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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껍데기가 무기가 될 때: 자기 전시의 시대와 정체성

Canada

MOMENTA Biennale de l’image
Masquerades: Drawn to Metamorphosis
2023.9.7-2023.10.22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 MAC, MBAM 외

● 김민 콘텐츠 큐레이터 · 『동아일보』기자 ● 이미지 MOMENTA Biennale de l’image 제공

Anette Rose 'Enzyklopädie der Handhabungen: Braiding Gazes'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Dazibao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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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콘텐츠 큐레이터 · 『동아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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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르디아 대학교(Concordia University) 내 미술관인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Leonard & Bina Ellen Art Gallery). 이곳 미술관 외부 디스플레이 공간에 여성 국극 배우가 남성으로 분장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정은영의 북미 첫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The Yeoseong Gukgeuk Project: Hijack the Gender!)>가 열리는 현장이다.

영상 속 배우가 남성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젠더나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넘어선다는 단순한 논의가 아니다. 정은영이 모은 기록과 이를 토대로 한 설치작품들은 모든 역할을 커뮤니티 안에서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이들이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전부 ‘우리의’ 시선에서 ‘우리의’ 의미로 해내는 주도적인 주체임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정은영의 개인전은 몬트리올에서 올해 18번째로 열리는 ‘모멘타 비엔날레 - 가면극: 변신에 끌리다(MOMENTA Biennale de l’image - Masquerades: Drawn to Metamorphosis)’에 포함되며 이러한 새로운 맥락을 만났다. 이번 비엔날레의 화두는 정체성이었으나, ‘가면극’이라는 제목처럼 사회 속 다양한 주체들이 정체성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고 플레이하는 방식을 담았다.



siren eun young jung 
<The Yeoseong Gukgeuk Project: Hijack the Gender!>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Leonard
 & Bina Ellen Art Gallery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껍데기는 힘이 있다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불과하다(Beauty is only skin deep).’

이 영어 속담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피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하고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모더니즘 전환기의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1925년 그는 일기에 ‘드레스 자의식(frock consciousness)’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의식을 갖고 산다. 그래서 ‘파티 자의식’, ‘드레스 자의식’이라는 걸 탐구해보고 싶다.”1)

여기서 울프는 패션을 개인의 자의식, 성격과 연결시킨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입는 옷은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보여주는 매개가 된다는 의미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울프가 살았던 모더니즘 전환기에는 개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통찰이었다.



siren eun young jung 
<The Yeoseong Gukgeuk Project: Hijack the Gender!>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Leonard & 
Bina Ellen Art Gallery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올해 ‘모멘타 비엔날레 - 가면극: 변신에 끌리다’는 이러한 울프의 고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앤 앤린 쳉(Anne Anlin Cheng)의 2015년 아티클 「스킨 패션: 조세핀 베이커와 인종 입기(Skin Fashion: Josephine Baker and Dressing Race)」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아티클은 당초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살라 하산(Salah M. Hassan), 치카 오케케-아굴루 (Chika Okeke-Agulu)가 창립한 저널 『Nka Journal of Contemporary African Art』에 실렸던 것으로, ‘모멘타 비엔날레’ 도록에 개정판이 수록됐다.

울프가 개인을 보여주는 껍데기로 옷에 주목했다면, 쳉은 옷 아래에 있는 피부 자체도 일종의 패션이고 더 나아가 일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20세기 초반 유럽의 인기 엔터테이너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를 예로 든다.

미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댄서, 가수, 배우였던 베이커는 어떻게 피부를 무기로 활용했을까? 기존 연구는 어떻게 그의 피부가 유럽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 판타지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이를테면 그의 연인이자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베이커를 위해 디자인한 집이 그렇다. 이 집은 가운데 수영장을 회랑에서 구경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기존 비평가들은 따라서 이 주택이 베이커를 전시하고 구경하는 일종의 동물원처럼 기능한다고 비판했다.



Michèle Pearson Clarke <Quantum Choir>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the Galerie B-312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그러나 쳉은 스스로를 전시하는 것을 통해 커리어를 만든 베이커를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비판받을 일인가를 반문한다. 그러면서 에드몽 그레빌(Edmond T. Gréville)의 영화 <프린세스 탐탐(Princess Tam Tam)>(1935)의 한 장면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베이커는 아프리카의 왕족인 척하며 금빛의 아르데코 스타일의 가운을 입고 파티에 갔다가 정글 음악이 나오자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춤을 추며 옷을 벗어 던진다. 이 영화의 장면처럼 베이커는 검은 살결을 완전히 드러내거나 일부만 드러내는 퍼포먼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 장면에서 나온 그의 검은 피부가 과연 정말로 본 모습을 보여준 것이냐고 쳉은 묻는다.

