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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김영진
Kim Youngjin

음양의 원리를 통한 인간과 세계의 해석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대구미술관 제공

'2023 다티스트 김영진_출구가 어디예요?'전시 전경 2023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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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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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고독한 존재다. 천형(天刑)을 타고난 자다. 다소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신화 속의 주인공 시지프스(Sisyphus)처럼, 평생토록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자가 바로 예술가인 것이다. 애써 올려놓은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다시 올려야 하는 고된 작업. 그것을 일러 운명이라 하던가?

몇 달 전, 경주시 외곽에 있는 김영진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나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를 떠올렸다. 김영진의 낡고 오래된 작업실은 짙푸른 대숲 속에 있었다. 작업실 앞에는 작은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는데, 길 하나는 작업실로, 다른 하나는 울창한 대숲으로 가는 길이었다. 둘 다 길 입구에 흰색 스티로폼을 깎아 만든 인체 모양의 조각품들이 서너 개쯤 서 있었다. 검은색 천에 둘러싸인 채 흰색 얼굴만 삐죽 내민 작품들은 검푸른 대숲에 가려 마치 시신처럼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1980-1988> (부분) 1980-1988 
석고, 돌 1,170점 가변설치 15×23×6cm(1점)



김영진은 왜 이 작품들을 하필이면 길 입구에 배치해 놓았을까?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신처럼 생긴 조각품들을 말이다. 이 궁금증이 풀린 것은 어느 날 그가 우편으로 보내온 두 권의 두툼한 수제 작품집을 보면서였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삶의 비밀은 죽기 전에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간에서 벗어난 한 지점 “지금”인가.”

이 구절이 적힌 바로 옆면과 뒷장에 그가 1987년의 어느 날 모래사장에서 한 퍼포먼스 장면들이 있다. 옆면의 사진에는 모래에 파묻힌 작가 자신의 팔과 다리 일부가 모래 밖으로 튀어나와 있고, 뒷장의 사진에는 흰 이를 드러낸 작가의 웃는 모습이 사지와 함께 모래 밖으로 드러나 있다. 죽음의 묵시록인가? 게다가 김영진은 모래에 파묻힌 상태에서 시니컬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 반어(反語)의 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던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2022-12> 2022 LED 설치 가변 크기



“몇 달 전 가까운 최병소 선배에게 얘기 드렸지요./ 내가 없어지고 나면/ 얼마 후 그 소식을 들으시더라도 섭섭해 하지 마시라고./ 자연에 돔을 만들어 혹으로 남기지도 않겠다고./ 빠른 시간에 지워지는 모든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고.”

그렇다. 자신의 죽음마저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있는, 즉 마음을 비운 자라면 능히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으리라. ‘웃음-삶의 신비, 울음-죽음의 신비’와 같은 단상에 이르고 나자 김영진은 다음처럼 삶을 규정한다. “지금이 시작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다.”라고. 지금이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인 삶의 호흡, 그 호흡은 ‘지금 여기(hic et nunc)’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단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필연의 결과물인 작업을 불로 청소해 놓고 나 또한 뒷산에 흩뿌려지길.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왜 만들어야 했는가가 지금까지 끌어온 작은 힘이었다.”



<2004> 2004 비디오 스틸



그렇다면 김영진은 허무주의자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전위미술(avant-garde art)은 곧 허무주의(nihilism)를 바탕으로 삼고 있으니까. 제도와 전통에 대한 부정, 인습과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과 도전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 전위미술에 김영진이 빠진 것은, 어쩌면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초반 이후, 50여 년간 김영진이 설치와 조각, 오브제, 사진, 영상, 드로잉 등 다매체를 통해 추구한 인간 이해에 대한 접근은 미시세계와 극대세계 등 우주에 대한 통찰과 만나면서 용해돼 의식의 반경을 넓혀왔다. 그리고 김영진의 이러한 세계에 대한 단상은 그의 작품집에 방대한 양의 글로 기록돼있다.

