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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서화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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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ing Korean Antique Painting

한국 고서화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헤아려보자. 우선, 한국의 회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을 제외하면, 붓으로 먹이나 채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적어도 1,700여 년 전부터 ‘회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옛 그림들은 대부분 특정 시기, 특정 작품으로 한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2015년 기준, 해외에 한국실(관)을 마련한 곳은 10개국 28개 박물관/미술관이다. 단 15점의 소장품으로 꾸린 도미니카공화국의 콜럼버스 국립 기념관(El Faro a Colon)이 있는가 하면 5,000여 점을 소장한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The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기관의 한국 관련 소장품은 도자, 조각, 가구 등의 공예품 위주다. 도대체 한국의 고서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 기획·진행 이가진 기자

정선 '한강독조도' 출처 경남대학교박물관 데라우치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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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작품의 연대가 시작되는 지점이 기원전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백과사전식 미술관’을 지향하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도 1998년 한국미술실이 생겼다. 44만 점이 넘는 메트 전체 소장품 중 한국 작품은 680여 점 정도로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를 아우르는데 특히 고려 시대 청자와 불화 및 조선 시대 백자와 나전칠기를 특징으로 한다. 아시아미술부에서 한국미술실을 담당하는 이소영 큐레이터는 “서양인들이 아시아미술에 접근할 때 대부분 회화부터 관심을 두고 시작한다”며, “메트 한국실도 회화 소장 규모를 키우고 싶지만, 작품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인 기획자가 일하는 기관의 실정도 이러한데, 대부분 해외 미술관에선 중국미술이나 일본미술을 전공한 서양인 기획자가 한국미술을 ‘겸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수정되지 않거나, 수준 높은 작품을 감식하기도 어렵다. 전문기관 밖 상황은 어떨지 확인하기 위해 구글(Google)에 ‘Korean Antique Painting’이라고 검색해보았다


실제로 저렇게 키워드를 입력하면, 학술자료나 기타 전문자료보다도 몇 개의 판매 사이트가 가장 상위에 놓인다. 심지어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서도 목록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작자 미상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작품 중에서도 제법 고가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고, 이렇게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들이 모두 가치 있는 진작이라면, 국내에서 해외로 반출된 것이 틀림없다.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처럼 규모가 큰 세계적 미술품 전문 경매는 물론이고 개인 화랑을 통해 알음알음 유통되면서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물론 그것이 서화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전수조사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드러나는 개별 작품을 추적 조사하는 방법으로만 대강의 규모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채용신 <십장생도(十長生圖)> 1920년대 비단에 수묵담채 80×310cm




많은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우리 유물의 수가 많지 않은 데다, 고서화는 절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고려 시대에는 궁정과 귀족을 중심으로 불화가 성행했고, 회화의 전성기로 칭해지는 조선 시대에도 사대부와 왕가를 중심으로 특정 계층에서만 그림을 제작하고 향유한 만큼 ‘좋은 작품’은 적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동양회화는 종이나 비단에 먹과 채색을 사용해 제작하기에 조각, 금속공예, 도자기 등의 공예에 비해 화재, 수해, 좀 등의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공예품처럼 지하에서 발굴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렵다. 이러한 보존의 취약성 때문에 화재, 파괴를 수반하는 전란을 유난히 많이 겪은 한국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남아있는 작품 수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1) 최근 노화랑은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수화 김환기 등의 작품 14점과 조선 후기 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달항아리 2점을 모아 <한국 미술사의 절정>전을 마련했다


지난달 28일까지 열린 전시에서 단연 주목받은 작품은 정선의 <박연폭포>와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1750년대에 그려진 <박연폭포>는 거센 물줄기를 시각적으로 재창조해 <금강산>(1940년대), <인왕제색도>(1951)와 함께 겸재의 3대 진경산수화로 꼽힌다. 단원의 <죽하맹호도> 역시 조선 서예가 황기로가 “진짜 호랑이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할 만큼 그 사실감이 압권인 작품이다. 풍속화, 민화로 알려졌던 단원의 이 대나무 아래 호랑이 그림은 그의 정통 화가로서의 면모 또한 충분히 드러낸다. 그런데 이 둘 모두 개인소장품으로,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훌륭한 고서화가 자취를 감춘 분위기를 지적하며 “개인 컬렉션이 시작이 되어 미술관, 박물관 기증도 이뤄지고 나아가 문화계의 저변이 넓어지는데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상 다수 컬렉터가 소장품을 내보이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컬렉션의 중심이 고서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점차 현대미술에 밀려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03)에도 “지금은 한 점에 몇 억씩이나 하는 병풍 그림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엿장수가 수레 위에 지고 다니면서 팔았던 적도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근 50여 년 전까지도 삶 가까이에 옛 그림이 있고, 구하기도 용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선 <금강내산총도_신묘년 풍악도첩> 1711 비단에 엷은 채색 35.9×37cm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요즘에는 발품을 들여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찾아가야만 이런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유물 소장 규모가 가장 큰 국립중앙박물관( 35만여 점) 외에 사립미술관으로는 간송미술관과 호림미술관이 국보와 보물을 포함 각 약 1만여 점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왕실과 관련된 서화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역사박물관, 경기도박물관과 몇몇 대학 박물관(국민대학교, 동아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기관의 소장방식 역시 기증 및 구매가 주를 이루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1년에 2회 정도 유물구입공고를 내고, 심의를 거쳐 구입을 결정한다. 그러나 환경(, 온도, 습도)에 매우 예민한 옛 그림의 특성상 상설 전시를 하는 곳은 극히 드물고, 보통은 수장고에 보관되는 편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은 명실공히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해도 7만 점이 넘는다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것부터 사신단이 오가며 선물로 준 것, 일제 강점기의 본격적 수탈 등으로 유출될 경로도 많았던 까닭이다. 수량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국보나 보물급 작품이 일본에 상당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는 19세기 특히, 1880년대에 통상조약을 맺으며 개항, 개방의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오간 외국인 공사, 선교사, 세관, 경찰 관계자 등 공식적 문헌으로 남아있지 않은 수많은 서양인이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역사 교과서에 굵직하게 이름이 새겨진 나라만 손에 꼽아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이 반출되었을지는 겨우 상상이나 해 볼 뿐이다.




