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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1, Apr 2024

미술관 건축

Museum Architecture

● 기획 · 진행 김미혜 수석기자, 김성연 수습기자

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 Image Courtesy of Audemars Piguet © BIG - Bjarke Ingels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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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택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단비 건축학 박사,심소미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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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형태와 공간, 작품과의 유기적 관계까지 단순히 완성으로서의 건축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감으로 미술에 가 닿기 좋은 4월, 우리는 특집으로 미술관 건축을 준비했다. 먼저 시대의 요구에 따라 하나의 공공건축물로서, 그 의의와 효용에 있어 변화를 거듭해 온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톺는다. 예술 작품을 탐미한 기득권의 전유 공간에서 대중과 미술을 잇는 열린 공간이 되기까지의 여정, 예술가를 위한 성소로 기능케 만든 건축 요소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다. 이어 독자적인 시선과 건축적 기치 아래 완성도 높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세계 유수 건축가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미술관 건축의 생생한 현장감을 고스란히 느껴보자. 끝으로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 동시대 미술관 건축이 어떤 전환점을 맞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이를 면밀히 알아본다. 시공간을 넘어 작품의 숨결을 간직한 미술관의 비밀, 지금 확인할 시간이다.




Special Feature 1
미술관, 예술 혹은 성스러움의 공간_남성택, 이단비

Special Feature 2
건축가 인터뷰_김미혜, 김성연, 정지윤
- 바로찌 베이가
- 헤르조그 앤 드뫼롱
- 리나 고트메
- 반 시게루

Special Feature 3
미술관 건축의 미래와 생태적 전환_심소미




Musée Atelier Audemars Piguet Courtesy 
of Audemars Piguet © BIG - Bjarke Ingels Group




Special Feature No.1
미술관, 예술 혹은 성스러움의 공간
●  남성택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단비 건축학 박사

미술관 건축은 건축가라면 한 번쯤 설계하길 꿈꾸는 예술적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공건축이며, 정치인에게는 도시를 부흥시킬 수 있는 구원자적 건축,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예술가에겐 세속적 현실로부터 예술적 영혼을 수호하는 성소와 같다.

미술관은 예술의 집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갈망하고 이러한 것들로 공간을 꾸미는 일은 인간 본연의 습성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공공 독립 기관으로서 미술관은 상대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를 지닌다. 예술 작품,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이를 특별히 보관하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극소수의 기득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던 호화로운 삶이었다.

따라서 공공미술관의 탄생은 18세기 말 근대적 시민 의식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프랑스 혁명이 그 기점으로, 미술관 건축사에서도 하나의 특별한 계기를 마련했다. 절대 왕정의 몰락은 많은 왕실 및 귀족들이 소장한 예술품들을 국가 소유로 전환시켰다. 예술 작품들은 시민들의 것으로 공개되고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루브르 궁전(Palais du Louvre)이 1793년 박물관으로 전환 개관되며 왕실 예술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사건은 그 신호탄 중 하나였다.





Musée de la Marine © Maxime Verret for
 h2o architectes and Snøhetta



예술의 공간과 성스러

한편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종교적 성물들이 안치된 성당이나 수도원도 혁명의 분노를 피할 수 없었다. 약탈과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역사적 성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빠르게 형성되었다. 성당 내의 종교적 성물들도 국가 문화재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술관 속의 예술 작품과 동일한 전시의 대상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신성한 종교적 오브제들이 구원되며 예술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목도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것일까. 원래부터 성물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현되는 경우가 흔하며, 따라서 예술 작품처럼 창조되지 않았던가. 본질적으로 성스러운 대상은 아름다움을 표상하곤 했다. 어찌 보면 예술가들이 창조하는 일반적인 작품들이야말로 태초부터 성물이 지녀온 가치를 모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술 작품 자체가 비록 그것이 비종교적일지라도 성스러움의 본성을 내재한다면, 그 오브제가 모셔지는 공간인 미술관 역시 이와 관련된 건축적 질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칼 프리드리히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베를린 알테스 무제움(Altes Museum) 투시도 1822-1830



