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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0, Mar 2024

이상남_마음의 형태

2024.1.25 - 2024.3.16 페로탕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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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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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이 그린 마음의 형태
(form d’esprit)


“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합리와 비합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회화와 건축,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샛길을 건든다. 그 사이에서 산다. 회화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이상남)


그동안 페로탕 서울은 해외 작가들의 개인전을 주로 개최하고 박서보, 이배 등의 한국 작가들은 해외 페로탕에서 개인전을 기획했지만, 2024년 첫 전시로 미국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한국 작가 이상남 개인전을 마련했다. 이는 페로탕 서울의 첫 한국 작가 ‘개인전’인 것. 그동안 엠마 웹스터(Emma Wesbster), 카라 조슬린(Kara Joslyn), 시야오 왕(Xiyao Wang) 등 해외 작가들을 주로 만날 수 있었다면 새해 첫 전시로 한국 작가를 선택한 것은 갤러리의 새로운 미션을 제시하는 듯하다.


이상남의 작업을 보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추상적 풍경 안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어떤 대상이 표현되었는지 궁금해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에서는 기계적 느낌이 들고, 색채와 형태가 자유로우면서도 통제된 느낌이 있어서 혹시 컴퓨터 합성 이미지가 아닌지를 한참 숙고한다. 하지만 형태와 선 사이로 물감이 우연히 묻어 있다. 컴퓨터 프린트가 아니라 손으로 만들어진 형상임을 알리는 증거다. 기하학적 추상을 선택한 그는 무엇에서 출발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에 앞서 국내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한 이상남이 어떤 작가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상남은 1981년 뉴욕으로 이주한 서울 태생의 작가다. 1970년대 한국 화단에서의 활동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그가 1997년 현대화랑 개인전으로 한국에 다시 알려지기까지 그가 뉴욕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리는 이상남의 기하추상 풍경화, 인간 문명에 대한 해석과 코멘트로 가득한 추상 작업을 기억하지만 왜 그가 이러한 작업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그 단초를 알기 위해선 작가의 초기 활동과 뉴욕에서의 궤적을 추적해 보아야 한다. 뉴욕으로 이주하기 전, 그는 박서보 밑에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


이 인연으로 초기에 이우환의 모노하, 박서보의 묘법 등을 접하면서 초기 앙데팡당 실험 미술 전시에 다수 참여했다. 작품 자체의 실험성과 전위성을 위주로 선발하기 위해 이우환이 심사위원으로 임한 <앙데팡당>전은 상당히 파격적인 전시였다. 그는 이 시기 혁신적이었던 사진 매체를 활용해 ‘창문’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1970년대 중반 대구를 기반으로 일어난 실험미술 운동인 ‘대구현대미술제’를 비롯해 1977년 일본 센트럴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단면>전에 참여했고, 1979년에는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ao Paulo)’에 참여하면서 국제적 행보를 넓혀 나갔다.



<마음의 형태 (J264)> 2014
 패널에 아크릴릭 162.3×130.5×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사진: CJY studio



그는 1981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Korean Drawings Now>라는 한국 해외전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에는 백남준이 이미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존배(John Bae) 등도 있었는데, 1981년 이상남이 뉴욕으로 떠난 이후 얼마 안 되어 박이소(본명 박철호, 뉴욕에서의 활동명은 박모)도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20대였던 이상남에게 1970년대는 회화에 대한 실험과 이론적 질문을 끝없이 제기하고 자신의 미학관을 찾아 나갔던 시기였으며, <앙데팡당>전 등을 통해 박서보와 이우환의 반전통적인 예술의 방식과 매체를 고민하던 때였다.

이상남이 귀국 작가로서 1997년 현대화랑에서 전시를 시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초기 뉴욕 시기는 그의 작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뉴욕은 대안공간이 융성하고 페미니즘 미술, 제3세계 미술, 식민주의,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평이론이 미술계를 뒤덮기 시작한 시기였다. 박이소가 1985년 브루클린에 대안공간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하며 주변부에 있던 제3세계 출신 작가들의 전시를 적극적으로 개최하며 정체성의 정치학으로 선회할 때, 이상남은 기하추상 회화를 통해 서울에서 찾지 못한 답을 찾았다.


