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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장소와 호흡하는 미술

when artworks
meet places

모든 생물에 고향(근원)이 있듯, 미술 작품에도 고향이 있다. 각 개체가 지닌 성격을 기원에서 찾는 ‘기원의 오류’는 배제하더라도, 고향이 작품의 속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러한 작품들이 고향을 떠나 이동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소를 만나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화이트 큐브 내에 있을 때와 특정한 장소로 이동했을 때, 그것은 다른 맥락을 지니며 의미 또한 또렷하게 변형된다. 본래의 작품 의미를 강화한 경우도 있으며, 때로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이 글은 고향을 떠난 작품이 장소와 어떻게 더불어 호흡하고 의미를 변화하는지에 대해 현대미술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자, 이제 작품을 따라 여행을 시작해보자.
● 기획 · 진행 문선아 기자

Joana Vasconcelos 'Marilyn' 2012 Installation Galerie des Glaces ⓒ Chateau de Versailles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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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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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


작품이 장소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은 파리 남쪽의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2008년부터 베르사유 궁전은 여름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현대 작가를 초청해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초기에는 논란도 많았지만 이제는 매년 많은 사람들이 그 전통적인 장소를 채울 작가가 누구인가를 궁금해 할 만큼 안정됐다. 물론, 논란은 ‘유구한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장소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Jeff Koons)가 전시의 첫 포문을 열었는데, 당시 일부 보수층은 성상품화와 외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던 쿤스가 프랑스 고전주의 예술을 상징하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치욕스럽다며 반발했다. 


이어 2009년, 인간의 실존문제를 다루는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이 전시를 열었을 때는 잠잠하다가, 2010년에는 다시 한 번 불만이 불거졌다. ‘슈퍼플랫’으로 유명한 일본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전시에 대한 반대 여론의 입김이 거셌던 것.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여성 피규어, ‘도브,’ ‘카이카이’와 ‘키키’ 캐릭터 등으로 유명해진 그가 고풍스럽고 위엄 있는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 전시하는 것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다시 한 번 항의하고 나섰다. 루이 14세의 후손인 샤를 에마뉘엘 드 부르봉-파르므(Charles Emmanuel de Bourbon Parme)는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 재직 중이던 프레데릭 미테랑(Frederic Miteran) 장관과 장 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 베르사유 궁전 감독에게 이 전시를 반대하는 5,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을 정도다. 


이 모든 반대들에 대해 장자크 아야공은 “역사 속 유적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는 현대미술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반대로 현대미술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여가적인 유물들을 재발견하게끔 하고 싶었다. 이렇게 과거의 예술적 유산과 현대의 창조물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빛을 발하게 해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관람객들은 반응은 어떠했을까? 아야공의 말처럼 대부분이 “현대와 고전의 만남이 흥미로웠다.”고 대답했단다. 흰 벽면을 반사하던 쿤스와 다카시의 부푼 모양의 스틸 작업 시리즈는 화려한 베르사유궁의 모습을 담아내며, 과거를 현재에 담아내겠다는 그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처럼 보였을 게다. 더불어 파란만장한 역사성을 지닌 공간에서 쿤스의 <Pink Panther>는 한층 더 음흉해 보였을 런지도 모른다.


이후의 전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2011년, 프랑스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가 전시를 가졌으며, 2012년엔 포르투칼 여류 작가 요아나 바스콘셀로스(Joana Vasconcelos)가, 2013년엔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가 전시를 열었다. 각 작가들은 두 번의 큰 반발 때문인지 더욱 전통과 어우러질 수 있는 작업들을 시도했고, 그들의 현대 작품들은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전통과 어우러질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됐다. 예컨대 아르테포베라 작가 주세페 페노네는 에투알숲 속과, 궁전에서 대운하에 이르는 알레 르와얄을 따라 25점의 조각 작품을 설치했다. 나무, 대리석, 청동 소재의 나무모양 조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루이 14세를 위해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otre)가 디자인한 정원에 위치하면서 실제 살아있는 나무처럼 생명력을 얻게 됐다. 살펴본바와 같이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전시는 ‘전통과 현대사이의 대화’라는 의미를 장소와 작품에 각각 선사한다. 또한 전통을 본래의 방식대로 보존하고 지켜나가길 바라는 견해와, 전통에 새로운 시도를 가하여 현대인들과 함께 호흡하기를 바라는 견해의 충돌 역시도 장소와 호흡하며 발생한 또 다른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베르사유궁전에서는 모노하의 중심인물 이우환이 전시를 앞두고 있다. 이우환 역시 페노네가 그랬던 것처럼 베르사유 정원을 설계한 앙드레 르 노트르와의 대화를 테마로 전시를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궁전 내부는 너무 복잡해 방 2~3개만 전시실로 사용하고, 정원에 조각 7~8점을 설치”하고, “공간의 유명세와 역사성을 희석시켜 보편적인 공간을 만들어서 관람객들을 설레게 할 계획”이라는데, 그가 이전 작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베르사유 궁전과 호흡할 지 궁금하다.