미술관 혹은 박물관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무세움(museum)’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 ‘무세이온(museion)’에서 비롯된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예술의 여신인 뮤즈(Muse)에게 헌정된 신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술관은 어원상 예술의 신전이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의 담론은 예술에서 오래된 논제이기도 했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도 예술이란 고대부터 신의 거룩함을 표현, 숭배하기 위한 것으로 탄생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예술의 기원으로 규정한다면, 예술 작품 속에는 성스러움의 DNA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예술가의 창조 행위는 본질적으로 제사장의 예식에 빗대어진다. 



프로필레아,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판아테니아 제전
(Panathenaic Procession) 상상도 Athens 
© akg-images / Peter Connolly



이러한 예술의 기원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완전히 구시대적인 것일까? 하지만 성스러움은 최소한 예술의 무의식 속에 잔존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자신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경험을 “종교적 체험”에 비유하곤 했다. 어느 한 관람객이 로스코의 거대한 회화 앞에서 멈추어 홀로 명상에 빠져 있는 모습은 드문 풍경이 아니며, 마치 작은 경당의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는 신자의 뒷모습과 교차되기도 한다.

이러한 주제를 조금 더 자세히 다루기 위해서는, 공공 미술관 전용 건축의 설계가 처음 요구되던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고대 그리스의 기념비적 신전들을 처음으로, 또 경쟁적으로 건설해야 했던 고대 건축가들처럼, 19세기 서구 건축가들에게 미술관 설계는 새로운 건축 유형을 발명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되었다. 미술관은 새로운 예술 문화의 시대를 선언하는 ‘19세기의 대성당’으로 묘사되곤 했으며, 이는 단순한 모토로 그치지 않았다. 예술의 성스러움을 극대화하는 건축적 이미지가 요구되었고, 미술관 건축이 내밀하게 지향하는 방향성으로 자리 잡았다.



알테스 무제움 로툰다(rotunda)



문턱의 장치와 성스러운 오브제의 공간

그러므로 미술관은 성스러운 건축을 모방하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물론 형태의 차용을 통해 성스러움을 표상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고민은 미술관에서 ‘성과 속(The sacred and the profane)’의 공간적 대립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안과 밖을 분리하고 연결하는 ‘문턱(threshold)’과 같은 공간 전략이 적용되어야 했다.

엘리아데 역시 문턱의 종교적 의의를 강조했는데, 성당 문턱은 “성과 속의 두 세계를 구분하고 대립시키는 한계, 경계, 국경인 동시에 두 세계가 서로 소통하는 역설적 장소 그리고 세속적인 세계로부터 성스러운 세계로 통과를 허락하는 곳”이라는 본성을 지닌 장치였다. 경계 안팎을 단절, 소통시키는 문턱의 공간 개념은 성스러운 예술의 공간인 미술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미술관 외부부터 내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투영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19세기 미술관 건축의 전형이자 효시인 독일 베를린 알테스 무제움(Altes Museum)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독일 신고전주의 건축가 칼 프리드리히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대표작인 알테스 무제움은 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건축적 장치들이 외부 광장에서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Robert Olnick Pavilion 
© MQ Architecture Photo: Javier Callejas



쉰켈이 계획한 광장은 기독교 성당이 세속적 현실로부터 거리두고자 조성한 전면의 신성한 광장, 파비스(parvis)를 연상시킨다. 광장 중심축에 서서 바라본 무제움의 원경은 기단 위에 당당하게 구축되어 있어 마치 높은 곳의 그리스 신전을 상기시킨다. 높은 기단 위의 신성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은 기념비적이며 대칭적인 거대한 계단이다. 성스러운 건축은 상승을 전제한다.

무제움의 파사드 전면은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이오니아 오더(Ionic order) 원기둥의 열주(colonnade)가 가로지른다. 중앙 진입로 부분의 열주는 특별히 이중열로 구성되어 공간적 깊이감을 생성한다. 세속으로부터 결별하며 성스러운 예술의 세계로 진입하는 극적인 움직임과 시간성의 체험이 만들어진다. 시각적, 공간적 장치인 열주는 아크로폴리스 성역의 관문인 프로필레아(propylaea)를 연상시킨다.

