 관찰 하는 것이 작품과 하는 대화였다. 관심 가지는 만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때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감정이 흔들리기도 했다. 관찰의 힘이란 가히 신뢰할만한 것이었다. 


그 비슷한 시기 김학량 교수님이 수업 중에 좋은 기획자는 좋은 관찰자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필자는 조용히 눈을 깜빡이면서 그걸 종이에 적었다. 의연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속마음은 두근거리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그래, 좋은 관찰자가 된다면 좋은 기획자도 될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짐들을 하며 사회에 나와 명함이라는 걸 팠을 땐, 이름에 앞서 이곳, 저곳, 어디에선가 관찰하는 사람 이라는 말을 적었다. 관찰이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필자의 중심세계관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말을 좋아한다. 응시를 넘어서 그 내부의 것까지 바라보는 것. 그리고 대상에 대한 배려이자 탐구욕의 반영인 것, 관찰. 필자는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먼 과거의 이야기를 살피고, 열어본 지 한참이 지난 편지상자를 들추어 보며, 그가 지금 테이블 위에 올려둔 노트와 그 노트를 펼치는 손의 모양새를 본다. 과연 나의 관심은 그런 것에 있다.



No.42

이기모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SIA 미디어아트 어워즈>(2012, 서울시립미술관 및 상암 DMC),  <팀 버튼>(2012-2013, 서울시립미술관), <낙타를 삼킨 모래시계> (2015,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등 기획


[DVD 컬렉션 5,000장]


<팀 버튼(Tim Burton)>의 한국전시를 기획할 때 필자에게 가장 큰 힘이 돼 주었던 것은 17장의 팀 버튼 영화DVD였다. 25년간 팀 버튼 영화 애호가로서 그의 장편영화를 수집해 왔다.  DVD 덕분에 뉴욕, 파리, 멜버른 등 다른 지역에서 투어 전시로 개최된 <팀 버튼> 전시에 없는 요소를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전시장 각 섹션마다 전시된 영화 클립 영상, 대니 엘프먼(Danny Elfman)의 뮤직 룸, 영화 클립을 모은 영상 룸, 3개의 움파룸파를 비롯한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인형, 관람객이 전시를 보러왔을 때 영화세트장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도록 기획한 미술관 안팎의 설치물 등, 이 모든 요소가 실현될 수 있었던 영감의 원천은 오랜 기간 수집하고 즐겨 보았던 17장 팀 버튼 영화 DVD였다. 이외에도 근 10년간 모은 DVD 타이틀이 약 5,000장 정도 된다. 요즘 기획하고 있는 전시들도 나의 DVD 컬렉션에 그 근간을 두고 있음을 실토하겠다. 최근 기획한 <일상이 별안간 다가올 때>, <낙타를 삼킨 모래시계>, <블랙홀 썬>, <SIA 미디어아트 어워즈: 크리스탈 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등도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과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영화의 공감력에 탄력을 받아 기획한 전시들이다. 앞으로도 전시를 기획할 때 필자의 DVD 컬렉션 덕을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No.43

고동연 미술비평가·전시기획

『응답하라 작가들』(2015) 집필, <응답하라 작가들>(2014, 스페이스 오뉴월) 등 기획 및 「인터-아시아 문화연구」(러틀리지), 「플래시 아트」, 「모던아트 아시아」 등에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논문 기고


[아나 체이브 교수가 보내준 엽서]


필자의 책상 위에는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아나 체이브(Anna Chave) 2006 10월에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에는 논문이 통과된 이후 교수가 제자에게 남긴 덕담이 적혀 있다. 워낙 말을 아끼는 교수였기에 엽서를 받았을 때 감격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엽서를 책상 위에 놓고 적어도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쳐다보면서 엽서로부터, 아니 엽서에 의하여 영감을 얻게 되는 면들이 있다. 하나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론적인 계보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로 정체성에 관한 부분은 요사이 미술계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분이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필자 또한 스스로 비평가인지, 기획자인지, 연구자인지, 심사자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미술계가 체계화되고 그 규모가 확장되면서 각종 미술관련 기관들은 여러 일을 기획해내느라 분주하다. 덕분에 미술계에서 글로 먹고사는 전문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물론 하는 일 자체가 변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술 관련 글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과 담당하는 역할이 다양해졌다. 결과적으로 젊은 작가 지원 명목으로 필자가 쏟아내는 글의 종류나 글을 통하여 필자가 예술가와 맺게 되는 관계도 다변화되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엽서는 저의 번잡해진 정체성을 다잡는 중요한 매개체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대답은 한결같다. ‘나는 연구자다.’ 엽서는 미술사 박사 논문을 마쳤을 때의 홀가분함과 그동안 변화해온 미술계의 지형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다. 


두 번째로 엽서는 아나 체이브로부터 필자에게로, 아니 체이브의 스승이었던 로버트 허버트(Robert Herbert)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회사적인 연구방법과 필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연쇄 고리이다. 허버트는 당시까지 주로 모더니즘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져 왔던 신인상주의의 주요 작가들을 문화사적인 의미에서 다룬 연구들로 유명하며, 특히 기존의 미술사 방법론에서 작가의 인터뷰나 글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한 연구가이기도 하다. 체이브 또한 이러한 방법론적 계보를 이어받아서 작가의 개인적인 삶,’ 달리 표현하자면 심리적이고 심지어 신변잡기의 이야기들을 미술사에 도입했다. 필자도 2014년 내내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2015 4월 출간)라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작가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정서적인 교감에 바탕을 두어 책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피상적이기는 했지만, 일종의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개인적인 즐거움도 느꼈다. 작가들의 총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작업에 접근해야 한다는 미술사가로서 사명감과 즐거움 말이다. 엽서는 직, 간접적으로 이제까지 필자에게 영향을 미친 미술사가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해준다. 



