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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5, Oct 2023

이해가 아닌 발견, 세계를 침범한 예술가들

U.S.A.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2023.9.1-2024.1.7.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제공

Jung Kangja [Kiss Me] 1967/2001 Mixed media 120×200×50cm Courtesy Jung Kangja Estate and ARARIO Gallery © Jung Kangja/ARARIO Collection Photo: Jang Junho (Image Z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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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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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예나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 왔다.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의 저서 『이상한 날씨(Funny Weather: Art in an Emergency)』(2020)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아우슈비츠의 지휘관이 밤에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작품을 읽고 아침에는 강제 수용소에서 임무를 수행하더라며. 예술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숭고한 기능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예술이 하는 일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공간과 같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정치와 사회의 격동기 속에서 진행된 한국 실험미술 정체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법하다. 이 전시가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격변하던 시대 상황의 기운을 다시금 느끼며 예술의 존재성을 인식하는 것이라 본다. 1960-1970년대 혼란의 시대에 살았던 예술가들은 무엇을 부르짖었는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쥔 채 무엇을 소리쳤는지 그 시대 안으로 들어가 보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뉴욕에 상륙했다. 이 전시는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과 함께 공동으로 기획된 전시라 이미 많은 보도자료와 리서치 공개로 전시에 대한 소개는 넘쳐났다. 한국 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작가들과 그 작품들이 한데 모인 것에 큰 의미를 두리라. 이 모든 작품이 수장고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점. 작품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이야기하는 것, 더 들어가는 것, 더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 개발을 통해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고르게 작용하지 못한 정체성 변화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동반했던 그 시대. 1960년대 정치적으로 분단된 이후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의 독재정권 및 유신 체제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군부가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 배경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시를 살펴봐야 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다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전시를 관람할까? 다시금 1960-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이 이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예술가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작품은 이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부르짖어라, 부르짖으면 누구도 알 수 없었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Kim Kulim <The Meaning of 1/24 Second> 1969 
Color 16mm film, silent 9min 14sec Courtesy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Kim Kulim Edition 2 of 8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Gift 
of the artist 2020.11




새로운 돌파구 New Beginning

현대미술관의 특징인 화이트 큐브 속에서 유난히 튀는 색감의 작품들이 입구를 장식한다. 정강자의 <키스미>(1967)와 강국진의 강렬한 네온사인이 돋보이는 <시각 Ⅰ,Ⅱ>(1968)를 중심축으로 김구림, 서승원, 하종현, 이승조, 이태현 등의 작품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가 인상적이었는데, 결국 해프닝을 고착시킬 수 있는 미디엄은 사진과 영상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보는 도시 개발 전경과 젊은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위한 울부짖음에 애달픔이 전해진다.

전시장 2층에선 하드엣지(hard-edge) 계열의 새로운 추상미술을 지향한 오리진, 전위예술의 시작과 더불어 오브제를 주 매체로 사용하는 신전, 제로 그룹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는 1967년에 있었던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의 연합전이 다시 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시의 경험이 아방가르드협회(AG)의 창립과 해프닝 등 새로운 미술의 장을 여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색감과 형태가 투박하고 약간 촌스러워 보이는 정강자의 분홍 입술 <키스미>는 특히나 독보적이다. 그 시대에 여성의 신체 일부를 크게 확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예술에 대한 페미니즘적 ‘정의’는 없지만, 그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한 듯 보인다. 특히 김구림의 <태양의 죽음>(1964)이 새로웠던 이유는 그가 잘 쓰지 않는 색감과 형식의 초기 회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은 마치 탄각처럼 그을려 있었고, 녹아내린 물감과 플라스틱은 문화적 충격과 갈등, 공포와 불안을 과감히 드러낸다. 그와 반대로 이승조의 <핵 F-G-999>(1970)에서 지나치게 반듯하고 반복되는 색면은 차가운 냉소주의를 겨냥하는 것 같다.