신사임당 <초충도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36×25cm





그나마 해당 나라의 유력인사가 가져간 문화재는 현지 미술관과 박물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훗날에라도 그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불었던 이민 붐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작품을 가지고 이민을 떠났다가, 21세기 경매 시장의 활성화로 수집품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후손대에 이르러 갑자기 경매에 등장해 주목받는 사례도 있다. 그 외의 해외 개인 소장은 규모와 종류를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현재로썬 없다이렇게 해외를 떠도는 문화재는 집계 가능한 것만 해도 20개국 16 7,968(2016.9.1 기준)에 달한다. 그중 국내로 환수된 문화재는 채 1만 점이 안 된다. 환수된 문화재 중 서화로서의 가치 덕분에 더 큰 주목을 받은 예로는 <데라우치문고>가 있다. 무단통치 시절 조선 총독부 총독으로 악명 높았던 데라우치 마사다케(Terauchi Masadake)가 우리나라의 각종 문화재와 유적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가져간 1,500여 점의 유물 가운데 98 135 1축을 돌려받았다


원래 야마구치현립대학(Yamaguchi University) 도서관에 있는 <데라우치문고>의 일부로 보관되고 있었으나 대학 간 자매결연, 학술교류 등의 과정을 거쳐 국내로 돌아와 현재는 경남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시첩, 비문 탁본, 화첩 등 워낙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화첩에 포함된 신라 시대의 김생에서부터 조선 후기의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서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글씨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환수된 자료의 학술 가치가 높아 여러모로 주목을 받으며, 모범적인 해외 문화재 환수의 선례로 남아있다.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역시 2012 7월 설립 이후, 국외한국문화재 실태조사와 총서 발간을 통해 불법·부당 반출 문화재의 환수와 구입·기증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소재 한국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활용, 홍보하는 방안을 찾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재단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안휘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우리 문화재는 한 점 한 점이 보배”라며 소재지로 그 중요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따라서 “무조건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만 내세우기보다 방치된 문화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왕세자입학도> 37.5×24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처럼 지난 몇 백 년 간 미술 작품의 이동사는 복잡, 다양했고 현재는 법적으로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이 만들어지며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 자체를 제한하는 추세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60조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 또는 등록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동산에 속하는 문화재에 대하여 국외전시 등 국제적 문화교류 이외에는 원칙적인 수출 또는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국외밀반출 방지를 위해 주요 공항과 항만에 문화재감정관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 동산 문화재’는 형성된 지 50년 이상이면서 그 가치가 있는 고서화, 도자기, 공예품 등을 아우른다. 또 지정문화재를 거래해 소유자가 바뀌게 되면 개인이라도 문화재청에 신고해야만 한다. 이에 미술시장 전문가인 서진수 강남대학교 교수는 “법은 엄격하고, 미술품은 많지 않은 상황이므로 더더욱 좋은 고서화 전시를 볼 기회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역설적으로 연구·전시 기능의 중요성을 재고하게 한다. 알려진 작품들부터라도 그 출처와 특징을 밝히는 학술 정리가 선행되면, 그것이 곧 세계 미술사 속에서 한국 미술사의 위상을 새로 정립하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외에서도 현지 한국미술 연구자를 육성하고, 국내외 소장 자료 공개 및 공유를 통한 공동연구, 상호교류 전시, 심포지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춤으로써 어둠 속에 숨어있는 고서화의 새로운 발견이 가능해질 것이다. 

 

[각주]

1) 안휘준 『한국 회화의 이해』 시공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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