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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1, Apr 2024

유화수
Yoo Hwasoo

문제적 시선의 기술들(Art)

● 이채원 전시기획자 ● 이미지 작가 제공

'blowin' in the wind' 2018 폐기된 간판, 철 250×300×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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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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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수에게는 세계를 촘촘하게 조감할 수 있는 망루 같은 시선이 있다. 그는 이 망루에 올라 세계를 작동시키는 거대한 메커니즘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에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거대 메커니즘에 합류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잔여 존재들의 삶이었다. 존재 의미를 박탈당한 채 버려지는 것들, 숨겨지는 것들, 잘려 나가는 것들, 뿌리 뽑히는 것들. 이 존재들의 의미를 왜 신기루 같은 메커니즘으로부터 허락받아야 하는지 그는 늘 궁금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식으로 말하자면, 이 메커니즘은 하나의 신화다.1) 신화는 상식의 형태로 위장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고, 사회 구조에 적응하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적 이미지와 관념에 침투한 신화는 그것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을 세상의 마땅한 모습, 즉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유화수는 이 신화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며 길들여진 우리의 의식에 일갈을 가한다. 그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지만 신화의 거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삶의 의미들을 들춰내는 것이다.

유화수가 신화에 저항할 여지를 열어놓는 시도는 꽤 오랜 시간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작업인 ‘건설적인 드로잉’ 시리즈와 파주의 한 아웃렛 단지를 소재로 2019년에 작업한 <The answer, my friends, is blowing in the wind>를 보자.



<goodo bye voyager, 2015>
 2016 보이져호가 촬영한 사진, 시멘트, 폐철근,
 LED 160×180×100cm



‘건설적인 드로잉’ 시리즈는 건설 현장에서 채집한 폐자재들로 만든 오브제다. 건설업은 도시의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인구 밀도를 높여 경제적 가치와 성장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이 작업에 대해 작업노트에서 “공사 현장에서 하루 노동 일당량이 정해져 있듯이, 하루 한 점의 드로잉을 ‘건설적인’ 마음가짐으로 수행했다”고 밝힌다. 이처럼 그는 이열치열의 원리를 유화수 식으로 변용하는 골계미와 함께, 마천루 신화의 이면을 들춰낸다. <The answer, my friends, is blowing in the wind>(2019)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작업의 소재가 된 파주의 파비뇽 아웃렛 단지는 근처 거대기업이 운영하는 아웃렛의 오픈 이후 점차 활기를 잃어, 거의 9년간 방치되어 인근 공장들과 상점들의 무단 쓰레기 방출과 잡초들이 모아진 쓰레기 섬으로 전락한 장소다. 그는 그곳 상점들의 유기된 간판 조각들을 모아, 바람처럼 투명하게 존재하는 자본주의 신화를 다시 한번 투시한다. 밥 딜런(Bob Dylan)의 노랫말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고 버리게 될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볼까? 친구여, 답은 나부끼는 바람에 있어요’를 인용하고 있는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정연한 신화에 소음을 일으키고자 한다. 이처럼 효용성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자본주의 신화와 그로 인해 소외된 사물들은 유화수의 작업으로 다시 존재의 정확한 윤곽을 드러내고 의미를 회복하기를 시도한다.



<당신의 각도 #1> 
2019 플라스틱, 강화유리, 철 70×50×50cm



그리고 유화수의 문제적 시선은 사물들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신화가 분류하고 범주화해놓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질서를 뒤엎는 시도를 한다. 전시 <당신의 각도>(2018), <정상궤도>(2019), <예외상태>(2020) 그리고 프로젝트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에서 선보였던 작업들이 그 예다. 그는 이 전시들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과 태도’ 역시 신화화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특히 자본주의와 시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신화를 작동시키는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인 범주로 밀어 넣는다. 여기에 배려, 포용과 같은 윤리적 가치를 끼얹어 한층 더 신화화된 장애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당사자가 아니면 장애에 대한 논의조차 무효한 당사자주의로 기묘하게 중화되어 버린다.