Installation view of 

<When Attitudes become Form: Bern 1969/ Venice 2013> 

2013 Ca' Corner della Regina ⓒ Fondazione Prada




우리 프로젝트


한편, 제 7회 ‘티나비 프라하 현대미술 페스티벌(TINA B. Prague Contemporary Art Festival)’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 <우리[WOO:RI]:  interrelationship between you, myself and us>를 보자. 특정한 장소에 위치하게 되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작업의 의미를 강화한 사례다. <우리>는 중세 및 바로크 시대에 건축된 체코의 카톨릭 문화유적지 네 곳에서 사회-문화-장소 특정적으로 진행된 특별전이자, 현대미술 프로젝트로, 최정화, 홍순명, 김병호, 배찬효, 정효진, 윤미연, 권지현, 한성필, 이재이, 유비호 등이 참여했다. 두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세인트 질 도미니칸 대성당(Dominikanska 8 at the St. Giles Dominican Priory)의 5개의 바로크 아치형 창문은 홍순명 작가와 한국·프라하 어린이들의 공동작업 <나의 꿈-나의 아바타(My Dreams-My Avatar)>로 가득 메워졌는데, 이 ‘바로크 방’이 도미니칸 교구가 이웃과 여러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의논하는 곳이었다는 장소성이 겹쳐지면, 작업의 의미가 한층 강화된다. 중세 때부터 교인들의 희로애락을 들어주던 수도자들과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을 작가의 이미지가 겹쳐질 런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작업으로, 예수교 세인트 살바토레 대성당(St. Salvator, Academic Parish of the Holy Savior)의 재단 중정에 설치된 최정화의 거대한 풍선 샹들리에 <아름다운! 아름다운 인생(Beautiful! Beautiful Life)>은 전시기간동안 실제 미사와 함께 했다. 화려하지만 이내 곧 바람이 빠지고 마는 풍선 샹들리에는 인생의 덧없음(vanity)을 인정하고 동시에 그것을 예찬하는 ‘바로크 정신’에 정확하게 어우러지면서 삶을 대변했다. 




김병호 <Collected Silences> 2012 

홀리 트리니티 카르멜리테스 수도원, 슬래니, 체코 

Photo ⓒ Martin Bedrich / CTU / JW STELLA Arts Collectives




생생활활


최정화는 장소와 호흡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구에 선보인 개인전 <생생활활>, 작가는 전시의 일부로 갤러리 바로 앞 중구 대봉동의 한 동네를 설치작품으로 꾸몄다. 시장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와 일상의 사물들로 작업하는 그답게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바구니와 그릇을 이용한 작업들이 강렬한 색감을 자랑했고, 빈집을 활용한 작품 <생생활활 본부+Cosmos 2013> 지붕에 설치된 <거울나무>는 간간히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사방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그가 평소 추구하던 ‘생활 속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마을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입구와 화랑 앞 가로수에 붉은 꽃을 설치해 <웰컴 플라워>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 ‘겨울’이라는 시간성이 합쳐지면서, 메마른 나뭇가지에 열린 붉은 꽃들은 관람객들의 마음에 강한 생명력을 불 지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갤러리와 작가, 동네 주민, 지역대학의 학생들이 협업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역시 장소성이 변화하면서 작업의 본래 의미가 강화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정화 <Beautiful! Beautiful Life> 2012 

