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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0, Mar 2024

박치호
Park Chiho

상처와 기억을 위한 예술의 묵묵한 위로와 헌사

● 이은하 콜렉티브오피스 디렉터, 전시기획자 ● 이미지 작가 제공

'물드는 배' 202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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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콜렉티브오피스 디렉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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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모든 영혼은 상처로부터 존재의 성숙함을 얻는다.*

예술로 개인과 사회의 서사와 상처를 묵묵하게 형상화하며 위로해 온 작가 박치호를 만나고 왔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존재가 갖는 상실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성찰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해 온 그는 “개인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각자의 상처와 고통의 서사를 인정하고 성찰하는, 그래서 성장하는 인간의 의미를 찾고 있다. 상처를 통한 존재, 그 존재를 인정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묵묵하게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본인 작품세계의 핵심이라고 밝힌다.

여수에서 태어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생애 대부분을 여수 바닷가의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집중해 온 박치호에게 고향의 바다와 사람은 늘 작품세계의 중심에 있는 관심사였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청춘의 격랑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의 고향에 남겨진 큰 역사적 상처인 여순 사건에 이르기까지 개인, 사회, 역사적 서사가 주는 아픔과 상처가 너무 더디 아물었을까. 작가는 질풍노도의 젊은 날, 밤이 지나고 눈을 뜨면 마흔 살의 아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고 한다. 어느덧 그는 수많은 매일매일을 묵묵히 살아내며, 세월을 관통하고 그 시간의 흔적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겹쳐내며, 젊은 날 불현듯 이르고 싶었던 마흔의 아침을 넘기고도 긴 세월이 흐른 자리에 서 있다.



<Big-Man: 다시 일어서는 몸>
 전시 전경 2022 전남도립미술관



필자는 박치호와 그의 작품세계를 2022년 전남도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 <Big-Man: 다시 일어서는 몸>에서 처음 접했다. 무심히 입장한 전시실에서 마치 거대하고 검은 파도에 휩싸인 것 같은 압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도를 한껏 낮춘 어두운 전시실에는 분절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대형 회화와 조각 그리고 드로잉 등 작품들이 뭔가 불편하고 생경한 동선으로, 그러나 매우 육중하고 우아한 매너로 선보여지고 있었다.

상처받고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는 몸을 담은 회화와 검은 두상 조각 작품들이 고독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어둡게, 그러나 묘한 안정감과 조화로움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아야만 느껴지던 작품 표면의 텍스처와 레이어들이 이상하게도 한 겹 한 겹 내 마음을 들춰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어둡고 따뜻한 바닷속을 유영하듯 압도적이고 조용했으며, 왠지 위로가 되는 경험이었다.



<다시 일어서는 몸> (부분) 2022 
리넨에 아크릴릭 259×388cm



작품에서 느껴졌던 웅숭깊음의 정체는 박치호의 작품 제작 기법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다. 화가에게 작품의 안료와 재료는 곧 작가의 작품세계를 발현해 낼 도구이자 언어일 것이다. 그의 회화 작업은 결코 무겁지 않으면서 동시에 독보적인 깊이감을 발현한다. 동양화를 전공해 수채화에 익숙한 작가는 묽은 물감이 안착하고 겹쳐져 깊이감을 만들기 위해 캔버스의 질감을 지운다. 이를 위해 박치호는 캔버스에 미세한 돌가루를 개어 바르고 갈아낸다.

마치 종이 같은 질감으로 묽은 컬러를 흡수해 내는 표면이 된 캔버스에 작가는 페인트 롤러를 이용해 뭉개고, 덧입히며 수차례 중첩된 이미지를 그려낸다. 아니 지워낸다. 몸에 새겨졌을 상처와 기억 혹은 고독을 지워내는 듯한 작업 과정은 작가의 행위와 사고, 태도가 중첩되어 켜켜이 쌓인 기록이자 태도로 읽혀도 좋겠다. 이 투명한 듯하나 무수한 레이어로 겹쳐진 화면의 고독하고 상처받은 몸은 작가의 자화상이자 역사와 시대를 묵묵히 살아내 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며 성장해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노좆바다> 1994, 폴리된 물고기, 
철, 유리 공 120×120×250cm



시대정신과 개인의 서사를 위로하는, 적막한 아름다움

우리는 몸이 아플 때 비로소 몸의 실체에 대한 자각에 이르곤 한다. 몸에 큰 흉터를 지닌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온몸이 아플 때, 내 몸에 남아있는 오래된 흉터가 주변의 살갗을 근질거리게 하며 형언할 수 없는 예민하고 스멀거리는 통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을. 하물며 마음과 영혼에 난 상처와 흉터는 더할 것이다. 박치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환기되는 감각들이다. 인간의 몸은 그가 가졌을 과거의 욕망과 실패, 살아낸 흔적, 상처의 전장이자 기록지일 것이다.