쉰켈은 광장, 기단, 대계단을 지나 열주에 이르기까지 수평, 사선, 수직 등의 다중적 경계를 설정하고, 이를 차례대로 관통하는 점진적이고 긴 호흡의 공간 이동을 구성한다. 결국은 점층법적인 순차적 통과의례를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성스러움으로 향하는 일련의 문턱 장치들이 여러 층위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로마 판테온(Pantheon) 
이미지 제공: Heracles Kritikos/Shutterstock.com



분리와 연결의 공간 구성은 미술관 내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이는 비교적 단순한 평면의 그리스 신전에서도 발견되는 특성이다. 신전 내부의 공간은 순차적이다. 경계 열주인 포르티코(portico) 뒤로 반개방적 전실인 프로나오스(pronaos)이 있으며, 그 뒤의 중심부에 가장 신성한 공간인 신의 처소, 즉 나오스(naos)가 위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술관 내부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순수한 예술성을 향해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 정점 또는 중심점에는 가장 절대적인 예술의 공간을 전제하게 된다.

공간적 위계와 순차성은 알테스 무제움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고대 혹은 고전 작품들을 겨냥한 미술관이지만 더 세부적인 분류가 필요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직사각형 평면의 각 변에 배치된 장방형 전시실들로 구획된다. 한편 이 장방형 전시실들로 둘러싸인 무제움의 중심부에는 핵심 공간인 로툰다(rotunda)가 마련되어 있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Panthon) 신전과 같은 원형 평면 위에 반구형 돔이 얹힌 로툰다 공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스러움을 대표하는 공간 유형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알테스 무제움의 로툰다는 건축물의 중심이자 개별 전시공간들이 모두 연결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로툰다의 대공간은 돔 최상부의 둥근 창(oculus)을 통한 천광(zenith lighting)에 의해 채광되곤 했다. 장엄하고 거룩한 감정을 일으키는 천광은 미술관 건축에서 자주 애용되는 채광 방식이었다. 알테스 무제움의 로툰다는 천광 효과를 통해 공간 가장자리에 정렬된 신들의 조각상을 밝히며 판테온과 같은 ‘신들의 전당’을 연상시킨다. 천광 방식은 훌륭한 조각 전시공간의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성스러움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피에트로 안토니오 마르티니(Pietro Antonio Martini)
 <Exposition au Salon du Louvre en 1787> 1787 
Etching and engraving 32.2×49.1cm The Elisha Whittelsey
 Collection, The Elisha Whittelsey Fund, 1949



