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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0, Sep 2016

인간의 가장 원초적 행위, 낙서가 예술이 되기까지

France

Art Work
2016.7.8-2016.10.26 파리, 매뉴팩처 111

강렬한 비트, 반항기가 가득 서린 노랫말,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리듬, 벽을 뒤덮은 화려한 낙서들이 70년대 뉴욕의 거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바로 힙합(Hip Hop)이다. 뉴욕의 할렘가 뒷골목에서 흑인들이 흥얼거리던 노랫가락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힙합 음악의 시초가 되었고, 그들의 몸짓, 춤, 패션은 힙합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현대문화의 사조로 자리 잡았다. 어두운 빈민가의 길거리에서 태동한 문화인만큼, 힙합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보아온 그 어떤 예술 장르와 문화사조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패기가 넘치며, 때론 과격하다. 힙합 문화가 처음 생겨날 당시, 사람들은 흑인과 빈민가라는 힙합의 탄생 키워드를 내밀며 ‘하위문화’라는 가혹한 평을 내리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힙합 문화는 대중문화를 대표하고, 가장 강력한 소비력을 지닌 문화아이템으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가난했던 예술이 가장 돈을 잘 벌고 있는 모양새다. 당분간은 힙합 문화의 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단지, 힙합 문화의 인지도가 높아져서도, 그새 돈 잘 버는 자본주의 논리를 습득해서도 아니다. 힙합 문화의 저력은 오히려, 흑인과 빈민가라는 힙합이 태생적으로 가진 환경적 한계에 기인한다. 배고픔과 가난함, 사회적 차별과 소외가 그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미학적 캐논(canon)의 부재이며, 그 부재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장 진부하지만 위대한 가치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hibition view of 'Art Work' at La Manufacture 111 2016 ⓒ Manufactur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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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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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문화를 설명할 때, 크게 MC(Mic Checker), DJ(Disk Jockey), B-Boy(Break Dance), 그래피티(Graffiti)라는 네 가지의 요소가 언급된다. , 디제잉, 비보잉, 그래피티 모두 조형적 형태는 다르지만, 길에서 자유롭게 행해지던 놀이문화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자연 발생적이며, 비교적 단순한 재료와 테크닉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힙합문화가 가지는 이러한 환경적, 태생적 특징은 시각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그래피티 속에서 가장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힙합의 네 가지 요소 중 그나마 물리적인 흔적을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하는 덕분이다. 붓과 물감 대신, 공업용 래커, 스프레이, 페인트를 손에든 창작자들은 길바닥, 담벼락, 지하철 문 등 그들이 머문 공간을 캔버스 삼아 강렬한 이미지들을 남겼다. 창작자의 이름과 같은 단순한 텍스트부터 팝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미지, 사회적인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은 그래피티는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시각예술의 역사 전체를 전복시키기에 충분했다. 쉬르포르-쉬파스(Support-Surface), 즉 캔버스가 사라진 이미지를 우리는 어떻게 회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름 모를 누군가가 별 의미 없이 남긴, 그래서 허무하게 사라질 한낱 낙서는 아닌가? 힙합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지금도, 여전히 그래피티에 대한 예술적 잣대는 유독 엄격하며, 흐릿하다.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선에 서있는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이 모호함을 시원하게 풀어줄 만한 전시가 파리에서 진행 중이다. 현대인이 갖는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에 기반을 둔 어반아트(Urban Art)와 프로젝트들을 주로 소개하는 매뉴팩처 111(La Manufacture 111)은 현재 파리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문화예술 중심지로 떠오르고있다. ‘공장이라는 이름에서 가늠할 수 있듯, 매뉴팩처 111은 여타 유명 갤러리나 대형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전시보다는 현대인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높은 접근성을 지향하는 곳이기에, 매뉴팩처 111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로도 불리는 그래피티 작품을 선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기도 하다.