Sung Neungkyung <Apple> 1976 (detail) 
Seventeen gelatin silver prints (framed) 
with marker pen each: 24x19.3cm  © 
Sung Neung Kyung Photos: Jang Junho
 (Image Zoom) Daejeon Museum of Art



서구미술의 재현적 특성의 한계를 넘기 위해 나름의 주관적 해석과 단편들을 개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문화적 단편의 전통적 색감과 재료 그리고 단청을 사용해 한국 정서를 개입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였다. 가령 하종현의 <도시 계획 백서>(1967)나 서승원의 <동시성 67-1>(1967)이 그러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김구림의 16mm 영화 <1/24초의 의미>(1969)은 삼일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서울 도심 풍경을 담고 있다. 풍경 속에서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 바쁘게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등교하는 아이들, 권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장면이 연결되어 영화처럼 이어진다.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기존 서사구조를 무너뜨리는 이미지 연출과 상업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난 기법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이러한 독자성은 빛, 움직임, 음향, 환각, 환경 등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김구림의 강한 개성을 표현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김구림의 전위성은 극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김구림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제4집단은 아카이브 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듯 미술을 비롯해 현대음악, 문학, 종교, 연극인들의 참여한 한국의 초기 전위예술 운동이었다. 작업이 바뀔 때마다 매체와 장르가 바뀌는데, 해프닝, 퍼포먼스, 메일아트, 실험 영화 등 활동 반경을 폭발적으로 넓혀 나감을 알 수 있다.

제4집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멤버는 청년작가연립전의 정찬승과 정강자다. 신전 멤버였던 이 둘은 이미 강국진과 함께 해프닝과 미니멀리즘, 환경예술 등의 미술이론을 실천적으로 탐색했다. 이론의 실천적 행위를 <투명풍선과 누드>, <한강변의 타살> 등의 해프닝으로 발표했었다. 특히 필자도 현장에 참석했던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보며, 생존 작가들의 고증과 연구 그리고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Kang Kukjin <Visual Sense I, II> 1968 
Neon and stainless steel Each: 280×46×46cm 
 Courtes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 Kang Kukjin Estate 
Photo: Hwang Yangj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만사에 저항을 부르는 자들
The Logic of the Resistance

1960년-1970년대 소규모 그룹 활동 중 큰 축을 차지하고 있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는 철학과 미학적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이 토론과 논의를 시작한 것은 ST(시간·공간)의 활동에서다. 이건용, 성능경, 김복영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공개 세미나와 회보 발간을 통해 작품의 이론적인 토대를 다지는 측면에서 아주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들 나름의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미술 범주 안에서 사진, 물질, 환경, 이벤트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논리적 분석을 실험했을 뿐 아니라 오브제에 대한 본질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오브제를 매개물의 논리로써 다루는 실험을 이어 나갔다.

전시장 4층의 작품은 입체와 회화 오브제가 대다수였고 물성 탐구가 주된 핵심으로 보였다. 여운의 <작품 74>(1974)와 성능경의 <세계전도>(1974)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여운은 실제 여닫이 창문 안에 신문과 잡지를 붙였다. 잘린 기사와 이미지들은 당시 사건과 기록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일 쇼크로 물가 폭등,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불균형, 삼류잡지에서 오린 여성 누드, 해외 정치인들의 모습으로 마주한 그 당시의 현장감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또한 가운데가 뻥 뚫려 테두리만 남은 성능경의 대형지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로서의 쓸모를 다한 모습이다. 바라보는 관점이 만드는 세계관을 뒤흔드는 그의 실험은 당시 세계적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억압과 통제의 구조를 탐구한 것이었으며 엉뚱하게 배치된 각각의 장소들은 자유롭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가 지도를 작품의 소재로 고른 이유는 검열과 감시가 심했던 당시 유일하게 독자적 세계관을 주축으로 억압과 폭력에 대한 해방을 부르짖었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문 매체를 활용한 작업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매일 신문을 읽고 오려내는 행위가 하나의 자기초극(自己超克)의 발현이 아닐까. ST의 개념적 이벤트도 물론 서구 개념미술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신체를 매개로 한 특유의 장소 논리와 그 행위의 당위성, 물질과 오브제에 관한 인식으로 다양한 작품이 탄생했다.



Lee Seungjio <Nucleus F-G-999> 1970 
Oil on canvas 162×162cm © Lee Seung Jio 
Photo: The Museum of Modern Art, licensed by 
SCALA/Art Resource,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ommittee on Painting 
and Sculpture Funds and gift of Richard Roth, 
Kukje Art and Culture Foundation, and Miyoung Lee



이강소의 <소멸-화랑 내 술집>(1973)은 명동화랑 내에서 술집을 열었던 그의 대표작이다.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가 1963년 프랑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작품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같이 대화하고, 마시고, 먹는 행위는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고 순간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관람객의 참여를 이끈다. 일반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는지 미술인들만의 잔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당시로는 상업 갤러리가 선술집이 된다는 일은 획기적이었으리라.