로스가 디자인한 저택도 마찬가지다. 수영장의 구경꾼들은 유리창 너머 베이커의 본질로 결코 다가가지 못한다. 다만 물속의 베이커와 유리에 반사되어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볼 뿐이다. 다시 말해 베이커의 검은 피부는 유럽인들의 프리미티비즘적 욕망의 투영일 뿐이며, 베이커는 이것을 이용해 자신의 본질 대신 표면을 보여주며 파워풀한 블랙 디바로 생존해 나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껍데기가 어떻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지 말할 수 있다. 즉 껍데기가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껍데기는 타인이 보는 욕망의 투영에 불과함을 이해한다면, 껍데기에 잡아먹히지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말해 내가 가는 장소에 따라 걸맞은 이미지를 연출하고 그것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유연한 전략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모멘타 비엔날레’의 주제, ‘가면극’은 이러한 전략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Mara Eagle <PRETTY TALK>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the FOFA Gallery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자기 전시’의 시대를 끌어안기

이번 비엔날레 감독 한지윤 큐레이터는 쳉의 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시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변화(metamorphoses)를 가능하게 하는가, 아니면 관심 경제, 정체성 자본화라는 신자유주의 게임의 대상으로 만드는가?”2)

그러면서 전시를 통해 ‘표현(representation)’에 관련된 이 시대의 과제들을 보여주고, 정체성의 경계를 흔들 수 있는 ‘가면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가면’은 내가 아닌 다른 ‘껍데기’가 됨으로써 나와 타자의 경계를 흐리고 그 사이에서 주체를 찾아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 큐레이터는 이것이 ‘과도한 자기 전시(self-exposition)의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더 밀고 나아가며 그것을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장르로 보여주는데 하나는 사진, 다른 하나는 무빙 이미지다. 이는 ‘모멘타 비엔날레’가 1989년 사진 비엔날레인 ‘사진의 달(Le Mois de la Photo)’에서 출발해, 확장한 성격과 관계있다.

이번 전시는 특히 무빙 이미지의 비중이 높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파병된 세네갈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과 이룬 가정 내 사연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투안 앤드류 응우옌(Tuan Andrew Nguyen)의 <조상의 유령이 되다(The Specter of Ancestors Becoming)>(2019), 현지 토착 신앙을 토대로 가면을 이용해 환경과 정체성 이슈를 다룬 나오미 링콘 가야르도(Naomi Rincón Gallardo)의 ‘예감, 종말의 가면극(Agüeros. Masquerade for the End of Time)’ 3부작, 앵무새의 말소리를 대사로 활용해 픽션을 구성한 마라 이글(Mara Eagle)의 애니메이션 <프리티 토크(PRETTY TALK)> 등이 있다. 정은영의 작업처럼 잊힌 존재 혹은 나와 완전히 다른 주체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태의 작업이다.



Naomi Rincón Gallardo 
<Agüeros. Masquerade for the End of Time>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the Galerie de l’UQAM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진에서 초상이나 자화상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자아의 표현으로 신체를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이미지나 타자의 이미지를 은유적 혹은 매체적으로 활용해 자아를 드러내는 방식을 탐구한다는 의도였다. 여기에 더해 무빙 이미지를 전시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낄’ 것인지를 고찰하는 의도도 엿보였다.

이를테면 4채널 비디오를 사방으로 둘러싸게 만들거나(응우옌), 영상 속 등장하는 의자와 울타리를 실제 전시 공간에도 배치하는 방식(이글) 등이 있었다. 전시 작품들은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라 주제나 기법 측면에서 충실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무빙 이미지를 신체의 스케일을 기준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사진은 어떻게 기록적 속성을 넘어 매체의 경계를 넘을지 고민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정체성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정체성이 추상적 개념으로 다가오는 한국에서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이 문제가 개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였다. 약탈한 땅 위 세워진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는 내가 딛고 산 땅이 과연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자아의 출발점이라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주류 담론이 점차 해체되고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자기 콘텐츠를 가지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어야 하는 것이다.



Carey Young <The Vision Machine>
 Exhibition view presented at Dazibao 
as part of MOMENTA 2023 Photo: Mike Patten



한국인은 과연 모두가 비슷한가? 개개인이 나고 자란 지역부터 성장 배경, 교육 환경은 물론 온라인으로 엄청나게 다양해진 영화와 음악 취향까지 모두 천차만별이지 않은가? 우리가 예술 작업을 보는 기준도 동일성이나 주류 미술사와의 유사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런 차별점과 독자성을 기준으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PA


[각주]
1) Anne Anlin Cheng, “Skin Fashion: Josephine Baker and Dressing Race,” Masquerades: Drawn to Metamorphosis, Momenta Biennale, Kerber, p. 125
2) Ibid., p.132



글쓴이 김민은 『동아일보』 문화부 미술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미술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일반인을 위한 동시대 미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국제 미술의 보편적 관점에서 한국 미술사를 보는 것에 관심 있으며, 전북도립미술관의 <리좀이 화엄을 만날 때>(2021) 등 전시 기획을 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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