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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5, Jun 2015

홍지윤
Hong Ji Yoon

탐스럽고 예쁜 저 예쁜 꽃

그림을 언어로 푸는 일은 어렵다. 글로 다가갈수록 정작 작품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잦다. 홍지윤의 꽃처럼 풍성하고 화려하면서도 미농지처럼 섬세한 감성을 설명해야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일견 특별할 게 없는 꽃 같아도 볼수록 뇌리에 느낌표가 꽂히는데, 이 감동적인 부호가 천 마디 미사여구를 동원한들 치환이 되겠는가 말이다. 잘 그려진 꽃은 눈이 아닌 가슴이 안다. 약간의 울림과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불편과는 거리가 먼 견고하고도 나긋한 지점. 색감과 형태가 마주치며 생기는 미지의 영역과 그 부수적인 부분을 작가는 이토록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종이에 확 뿌린 것 같은 칼라는 예의 따뜻하고 촉촉한 촉감을 선사하고 그 위에 겹쳐진 레이어들은 감상에 경쾌한 울림을 준다. 이런 리듬에 맞춰 시구가 더해진다. 그가 직접 짓고 쓰는 어구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그림과 글을 직조하는 홍지윤에게 미술은 놀이이고 삶이며 숙명이다. 왜 꽃인가? 작가에게 이 물음은 늘 따라붙는다. 꽃은 아름답고 익숙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형태의 자연물이다. 그리고 꽃은 피고 지는 삶의 이면과 역설을 가지고 있다. 홍지윤에게 꽃은 단지 시각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철학의 도구인데, 자작시로 인생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그에게 삶의 고난과 환희를 담은 메타포가 꽃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모험과 ‘경계 넘기’의 유희를 즐기는 그는, 시를 짓듯 노래하듯 온몸으로 작품에 꽃을 풀어낸다. 흔하지 않은 자신만의 꽃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색동 꽃’이란 상징을 획득했다. 전통동양회화 기법 중 스케치 없이 모필로 형태를 만드는 ‘몰골법’을 통해 그리는 꽃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의미하는 오방색으로 완성된다. 홍지윤에게 오방색은 전통 회화형식과 다중매체를 동시에 다루는 작업과정에서 디지털컬러와 동일하게 인식되었고 디지털컬러와 유사한 형광색의 색동꽃잎이 모여 한 송이 둥근 색동 꽃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의 색동 꽃은 현대미술 시각과 담론에서 아시아의 매체와 정신을 다루는 다원적인 태도와 자유의지를 드러내며 한 작가가 지닌 수많은 성격 또한 일괄한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작가 제공

'너에게 꽃을 꽂아 줄게-너는 내 모든 것 너는 내 영혼(Let me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eart-You are my everything you are my soul)' 2013 나무로 만든 차에 아크릴릭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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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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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홍지윤의 꽃은 저돌적이며 분방하다. 그의 작품에 그저 애틋하고 수동적인 식물은 온데간데없다. 때로 배경을 리드하고 인물을 잡아끄는 꽃의 강렬함에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마켓이었다. 십 여 년 전, 그는 현대미술과 상업제품의 콜라보레이션 열풍 그 중심에 있었는데, 전통이 현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동시에 순수미술활동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성을 발휘했던 그는 이 과정을 통해 미술과 현실의 경계를 경험했음을 피력한다. 다수의 그래픽작업은 작업의 확장을 도왔고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작업방식을 작가는 또한 터득했다. ‘작품이 제품에 병치되는 것을 자제하라’는 충고도 없지 않았지만 그는 나름의 방식을 체득했다. 지금까지도 홍지윤의 작업에서 순수미술활동과 콜라보레이션은 끊임없이 호환되는데, 경계를 허무는 일이 너무도 익숙한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서쪽하늘 들국화(A chrysanthemum at the sky in the west)> 

2007 멀버리 종이에 잉크와 아크릴릭150×210cm




모더니즘 교육을 통해 배운 미술을 현대미술의 차원에서 다원적으로 해석하려 애쓰는 홍지윤은 다중매체를 통해 전통을 확장하고 이것이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독창성’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그런 까닭에 그는 동서비교문화와 인문학에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유럽문화를 경험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양면을 통찰해가는 작가는 전통과 현대, 정신과 과학, 이상과 현실 등 이분법적인 개념들 사이에서 균등한 자세를 취할 줄 알게 됐다. 다채롭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어떤 환경과 만나도 어울리는 작품에 홍지윤은 자작시는 물론 가슴을 저미는 유행가 가사, 때론 고차원을 넘나드는 이상의 시 등을 풀어놓는다. 그의 꽃과 글들은 화면 위, 또는 화면과 허공 사이사이를 누비며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는데, ‘예술은 학문이나 기법이기 보다는 영혼, 눈빛, 별빛, 달빛이 미래의 언어’라고 확신하는 홍지윤의 믿음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은 이러한 프로세스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비롯됐다.






<꽃천지 天地花(Flower World-Flower, Sky, Earth)>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각 116×80c 





그런 그는 더러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려진, 검은 바탕에 가득 핀 꽃을 완성한다. 화려하면서도 일견 죽음을 연상시키는 화면. 어둠이 곧 삼켜버릴 듯한 색은 순간적으로 빛이 되고, 선이자 획이자 꽃잎은 순간적인 응집력을 지닌다. 또는 우주로 산산이 흩어지려는 해체의 순간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고 붕 떠 있다. 평론가 이선영은 “만발한 꽃과 새의 날개 짓에 내재된 사랑의 은유에 종이꽃이나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은유가 겹쳐진다. 신부의 꽃가마나 장지로 떠나는 상여를 꾸미는 꽃의 이미지에는 사랑과 죽음의 상징적 우주가 공유된다. 홍지윤의 작품에서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사랑과 죽음의 만남처럼 치명적이다.”라고 말했다. 물감으로 그리는 회화와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을 거쳐 컬러 페인팅으로 변화해 온 홍지윤의 작업은 향후 지금까지의 작업이 총체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할 예정이다. 축제와 같은 화려한 색감의 회화에 전념하고 동시에 초기 수묵추상 작품을 세련된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홍지윤, 그의 먼 미래를 알고싶다. 




<Flower, Star, Snow, Night> 2015 

멀버리 종이에 잉크 116×80cm   




<어진 바다-화려한 경계(An Ocean

 Of Mother Nature-Gorgeous border)> 

2012 스크린샷00:06:00 싱글채널 비디오

 



홍지윤




작가 홍지윤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여 차례 개인전을 선보이고 국내외 유수 기획전에 초대된 바 있는 그는 2012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를 거쳐 2014년에는 홍콩의 Fringe Club 레지던스에 참여하는 등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는 그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1주년전 <정원>에 초대 받아 신작을 선보였다. 현재 홍콩과 영국,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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