No.44

노미리 ㈜로렌스 제프리스 대리

<이탈리아 젊은 작가전>(2014, 송은아트스페이스), <최선_메아리> (2015, 송은아트스페이스)등 기획 및2012년부터 송은미술대상 공모전 진행 및 전시기획 담당


[최선 <검은 그림>(2014)]


최선 작품 <검은 그림>(2014)은 다 쓰고 버린 폐유를 발라 물감이 마르거나 형태가 고정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검은 단색화 형식의 작업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하게 검은색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시각적인 단순함 뒤에 발견하게 되는 의미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최선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폐유 특유의 화학적인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반영구적으로 굳지 않는 성질을 가진 폐유는 전시기간 내내 스멀스멀 아래로 흘러내려 전시장 바닥에 매일 달라지는 또 다른 검은 그림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모노크롬 회화 혹은 미니멀리즘의 전형적인 형태와 색채에서의 특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2007년 유류 오염 사고로 태안 앞바다에 둥둥 떠다니던 기름 층에 작가가 캔버스 천을 담갔다 꺼내어 검은 색면회화를 그려냈던 작품의 제작과정을 생각해보면, 감정의 여과를 통한 절제미라든지 물질성의 기화를 통한 비물질성의 추구 등 미니멀리즘이 표방해 온 가치에 대한 생각들은 한 순간에 저 멀리로 날아가버린다. 걸어놓기도 쉽지 않고, 보관하기도 어렵고, 몇 년 뒤에는 처음 봤을 때와 절대 같은 모양새일 수가 없는 이 작품을 떠올리면 무수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맴돌지만 어느 것 하나 입 밖으로 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말해 온 예술의 고정불변의 가치와 심미성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작품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No.45

문정원 KT&G 상상마당 큐레이터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KT&G SKOPF)>(2011-) 기획·운영, <The room project>(2014, 토탈미술관) 기획 참여 및 <System Planning>(2015, KT&G 상상마당) 기획


[이미지 워크]


이미지 워크(Image Work). 이 용어가 최근 필자가 꽂혀 있는 잇 아트다. 올해 초, 맡고 있는 사진작가지원프로그램(KT&G SKOPF) 지원 작가의 도움으로 캐나다 토론토 스코티아 뱅크 콘택트 포토 페스티벌(이하 C 페스티벌)’에 출장을 다녀왔다. 처음 경험하는 국제 사진 페스티벌이기도 했고, 페스티벌의 역사와 그간의 참여 작가 리스트를 봤을 때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경험한 ‘C 페스티벌은 의례적 프로그램과 행사들도 있었지만, 참여 작가에 대한 지원, 사진 전시와 설치가 훌륭했으며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범위가 넓고 깊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열린 시각이었다. ‘C 페스티벌이 시작된 1997년 이후 사진이라는 매체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매체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으로 그 어떤 매체보다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놀랍게도 ‘C 페스티벌은 그 변화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미지라는 개념과 함께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이미지 워크. 바로 이 용어가 사진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접근 설명해 줄 수 있는 용어가 아닐까 싶다. 토론토에는 이미지 센터라는 전시/연구 기관이 있는데 이미지 워크라는 용어를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이미지 센터에서는 사진, 영상, 미디어 등과 그에 관한 인쇄물, 데이터화 된 파일 등 이미지에 포함되는, 이미지라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구와 작업을 지원하고 전시하고 있는 듯했다. 2016년 기획전을 이미지 워크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 용어를 중심으로 무어라 규정짓기 모호했던 작업들도 연결해보고 다양한 매체의 실험을 시도해보고 싶다.



No.46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오늘의 살라오>(2014, 커먼센터), <혼자 사는 법>(2015, 커먼센터), <뉴 스킨:본 뜨고 연결하기>(2015, 일민미술관) 등 기획


[도록()]


필자는 굳이 말하자면 인문학적 소양이나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시에 담는 큐레이터는 아니다. 그보다는 작은 시각적 현상을 그러모아서 더 큰 양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편이다. 이는 최초에 착안한 아이디어를 놓고 벌이는 일종의 배팅에 가깝다. 얼마나 기세 좋게 예측했던 아이디어가 전시장 위에 올라가게 되는지 보는 일이 필자가 전시를 만들며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그런 면에서 필자에게 다소 미진할 수 있는 전시의 논리적 꼼꼼함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도록이다. 아니 오히려 전시만을 통해 닿을 수 없는 단계가 도록을 통해 비로소 성취된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잘 만든 도록은 전시장에서 시각적으로 스쳐가는 경험을 다시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만들고 치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소 허무할 수 있는 전시 기획의 경험을 상쇄할 수 있는 든든함 같은 것이 있다. 펼치면 벨 것처럼 날이 선 묵직한 도록을 구입해서 펼치는 일은 탁하고 정신없는 전시 기획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No.47

