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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3, Apr 2015

미묘한 삼각관계

2015.3.10 – 2015.5.10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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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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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일의 미묘한 삼각관계 



필자가 대안공간 루프에서 한··일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함께 하는 전시를 준비하던 때였던 것 같다.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사이의 비슷한 발음이 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 나라 말로 처음 나왔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 미묘한 삼각관계라고 말했고,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었다. 아마도 미묘 삼각관계가 한자이다 보니 비슷한 발음이 났던 거 같은데, ··일이 모인 자리이다 보니 더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정말 미묘한 삼각관계의 연속이니 말이다. 

 

올해는 한-일 수교 정상화 50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인 해이다. 이제는 미묘한 관계를 끝낼 때도 된 것 같은데, 바다 건너 들려오는 일본 총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일본 뿐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그리 산뜻하지만은 않다. 때론 친구로 웃으며, 때론 굳은 표정의 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의 미묘한 삼각관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 작가들과 함께 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묘한 삼각관계>는 그래서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게다가 한국의 양아치, 중국의 쉬전, 일본의 고이즈미 메이로까지. ··일의 과거와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 방식을 차치하고라도 작업의 색깔이 뚜렷하고, 자국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이 세 작가 작품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관람의 즐거움은 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1970년대 생이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를 넘어가는 시대를 목도했고, 급변하는 시대를 몸으로 겪었다. 기획자 홍이지도 언급했듯이 이들은 전쟁과 냉전시대를 살아간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글로벌화를 거쳐 화해의 시대의 수혜를 입은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의 작품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시간성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때문에 세 명의 작가들을 통해 전해지는 미묘한 감각관계는 서로 다른 꼭짓점의 시간에서 출발하여 때로는 슬쩍 엇가는가 하면 때로는 만나기도 한다. 세 작가의 작업이 자연스레 한 공간에 어우러진 전시 도입부는, 다르지만 유사한 고민의 흔적에 대한 효과적인 소개(introduction)의 역할을 했고, 이후 이어지는 공간들에서 개별 작가의 작업을 좀 더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달라지는 지점들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전시전(양아치 작)

 




예를 들어 쉬전은 상하이의 슈퍼마켓을 옮겨 온 <ShangArt Super market>, <Shouting>, <True Image>등에서 보이듯이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도시화와 글로벌화에 대한 경험을 담고 있으며, 보이는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작품 그 이면에 있는 다양한 레이어들을 읽어내도록 관람객에게 권한다. 그런가하면, 고이즈미 메이로는 일본의 역사에 좀 더 집중한다. 출전을 앞둔 사무라이 이야기라든가(<Portrait of Young Samurai>), 아버지가 기억하는 전쟁의 참혹함(<Mnemotic(father)>), 폭탄 피해자에 대한 인터뷰(<Trapped Words>)와 같이 어쩌면 직면하기 싫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면해야 하는 일본의 역사와 그 안에서의 사람을 이야기한다. 중국과 일본 작가의 작업이 자국의 과거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면, 양아치의 작업은 다소 모호한 듯 보인다. 이번에 소개된 <바다 소금 극장>은 분단에서 출발했던 초기 미들코리아 프로젝트에서부터 이후 <밝은 비둘기 현숙씨>를 이어 최근 개인전 <뼈와 살이 타는 밤>에서 보여주었던 작품들의 종합판인 듯하다. 


어떤 주어진 답도 없으며, 보이는 것에 매몰되지 않은. 분명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촉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 전혀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 설치, 퍼포먼스들로 과감하게 도치시킴으로써 관람객은 종종 길을 잃는다. 작가가 애초에 길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길을 잃는다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중·일의 오래된 미묘한 삼각관계를 세 명의 작가를 통해서 들춰보겠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것이다. 전시 역시 어떤 담론이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른 듯 비슷한, 비슷한 듯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의 세 나라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미묘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돌아보라.’ <미묘한 삼각관계>의 작가들은 돌아서는 관람객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예술이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니. 

 


*전시 전경(쉬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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