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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건축, 미술이 되다

2023.8.24 - 2023.11.19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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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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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건축, 건축가의 예술


건축과 예술은 초기에 경계가 없었다. 미술은 동굴의 벽면에서 시작됐고, 스테인드글라스, 기둥 조각, 벽화 등 서구 미술사의 작품은 교회 건축물의 일부였다. 비단 시각 예술만이 아니라 음악과 무용도 주로 건축 공간이 필요하듯이 건축은 예술을 지원한다. 반면 현대 예술은 건축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듯하다. 디지털 기기와 음악 재생기기만 보아도 그렇다. 이제 특정 장소에 머물 필요 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서구 건축의 역사는 벽을 기둥과 구조에서 떨어뜨려 더욱 얇게, 이윽고 유리가 될 정도로 진화했다. 지금의 건축은 구조와 분리된 표면의 형상과 패턴, 부피감, 재질감에 더 중점을 둔다. 한편 서구 미술의 역사는 미술을 건축적 제약에서 해방하고 개념적 좌표로 이동시키는 과정으로 축약된다. 건축물에 빚져 있던 예술은 이제 건물의 벽에서 떠나 스스로 설 수 있는 지지체, 기물, 디지털 기술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건축은 표면을 탐구하는 예술이 되고, 미술은 공간을 구축하는 건축이 된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건축, 미술이 되다>는 앞서 설명했듯이 하나의 몸에서 분리되어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며 발전을 거듭한 당대 건축과 예술을 다시 미술관에 불러들인다는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도는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게 들린다. 수많은 예술가가 각자 탐구해 온 개인적 주제를 넓은 공간에 배열하는 방식이나 작품의 스케일 등을 살펴보면, 본 전시는 예술과 건축이라는 단어가 만날 때 보이는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주시립미술관이라는 지역의 특수한 전시장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여타 전시와 구분된다. 구 KBS 청주 방송국을 리노베이션한 청주시립미술관의 건물은 그 자체가 방송 송출을 위한 건축물에서 예술 전시를 위한 건축물로, 프로그램의 극적인 전이를 먼저 이룩했기 때문이다.



수써니 박 <Photo-Kinetic Grid>
 2018 용접 체인, 아크릴 타일, 
디지털 카메라, 프로젝터 가변설치



15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은 청주시립미술관의 건축 요소를 그들의 시점에서 이해하고, 또 예술화해 본 사례다. 전시장 입구 앞에 놓인 수써니 박의 <Photo- Kinetic Grid>는 작고 인공적인 유닛의 반복이 중첩되며 거대화되는 가장 스펙터클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입구에 놓인 나현의 <바벨-이슈타르(Babel-Ishtar)>가 보여주는 모델의 확대 실험과 대비된다.

청주시립미술관의 이례적으로 높이 올라가는 입구 계단과 높은 천고 사이에, 나현의 드로잉과 연구 자료 속 바벨탑의 일부와 공중정원 그리고 신화 속 석상들이 끼워진다. 그들은 나무, 식물 등의 자연재료와, 고무풍선과 벽돌, 폴리카보네이트 등의 인공재료로 치환되어 있다. 예의 두 작업을 통해 관람객들은 건축의 중요한 요소인 영속성과 기념비성이 각종 재료가 섞인 표피가 되어버린 한편, 구 방송국의 계단과 스튜디오로 활용되던 진입 공간들이 이제 설치미술을 위한 훌륭한 무대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박여주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전시의 입구를 제안한다. 그는 전시장의 진입로를 여러 레이어로 나누어 더욱 복잡한 미로로 만들었다. 꺾인 아치, 긴 회랑을 연상케 하는 입구들과 그림자 그리고 반사된 면을 활용한 무한한 깊이는 관람객에게 중세, 고전, 현대를 넘나드는 감각과 몸의 움직임을 선사한다.

예술가는 입구와 기둥과 같은 건축 요소를 물감처럼 사용하고, 산란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시공을 압축/팽창시켜 이미지를 만든다. 터널 같은 긴 시작점을 지나 관람객은 비로소 미디어 아티스트인 폴씨와 안젤라 블록(Angela Bulloch) 그리고 네리 옥스만(Neri Oxman)의 작품을 연달아 마주하게 된다.

폴씨가 디지털 영상과 사운드를 활용해 초현실적인 미감을 드러내려 했다면, 블록은 명상적이고도 사색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건축에 있어서 보편적인 시스템이나 구조 인식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비판을 빛과 기하학적 조형의 접합을 통해 전한다.