이장욱 스페이스K 선임큐레이터

<Creative London>(2012-2013, 스페이스K 과천·서울·대구·광주), <강경구_浮遊하다>(2014, 스페이스K 서울), <Carla Busuttil_A Change Of Tongue>(2014, 스페이스K 서울) 등 기획


[피에르 위그 <Human Mask>(2014)]


카메라는 은밀하고 조용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잔해를 따라 한 가게를 향해가고 있다. 사람이 모두 사라진 마을, 부서진 건물 벽에 수없이 휘갈기듯 쓴 사람 인()’자 낙서들. 도착한 가게엔 노(일본 전통극) 가면이 연상되는 무표정한 가면을 쓴 한 소녀가 앉아있다. 어두운 가게 안, 조명이라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흐릿한 자연광과 가끔 소녀가 물수건을 꺼내느라 여는 냉장고 불빛밖에 없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기도 하고, 손톱 밑을 긁어내기도 하고 다리를 잠깐씩 떨기도 하며 손님이 없는 식당에서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약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색하는 소녀의 몸은 짐승의 긴 털로 덮여있다.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에 노출되어 대부분이 사라지고, 유전자 변이가 이루어져 살아남은 마지막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인류를 대변하는 듯 표정 없는 가면을 쓴 소녀와 침착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배경에 깔린, 멈춰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백수 시절, 의지도 희망도 없이 불 꺼진 자취방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깨어 있어 본 이라면 알 수 있을)은 과거 필자의 시간을 떠올리게도 했다. 


이 작품은 2014 10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에서 만난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Human Mask>(2014). 등장하는 소녀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 도저히 사람이 아닌 존재가 연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원숭이는 사색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인물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이 원숭이는 사실 도쿄 북쪽에 있는 가야부키의 이자카야에서 여자가면과 가발을 쓰고 사람을 대신해 물수건이나 술을 서빙하는 두 마리 원숭이 중 하나인 후쿠짱이다.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약 20분간 재생되는 이 영상 작품은 그 어느 순간 하나 놓치기 싫을 정도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적이 길어질 때쯤 그 고요를 깨는 휴먼 마스크의 경박한 다리 떨기, 제자리 돌기를 하다가 어지러워 푹 쓰러지는 모습, 다가오는 어둠과 빗소리에 불안해하는 모습과 엔딩화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던 가면 너머의 눈동자까지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평소 필자는 영상 작품들을 접할 때 작품을 끝까지 관람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바쁜 런던-파리 출장 중 그 작품 앞에서만 40여 분을 보냈다. ‘프리즈 피악(Fiac)’ 기간 동한 열심히 찾아다닌 거장의 개인전과 특별전이 하나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Human Mask>는 이후 한 달 이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만약 미리 후꾸짱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면, 혹은 작품 설명글을 미리 읽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40분간 서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아직 <Human Mask>를 보지 않은 미래의 관람객들에게는 아주 나쁜 스포일러다. 추신. 후꾸짱에 대해 궁금한 분이 있다면 유튜브에서 ‘Fukuchan Monkey in wig, mask, works Restaurant!’ 을 검색해 보길.



No.48

김세현 개방회로 운영자

<OLTA: RESEARCH DRAWING EXHIBITION>(2014, 개방회로), <밖의 노래 / 안의 노래>(2014, 개방회로), <박지인윤평화이유진이재원이진채지혜최고은최지훈최하나홍상유 영화제>(2015, 개방회로) 등 기획


[N55]


코펜하겐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N55. 이들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고, 지난해에는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It’하다고 생각하기에 슬쩍 이야기를 풀어본다. 당시 공간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있던 필자는 N55 ‘THE ROOMS’라는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유럽 각국의 작은 유휴공간들을 한데 모아 시간, 용도 등의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들 작업은 주로 건축 기술을 근간으로 하며, 최근에는 이동식 주거, 잔디, 부엌 등을 조성할 수 있는 설치 모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주요 프로젝트들에는 도시 생활에서의 개인 공간, 독립적인 환경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주로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서 이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참여자 및 사용자들은 N55가 조성한 모듈을 자유로이 변형하고 조합하여 도시의 한 구역을 점거하거나 횡단한다. 


현재는 ‘XYZ CARGO’라는 이름으로 자전거와 수납공간이 결합된 모듈을 내세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모듈 역시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한 형태로 자전거에 단순 수납공간, 잔디밭, 가판대 등이 조합된다. 코펜하겐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여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모듈을 만들고 프로젝트가 이전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참가자들은 각 모듈을 이어 작은 잔디밭 공원을 만들기도 하고, 요리가 가능한 실용적인 부엌을 도심 한 가운데 조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N55의 프로젝트들은 공공미술에 있어서도 접점과 힌트를 주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매뉴얼화 하여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이며, 홈페이지(www.n55.dk)를 통해 자세한 프로세스 및 내용을 알 수 있다. 



No.49

채은영 우민아트센터 학예실장

<송도삼부작(유령, 다른 거주, 파산의 記述>(2009-2011), <사운드 스케이프>(2012), <메타데이터>(2012), <아는 것이 힘이다:포스트프로파간다>(2013) 등 기획


[정약용 「삼사재」]


동시대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연결하는 기획매개자에게 자본과 제도에 건강한 긴장감을 갖는 예술의 정치성을 회복하는 상상과 실천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수많은 작가와 작업, 이론과 비평 그리고 현장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지속가능하게 할 무엇을 고민할 때 나침반으로써 잇 아이템이 되는 글이 있다. 예술의 새로움이 진귀한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그람시의 글과 학문을 탐구할 때 갖아야 할 마음가짐을 빗대어 일상과 미술계 안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갖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약용의 글이다. 