Antoine Bertrand Série‘ Rage’ⓒ Manufacture 111 

 



 총 여섯 명의 프로 그래피티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예술작업(Art Work)> 전은 말 그대로 거리에서 행해지던 작업이 미술관 안에 예술작품으로서 등장하게 된 역설적인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이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과 콘크리트 기둥,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벽면, 공간을 나누기 위해 막 가져다 놓은 듯한 나무판자들이 세워진 전시장 내부는 잠시 중단된 상태의 공사현장을 연상시킨다. 어디 하나 깔끔하게 정돈되지 못한 이 미완성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그래피티 이미지들이다. 강렬한 묘사, 화려한 색채, 대담한 화면구성으로 보는 이들에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은 첫 번째 그래피티 작품은 앙투완 베르트랑(Antoine Bertrand) 격노(Rage)’ 연작이다. 

표범, 독수리, 악어, 상어와 같은 맹수들의 얼굴이 묘사된 베르트랑의 그래피티는 마치 그들이 살아서 금방이라도 캔버스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상상이 들 정도로 가히 위협적이다. 브뤼셀에서 만화를 공부한 이력이 있는 작가답게 격노 시리즈는 흑백의 만화 이미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흰 캔버스와 벽면, 그리고 검은색 펜이 이루는 강렬한 흑백대비 효과, 굵고 얇은 무수한 선들이 교차하며 형성하는 명암효과와 입체감은 정면을 응시하는 맹수들의 눈빛을 한층 더 생생하고 매섭게 만들며, 그들이 가진 생명력을 극대화한다. 베르트랑의 작업이 단순한 흑백색채를 이용해 강렬함과 거친 매력을 선보였다면, 오히려 다채로운 색면구성을 통해 화려함을 배가시키는 그래피티들도 있다.

 조 디 보나(Jo di Bona)와 파파 메스크(Papa Mesk)가 대표적인 경우다. 디 보나는 두꺼운 검은색 윤곽선으로 여인들의 실루엣을 스케치한 뒤, 형광 색채를 이용해 다양한 문양과 텍스쳐 효과를 덧입혔다. 관객을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는 젊은 여인들의 얼굴 위로 점, 사선, 격자, 물결무늬를 따라 화려한 색채가 흐른다. 팝아트 요소가 강한 패턴들이 반복 등장하는 탓에, 자칫 지루하고 진부해 보이기에 십상인 여인들의 초상은 광도가 높은 형광 색채의 향연을 통해 단순한 화려함을 너머, 현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여인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해낸다. 파파 메스크 역시 화려한 색채구성을 통해 그래피티 예술의 에너지를 한껏 표출하는 작가다. 다만,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그래피티의 요소와 현대회화의 추상미를 결합한다는 점에서 다른 그래피티 이미지들과 큰 차이점을 갖는다. 




Jo di Bona ⓒ Manufacture 111




그래피티 이미지의 시작은 시각화된 텍스트로부터 출발한다. 창작자의 존재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해 문자 자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하고 시그니처화 시킨 일련의 과정은 곧, 거리예술이라 정의되는 그래피티 아트의 전통이자, 테크닉 그 자체를 의미한다. 파파 메스크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구성하는‘MESK’라는 네 개의 알파벳을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이는 작가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이 추구하는 ‘추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회화를 접목하고 교차시킨다. 작은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염료가 흘러내리고, 밑에 자신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남긴 그의 작업은 그래피티를 통해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고대의 장식 문양과 수학적 도식을 기하학 벽화로 변형시킨 브리스 마레(Brice Maré),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인들의 민족적 근원에서 받은 영감을 분필을 이용해 유아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해낸 질베르 마주(Gilbert Mazout), 여성인류의 역사를 조각, 콜라주 그리고 벽면회화로 치환시켜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구현해낸 클레르 쿠르다보(Claire Courdavault)의 작업은 모두 그래피티 예술의 변형과 확장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벽을 긁고 새기는 인간의 단순한 행위로부터 시작된 그래피티는 숫자, 텍스트, 이미지와 같은 상징체계를 물리적으로 환원시켜 흔적을 남기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내재하여 있다. 원시적이지만 합리적이며, 즉흥적이지만 사고력이 필요한 이 모순 가득한 행위가 예술이 된 지금, 그래피티는 여전히 변화와 진화의 과정 중에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언제, 어디에서든, 더 많이, 더 자신답게 표현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곧 힙합, 그래피티 탄생의 근원이자, 그들 존재 이유기도 하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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