‘망각(Oblivion)’(2018-) 시리즈에 대해 작가는 망각은 기억의 흉터이며, 어느 순간 잊혀졌던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희미해지기도 하는,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세상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라고 밝힌다.



<망각> 2020 리넨에 아크릴릭 
53×45.5cm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망각은 살아남기 위한 삶의 필수 전략이라고 했다. 부정어라기보다 망각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의미, 즉 기억과 연동되는 망각의 의미인 것이다. 박치호에게 망각은 지워짐이 아닌 뭉개지고 겹쳐지며 다시 쓰이는 서사로 기능한다. 기억되기 위해 잊혀져야 하는 것이다.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게 구체성을 상실한 얼굴들은 익명의 우리며, 작가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는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 뭉개지거나 지워진 듯한 두상들에 대해 긴 시간 상처받고 쓸리며 고독하게 세상을 헤쳐 나온, 상처받고 닳아져 동글동글해진 바닷가의 몽돌, 그러나 소중한, 소중해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부유> 2022 나무에 우레탄 페인팅
 150×40×40cm



부유(Floating)하는 시대와 존재에 대한 실존주의적 성찰

존재의 결핍과 상처를 묵묵하게 담아낸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2011-2013) 시리즈에서 뭉개지거나 지워진 작가의 자화상들을 담아냈다면 개인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실존주의적으로 성찰한 ‘부유(Floating)’(1996-) 연작은 불완전하고 흉터를 품은 어둑하고 상처받은 몸들과 상실, 존재의 결핍에 대한 위로였을 것이다. 침묵과 고독이 누적된 검은 흉상의 ‘망각’ 시리즈는 상처를 통한 존재의 성숙과 고독에 대해 서사한다.

박치호의 작품에 담긴 몸은 아픔이 실재 많은 인물의 일상 속의 몸이고, 40-50대를 살아낸 삶의 애환을 담은 몸이며, 상처와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먹먹한 슬픔의 몸이다. 고요하고 어둑하며 먹먹한 작품들을 보며 상처 나고 불완전한 기울어진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예술은 자연이 완결짓지 못한 것을 완성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말했던가.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고뇌와 번민, 그 사이에 파생되는 상처와 고통, 상실 등을 다양한 매체로 담아내고 있는 박치호의 작업세계는 작가 본인의 상처와 고통, 상실과 고독, 개인이 짊어진 고통에 대한 위로이자 성찰이기도 하며, 사회와 역사에 던지는 묵직하고 날카로운 환기이자, 우리 모두에게 예술을 통해 보내는 따뜻한 위로이자 헌사다.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Big-Man: 다시 일어서는 몸> 
전시 전경 2022 전남도립미술관



예술가에게는 작품활동이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와 긍정에 도달케 하는 실천의 도구일 것이다. 삶의 기쁨과 애환을 예술 활동을 통해 묵묵히 담아내며, 박치호를 통해 인생의 균형과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궁국적인 선(善)이 아닐까. 혹자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말미, 초등학교 2학년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다던 작가에게 필자는 꿈을 이룬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나는 늘 무엇으로 지칭되는, 어떤 거대한 담론과 멋진 수식어로 치장되는 ‘어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나의 꿈은 그냥 ‘화가’였다. 그러니 나는 꿈을 이룬 셈이다”라고 답했다.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던 필자는 그 순간 부러움과 함께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잠시 들었던 것도 같다. PA



박치호 작가



작가 박치호는 1967년 전라남도 여수 경도 섬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했다. 개인의 상처와 사회 현실과의 관계를 어둑하고 거대한 몸으로 표현하는 그는 1994년 <노좆바다>(단성갤러리, 1994)를 시작으로 <실체라는 부유-파편을 매만지는 분절들>(쿤스트독, 2014), <Floating 부유>(행촌미술관, 2020), <Big-Man: 다시 일어서는 몸>(전남도립미술관, 2022), <물드는 배>(전남 순천기억공장1945, 2023)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지난해 <들숨날숨·인간풍경>(갤러리끼 파주). <연옥에 핀 꽃: 글로컬>(엑스포아트갤러리). <YIAF 2020 여수국제미술제:【해제解題】 금기어>(엑스포아트갤러리) 등의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각주]
* 아르튀르 랭보(Authur Rimbaud),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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