창조적이란 말은 상대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대중의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대중없이는 생각될 수조차 없는 현실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적이란 말은 현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함을 시사해준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옥중수고』 중에서 斯遠暴漫(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하며), 斯遠鄙倍(비루하고 패려함을 멀리하며), 斯近信(진실에 가깝게 한다)” - 정약용 「삼사재(三斯齋)



No.50

박정호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총괄

<예술이 흐르는 공단>(2012-2014, 부천테크노파크, 파주 문발공단, 안산 반월공단), <2015 창작페스티벌_아일랜드 플러스>(2015, 경기창작센터), <1회 경기공연예술 페스타_궁궁을을> (2015, 의정부예술의전당) 등 기획


[칼맛이 만들어주는 작품 목판’]


10여년 전, 공연과 축제 기획을 주로 하고 있던 중에 판화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하면서 알고 있던 이윤엽 판화가에게 6개월 정도 나름 열심히 배운다고 노력했다. 90학번 세대인 우리에게 미술은 참 어려웠다. 목판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자유 주제를 주면 도화지만 한 달 동안 바라보면서 답답해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같이 배우러 다니는 6살짜리 어린아이는 하루에도 2-3장씩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필자가 봐도 감탄할만큼 너무 자유롭게 잘 그리던데 말이다. 그리기도 전에 먼저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짖눌려 있었기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가보다. 그렇게 어렵게 그림을 그리고 나서 목판에 옮긴 후 조각도로 파내기 시작할 때면 즐거움이 다가왔다. 


손재주가 있단 말은 가끔 들었기 때문. 칼질을 하다 보면 뜻대로 잘 안될 때가 많았다. 필자가 그린 것과 실제 칼이 나뭇결을 따라 다르게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참을 낑낑거리면서 열심히 파고 있는데 작가가 (비아냥조로) 한 마디 던졌다. “정호씨가 칼맛을 알아?” 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판을 하다보면 재료와 칼이 만들어내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칼에 몸을 맡기고 가다보면 진짜 작품이 나온다며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정호씨가 칼맛을 알 리가 없지 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 그였다. 순간 하는 기운이 엄청 강하게 느껴졌다. ‘너 잘났다 그래, 칼맛은 몰라도 나도 낫맛은 안다 왜!!! 나도 낫으로 꼴 배고, 나무하던 시골놈인데…’



No.51

김유석 아트레시피 대표

<미래창조과학기술부_Funcatalyst>(2005, 대전엑스포공원), <삼성전자_Lead Me to Your Door>(2011, Superstudio Piu, Milano), <Giving My Heart to Snoopy>(2015, 롯데백화점 에비뉴엘&롯데갤러리) 등 기획


[뮌 <Lead Me To Your Door>(2011)]


미술가의 창작 행위는 그 누구의 수주를 받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엄연한 이다. 발주처가 작가 자신이라는 점은 그들의 작업에 자기정체성을 온전히 담보해준다. 아마도 그래서 순수미술이라 부르는가보다. 여러 기업과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며 외려 이 순수로 말미암아 기업에서 예술을 원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대개 기업의 미술 관련 프로젝트는 비영리사업 군에 속한다. 그러니 비영리와 순수는 어울리는 한 쌍이다. 하지만 발주처가 작가 자신이 아닌, 기업이라는 점에서 국면은 달라진다. 소극적으로는 사회 공헌의 일환에서부터 기업 홍보나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와 같은 좀 더 적극적인 동기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에는 분명 소기의 목적이 존재하므로. 필자는 바로 이 국면에서 일한다. 


작가 본연의 자기 정체성이 조금이라도 더 공감을 불러올 수 있도록 그들의 순수함을 가공하여 기업 저마다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연결한다. 프로젝트마다 가공의 폭과 난이도는 늘 다르다. 어떤 아티스트에겐 가공이 불순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작가들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고 더러는 자신의 작가 이력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찾게 되는 반가운 경우도 있었다. 작가 혼자만의 일이나 오직 기업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우리의 프로젝트라는 완성체의 탄생에 이르는 전 과정이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와 다름 아니다. 순수의 가공 자체 보다는 순수의 공유라는 방향성에 주목하기를.



No.52

민병직 대안공간 루프 바이스 디렉터

<패션사진 B_b컷으로 보다>(2004, 대림미술관), <생활의 목적_듀얼 이미지_파라-테크놀로지_플라스틱 데이즈_스틸라이프>(2011-2012, 포항시립미술관), <최정화-총천연색>(2013-2014, 문화역서울 284), <드림소사이어티3_Originability>(2015, 서울미술관) 등 기획


[추사 김정희]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실체를 잘 모르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추사()의 경우도 아마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올해 이런저런 인연을 이유로 추사를 개인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뒤늦은 호기심과 관심이 동하여 그 실체에 대해 어렴풋이 접근할 수 있었는데, 대할수록 전해오는 그 깊고 색다른 맛이 제법 쏠쏠하기만 하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들을 뒤늦게나마 접할 수 있어 얻어진 어떤 기쁨일 것이다. 여기에는 서예를 비롯한 최근의 동양()에 대한 뒤늦은 개인적 관심도 한몫했던 것 같은데, 추사를 안다는 것은 혹은 알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서구적 사유 너머의 우리 고유의 문화적 지반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이러한 이해로 무르익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추사는 우리 문화예술의 독창성을 알린, 이른바 진경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다. 전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창조적 예술 정신으로 호방하게 변형시키고 있는 추사로부터 우리 문화예술의 힘 있는 뿌리를 찾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졸박청고(拙樸淸高)한 추사체는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심의를 꾸밈이 없고, 자유로운 필선으로 보여준다. 