유화수는 다시 한번 이 신화를 역전시킨다. <중얼거리는 가구: 한기명>(2018)은 결여가 있는 신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작품을 통해 그는 장애는 극복되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속도를 가진 삶의 한 유형으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린스테이지>(2019)의 두 채널을 넘나드는 장애인 김원영을 통해 유화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조소한다. 더 나아가 그는 경계 기준의 모호함에 대해 <경계석 XIX 2020>(2020)을 통해 역설한다. 누군가에게는 안전한 울타리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이동을 가로막는 턱이 될 수 있는 경계석의 이중적 모순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질서, 즉 신화의 부조리를 아슬아슬하게 쌓아진 조형물로 시각화한다.



<재배의 몸짓> (부분) 
2023 스마트팜 시스템, 느티나무, 목련, 아카시나무, 버섯, 
진동모터, 센서, LED 가변 크기



이제 그의 문제적 시선의 기술(art)은 자본주의와 결탁한 과학기술 만능주의 신화에 맞서기 위한 도구로서 기술(technology)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먼저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2021)를 보자. 이 장치는 모터, 센서, 아두이노, 폐쇄회로 TV, 펜 번역기, 음성텍스트 변환기, 텍스트 음성 변환기 등의 기술(technology)을 이용해 텍스트를 음성으로, 음성을 수화로, 수화를 구어로 연쇄적으로 번역한다. 번역이 진행될수록 텍스트는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기술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어떤 해법이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발화하는 존재들은 안에서건 밖에서건 따로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 장치를 통해 유화수는 존재들의 서로 다른 현실의 결을 인정하고, 의존하며 천천히 동작하는 세계를 제안한다.

그리고 <잡초의 자리>(2021)와 <재배의 몸짓>(2023)에서 유화수는 식용작물 혹은 관상용 식물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재배하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팜 기술을 잡초나 버섯과 같은 효용성이 없는 존재들을 재배하는 기술로 역이용한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기준에 의해 제거된 존재들의 의미를 들춰내는 것은 앞에서 계속해서 언급했듯, 유화수가 작업에서 꾸준히 견지해 오던 화두다. 그러나 특별히 이 두 작업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역사 전체를 걸쳐 신화화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아닌지 묻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끌고 나간다. 그것의 단서는 재배라는 행위를 문제시하고 있는 ‘재배의 몸짓’이라는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다.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2021 혼합재료 330×150×150cm



현상학자 빌렘 플루서(Villem Flusser)도 『몸짓들(Gestures)』이라는 저서의 ‘재배의 몸짓(The Gestures of Planting)’을 통해, 재배 행위가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으로 규명한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빌려 재배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플루서는 재배 행위를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규명하기 위해 역사 이전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 따르면, ‘재배’라는 것은 자연의 규칙을 반대하고, 자연을 지배하려 하는 폭력적인 몸짓이며 질서다. 또한 재배는 자연의 법칙을 인간의 의도에 맞게 뒤집은 것이며, 세계를 분류화하여 포획하는 것이다. 그리고 ‘숲을 보호하자’ 또는 ‘우리의 바다를 구하라’와 같은 생태 보호 슬로건의 기저에는 사실은 정해진 나무만을 심고, 불필요한 해조류는 제거하는 재배 행위가 전제되어 있다.2)

플루서의 재배론을 등에 업고, 다시 유화수의 작업으로 돌아가 보자. 유화수의 잡초, 버섯 재배 장치는 재배 신화를 재배함으로써 다시 한번 신화를 비틀어버린다. 스마트팜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재배 신화는 풀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재배하려는 것이고 유화수는 그것을 재배하는 역방향의 기술자(artist)다. PA

[각주]
1) Graham Allen, Roland Barthes (Routledge Critical Thinkers): 송은영 옮김, 『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 앨피, 2006
2) Villem Flusser, Gestures, Nancy Ann Roth(Trans.), Univesitiy of Minnesota Press, 2014



<재배의 몸짓> (부분) 2023 
스마트팜 시스템, 느티나무, 목련, 아카시나무, 
버섯, 진동모터, 센서, LED 가변 크기



유화수 작가



작가 유화수는 1979년생으로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조소전공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스페이스K, 2013), <주옥같은일>(오래된 집, 2013), <working holiday>(독일 프랑크푸르트 basis, 2016), <그림자 노동>(중국 충칭 organ haus, 2018), <잡초의 자리>(문화비축기지T1, 2021) 등이 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다. 경기창작센터, 고양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등의 레지던시를 지낸 그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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