이는 오늘날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음악, 무용, 미디어, 사운드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예술 형식과 조우할 수 있다. 앞으로 더 이루어질 수 있는 예술 형식의 퍼포먼스는 무엇이 있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동물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우는 것도 일정 다반사인데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나무를 통째로 전시장에 가지고 온 이건용의 <신체항 71-2014>(2014 재설치)는 공간 설치적 요소로도 굉장한 볼거리를 제시한다.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를 정방형으로 가지런히 잘라 땅속을 볼 수 있는 지층과 함께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놨다.

공간과 조우하는 오브제와의 관계로서 공간 설치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건용의 말처럼 단순 존재인 오브제는 사물의 내면적 측면과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신체항>은 같은 맥락에서 1960년-1970년대 박정희의 국토종합개발 계획으로 인한 자연 환경 파괴를 시사한다. 신체는 세계와 만나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하게 간주되는 사유 행위다. 퍼포먼스는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모순을 발언할 수 있는 중요한 행위다.



Park Hyunki <Untitled (TV Stone Tower)> 1982 
Color video (silent), CRT monitor, and stones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Guggenheim Abu Dhabi 
© Park Sungwoo Guggenheim Abu Dhabi GAD.2021.00043



우리는 이렇게 존재합니다
The Global Village

사실 1960년-1970년대는 세계 미술의 최전방에 있는 미술사조들이 유입되어 현대미술의 개념을 파악하던 시기다. 서구로부터 정보를 쉽게 얻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파편적으로 서구 미술을 수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작가들은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만의 독자적인 성격을 구축하면서 절충적 서구화의 모습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작가들이 국제 전시와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한국에서도 국제 전시를 볼 기회가 차츰 늘어 갔던 이 시기 작품들은 국제성을 띠면서도 ‘한국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정체성을 정립해 나갔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한 이승택의 말처럼. 한국적인 것들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 삼아 전진하는 이들의 패기가 느껴진다. ‘파리 비엔날레(Biennale de Paris)’,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ao Paulo)’ 등의 해외 국제전 참여와 ‘서울비엔날레’(1974),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 등 작가들의 세계 무대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보여준다. 실상 1960년대부터 기술이 예술의 표현 도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컴퓨터 기술이 만연하게 사용되었다.

퍼포먼스, 행위예술, 이벤트가 현대미술로 받아들여지고, 신체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인 이강소, 최병소의 작업은 예술가가 비디오 앞에서 계속해서 ‘그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건용이 실험한 신체의 궤적은 시간이 지나고 봐도 흥미롭다. 신체의 한계성을 반복적이고 계획적인 논리로 계산된 행위가 보편적인 인간사를 사유하게 한다. 비(非)언적 행위의 신체가 드러낼 수 있는 비가시적인 시간성에 대한 연구, 이성과 분리된 몸의 담론, 신체 자체를 예술의 도구로 실험하는 작품은 지금이 되어도 새롭다. 석고로 자신의 신체를 캐스팅한 김영진의 <10/2/1978>(1978)은 조각과 사진을 결합한 작품이다. 이 조각들은 신체와 작가 제스처를 연관시킨다. 사물과 인간, 물성적 감성의 실험이 신경을 자극한다.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의 <My Hands Are My Heart>(2006)를 떠오르게 한다.

흙은 물, 불, 바람, 공기와 더불어 어딜 가도 있는 보편적 물질이다. 이승택의 작품은 물리적인 현상을 개념화시키는데, 자연현상이 표현의 수단이 된다. AG에 가담하기 시기 무렵 ‘바람’ 시리즈와 형체 없는 조각 개념에 몰입해 있었는데 ‘바람’은 말라버린 생나무에 종이를 잘라 매달아 바람에 날리게 한 작품이다. 우리가 비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바람이 있음을 증명한다. 입김을 세게 불어 종이를 날려본다. 특히 그의 작업에는 한국 전통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노끈을 이용해 낫을 매달거나, 철사로 돌을 묶어 두는 등 재료의 물성을 신경 쓰지 않고 유연하게 재료 탐색을 시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처럼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없다. 대중적 관심에서 소외됐던 한국 실험미술이 사회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뜨거워지는 이유는 지금 현존하는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 덕분일 것이다. 시대가 변하는 과도기엔 항상 히피와 저항이 존재한다. 늘 자유를 열망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이 존재한다. 깃발을 휘날리고, 운전대를 잡고 흔들며, 불을 지르는 등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들이 남긴 공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자, 젊은 작가들이여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나. PA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어와 텍스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했고, 전시 <다빈치 코덱스>(문화역서울284, 2016-2017)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뉴욕 첼시에 있는 갤러리를 거쳐, 현재 큐레토리얼 그룹 ‘어떤콜렉티브’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내외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때때로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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