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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8, Mar 2018

리처드 잭슨
Richard Jackson

불친절한 생각의 덩어리

현대미술의 핵심은 ‘메시지’다. 누가 얼마만큼 그림을 잘 그리고, 테크닉이 좋은가는 부차적인 문제가 돼 버렸다. 작가들은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주재료로, 다른 모든 것은 그 개념을 미학적으로 잘 드러내기 위한 양념으로 사용한다. 20세기를 지나오며 우리는 “개념”과 “생각”에 걸쳐진 이 큰따옴표를 씌운 예술가들을 이미 여럿 알고 있다. 바로 현대미술 ‘거장’이라 이름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리처드 잭슨(Richard Jackson) 역시 그 가운데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이다. 잭슨은 지금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개념과 치열하게 씨름하고 있다. 그의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작업은 그 이름을 역사책 한 페이지에 기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아직 그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 정송 기자 ● 사진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제공

Installation view 'Richard Jackson: Car Wash' Kunststiftung Erich Hauser, Rottweil, Germany 2010 Photo: Martin Robold ⓒ Richard Jack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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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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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편에선 파격적인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끊임없다. 그는 하나로 정의 내리기 매우 어려운 사람이다. 그의 생각, 보여주고 싶은 수많은 것들이 한 작업에 전부 뒤섞여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불허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예술가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철학을 미학적 요소와 결합해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내놓지만, 대부분은 난해한 작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 때문에 현대미술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자리 잡았다. 잭슨의 작업 역시 언뜻 보기에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나 많다. 작가는 그가 가진 다양한 생각의 가지들을 하나로 모아 함축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라 말한다. 회화, 조각, 장소 특정적이며 빌딩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스케일의 다양한 작업은 첫눈에 굉장히 역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그의 전매특허라 볼 수 있는 물감으로 뒤범벅된 작업에선 사방으로 마구 뻗어 나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과연 무엇을 하는, 어떤 예술가인가.




<Complementary Colors Face-to-Face (Purple/Yellow)> 2011 Steel, wood, aluminum, 

paint 218.4×142.2×142.2cm/ 86×56×56in Photo: Fredrik Nilsen 

 Richard Jack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꽤 오랜 시간, 미술의 중심은 회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화를 빼놓고 예술을 논할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수많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해 작가들은 꼭 붓과 물감이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다방면으로, 더 깊이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술의 중심이었던 회화는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 캔버스에 다소곳하게 그리는 회화의 과거 영광은 역사에 모두 묻혔고 이제는 예전의 향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 영광을 재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예술가가 알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이제는 변두리라 여겨지는 회화 작업을 계속 기념한다. 리처드 잭슨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000 pictures>는 바로 이 회화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림 한 점은 천 마디 말의 가치가 있다(A Painting worth a 1,000 words)”란 오래된 격언에서 그는 왜 천 마디의 말이 1,000개의 그림(picture)으로 대체될 수 없는지 의문을 품었다


비록 여기서 잭슨이 얘기하는 그림은 결코 그림도, 회화도 아니지만, 그는 19×35×1¼인치의 캔버스를 쌓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예술의 대량생산에 대해 “30 1보다 낫다”라고 얘기했는데, 잭슨은 무려 1,000개의 같은 것을 만들어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이 작업은 다른 모든 잭슨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장소 특정적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지런히 캔버스들을 쌓아 그 장소 자체의 울림을 형상화한다. 모듈식 제소 처리된 캔버스를 벽돌이나 블록처럼 사용해 단단한 벽을 만들어 시스템적인 개념미술을 선뵀다. 그 위에 흩뿌려진 물감은 일종의 모종삽처럼 사용됐다. 그는 마치 케이크에 두꺼운 생크림을 바르듯 캔버스에 물감을 얹었고, 겹쳐진 캔버스 사이사이로 물감이 줄줄 흘러내려 가장자리를 흠뻑 적시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Tanks (Black)> 2005 Fiberglass, steel, acrylic paint, wood 57×83.7×95.4cm / 22 1/2×33×37 1/2in 

