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제목 끝에 로마 숫자 1이 적혔다. 시리즈 기획전임을 암시하는 부호. 세계 최초의 정물사진은 1827년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촬영한 <식탁>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의 탄생 초기에는 사진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지한 상태에서의 촬영이 용이한 정물사진이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유구한 회화 역사에서 ‘정물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17세기 서구 사회였던 점과 다르게, 정물사진은 사진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된 셈이다. 급진적인 현대 사회의 변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사진의 역사 속에서 21세기 정물사진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 전시는 동시대 한국 정물 사진의 단면을 두 번의 기획전으로 풀어 소개한다.
구본창 <Color Box 08> 2005
정물이란 큰 명제 아래 먼저 ‘기억’에 관해 얘기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구본창, 구성연, 이재용, 한옥란 네 작가는 특유의 방식으로 우리의 기억을 되살린다. 말갛고 예쁜 빛깔의 비누를 찍은 구본창은 “백자는 형태에서 시간을 담지 못하지만 비누는 점점 줄어들면서 형태에서도 시간을 담는다. 버리지 않고 쌓아두다 보니 이야기가 생기더라. 소멸되면서 되레 축적되는 시간 외에 스스로 없어지면서 때를 벗겨내는 숭고함까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작업 소재를 선택할 때 기억을 지녔거나 시간성을 가진 것들에 주목하는 작가 이재용은 이미 변화를 많이 겪고 기억 혹은 시간성을 지닌 유물을 작품으로 담아낸다. 황금처럼 반짝이지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녹아 없어지는 구성연의 설탕 조각이나 꽃으로 인해 작업이 움직인다는 한옥란의 감성들이 응축된 전시는 9월 1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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