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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6, Jul 2020

Cold Flame

2020.5.22 - 2020.6.13 디스위켄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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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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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을 견디면 무엇이 남을까


최지원의 도자 인형을 하나하나 호명하기란 쉽지 않다. 익명의 그들은 가면 같은 살결을 방패삼아 결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 사람의 대화>(2019)나 <Between a and b>(2019) 같은 제목들도 각각의 캐릭터를 직접 지칭하기보다는 시각적 언어로 실재하지 않는 관계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데서 멈춘다. 특히 배경은 유화로 그린 도자 질감과는 다르게 종종 아크릴로 칠해져 그들의 맥락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마치 이것만 보라는 듯 확대된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다 보면, 그 창백함이 쉽게 깨질 것 같다가도 도자기가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장시간 견뎌 살아남은 것인지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렇기에 무심해져 버린 표정들은 어떤 풍파에도 위태롭지 않은 인상을 풍긴다. 그들은 가장 생기 넘치는 순간에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굳어진 화산재 같기 보다는, 스스로 굳어 결정체가 된 듯한 의연함을 가지고 있다.

붓질은 두텁게 한데 모여 무게감을 창조하다가도, 공허한 눈동자로 개입을 튕겨내기 일쑤다. 이때 투명하리만치 맑게 과장된 피부는 응시자를 비출 듯 매끈하게 세팅되어 있다. 그러나 2차원에 납작해진 대상들은 불현듯 어긋나는 눈 맞춤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생명력을 지닌다. 어색함에서 창조되는 특유의 긴장감이나 생기는 발랄한 건강함과 다른 정서다. 주변 인물들을 가공해 직접 붓으로 도자기 인형을 빚고 옷 입히는 작가가, 익히 아는 이들을 가만 박제하지 않고 애정과 생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도된 무감각이다. 특히나 그 속에서 꿈틀대는 고요한 서늘함은 마음의 창인 눈동자를 텅 비움으로써 강화된다. 시선의 여백 속에서 미동 없는 도자 인형들. 이들은 언제 살아 숨 쉬는 인물이 될까.

다행인 점이 있다면, 끝없는 멍의 세계 안에서 눈물은 흘리지만 그들이 슬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은 마치 장식처럼 존재한다. 자연스레 볼을 타고 흐르지 않고, 포물선을 그리거나 구슬처럼 눈에 맺혀있다. 간소하게 묘사된 눈물과 도자기의 광택은 같은 흰색의 점이라 그 부분만을 확대하면 구분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한쪽은 진정성을, 한쪽은 인위성을 표현하는 정반대의 붓질임에도 불구하고, 얼굴 표면에 묻힌 순간부터 이들은 감정의 위장도구처럼만 존재한다. 

실제로 슬프지도 동정을 바라지도 않는 인형들은 자신이 툭 치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파편이 될지, 알을 깨고 나와 사람이 될 것 같은지 우리에게 되묻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그 상태 그대로 기꺼이 스스로의 망막에 렌즈를 부여하고, 사랑의 형태를 한 쿠션을 사이에 두고 무언의 대화를 나눌 것이다. 이 모든 인위적이고 가벼운 것들을 통해 영원히 고립될 수도 시너지를 내고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으나, 이 전시가 최지원의 첫 개인전이기에 아직은 모른 채로 열려있다.

도자 인형은 <스파크(spark)>(2019)에서 불이라는 외부적 존재를 이미 만났다. 자극 앞에서도 무심한 눈동자는 이내 최신작인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2020)에서 보다 복잡다단한 현장 속에 놓여진다. 불꽃보다 더 커진 화염 앞에서 이들은 드디어 밤이라는 시간을 조우하고 재난 현장을 마주했다. 제목처럼 묘연한 방향성은 미래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지금의 회화 단계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실험이자 점검일 테다. 이때 도자 인형의 발원 단계에는 분명 불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원천으로서의 불을 만난 인형들은 그렇기에 기필코 대상에서 주인공이 되고야 말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난 너무 강한 불길로부터 그들이 탈출할 수 있을까 공상하며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도 기꺼이 예스라고 점치고 싶다. 도자 인형이라는 독립된 조형물을 빚어내지 않고 회화로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그들을 좀 더 멀고 낯선 존재로 만들어냈다. 차가운 불꽃 속에 그을리지도, 얼어 굳어버리지도 않을 인형들은 가공된 결과물이자 잠재적 발화자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서늘한 확신은 최지원 작가의 처음 속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새삼 한 작가의 생애주기 중 그 처음을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생각한다. 앞으로 이 인형들의 공허한 눈동자에 담기게 될 다양한 전시장 곳곳을 기대하며. 


*<세사람의 대화> 2019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릭 162.2×13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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