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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공공미술 이야기 上
수직과 수평 : 기억의 두 가지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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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AND PUBLIC ART

광주광역시 [5·18민중항쟁추모탑]과 워싱턴 D.C.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비교
올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한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특히 국립5·18민주묘지에 우뚝 서 있는 [5·18민중항쟁추모탑]은 묘역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지닌다. 안타깝게도 이 추모탑의 수직적인 형태는 다분히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에 비하여 워싱턴 D.C.에 있는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수평적인 형식이 두드러져 기념조형물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두 기념조형물을 비교하며 이제 우리는 보다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야 한다.
● 기획·진행 편집부 ● 글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중항쟁추모탑] 이미지 제공: 국립5·18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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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가면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518번 버스가 운행된다. 군부대가 있었던 상무지구에서 이 버스를 타면 5·18자유공원, 5·18기념문화센터, 금남로, 구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남대 등을 거쳐 시 외곽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까지 갈 수 있다. 버스 번호에서 연상되듯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적지 10여 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하면 가장 먼저 기와를 얹은 한옥 양식의 ‘민주의 문’이 참배객을 맞이한다. 이 커다란 문을 통과하면 반원형으로 넓게 펼쳐진 ‘민주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 좌측으로는 기록과 교육 공간인 ‘5·18추모관’이 있고, 광장 우측으로는 관리사무소인 ‘오월관’이 있다. 민주광장을 지나면 또 하나의 추상적인 형태의 문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돌로 제작된 ‘추념문’이다. 계단을 올라 추념문을 통과하면 다시 ‘참배광장’이 나온다. 참배광장 좌측으로는 ‘역사의 문(어린이체험학습관)’, 우측으로는 납작한 고인돌 형태를 닮은 ‘유영보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 안에는 묘역에 안장된 5·18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다. 참배광장 끝부분에는 우뚝 솟은 <5·18민중항쟁추모탑>과 함께 좌우로 설치된 조형물들이 보인다. 참배광장을 지나 <5·18민중항쟁추모탑> 앞에 이르면 향로가 있다. 참배객들은 여기서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한 다음 추모탑 뒤에 넓게 자리한 제1묘역을 돌아보게 된다.




국립5·18민주묘지 <대동세상군상이미지 제공: 5·18기념재단 최경훈

 




국립5·18민주묘지의 조성은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5·18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1993 ‘5·13대통령특별담화에서 공식 발표가 이루어진 뒤 추진되었다. 1994 11 1일에 묘역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고 1997 5 13일에 완공되었다. 5 7,000(18 8,200) 부지의 묘역 안에는 앞에서 설명한 여러 기념 시설과 조형물들이 있다. 근처 5·18구묘역(망월동 공원묘지)에 묻혀 있던 유해를 이장하여 현재 제1묘역 777기와 제2묘역 55기 등 총 832기에 달하는 5·18희생자의 묘가 있다. 5·18기념식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해마다 5 18일에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제 묘역 전체의 공간 구성을 되짚어 보면서 특히 주요 기념조형물에 대해서 살펴보자. 공식적인 추모를 위해 조성되었기 때문인지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가 흐른다. 앞에서 묘사한 것처럼 2개의 커다란 문과 2개의 광장을 거쳐 수직으로 솟은 추모탑까지 상당한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만 묘지에 접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추모탑 뒤에 좌우 대칭으로 펼쳐진 묘지들도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땅에 질서 정연하게 줄을 맞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권위적인 공간 구성은 국립현충원이나 국립4·19민주묘지를 연상시킨다


주요 기념조형물로는 <5·18민중항쟁추모탑>과 그 주변 조형물들이 있다. 전통 사찰의 석조물인당간 지주(幢竿 支柱)’ 형태를 추상화한 <5·18민중항쟁추모탑>은 두 사각기둥의 탑신이 40m 높이까지 뻗어 올라가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탑신 위쪽 3분의 1지점에 부활을 상징하는 알(난형 환조)을 손으로 감싸 쥐는 형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수직의 추모탑을 중심으로 좌우 각 17.5m씩 수평 방향으로 뻗은 긴 벽에는 청동 부조인 <5월 민중항쟁도>가 새겨져 있다. 또한, 좌우 부조의 앞쪽 공간에는 총을 들고 항쟁했던 시민군을 형상화한 <무장항쟁군상>과 시민들의 대동세상을 묘사한 <대동세상군상>이라는 청동 환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수직의 추모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수평의 부조 작품들이 함께 배치된 방식도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19민주묘지의 현충탑 배치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





국립4·19민주묘지 <현충탑 부조벽이미지 제공국립4·19민주묘지





왜 이렇게 비슷한 것일까? 묘역의 성격이 다르면 공간 구성이나 기념조형물의 형식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국립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과 애국지사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원수 등이 묻혀 있는 특별한 묘역이다. 그래서 정부 주도 하에 국가 의례가 거행되는 공간이다. 그런 곳에서는 국가의 권위와 질서가 느껴지는 엄정한 공간 구성과 국가가 추구하는 기본 이념이 담긴 기념조형물이 적합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행해지는 공식적인 의례 역시 엄숙한 방식이 어울릴 수 있다


