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선뵌 <Block-chain Visionaries>(2016)는 블록체인 기술과 주변 인물, 테크놀로지 전문회사, 그리고 그들의 비전을 다룬다. 구 동독(GDR)의 시의회실을 베뉴 삼아 설치된 이 작품은 이더리움(Ethereum)과 디지털 에셋 홀딩스(Digital Asset Holdings), ‘21 Inc’의 홍보 부스로 구성됐다. 이더리움 재단은 2014년 설립되어 흔히 ‘2세대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기술을 개발, 블록체인을 여러 분야에 접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디지털 에셋 홀딩스는 분산원장기술(DLT)을 기반으로 한 금융 기술 회사다. 21 Inc는 비트코인 스타트업으로 비트코인을 지속적으로 채굴하여 사용자가 전자 상품 및 서비스를 구매 가능하도록 비트코인 컴퓨터를 판매했다. 국경선이 전무한 블록체인 산업에서 이 세 회사의 행보는 전 세계의 사회와 경제 분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각 부스는 실제 사용 중인 회사 로고와 CEO의 인물 전신상, 사업 내용을 도식화한 패널과 홍보문구 등으로 꾸며졌다. 

여느 박람회에서 흔히 볼법한 부스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표다. 우표는 재산적 가치를 알리는 상징적 통화다. 통상 정부가 인증한 도안으로 제작되는 우표는 우편 서비스를 위해 요금을 납부했음을 증명할 뿐 아니라, 때론 해당 국가의 주요 역사와 인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독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우표 디자이너 린다 칸트셰프(Linda Kantchev)와 협력 제작된 그의 우표에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주축으로 한 세 기업의 비전이 압축되었다. 어쩌면 경영인의 낙관적인 편향이 점철된 이미지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우표라는 프레임 덕분에 신뢰와 공신력이 배가된다. 건축마저 선전과 통제의 도구였던 정권의 옛 건축물에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 <What is Blockchain>(2016)은 집요하게 말한다. ‘탈중앙화된(decentralized)’ 구조에서 참여자 모두가 ‘연결되어(connected)’ ‘분산화된(distributed)’ 정부 시스템을 이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이야말로 오래된 국가권력과 새로운 거버넌스를 꿈꾸는 글로벌 기업에 대항할 묘수가 될지 모른다고.

<Mine> 2019 Installation view at MONA Photo Credit: 

Mona/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 Hobart, Tasmania, Australia 

블록체인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호응은 인터넷 공간을 어떠한 제도적 이념이나 경제적 가치와 철저히 분리된 공간으로 여긴 넷 아트(Net. Art) 작가들과 오버랩된다. 알렉세이 슐긴(Alexei Shulgin)과 나탈리 북친(Natalie Bookchin)은 넷 아트를 ‘절대 타협하지 않는(0% compromise)’, ‘90년대 후반 임시자치구역’으로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초기 넷 아트 작가들은 인터넷을 열린 플랫폼으로 이해하고 해킹과 프로그래밍 언어, 코드 편집 등 전문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미술 생산과 전시, 소유에 비판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신뢰할 만한 전자화폐 시스템을 연구해오고 있다. 그 시스템은 완전한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며 신뢰할만한 제3의 기관이 필요 없다.” 당시만 해도 허무맹랑하게 들렸던 이 이야기를, 그것도 만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이름과 동명인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로 이메일을 보냈을 때, 유일하게 의견을 주고받은 이는 사이퍼펑크(Cypherpunk)의 일원이었던 할 피니(Hal Finny)였다. 

사이퍼펑크는 1980년대 후반 권력의 감시와 검열에 맞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암호화된 기술을 활용했다. 그들의 이념은 협업 필터링과 데이터 마이닝 알고리즘, 바이오 메트릭스와 같은 첨단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권력 독점화에 이용하려는 정부와 정보기관, 글로벌 기업에 저항하는 예술적 실천에서 지속된다. 데니 또한 ‘정부가 관장하는 테크놀로지, 국가적 정체성, 개인의 영역’1)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서 선뵌 <Secret Power>는 미국 국가안보국(이하 NSA)의 무자위적인 통화 감찰과 프리즘 감시 프로그램의 작동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의 기밀문서와 NSA에서 이미지 디렉터로 근무했던 데이비드 다치코트(David Darchicourt)의 포트폴리오에서 출발한다. 이후 작가가 선택한 베뉴는 마르코 폴로 공항과 16세기 지어진 마르치아나 도서관. 우화로 가득한 도서관 천장은 당대 가치와 이념에 의해 선별된 정보들이 하나의 이미지에 압축되고, 시각화된 정보가 다시 객관적인 사실로 실제 세계에 회귀한다는 점에서 NSA의 유출문서와 유사하다.