기법과 형식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품은 청고고아(淸高古雅)한 뜻을 간결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드러내기에 품격 있는 문자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자유롭되 격을 잃지 않는 추사는 서화동체(書畵同體), 텍스트와 이미지를 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인간의 외부 세계를 향한 의미표현으로 이해하고, 그 근원성, 원형성을 살핀다. 아울러 서예를 문자, 이미지로 함축된 인간의 사유를 직접 표현하는 감각적 실천으로 이해했기에 추사의 글씨는 그 자체로 개념이자 감각적 실천이고, 조형성인 동시에 이미지,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대적인 개념성의 확장이나 감성적인 미감을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로 부단히 손을 내미는 살아있는 과거이자 그렇게 여물어가는 우리 문화예술의 미래인 셈이다. 여기에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마저 호방하고 자유롭게 담아 전하니, 그 작은 글씨들에 세상의 섭리마저 느껴지는 것도 필경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No.53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Made in Asia, 라 뉘 블랑쉬 프로그램> (2006, 파리 르 디반 뒤 몽드>, <Forward Beauty, 아트 by 아티스트리, 부산국제영화제 후원 프로그램> (2014, 해운아트갤러리&암웨이미술관), <몽블랑 스푸마토 아트 프로젝트x이만나>(2015, 아트사이드 갤러리) 등 기획


[이브 클라인]


필자에게 예술은 만남이다. ‘잇 아트로 부를 만한 작품들을 생각해보니 모두 그 작품과의 대면, 그 작가와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전시 장소의 발견, 도시의 방문이 그러하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인연이 싹트고 관계가 형성되며 그것이 전시로, 글로, 아트투어로, 프로그램 기획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듯하다. 만약 살아있다면 꼭 만나보고 싶은 작가 이브 클라인(Yves Klein)도 미술사를 배울 때는 크게 관심을 두었던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30주년 기념 전시를 맞이해 그가 살았던 집과 자주 다녔던 카페 등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작가의 삶과 예술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브 클라인의 파란색으로 콩코르드 광장을 파랗게 물들인 라뉘블랑쉬(La Nuit Blanche)’ 파리 문화축제를 만끽하면서 작가와 작품과 미술관과 도시를 새롭게 맞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올 때, 그의 세계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지리, 세계사, 철학, 역사, 과학, 경제 이 모든 다양한 세계에 대한 문을 열어 준 것도 필자에게는 예술이다. 예술가들이 그것에 관심을 둘 때, 그들의 관심사를 따라 세계를 바라보면서 만남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매일 성장하고 발견하는 하루를 보내는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전히 예술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No.54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Metal Works Today>(2014, 김종영미술관), <2014 김종영미술관 창작지원작가전>(2014, 김종영미술관),김호득_“그냥, 문득”> (2014,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_김지원>(2015, 김종영미술관) 등 기획


[국민화가]


필자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로트인 듯하면서도 전기기타연주가 있는 묘한 곡이었다. 이후 발표된 곡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1997 6월 그가 16집 앨범 발표할 때의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그의 위상이 거인 조용필에서 국민가수 조용필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가수인 그가 지금은 가왕이라고 불린다. 올해 나이 예순여섯인 그가 연말까지 전국순회공연을 한다. 참으로 그는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가요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그의 노래 <Q>가 필자의 십팔번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술계에도 국민화가가 등장했다. 대략 조용필이 국민가수라 불리기 시작할 때쯤인 거 같다. 국민화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는 박수근과 이중섭이다. 특히 올 4 DDP에서 개최된 박수근전의 포스터에는 <국민화가 박수근 50주기 기념 특별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박수근과 이중섭은 빈궁하던 시절 극적인 삶을 살다간 비운의 화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조각가로는 권진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민조각가는 없다. 


국민화가는 애칭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칭호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가 떠오르기 때문인데, 방청객들의 투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방식 때문에 그렇다. 작가로서 대중적인 인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업적에 대해 미술계에서 엄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추사 선생은 서화감상은 금강안(金剛眼), 즉 크고 준엄한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한 아전의 뚜껑을 열어 하나하나 헤아려보는 섬세함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국민화가라는 애칭은 달리 보면 금강안이 부재한 평가를 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미술계의 최대 취약점인 비평의 부재 말이다. 바야흐로 국민화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No.55

김노암 세종문화회관 시각예술전문위원

<비정형예술프로젝트 The CLub>(2004, 광주비엔날레 5전시실), <서교육십1,2,3>(2008, 2009, 2010, KT&G 상상마당), <이것이 대중미술이다>(2012,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여가의 기술> (2014, 문화역서울 284) 등 기획


[<집단정신> (덕원 갤러리)]


20년 전 혈기 방장한 청년작가로 그룹전 활동을 할 때였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동료들과 그룹전을 준비했다. 당시 덕원 갤러리에 20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 50여 명을 초대한 <집단정신>전이라는 당시로는 대형 기획전이었다. 당시 우리 그룹은 <타임캡슐>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그룹전을 한 후였다. 당시 우리는 여러 명이 의견을 내어 민주적으로 기획하게 될 경우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그룹에서 아주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후배에게 모든 기획권한을 주어 우리는 의견만 낼 테니 네가 기획권을 갖고 마음대로 연출하라고 했다. 