그가 뉴욕 초기에 그렸던 이미지의 형태는 회화의 재현성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상당히 생경하고 낯선 이질적인 이미지이자 형상이며, 형태이자 기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점, 선, 면의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확한 형체를 그리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뉴욕 시절 이상남은 박이소가 운영한 마이너 인저리에서 열린 전시 <사적 역사/공적 발언(Personal History/Public Address)>에 참여하고 박경(Kyong Park)이 디렉터로서 창립했던 대안공간 스토어프런트 갤러리(Storefront Gallery for Art & Architecture)의 <Homelss at Home>전에 참여한다. 샘 빙클리(Sam Binkley)가 『그린포인트 가제트(Greenpoint Gazette)』(1985년 11월 12일)에 실었던 「What's happening at Minor Injury」에 이상남의 이러한 활동이 기술돼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의 실험미술 참여 그리고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참여한 대안공간에서의 전시 등을 통해서 그는 모더니즘 회화의 한계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화가 주변의 물리적 공간 그리고 정치, 사회, 심리적 현상과 함께 맞물려 형성되는 콘텍스트(context)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에 이상남은 회화가 건축적 공간 안에서 현상학적으로 새롭게 자리 잡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특유의 설치적 회화를 형성해 나갔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를 연상하게 하는 그의 “어긋나게 하기, 비틀기, 겹치기”와 같은 묘사는 회화를 건축과 디자인, 주변 공간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의 회화에 축적된 숫자나 부호, 문자나 암호 등과 같은 기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과 얽힘,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도 이어진다. ‘설치적 회화’란 이상남이 만든 용어인데 장소성에 대한 그의 해석을 살리자면 ‘Installation Painting in situ’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본래 ‘인 시튜’는 장소성을 강조하는 고고학, 인류학의 현상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 미술에서도 장소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상남의 추상회화는 기계 문명의 풍경인 동시에, 서울이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기호의 파노라마로 독해 가능한 이미지에서부터 완전히 독해가 불가능한 구조까지를 아우른다. 그에게 이러한 형태(form)는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그의 작업은 대단히 기호학적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기호에 대한 인식을 교란시킨다. 이를 파고들자면 한 편의 논문이 완성되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가 표현하는 기호의 기표와 기의가 서로서로 고정된 관계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생기는 의미의 균열과 파열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형태를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이미지를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미로 같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그 형태들은 재현의 미끄러짐(slippage)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끄러짐과 균열은 때로 긴장과 위트를 유발하는데, 그의 그림이 뚜렷한 형태들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형상은 어느 한순간 기계 문명의 총체적인 도시로 보이기도 하고, 일상적 사물이 층층이 쌓여 축적된 사물의 파노라마로 보이는가 하면,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지는 음표들의 대행진, 색채와 형태로 에너지의 흐름을 드러내는 주제들을 보여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색채는 재현의 문법에서 이탈했다. 이상남의 기호는 누군가의 시그널처럼 어떤 경우는 비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달한다.




<마음의 형태 (J267)> 2014
 패널에 아크릴릭 162.3×130.5×4.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사진: CJY studio



이상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의 단일성을 끊임없이 해체시키고 또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 다의적이고 다중적인 의미체를 만들어낸다. 1970년대 한국 사회나 한국 화단을 생각한다면 보수적인 사회는 해석의 다의성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던 세계였다. 그가 뉴욕에서 새롭게 인식한 것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처럼 일대일 의미체로 대응시키던 이미지와 기호의 단순한 단계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기호를 축적시키는 행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남의 작업은 기호의 형태에 이르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 그 자체도 특이하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손에 기대어 프로토타입의 형태를 만들고 이를 평면 안으로 옮겨 왔지만, 점차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이미지를 추출하는 일종의 ‘알고리즘’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상감세공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제작 방식은 바탕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옻을 입히고 또 사포로 문지르고 색을 입히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작가가 손작업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인공적인 매끈한 물질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 속한다.


무수히 많은 형태에 물감층을 올리고 또 사포로 표면을 다루는 과정은 이미지를 기호화하고 이미 알려진 재현의 의미를 미끄러지게 하는 과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즉 그가 선택한 제작 과정이 해석의 의미와 깊이 있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유목민적 표류(drift)와도 관계한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 1990년대 ‘정체성의 정치학(politics of identity)’이나 제3세계의 정체성보다는 이러한 유목민적, 디아스포라적(diasporic) 표류에 가깝다. 그의 작품이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회화 등의 동시대적 감각을 띠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정체성의 정치학이 에스닉한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이상남은 이러한 특징보다는 의미의 다의성에 더 관심이 많다. 포스트모던 미술가들이나 이론가들이 시도했던 ‘알레고리적 충동(allegorical impulse)’이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알레고리(allegory)’ 혹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무딘 의미(le sens obtus)’와 서로 통한다. 이상남은 한 문화 속에서 배태된 상징적 의미를 거부함으로써 그 문화 속에서 소통되던 일차적 의미나 고정관념, 전통을 부정하는 사유의 방식을 선택했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많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의 속성을 이상남은 신추상의 방식으로 기하학적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호는 그가 40년 이상 축적한 이미지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그린 도시와 장소의 풍경, 살아온 삶의 궤적과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압축된 마음의 풍경화(compressed landscape)다. 그림을 그린 다음, 사포로 문지르는 행위는 여러 기호를 축적하고 지우는 행위와 연관된다.

물질 그 자체와 내가 하나가 되어 수많은 시간성과 노동력을 가해야만 마무리가 되는 이상남의 작업은 흔히 단색화 작가들이 천착했던 표면 그 자체의 물성과는 완전히 반대의 해답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뉴욕과 같은 오늘날의 대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다양한 컬러를 억제하지 않으며, 미니멀하고 기계적인 표면의 매끈함을 거절하지 않았다. 뉴욕을 경유해 이상남은 여기와 저기(여기와 저기는 사실 어떤 특정 장소가 정해있지 않은 곳이지 않은가?) 사이를 이동하고 표류하는 동시대인들의 삶을 반영하며 기하학적이고 엔트로피(entropy)하며, 그래서 리좀적(rhizomatic)으로 얽혀있는 동시대의 관계적 풍경화를 제작했다.


이상남의 작품에서 전경과 후경의 거리감이 압축되어 사라지듯이 그 공간에는 수평적인 시간성이 중요하게 자리 잡기 때문에 여기와 저기는 쉽게 저기와 여기로 전치될 수 있으며, 중심과 주변부라는 힘의 역학으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상남의 회화를 ‘동시대적’으로 만든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이상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샛길,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샛길에 존재하는 이상남의 회화는 다양한 공간과 장소, 시간성을 매개하는 얽힘 그 자체의 풍경화를 만든다.


* <마음의 형태 (H29)> 2022 패널에 아크릴릭 182.9×152.4×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사진: CJY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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