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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4, May 2015

경현수_형태와 색채

2015.4.4 – 2015.4.24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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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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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추상 



추상회화에 천착하는 오늘날의 작가들에게서 눈에 띄는 점 하나를 꼽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역사적 범주로서의 추상성이나 철학적 관념으로서의 정신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학과 정치보다는 물리적 법칙과 수학적 원리에 그 예술적 기반을 두거나, 경제지표나 통계자료와 같은 사회적 정보가 만들어내는 규칙에 매료되는 듯하다. 작품제작에 있어서 규칙에 의한 작업과정을 엄격히 따지지만, 그에 따른 궁극의 물화된 형태를 도출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구상적 이미지는 그들의 세속적인 믿음만큼이나 때론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개별적인 알고리즘(algorithm)이 생산하는 이미지와 형태는 우리의 사유와 감각이 표상할 수 있는 그것을 가볍게 넘어선다. 

 

경현수의 개인전 <형태와 색채>는 그렇게 매혹적인 이미지를 직조해내는 동시대 추상회화의 생산적 가능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주식시장의 지표나 고속도로의 구조와 같은 무질서해 보이는 정보들은 일정한 규칙을 통해 컴퓨터상의 벡터 이미지(vector image)로 가공되지만, 정보를 이미지로 절합(articulation)하여 평면 위에 그려지게 되는 회화적인 공정은 추상회화의 지속 가능한 생산성을 보장한다. 여기에 정보의 집합을 감각적으로 변형, 왜곡하는 작가의 수행적 개입은 섬세하게 조율된 감각의 규칙으로서 작품의 추상적인 결과에 생산적 가치를 더해준다. 이물감 없이 미세하게 조정된 포물선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분할의 선분, 반복되지만 이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형태와 색채의 기묘한 배치는 여느 추상회화의 미적 경험을 쉬이 초과한다. 





<코스피 2008#2> 2015 

캔버스에 아크릴, 라인 테이프 116×91cm 

 



그러나 비록 그가 제안하는 추상의 현재적 가능성이 동시대 추상회화의 특정한 경향에 기대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작업들이 단지 그러한 전형을 반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균질한 추상적 표면 위에 작가의 우발적인 감각이 출현하는 한에서, 그의 작업은 다른 추상회화들과는 달리 추상의 근본적인 가능성을 작업 주체의 역능(puissance)으로 재확인시킨다. 정보와 규칙을 평면 위에서 자유롭게 조작, 변형하는 주체의 추상을 향한 의지는 정보의 거대한 집합(Big Data)으로부터 그 의미를 헛되이 만들며, 닫힌 규칙으로부터 자율적인 이미지의 가치를 그 원래의 맥락으로 돌려놓는다. 무한히 뻗어 나아갈 듯한 곡선의 움직임 속에서 돌연 꺾이는 의외의 사선들, 그 지점에서 곧바로 색으로 포획해내는 크기와 방향의 평면운동은 선행하는 규칙에 개입하고 있는 작가의 감각을 고스란히 기록해 보여준다. 오늘날 추상미술이 추상적 이미지를 위해 비인격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면, 경현수의 작업은 이와는 반대로 자신 안에 추상적인 것을 향해가는 주체의 역량으로 동시대 추상미술에 응대한다.


 


 <4 color#5> 2015 

합판에 아크릴 100×80.3cm




환원하자면, 동시대 추상미술은 추상의 신성한 가치를 정보와 규칙의 세속적인 세계로 그 권위의 장소를 옮기지만, 경현수의 작업은 대상에 자유로운 사용주체에 주목함으로써 정보와 규칙에 대한 추상의 의무적인 관계를 끊는다. 그러한 예술적 실천은 추상, 정보, 규칙을 그 직접적인 목적으로부터 떼어내어 그 자체로 사유하고 감각하게 하면서,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돌려놓는다. 아마도 이는 우리 시대의 신성인 정보의 거대한 집합이 제도와 가치로 동일시되는 사회에서,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일찍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주목했던, ‘목적 없는 수단과 그 형식을 찾아 나아가는 세속화(profanation)’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업들이 그러한 정치적 함의를 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예술적 실천이 만들어내는형태와 색채가 그 스스로 내밀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작업은 이제 추상을 통한 탈속과 초월에 관계하지 않기에, 정보와 규칙의 세계와 추상의 지평이 등가화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추상이 이 세계에 오롯이 정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4 color#5> 2015 합판에 아크릴 100×8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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