전시 연출은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서로의 취향을 다르더라도 하나의 설치작품으로서 일관성을 확보했다는데, 당시 9명의 회원이 참여했는데, 모두 만족했다. 그 전시가 미술잡지에 소개되면서 당시 한창 활동하던 윤진섭 선생과 라운드 테이블을 함께했던 기억은 20대의 젊은이에게는 큰 경험이 되었다. 몇 년 후 술자리에서 한 작가가 자신이 보았던 전시를 극찬하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우리 그룹이 공동으로 연출했던 바로 그 전시의 작품이었다. 그 순간의 뿌듯함은 사실 유치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이 분야에 남아 지속해서 활동할 힘을 제공했다. 인터넷이 없던 20대를 보내면 창작에 도움이 될 정보를 갈구했던 시절은 비록 실수와 시행착오로 얼룩지더라도 현장에서 구를 수 있는 맷집을 만들 기회였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그리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필요한 실천(행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접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창작과 소통의 문제가 얼마나 허위적인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직접 연애를 해보지 않은 채 책이나 정보를 통해 연애박사가 되는 것과 실제 연인과 희로애락을 느끼며 절절한 연애를 해본 것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이란 작가든 기획자든 비평가든 어떤 역할과 입장이 되었든 분명한 것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와 성찰과 사유에 대한 분명한 감각이다. 우리분야에서 자기만의 감각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



No.56

이은주 더페이지 갤러리 실장

<최명영>(2015, 더페이지 갤러리), <CHINA 8>(2015, 더페이지 갤러리), <무스타파 훌루시>(2015, 더페이지 갤러리) 등 기획


[더페이지 갤러리]


더페이지 갤러리(The Page Gallery)는 모던 클래식, 표현주의, 신표현주의, 추상미술, 개념미술 등 유럽과 미국의 대표적인 조형미술을 선보이며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과의 교감을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2009,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재단과 함께 한국 최초 전시를 기획했고, 2011년 샘프란시스(Sam Francis)재단과 함께 전시 개최 경력도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엔 그 영역확장을 하고자 중국의 현대미술을 국내에 알리는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공간확장을 위한 서울숲으로 이전 이후, 20세기 중반 한국 근대미술의 실제적 체험을 위한 입체적 기획으로 시대를 느끼며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근현대미술체험 <No More Art>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이어서 이번 가을 더페이지 갤러리에서는 가구와 회화 예술의 조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독창적 전시를 기획 중이다. 삶과 미학을 아우르는 실용 디자인 아트 퍼니처와 현대 회화 미술작품들이 한 공간에 모여 20세기부터 변천해온 현대 미술의 접합적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간의 효율성을 담임하던 가구가 예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며, 공간의 재해석을 구축한 아트 퍼니처의 대가 론 아라드, 깜파냐 형제, 시로 쿠라마타, 안드레아 브란치 등 최고 작가들의 작품들이 공간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 쥴리안 슈나벨, 리차드 프린스, 션 스컬리, 루치오 폰타나 등 각국 미술사의 각기 새로운 사조를 끌어낸 세계 현대 미술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할 예정이다. 단순히 각 작가의 매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서 얻어지는 예술의 단편적 모습이 아닌 이 모든 작품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현대 미술의 모습을 수용하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경험 속에서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한 듯 공간에 몸을 맡긴 채, 또 하나의 복합적 예술관을 열어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No.57

최재혁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Brain: 뇌 안의 나>(2012, 사비나미술관), <3D프린팅&아트: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도구>(2014, 사비나미술관), <아티스트 포트폴리오2>(2015, 사비나미술관) 등 진행


[미술관 전시와 관람자의 연결고리’]


전시기획자의 잇 아이템이라는 주제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전시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았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각예술 분야도 대중과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는 이해를 강요받던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작용하는 수평적 관계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관계변화는 전시를 둘러싼 다양한 연결고리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시와 관람자의 연결고리인가? 먼저 전시라는 행위 자체가 작품과 감상자를 연결하는 1차 연결고리다. 나아가 오늘날의 전시형태는 단순히 작품만을 보여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주제와 관련한 자료 및 현상을 총괄적으로 제시한다. 장르의 교차, 예술과 다른 분야의 융합,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연결, 공감각적 체험 등 다채로운 요소들의 연결이 2차 연결고리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미술 시장 및 판매에 목적을 둔 전시공간이 아닌 공공미술관에는 3차 연결고리가 추가된다. 전시를 더욱 쉽고 편하게, 효과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들이다. 


첫째로, 아카이브다. 기록 보관소의 뜻을 가진 아카이브는 전시에서 작품의 보조자료, 기록물 혹은 인쇄자료와 같은 물리적 자료와 웹 데이터 및 온라인 데이터를 총칭한다. 아카이브를 이용한 전시는 주제를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보여주기에 알맞다. 둘째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관람객 서비스다. 작가인터뷰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들을 멀티비전 혹은 키오스크 등 첨단기기로 제시함으로써 전시를 더욱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오디오가이드, QR코드, NFC(무선태그 기술로 10cm 이내의 근거리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기술) 등 모바일 기술의 활용은 전시정보의 손쉬운 접근으로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파급 효과에 일조한다. 혹시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어렵거나 불편한가? 그렇다면 기획자가 전시주제에 따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연결고리들을 설정했는지 찾아본다면 조금은 쉬운 전시분석과 관람이 되지 않을까 한다.