그에 비해 국립5·18민주묘지는 국립이긴 하지만 국가 폭력에 맞서다 희생당한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그들은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니고 대부분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과 시민이었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그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추구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충만한 대동세상이었다. 과연 그들의 저항과 죽음을 그저 건조하고 근엄한 방식으로만 기념해야 하는 것일까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묘지들은 질서 있게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묘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기념조형물은 기존의 국립현충원처럼 진부한 형식과 분위기를 띠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곳의 추모탑, 부조, 환조는 형식면에서 매우 구태의연하다. 부조와 환조는 3·1운동, 4·19혁명, 유엔군 초전비 같은 역사 또는 전승 관련 기념조형물에 흔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립현충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각지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게 치솟은 권위적인 추모탑 형태가 권위적인 국가 폭력에 저항했던 이들을 추모하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수직으로 높이 세워진 기념비 형식은 대부분 국가주의와 지배계층의 권위를 강조하던 시대에 생겨났기 때문에 <5·18민중항쟁추모탑>의 형식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5·18정신을 담아내는 새로운 조형 의식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프레데릭 하트(Frederick Hart) <The Three Soldiers> November 11, 1984 

<베트남 전쟁 기념물(Vietnam War Memorial)> on the National Mall in Washington D.C. USA © Lissandra Melo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수직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식의 기념조형물을 가능한 한 많이 시도해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직적인 추모탑과 확실히 비교되는 수평적인 기념조형물 사례를 제시하여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에서 볼 수 있다. 이 기념비는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은 장병과 민간인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애국주의적 기념조형물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기 때문에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1978년경부터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잰 스크러그스(Jan C. Scruggs)와 톰 카하트(Tom Carhart) 등에 의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종전 후 귀국한 참전 군인들은 냉대를 당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은베트남 참전군인 기념비 재단을 설립하고 기념비 설치를 추진했다. 1980년 국회의사당이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기념비 설치 허가를 받은 그들은 몇 가지 조건(묵상적 작품, 주변 조경과 조화, 전몰자 각명 등)을 제시하며 공모를 내걸었다. 공모 결과 1,421점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중에서 마야 린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놀랍게도 마야 린은 당시 예일대(Yale University) 건축과에 재학 중인 21세의 여학생이었는데, 그가 제안한 기념비의 형태는 매우 참신했다.


마야 린의 작품은 약 75m 길이의 검은 화강석 벽 2개가 약 125˚각도의 V자로 만나는 모양새다. 이 화강석 벽의 위쪽은 수평에 가깝고 대신 화강석 벽 아래의 보도가 기울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도는 벽의 시작점부터 점차 낮아지다가 V자의 꺾이는 부분에서 3.1m 깊이로 가장 낮아진 다음 다시 서서히 높아지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화강석 벽은 땅속에 묻혀 있다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땅속으로 점점 사라지는 인상을 준다


이렇게 V자 형태의 벽에는 1959년부터 1975년까지 총 5 8,007명의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단순하게 수평으로 뻗은 이 추모의 벽은 묘비처럼 잔잔한 슬픔과 가라앉은 침묵을 머금고 있는데, 방문객들은 걸어가면서 눈높이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전사자 개인의 죽음을 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검은 화강석 표면을 거울처럼 매끄럽게 처리하여 주변 경관과 더불어 방문객의 모습까지 반영하도록 만들었다





마야 린(Maya Lin)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The vietnam Veterans Memorial Wall)> 

1982 이미지 제공: Cvandyke/Shutterstock.com





이 거울 효과는 기념비가 과거사의 대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현실과 교감하도록 만든다. 이런 특징들은 기념비가 숭배나 의례의 대상이 아닌 대화를 나누는 대상임을 강조한다. 마야 린이 제시한 기념비는 국가적 상징이나 영웅적 형상 같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장치가 전혀 없는데다가 심지어 수직성이 아닌 수평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기념비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습적인 조형 문법을 과감히 파괴한 작품이 당선되자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새로운 개념의 기념조형물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영웅적이고 패배적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982 11 3일 마야 린의 작품이 제막식을 가진 후, 1984년엔 비판 여론을 수용하여 마야 린의 작품에서 36m 떨어진 곳에 조각가 프레데릭 하트(Frederick Hart)가 제작한 3인의 남성 병사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1993년엔 마야 린의 작품 남쪽에 여성 기념비도 추가로 세워졌다. 이렇게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라면 마야 린이 제작한 기다랗고 검은 추모의 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은 꽃과 사진을 두고 기도하거나 전사자의 이름을 어루만지고 탁본하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의 벽과 대화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긴 하지만 여전히 기념조형물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이 지배적이다. 기념조형물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계속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규명해야 할 과거사가 산적해 있다. 기억해야 할 과거사의 자료가 정리될수록 새로운 기념조형물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성되어버린 기념조형물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조성될 기념조형물들은 진부한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 

 

[참고문헌]

최호근 『기념의 미래』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전진성, 최호근, 양금식, 조선윤, 박강배 『세계의 역사기념시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백종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반비 2018 

국립5·18민주묘지 웹사이트(https://518.mpva.go.kr)

 

 

글쓴이 백종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UdK)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미술계 현장에서 기획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최근에는 2018광주비엔날레큐레이터, 2019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예술감독으로 일했다현재는 미술생태연구소를 운영하며 전시 기획,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잠에 취한 미술사』,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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