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통해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서용선, 유근택, 최진욱, 세 작가의 예술가로서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담은 전시가 마련된다. 전시 제목 ‘트라에레(trahere)’는 초상화(portrait)의 어원인 라틴어 ‘portrahere’에서 따왔다. ‘끌다, 끄집어내다, 이끌어 내다’라는 뜻을 지닌 ‘트라에레’처럼, 인간의 내면을 끌어내는 자화상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꾸준히 자화상을 그려온 세 작가답게 전시 작품도 볼만하다. 서용선은 5m에 달하는 대규모 작품 <자화상>(2017)을 선보인다. 그는 대형 캔버스에 작업해, 사다리를 타는 모습, 혹은 비계를 설치해 작업에 매진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 화면에 나열, 중첩한다. 유근택은 신작 <끝에 서 있는>(2018)을 통해 화가로서 감내해야 하는 삶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서용선 <자화상> 설치 전경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화가에게,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현존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그의 말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1990년에 제작한 <그림의 시작>을 시작으로 ‘작업실 그림’ 시리즈를 그려온 최진욱은 작업실의 풍경과 작업실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중에서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담는다. 한편 서용선은 “해외에 있을 때, 혹은 아직 무엇을 그려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때 주로 자화상을 그렸다”고 했다. “나는 그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화상을 그렸다”는 최진욱의 말처럼, 화가의 길에 방향성을 제시한 자화상이 관람객에게도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오길 바란다. 자화상은 단순히 한 작가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 전시를 찾아가 자화상에 담긴 화가의 본질 너머 현시대의 모습을 두루 읽어보자. 5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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