No.58

구나윤 갤러리구 대표

<유의정_Skin of Desire>(2015, 갤러리구), <신건우_All Saints> (2015, 갤러리구), <이여운_Wonderland>(2015, 갤러리구) 등 기획


[식물 키우기의 낭만]


최근에 일산 근처 화원에 갔다. 친구가 나무를 산다기에 따라 나선 것이다. 줄지어 있는 화원들 안에는 아주 작은 꽃나무부터 큰 선인장까지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었다. 어떤 나무는 우리나라 기후보다는 열대지방에서나 자랄 법한 모습이었고, 크기별로 가지각색, 그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화원 사장님과의 오랜 협의 끝에 친구도 필자도 마음에 드는 나무를 하나씩 골랐다. 식물이 없던 집 거실에 화분을 놓으니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일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안녕했는지 살피게 되고, 아주 미미한 차이지만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잎사귀들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생명 탄생의 경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쓰지 않더라도 며칠 전 꽃봉오리가 하나 올라오는 걸 보고는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요즘 그린라이프,’ ‘가드닝 등의 용어와 함께 자신만의 텃밭을 꾸미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트렌드 분석가들이 미래의 가장 핫한 사업 아이템으로 가드닝을 꼽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도쿄에서는 도심 한가운데 건물 옥상에 작은 텃밭을 임대하여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들러 자신의 밭을 가꾸는 것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반려식물을 키우십니까?’라는 이야기들도 들려온다. 요즘 우연히 기르게 된 반려식물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소박한 기쁨과 생명력이 사람들과의 소통보다 더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지금 필자에게 가장 신선하고 공유하고 싶은 잇 아이템은 식물 키우기라고 말하고 싶다. 



No.59

윤상훈 건국대·대구대 회화과 겸임교수

<결핍된 주체>(2010, 인터알리아), <스펙타클의 사회>(2011, 인터알리아), <眞景>(2012, 인터알리아) 등 기획


[졸업 전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인문학과 더불어서 다가올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매체다. 또한, 시스템의 개입 없이 동시대 청년들의 정제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있는 관심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전시만큼 훌륭한 표본도 없다.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나 천착하는 관심사들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당대의 미술계에서 고스란히 목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졸업전시를 최전방에서 직접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겁고 감사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사회적 제도와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며 거창한 담론을 제시했던 과거 학생들과는 달리 요사이의 청년들은 확연하게 입장이 달라졌다. 나라 안팎으로 끊임없이 시끄러웠던 최근 몇 년을 지내며 삶의 본질과 진정한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모습들이 작품의 주제로 빈번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의식의 결핍에서 오는 낡아빠진 신파가 아니며 개인주의적 성향의 발로이거나 거대 권력에 대한 자포자기 따위와는 확연하게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대중예술 전반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디지털 세대의 이 독특한 아날로그적 감성표현은 시스템의 톱니바퀴 역할을 하던 대중이 급기야 지쳐버리게 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21세기에 맞이하는 새로운 형태의 르네상스 운동처럼 보일 지경이다. 미술대학의 졸업전시들은 나로 하여금 동시대 예술이 지녀야 할 태도와 그것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비타민이 되고 있다. 간혹 이러한 태도를 비판의식의 결여라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새로운 경향의 탄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은 지켜보고 싶다. 혹시 이 젊은 청년들이 지루한 암흑시대의 장막을 걷어내 버릴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10년이 넘도록 번쩍이는 현대미술의 차가운 심장 안에서 허우적대던 필자에게 투박하고 거친 졸업 전시들이 짠한 감동으로 다가와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은 결코 필자가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거나 불쑥 가을이 찾아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No.60

박우찬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1995,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헤르만 헤세>(2000, 세종문화회관 특별전시실), <추상은 살아 있다>(2013, 경기도미술관) 등 기획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1897)]


1897, 폴 고갱(Paul Gauguin)은 머나먼 이국 땅 타히티에서 생활고와 지병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딸 알린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자살을 결심했다. 고갱이 유언장이라고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고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달 동안 정신없이 그렸다. 친구 슈페네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은 성경에 비교될 정도의 주제를 가진 철학적인 그림이다.”라고 설명했다. 고갱다운 건방진 표현이지만 그만큼 고갱은 이 그림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가장 진지하다지 않던가! 지금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신에게 기도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나눌 것인가? 아니면 스피노자같이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인생의 끝에서 고갱은 인간과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라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작품을 안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 그림이 고갱의 사랑하는 딸 알린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그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다였다. 더 이상 이 그림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가끔씩 고갱 관련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인용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 그림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다. 이 그림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고갱의 이 그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 목적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묻는다. 아마 인류가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할 때까지 계속하여 우리에게 그 답을 요구할 것이다.