 Richard Jack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작가 혼자 한다는 점이다. 그는 한 명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일하는 ‘스튜디오’는 그에게 맞지 않는 작업 방식이다. 1,000개의 캔버스를 나르고, 물감칠하고, 쌓고…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그는 ‘혼자서’ 반복한다. 그렇게 독립적인 길을 걷고 있는 잭슨은 상업 예술과 결을 달리한다. 자신의 작업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하는 그는 예술은 “특이한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게 가려 하는 순간에 자신의 예술성은 끝난다고 설명한다. 그 특이한 행동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작업적 철학이다. 많은 사람이 잭슨의 작업에 충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담긴 불손함이 아닐까. 그는 페인트 머신(Paint Machine)을 작업 일부로 삼았다. 이 페인트 머신에는 물감이 가득 담겨 있는데, 작품과 혼연일체 돼 그 작품이나 벽, 혹은 다른 작업에 페인트를 뿜어댄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늘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또 미국 하위문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조금은 저속한 것들을 주 레퍼런스로 삼는다. 거기에는 성()에 관련된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데, <Tanks(Black)> <Upside Down Girl with Unicorn Head>에서 볼 수 있듯이 무거운 주제에 발랄함을 덧입혀 통통 튀지만 오래 보고 있기 껄끄러운 작업을 선보인다, 더 나아가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야구 등도 단골 소재가 된다. 특히 ‘Bobble Head’ 시리즈는 그의 고향인 로스앤젤레스의 야구팀 LA 다저스의 경기를 보러 가서 받아온 선수의 버블헤드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유명인을 본뜬 버블헤드가 존재한다면, 자신 역시 현대 문화의 선두자로 중요한 사람인데 자신을 본 딴 것은 왜 못 만들겠냐며 작업했단다.




<Art Fair Party> 2014 Neon (blue, orange), metalbox (yellow, red) 33×127×11.5cm/ 

13×50×4 1/2in  Richard Jack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2013년 선보인 <Shower Room>은 전시장에 백색 타일이 덮인 약간 기울어진 공간으로 설치됐다. 미국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텅 비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락커 룸을 연상시키는 이 빈 방은 하얀 캔버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위에 변화무쌍하게 쏟아지는 페인트 소나기는 이 깨끗하고 풍경을 무질서와 아비규환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곳이 진짜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제멋대로 퍼져있는 빨강, 노랑, 파랑의 물감이 아닐까. 누군가의 피로 물든 범죄현장을 목격한 바로 그 공포스러운 기분을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야기한다. 한편, 그의 독특하고도 조잡한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Paint-t>(2012)는 바지를 내리고 그들 자신에게서 분출된 물감으로 뒤범벅된 소년들이 한 줄로 늘어선 작업이다. 정액을 형상화한 물감이 흐르면서 그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면, 엉덩이로 다시 힘차게 뿜어내기 전까지 그 몸속을 헤집고 내려가 소화된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역겹다’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 소년들은 화려한 색깔과 팝아트 적으로 표현돼 그저 귀여운 아이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작가는 혐오스러울 수 있는 주제들을 이렇듯 자연스럽게 희화화했다




<Bobble Head> 2013 Epoxy fibreglass, paint, electronics 230×73×108cm/ 

90 1/2×28 3/4×42 1/2in Photo: Alex Delfanne 

 Richard Jack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그렇다고 그 의미가 가벼워진 것은 아닐 것이다. 관람객들은 약간의 실소와 더불어 불편한 마음도 가져가기 때문이다. 어려운 주제를 더욱 어렵게 표현해 그 심오함을 헤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잭슨은 분명 어려운 주제를 다룸에도 특유의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의 뇌리에는 기괴한 형상과 대비되는 화려한 색감이 강렬하게 자리 잡아 오래도록 그의 메시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올해 리처드 잭슨은 79세가 됐다. 그는 벌써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늘 불친절한 예술가로 살아왔다. 독자적인 길을 가는 잭슨의 발자국이 쓸쓸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흔들림 없이 그만의 길을 간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사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 순간 전 세계에서 150,000여 개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서 그만큼 오랫동안 충격과 신선함을 선사하는 작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가 개인전을 열었던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 그리고 그곳을 방문해 입 벌리고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 모두가 그를 ‘천재’라고 기억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고,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삶과 죽음이 있다고 강조하는 리처드 잭슨. 하지만 그의 작업에는 끝도 죽음도 결코 없을 듯하다. 

 

 


리처드 잭슨

Portrait of Richard Jackson Photo: Tristan Fewings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작가 리처드 잭슨은 1939년 출생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새크라멘토 스테이트 컬리지에서 예술과 공학을 전공하고 1989년부터 1994년까지 UCLA에서 조각과 뉴폼(New Forms)을 가르쳤다. 1970년대부터 그는 개념적인 절차와 유머 그리고 극한의 무질서가 혼합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작가는 1961 E.B. 크로커 아트뮤지엄을 시작으로 하우저 앤 워스데이빗 즈워너함부르거 반호프 등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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