가장 안쪽에는 생물학자이자 건축가, 예술가인 옥스만의 유기적인 오브제 <Silk Pavilion 1>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고안한 프레임에 풀어둔 누에고치가 실을 뽑아 자연스럽게 명주 집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동물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협동을 보여주는 그의 조형물은 매우 단순한 규칙으로 예측 불가능한 패턴과 결과를 만드는 건축 디자인의 원리를 제안한다.

글렌 카이노(Glenn Kaino)의 작업은 여러 작품 사이에 있다. 실제로 전시장의 공중 가교에 놓인 그의 <Hallow Earth>는 앞서 박여주의 작품이 수평적 확장을 도모해 전시장의 진입을 늦추듯, 어둠의 수직 구멍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인도하며 그다음 전시와 구분 짓는다. 홍범의 작품 <Visiting>의 어두운 방들은 카이노의 작업에 이어 관람객에게 어둡고 낯선 신비감을 전달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예술가와 건축가의 차이를 더욱 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완전한 상상의 공간을 구체적인 ‘방’으로 구획하면서 그는 3D 프린팅된 조형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설치로 끊임없이 확장해 가는데, 이는 하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매체로 전환할 수 있는 건축의 특징을 담고 있다.



홍범 <Visiting> 2016/2023 
5채널 비디오, 사운드 10분 가변설치



한편 3층에서 펼쳐지는 정재엽, 김준기, 하태범의 작업들은 각각 개념보다는 실체화된 물질로서, 사회적 현상으로서, 또 순수한 아름다움으로서 건축을 구체화한다. 앞선 이들이 건축가의 시점을 활용했다면, 이들은 보다 순수예술가의 시점에서 건축을 대하는 태도에 준한다.


폐건축 자재의 활용(정재엽), 낙후된 도시의 재개발 양상(하태범), 도시와 자연의 이미지화(김준기)라는 개별 주제는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건축을 바라보는 방식이 잘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안규철의 작업 <56개의 방>과 김주현의 <10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처럼, 일부 작품들은 그간 건축적 개념을 기반으로 작업해오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청주시립미술관의 제한된 공간과 마찰하며 새로이 변주될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애나한의 작업에서 <건축, 미술이 되다>는 정점을 맞이한다. 그는 관람객이 작품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이 미술관 건물이 곧 예술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미술관 파사드에 색과 빛의 효과를 덧씌우는 작가는 화이트 큐브 내부에서 바깥으로 그리고 물리적 제약과 법적 규제를 넘나드는 작가로의 전환을 의미하므로, 실제 건축가의 구축 작업과 진배없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건축가 최장원(건축농장)이 보여주는 태도는 그와 완전히 반대되어 흥미롭다. <2023 비정형의 문들>은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추구한다. 모든 예술가가 건축적인 스케일과 수행을 넘나드는 시점에서, 그는 어떤 스펙터클이나 긴장을 유도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맥락과도, 미술관 전시장 내외부의 맥락과도 완전히 벗어난 백지의 장소(Tabula Rasa)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예술가적 자기 수행을 지속하는 동시대 건축가의 양상을 대표한다.

비 미술관(구 KBS 방송국)의 미술관(현 청주시립미술관)화는 건축가에게 일종의 예술적 수행이 필요한 일이나 다름없다. 예술과 예술계와 같은 문화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전시 엔지니어링과 인프라 등 제도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가 필요한 탓이다. 마찬가지로 미술가에게 비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미술관의 아늑하고 편안한 전시 환경이 아닌, 불규칙한 층고, 좁은 복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조명, 사무실을 전시실로 탈바꿈해야 하는 숙명이 주어진다.


따라서 본 전시는 처음부터 건축가에 의해 재해석된 공간에 다시 건축의 미술화라는 주제가 덧씌워진, 이중의 필터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전시 제목의 ‘건축’은 명사보다는 동사에 더 가깝다. 예술가들은 건축 철학과 개념과 같은 심각한 주제보다도 지극히 실무적인 건축 기율을 마치 평소 해온 듯 자연스럽게 수행하는데, 이는 건축가들의 예술적 수행을 통한 비 미술관의 미술관화와 비견되는, 이른바 예술가의 건축적 수행인 비 건축의 건축인 것이다.  


* 나현 <바벨-이슈타르(Babel-Ishtar)> 2023 혼합재료, 귀화식물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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