<Mine> 2019 Installation view at MONA Photo Credit: 

Mona/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 Hobart, Tasmania, Australia 

디지털 아트에서 블록체인의 활용과 저작권 문제를 연구 중인 마틴 자일링거(Martin Zeilinger)는 예술가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1) 도구, 장치, 시스템의 표현 및 전달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을 발견하거나 2) 실용성과 수익성과 별개로 다양한 인간의 관심과 경험의 잠재성을 탐구할 것이며, 3) 어려운 추상적 개념들을 보다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지적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2) 그의 예상을 방증하듯, 2017년 데니가 기획한 전시 <Proof of Work>3)에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스마트 계약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창조적 표현의 폭을 넓히거나 대안적 시스템으로 이를 탐구한 작가 20여 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블록체인을 마주하는 것이 아직 낯선 관람객이라면, 난이도 높은 작품의 레퍼런스를 쉬이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작가의 작업 또한 시각적 장치들이 매우 단순한데 반해 이를 뒷받침하는 레퍼런스는 많은 서치를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짧은 시간 내에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적인 것부터 시간을 들여야 알 수 있는 세밀한 부분까지 어떤 관람객이라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이어가 작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4)

<What is Blockchain?> 2016 Single-channel HD Video 3'00 

Courtesy: 9th Berlin Biennale, Galerie Buchholz and Petzel Gallery 

2016년 뉴욕에서의 개인전 <Blockchain Future States>5)은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9th Berlin Biennale)’에서 보여준 작업의 연장선에 있지만 (그의 표현을 빌려) 몇몇 시각적 레이어가 추가됐다. 비엔날레에선 공동체주의의 실현을 최고 가치로 삼은 사회주의 건축물이 평등성의 가치로 블록체인을 소개한 그의 작업에 동력을 더했다. 그러나 화이트 큐브에선 부스와 우표 형식만으로 그만큼의 설득력을 얻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는 비트코인의 시작에 포켓몬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한 조형물과 보드게임 ‘리스트(Risk)’다. 부루마블과 비슷한 그의 보드게임은 어느 시간대에 속해있든 가장 큰 파이를 먼저 차지한 사람이 시장을 모두 점령하는 블록체인 업계의 경쟁이 마치 토지 횡령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6) 예컨대 게임 중 하나인 ‘블라이드 마스터의 디지털 에셋 홀딩스(Blythe Master’s Digital Asset Holdings)’는 세계적인 금융도시가 표시된 게임판에서 플레이어들이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수에 따라 투자 은행가를 위시한 말을 움직이도록 고안되었다. 승패는 연방 준비금과 연계 캠퍼스 건물 등의 미니어처, 그리고 금융도시를 상징하는 카드를 늘려나가는 것으로 결정된다. 홍보 부스와 우표가 블록체인의 장밋빛 청사진만을 제시했다면, 보드 게임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승패 시나리오를 통해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금융기업가와 투자자, 개발자의 또 다른 (그러나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은) 비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Blockchain Future States> 2016 Installation 

view at Petzel Gallery Courtesy: The artist, Petzel gallery

2014년 뉴욕현대미술관 PS1(MoMA PS1)에서의 개인전 <The Innovator’s Dilemma>에서부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다룬 작업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를 기반으로 한 <The Founder’s Paradox>(2017)전까지, 데니의 작업은 방대한 리서치를 통해 급변하는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를 포착하고, 장황하고 복잡한 내용을 도식적으로 재가공하여 조각적인 인포그래픽(홍보 부스, 우표, 보드게임 등)으로 구현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현재 진행 중인 개인전 <Mine>7)에서도 이 공식은 유효한 듯 보인다. 실제 크기로 재현된 채굴 장비와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 브라운 쏜빌(Brown Thornbill) 이미지, 착취 노동을 비유하는 ‘탄광의 카나리아 새’, 그리고 새장에 비유한 아마존 근로자의 작업환경은 광물 채굴과 데이터 마이닝을 위한 노동(자)을 등가시키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에서 기술과 환경, 노동과 자본 간의 관계를 재고한다. 이번에도 그의 작업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 가능한 시각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가속화를 비판적으로 다룬 연구에서부터 전시 관람의 트리거로 사용된 AR 기술, 3D 랜더링으로 콜라주 된 브라운 쏜빌 이미지와 아마존 특허 인쇄물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묵직한 레퍼런스들 또한 촘촘히 엮였다. 전시장에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은 이번 전시 도록이자 보드게임으로 제작된 ‘익스트랙터(Extractor)’를 직접 해보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한다.  

[각주]

1) 『노블레스』 2018년 3월호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있다」 https://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7004 [2019년 12월 12일 접속]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불온한 데이터> 전 도록, 2019년 4월 30일 발행 p. 209. 본 전시에서 사이먼 데니의 영상 <What is Blockchain?>(2016)이 소개된 바 있다.

3) <Proof of Work> curated by Simon Denny, Schinkel Pavillon, Berlin, 9 September - 20 December 2018

4) 『노블레스』 2018년 3월호 위와 같음

5) Simon Denny <Blockchain Future States> Petzel Gallery, New York, 8 September - 22 October 2016

6) Matt Williams, Artist Simon Denny speaks of research and his ever-expanding practice with curator Matt Williams, Document, 

2016 https://www.documentjournal.com/2016/10/artist-simon-denny-speaks-of-research-and-his-ever-expanding-practice-with-curator-matt-williams/[2019년 12월 12일 접속]

7) Simon Denny <Mine> Museum of Old and New Art, Tasmania, 8 June 2019 - 13 April 2020

사이먼 데니

Simon Denny, Mine, Photo Credit: 

Mona/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 

Hobart, Tasmania, Australia

사이먼 데니는 현재 함부르크 미술대학교(HFBK) 시간 기반 미디어 학부 교수이며, 빌렘 드 로이(Willem de Rooij), 안젤라 블로흐(Angela Bulloch) 등과 함께 베를린의 작가들을 위한 아티스트 멘토링 프로그램(Berlin program for artists)을 운영 중이다. 2017년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Hammer Museum), 2015년 MoMA PS1, 독일의 뮌스터(Westfalischer Kunstverein, 2012)와 아헨(NAK Neuer Aachener Kunstverein, 2011)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56th Venice Biennale)’(뉴질랜드관)와 2016년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9th Berlin Biennale)’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