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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8, Nov 2019

홍명섭
Hong Myung Seop

시가 된 선, 수행적 저항

홍명섭의 작품이 특정 기간을 단위로, 변곡점을 지나 도약이나 변화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단편적 착시일 것이다. 작가의 작업을 정해진 연대로 끊어 파악하는 것은 편의의 문제인데, 홍명섭의 경우에는 특정 장르(형식)를 전체 작업 기간과 등치시킴으로 보다 간명한 분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글로써 홍명섭의 작업사를 재정립하거나 그것이 의미 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단순히 그의 작품에 등장한 주제나 재료, 벌어졌던 사건을 피상적으로 나열하거나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 작업이 만들어지기 위해 벌어진 변화를 가능케 한 동력이나 배경을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더 근접한 의미가 될 수 있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박희자 작가

'De-veloping/en-veloping; Level casting' 대구미술관 전시 전경 2018 무명 줄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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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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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 전반을 모더니티로 명명하고 돌아볼 때, 21세기 이전 그의 작업들을 흘러가버린 과거로 취급해 그 의미를 톺아봐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홍명섭 작업의 역사를 단절적으로 읽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의 작품에서 벌어진 변화 혹은 혁신은 거의 대부분 이전 시대에 기반해 있으며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겨져 있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예전 작업의 영향을 새로운 작품 안에 녹여내며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읽으려는 대상에게, 뻔한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작업의 전반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분석을 중심으로 각 작품이 등장하고 발전하게 된 사회, 문화적 함의를 함께 추적하는 미시사 구축을 요구한다.  





<de·veloping the waterfall> 1978 무명 줄 가변 크기

 



홍명섭의 작품은 소설 같다. 어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구 내달리듯 읽힌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도, 그래서 더욱 더. 그런가하면 어떤 소설은 읽기 힘든 어떤 순간을 지나고서야 마침내 그 속도로 내달리게 되며 반대로 처음에는 잘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응원하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읽어내게 되는 소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돌아보면 어느새 소설 속에 흡수되어 그들이 낸 길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작품이 그렇다. 보는 순간 다 알겠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본의를 파악하고자 부릅뜨고 골몰해야 하는 작품이 있다. 표현이란 예측불가능의 게임에서 돌출되는 것이란 기조로, 타자화 된 작업이 시선을 열어준다고 여기는 작가는 본인조차 술래처럼 따돌리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작업들을 완성한다.


자기를 배반하는 게 작업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결과물을 에워싼 표현이 결코 의도성의 가치에 함몰되지 않도록 견인하기 위함이다. 최근 출간한 책을 통해서도 내가 어떤 의도로 작업에 임했느냐는, 그 작업이 어떤 의미를 산출하고 어떤 표현을 성취했는가 하는 문제와는 사실 별개란 말입니다. 따라서 대화나 텍스트에서도 언어(결과) 뒤에 숨겨진 무엇(의도)을 보거나 찾으려 하는 것은 헛일이 됩니다.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사고는 표현으로 드러나는 측면(표면)과 가려진 이면(내용)의 의미, 그러니까 언어를 겉과 속으로 나뉜 구조로 파악하고, 모든 언어는 이면에 가려진 속살 같은 의미를 독해해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미술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피력한다.




2.<de·titled> 1995 라이스 페이퍼 캐스팅 180×200cm 

 



충격적 사건이 아닌 지리멸렬한 항다반사로 꾸려지는 삶에서, 단일한 것이 아닌 지속되는 것 의 진실을 발견하는 홍명섭의 작업은, 한참동안 소멸되고 마는 작업으로만 완성됐었다. 모든 생명체는 늙거나 죽거나 시드는데, 아름다움만은 영원해야 하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신념에 반기를 들며 그런 믿음이 얼토당토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재료와 설치 장소에서만 형성이 가능한 작업에 긴 세월 몰두하였다. 그의 작업은 생활환경이나 작업현장, 또는 발표장에 당도해 이뤄졌다. 보존될 개체성의 의미를 걷어내고 수월하고 집착 없이 만들어 쓰레기처럼 해체되고 사라지도록 결과물을 만들며 인간 삶의 여러 생태와 마찬가지로 일시성(temporality)을 지닌 작업에 오로지 집중했었다.





<running rail road> 봉산문화회관 

전시 전경 2017 벽에 테이핑 설치 

 



작가는 능동적이고 일방적인 의지나 의미가 담길 깊이나 두께, 기술 같은 의도적인 것을 가능한 털어내고 맹목인 양 작업을 빚는다. 작가나 관람객과 분리된 채 완결된 이질적 객체로 자기 의미를 뽐내고 있는 예술품이길 바라지 않는 그는, 익명적이고 잠정적이고 아슬아슬한 조건을 주선한다는 요건을 작업에 적용해 종내에는 피아가 그 어떤 도상에서 만나지기를 꾀한다. 스스로 본인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세 가지 개념으로 shadowless / artless / mindless를 제시하는 것이 이 같은 이유이다. 미술 작업이란 작가가 자발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이고, 또 작가는 의도한 바를 상징적인 고도의 수법으로 승화해 표현하는 것이 작품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감상은 작가가 작품 속에 꼬불쳐둔(?)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솔직한 느낌은 숨긴 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의도 찾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홍명섭은 이러한 통념을 의문하고 재고하길 요구한다. 작가가 자기 의도대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가? 표현이라는 어휘부터 재검토해야 된다는 그는, 작가의 의도가 작품에 표현될 것이라는, 표현과 의도가 일대일로 대응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의 실상을 직시하면서, 이제 이 같은 난센스는 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림에서 표현이란 무수한 경우 수의 우발점들을 발생시키는 과정이자 장치이기도 한 탓에 의도된 것이 표현된 것이 아니라, 표현된 것이 의도된 것으로 드러난다고 그는 역설한다.





<링반데룽/원상방황> 2012 렌티큘러 가변 크기

 



그가 관심 갖는 것은 우리를 둘러 싼 현실, 자신을 투사하는 환경과 그 조건들의 사태에 작가 나름으로 비판하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대상을 지시하고 끌어들이고 구축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품는 우리의 투사 방식, 즉 자신의 감응 태도, 지각이 갖는 몸의 활동과 그 감성을 먼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의 문제에 앞서 언제나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만큼의 문제가 항상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그는 모든 문제가 우리의 몸이 세상과 상관하는 접촉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강조한다한편 홍명섭의 작품엔 더러 정치적이란 견해가 따라붙는다. 미술은 당파적이고 선명한 목소리를 냄으로써가 아니라, 본래부터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애매한 인간의 관계와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 현실의 불만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불안과 희망을 가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술은 그 자체로 정치는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 밖의 세계를 진단하고 성찰하며 마침내 녹아들어가, 저절로 살 트듯 균열을 일으키려는 그 욕망, 그 세계가 빚어낸 인간을 기록하고 드러내는 그의 작품이 어쩌면 더 지독히 정치적일지도 모르겠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홍명섭




작가 홍명섭 194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2014년 한성대학교 회화과를 정년퇴직했다. 1978년 대전에서 <면벽전>이라는 설치 형식의 전시를 시작으로 3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전시들을 통해 인식의 문제에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1990 44회 베니스 비엔날레 등 백 수십여 차례 국내외 단체 기획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90년 논문 「예술의식과 사회의식」 외에 20여 편의 논문을 지었으며 『전환기의 현대미술』(1991)과 『미술과 비평 사이』(1995, 수정증보판), 『현대철학의 예술적 사용』(2017) 등 저서와 두 권의 앤솔로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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