No.61

이재준 건축가·전시기획자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2013, 한국국제교류재단), <즐거운 나의집>(아르코미술관, 2013), <뿌리깊은 미래>(2015,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참여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90년 전, 독일 슈트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에서 <공동주거(Die Wohnung)>라는 전시가 열렸다. 호화주택이 난무하던 시대에 새로운 개념의 주택단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대의 요구를 듣고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는 질문한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는 독일공작연맹의 회장으로서 르 꼬르뷔지에, 피터 베렌스, 발터 그로피우스, 한스 샤로운 등 16인의 젊은 건축가를 초대해 전시를 열었고,  3,000평 땅에 21(63세대)의 단독주택 및 공동주택을 건설하였다. 세계 대전이후 삶의 변화에 맞추어 주거공간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를 제안하도록 하였고, 과장되고 화려한 건축을 지양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건축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 전시에 초대된 건축가와 건축 작품은 평면뿐만 아니라 부엌 및 가구 등이 함께 근대 건축사 및 디자인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건축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과거와 미래의 삶을 연결해 주는 현재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집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삶을 담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변하지 않는 오래된 땅 위에 변화된 삶을 위한 조금 다른 집을 제안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중요한 시도이며 흔적이 될 수 있다. 젊은 건축가의 질문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좋은 전시는 화려하고 의미심장하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네트워크의 시대에 우리는 왜 전시를 직접 보러 가는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예술은 자신의 사라짐 이후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의 패러다임이 된다.”고 말했다. 모든 전시는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사라짐 이후에도 전시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No.62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WOMAD CODE>(2012, Louis Vuitton Espace, 홍콩), <Reconstruction of Korean Beauty>(2011, 예술의 전당), <Korean Eye Fantastic Ordinary>(2010, Saatchi Gallery, 런던) 등 기획


[「Google: Words beyond Grammar」]


생각을 바꾸는 데는 15페이지면 충분하다. 2012 ‘Documenta (13)’을 통해 발견한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 b.1947)의 도발적인 글 「Google: Words beyond Grammar」는 필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문화인류학적 근원에서 출발해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정의하고, 하이데거, 데리다까지 등장시키며, 끊임없이 언어,’ ‘세계,’ ‘인간의 의미를 다양한 시점에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오늘날 구글(Google)이 종교와 철학의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방식으로 가치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통합적인 컨텍스트이자 컨텐츠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놀랍다. 언어와 문법이 이전 시대에는 견고한 건축구조물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었다면, 구글이 종교가 되고 철학이 된 지금 현 상황 속에서 언어와 문법은 마치 구름처럼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그 형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변수에 의해 쉽게 증발, 변형, 이동할 수 있는 가변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IT 테크놀로지 기반의 미디어 플랫폼이라고 바라보았던 글로벌 기업 구글을 하나의 문화, 사회 현상으로 해석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으로 구분해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이전 시대의 범주화된 사고체계를 보기 좋게, 유쾌하게 해체해 버린다.



No.63

100 독립큐레이터

<Seeing; 5 female artists from Korea>(2010, Coningsby gallery, London), <2012 부산비엔날레 특별전;Outside of Garden_두개의 문>(2012, 부산문화회관) 등 기획


[<Francis Bacon>(2009, Tate Britain)]


2009년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개인전이 있었다. 전시에 순위나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제일 좋아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생에 최고라는 유치한 수식어를 마구 가져다 붙이고 싶을 정도로,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는 전시다. 정확한 전시 정보를 찾아보다가 기간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분명 2009년 가을에 본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기간은 그보다 더 이전인 2008 9월부터 2009 1월 까지였다. 테이트 브리튼까지 걸어가는 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은 한적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리도 지저분했던 것 같고. 하지만 미술관에 다다르면 왠지 공기까지 달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런던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항상 관람객이 많았는데 그날 테이트 브리튼에는 유독 사람이 없었다. 평소 전시 보는 속도가 빠른 편인데도 관람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좋아서! 단지 좋아서 전시장을 돌고 돌아 그림을 보고 또 봤다. 

전시 막바지에서 베이컨에게 영감을 준 이미지, 그의 주변인 등 사진 여러 점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중 1963년부터 베이컨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 오랜 동료이자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조지 다이어(George Dyer)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알몸에 턱을 괴고 앉은 모습 옆에는 이런 설명이 있었다. 이 사진 속 베이컨의 연인 다이어는 자살했다고. 그리고 그의 연인이 자살한 건 처음이 아니라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 사진 속 포즈를 한 다이어의 그림을 보았다.(다이어가 죽은 날은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있을 베이컨의 대규모 개인전 오프닝을 단 이틀 남겨둔 1971 10 24일이었다.) 


전시에서 메모리얼(Memorial)’이라 이름붙인 섹션은 다이어를 위한 공간이었다. 작가 특유의 일그러진 초상화도 있었고, 필자가 학교 친구들과 이브 클라인 블루를 넘어서는 프란시스 베이컨 핑크라고 불렀던 색으로 가득 칠한 삼면화도 있었다. 소재도, 이미지도, 내용도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 전시를 보고나니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속이 울렁거렸다. 벌써 7년이 지났다니. 테이트 홈페이지(www.tate.org.uk)에서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자세히 만들어놓은 온라인 전시를 볼 수 있다. 커서를 움직이면서 당시 기억을 따라가 보았다. 독자들도 같은 감동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으면 한다. 대학원 당시 예술법 강의을 담당했던 교수는 자신의 친구 베이컨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베이컨은 자신이 사랑하는 세 가지 ‘ing’에 대해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그가 사랑한 그 세 가지 ing는 무엇일까? 답은 ‘Smoking, Drinking, and Fu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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