세인트 살바토레 대성당 설치 Photo 

ⓒ Petr Neubert/ CTU/JW STELLA Arts Collectives  




나이트 스튜디오


지난해에서 올 초까지, 아트선재에서 열렸던 이주요의 대규모 개인전 <나이트 스튜디오(Night Studio)>는 ‘장소와의 호흡’ 면에서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장소 특정적 작업을 표방하는 듯 보였던 작업이 외려 다시 화이트 큐브 안으로 들어온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작가의 최근 작업을 중심으로 오브제, 드로잉, 설치작과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한 작업 20여점을 집중 조명했다. ‘재제작’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사실 이 작업들은 작가가 지난 2008년부터 2년 8개월간 거주한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제작했던 작업들을 다시 만든 것이다. 시장 상인과 다국적 주민을 이웃으로 하는 이태원동 시장길 초입에 위치했던 작가의 작업실. 작가는 새로운 거주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투사하는 작업들을 만들어냈고, 이 작업들은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한정된 인원에게 ‘오픈 스튜디오’ 방식으로 네 차례 공개됐다. 


관람객들은 이 ‘오픈 스튜디오’형 전시를 통해 그 장소에서 태어난 미술 작품을 맥락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낯선 집을 찾아오는 초행길을 경험하면서 작가가 느꼈던 감정들에 공감하며, 그 특정한 장소에서 태어난 작업들을 말 그대로 날 것 으로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작업들은 화이트큐브 내부로 들어온다. 네덜란드의 반아베미술관(Van Abbemuseum),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Museum fur Moderne Kunst Frankfurt am Main)에서 먼저 선보였고, 마무리 격으로 아트선재에서 전시됐다. 화이트큐브로 들어오면서 모든 상황은 변했다. 관람객들은 모든 맥락이 단절된 새로운 곳에서 작업의 맥락을 상상하며 감상하게 되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 지점에서 극단적으로는 두 가지 정도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먼저 이 경우를 장소의 변화로 인해 의미가 퇴색된 경우라고 읽어낼 수 있다. 작품 특유의 장소 특정적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것. 혹은 작가가 각 미술관의 장소성을 고려하여 작품을 재제작함으로써 ‘노마딕(nomadic)’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작품에 부여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작품의 장소 변동이 새 맥락을 형성시키며 생각해볼 바를 제공하고 있다.  




이주요 <무빙플로어(Moving Floor)> 

설치전경 2013 사진제공: 아트선재센터




태도가 형식이 될 때


한편, 거의 확정적으로 작품의 장소변동이 작품의 의미를 퇴색시킨 경우가 있으니 바로 프라다가 기획하여 베니스의 카 코너 델라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에서 열린 <태도가 형식이 될 때: 베른 1969/ 베니스 2013(When Attitudes become Form)>전.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순풍을 타고 어쩌면 비엔날레보다도 더 큰 이슈가 된 이 전시는 1969년 하랄트 제만이 기획하여 베른 쿤스트 할레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복원에 초점을 맞춘 전시인 만큼 당시의 전시작들을 그대로 호출했고 저작권 등의 문제로 인하여 재제작 되지 못한 작품들은 사진이미지로 선보였다. 작품들은 같은 재료로 유사한 동선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물론 작품도 진품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다른 장소성’이야말로 관람객이 전혀 다른 의미를 경험토록 했다. 작품들은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선보여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아방가르드’나 ‘관객참여’라는 의미를 상실했다. 대신 실험적인 전시의 미술관행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받았다. ‘아방가르드의 역사화’는 관람객에게 씁쓸한 뒷맛을 제공했다.  


지금까지 작품들이 이동하면서 어떤 의미들을 얻게 되는지 살펴봤다. 고향을 떠나 정박과 이동을 반복하는 작품의 삶이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처럼 장소와 싸우기도 하고, 들러붙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그러니 미술이 장소와 호흡한다는 말이 꼭 빈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작품이 수장고에 갇혀있는 경우랄까. 숨 쉴 기회를 잃은 작품들이 모든 의미를 잃고 관 속에 놓인 시체처럼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어느 장소로든 나와서 다시 호흡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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