1,170명에 달하는 이웃 주민들의 얼굴을 직접 석고로 떠낸 <1980-1988>이란 제목의 설치작업은 김영진이 경주에 정착한 이후 8년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지난 6월 6일부터 9월 10일까지 열린 대구미술관의 김영진 초대전 <출구가 어디예요?>에서 발표한 이 작품은 김영진이 얼굴을 석고로 떠낸 당사자인 주민들과 나눈 설득과 대화의 과정 자체가 작품이며, 기실 얼굴 캐스팅은 그 흔적에 불과하다. 상상컨대 김영진은 주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쉽지 않은 허다한 복병을 만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2016-9> 2016 
석고, 형광 파우더, 블루라이트
 270×200×120cm



그 누가 선뜻 자신의 소중한 얼굴을 남에게 맡기겠는가? 게다가 그가 선택한 주민들은 통상 현대미술의 문법에 서툰 사람들이 아닌가? 따라서 8년간에 걸친 이 얼굴 캐스팅 작업은 ‘실제 얼굴 떠내기 행위예술(Real Face Casting Performanc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나타나는 다양한 참여자들의 반응들, 예컨대 당황, 불쾌감, 두려움, 저항, 선선한 수락, 호감, 웃음 등등의 감정을 다양한 표정과 함께 동영상으로 기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러한 방법과 태도는 작가 김영진이 선호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기록을 중시하는 퍼포먼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김영진은 은둔형의 작가다. 1980년대 초반에 대구에서 석굴암이 멀리 보이는 현 작업실로 이주한 이래 근 40여 년을 한 곳에서 칩거해왔다. 그리고 존재와 현상에 대해 수없이 사유하면서 생각의 피륙을 짰다. 그 어록들이 작품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은 미술에 대한 작가 자신의 태도를 말해준다.

“미술사적인 바운더리(개념 미술, 미니멀, 아방가르드, 실험 미술)에 담아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체험과 현재 감각의 충실함에 맡겼다./ 그래서 40여 년 전 바람 작업(양)에서 지금의 흙(음) 작업과의 연결, 인과가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몇 번인가 그 시간의 고리가 엮어가는 순간순간을 느껴보기도 했었지.”



<2021-3> 2021 
석고 90×40×40cm



이 단상은 1970년대 이후 비록 동시대를 호흡하지만 세파에 물들거나 휩쓸리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가령, 1970년대 한국 미술계를 풍미한 개념 미술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러나 이 시기 몸 혹은 신체성을 주제로 한 김영진의 작업들 가운데 예컨대 <1979-1>, <1978-10-2>와 같은 작품들에서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볼 때 동어반복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전자는 부드러운 석고 반죽을 손으로 쥔 서로 다른 모양을 사진으로 찍어 배열(가로 28줄, 세로 8줄, 총 224장)하고, 그 앞에 손으로 떠낸 석고상을 진열한 작품이며, 후자는 콧구멍을 비롯하여 손, 발, 사타구니 등 움푹하게 패인 신체의 부위에 석고 반죽을 부어 떠내는 사진과 함께 그렇게 떠낸 석고상을 진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창조력(Creative, Creativity)은 끊임없는 음과 양의 교섭으로 이루어진다.”-(中庸)-. 이 문장은 김영진이 작품집에 남긴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평소에 김영진이 얼마나 이에 대해 사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김영진의 작품 세계를 관류하는 핵심적인 개념은 음과 양이며, 이 원리는 그의 캐스팅 작업이나 사진 작업, 비디오 작업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가령 남녀 간의 다양한 섹스 체위를 흑백의 뼈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 <2004 video still>과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1979-1> (부분) 1979 
사진, 석고 180×250×50cm(180점)



김영진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이다. 누구보다 일찍 몸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더불어 이를 사진, 설치, 비디오 아트, 이벤트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이 짧은 지면에서 50여 년에 걸친 김영진의 방대한 작업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몸과 자연의 소재를 음양의 관점에서 파악, 인간과 우주에 대한 통찰을 심오하게 보여준 김영진의 작업은 우리에게 남겨진 큰 문화 자산임이 분명하다.PA



작가 김영진



작가 김영진은 1946년생으로 계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구미술관,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12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970년대 대구 현대미술의 중심작가로서 선구자적인 설치 및 퍼포먼스 작업을 해왔다. <앙데팡당전>(1974), ‘대구현대미술제’(1974), ‘서울현대미술제’(1975), ‘부산현대미술제’(1976), <에꼴드서울전>(1979) 등 1970-1980년대 열린 현대미술 주요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부산비엔날레’(2002, 2016)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대구예술발전소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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