살롱, 갤러리, 앙필라드


알테스 무제움의 전시공간을 ‘장방형 격실’과 ‘자기중심적 로툰다’로 함축한다면, 이를 전시공간의 두 가지 보편적 유형인 ‘살롱(salon)’과 ‘갤러리(gallery)’와 각각 연결지어 볼 수도 있다. 살롱과 갤러리는 공공 또는 사립의 미술관이나 미술 전시공간에 부여된 개별 명칭에서 종종 등장하며 매우 친숙한 용어인데, 여기서는 그 어원에서 비롯된 공간적 특성에 비추어 살펴볼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을 예로 들어 보자. 박물관으로 전환되기 이전의 루브르 궁전에서도, 로툰다와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이되 정사각형 평면을 지닌 대공간 ‘살롱 카레(Salon Carré)’가 있었다. 이곳은 왕립 예술 아카데미 주최로 1725년부터 전시를 개최하며 예술의 발전에 공헌했다. 당시 살롱전의 풍경은 피에트로 안토니오 마르티니(Pietro Antonio Martini)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거대한 벽면에 회화 작품들을 빽빽히 걸어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원래 살롱은 대저택의 응접실을 의미하는 단어였고 궁전에서는 외교 공간으로 활용되는 장소를 지칭했다. 예술 작품들로 아름답게 꾸며진 살롱은 주인의 우수한 취향을 뽐낼 수 있는 곳이었다. 루브르 궁전의 살롱 카레는 정육면체 볼륨에 가까운 높은 천장고의 공간이므로 로툰다처럼 중심성을 띤다. 그러므로 응접실에서의 사교처럼, 관람객들은 정적으로 예술을 감상하게 된다. 즉 한순간에 총체적인 예술적 인상이 만들어지는 완결된 폐쇄적 예술세계였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무한성장미술관(Musée à croissance illimitée)> 
1931 Sketch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또 다른 전시공간은 그랑 갤러리(Grande Galerie)였다. 루브르 박물관이 최초 개관할 때, 살롱 카레와 더불어 핵심 공간으로 각광 받았던 그랑 갤러리는 옛 루브르 궁과 인근의 튈르리 궁전(Palais des Tuileries)을 센 강변을 따라 길게 연결한 통로형 건축이었다. 갤러리는 복도 또는 회랑을 뜻하는 단어이므로, 좁고 길며 비교적 높지 않은 볼륨의 공간 형태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갤러리 유형의 전시공간은 상대적으로 동적이고 순차적이며 개방적인 예술 감상 공간이다.

갤러리는 이동 축과 직교하는 격벽에 의해 분할될 수 있다. 이는 모든 격실이 별도의 복도 없이 일렬로 병치되어 연결되는 앙필라드(enfilade) 형식의 공간 구성과 접목된다. 그랑 갤러리도 실제로는 앙필라드의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앙필라드를 통해 격실마다 예술적 경험이 세분화되고 또 함께 구성된다. 구획된 칸마다 설치된 천창을 통해 천광 효과가 이어지며 다채로움과 풍성함이 더해진다. 천창과 앙필라드가 결합된 장방형 격실 체계는, 최초의 신축 미술관 사례인 덜위치 회화 갤러리(Dulwich Picture Gallery)에 이미 적용되었을 만큼 유용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Cubism and Abstract Art> March 2, 1936-April 19, 1936  
Photographic Archive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New York Photo: Beaumont Newhall



다양화, 세속화, 혹은 근원적 신비로움을 향해



20세기 들어 미술관 건축은 외양상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순수한 흰색 상자와 같은 근대 건축을 통해 19세기 전통으로부터 급격히 대립되는 듯했다. 예를 들어 단순한 흰색 큐브의 전시공간이 소용돌이처럼 끝없이 증축될 수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무한성장미술관(Musée à croissance illimitée)> 설계안은, 전통적 미술관 개념의 신성모독과도 같았다.

동시대 미술계에서도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전시공간 개념이 공명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의 1936년 전시 <큐비즘과 추상미술(Cubism and Abstract Art)>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예술 작품들은 백색 벽면을 바탕 삼아 ‘고립된 오브제(isolated object)’처럼 배치되었다. 종교개혁으로 허례와 장식을 걷어낸 개신교 성당처럼, 벌거벗어 부활한 새로운 성스러움의 표상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미술관들의 제안은 지속된다. 정유공장 같은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미술관 건축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는 듯했다. 소변기나 배관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인된 시대를, 파이프와 덕트로 뒤덮힌 미술관 입면을 새로운 열주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예술이 변화된다면, 예술 작품을 담는 공간도 변화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술을 위한 공간’이라는 소명뿐이다. 미술관 건축은 예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했다.



Chengdu Natural History Museum 
© Pelli Clarke & Partners + CSWADI Photo: Arch-Exist



‘예술은 아직 성스러운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성스러움 자체가 무엇인지 묻는, 철학적 난제가 수반되어야 하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예술 작품을 통해 신성함에 도달하려 했던 바벨탑과 같은 예술적 태도는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신앙이 확산된다. 일상의 세속적 형태가 예술로 ‘발견’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문턱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공 예술, 일상 예술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성과 속의 경계는 예전 같지가 않다. 부티크와 같은 상업 건축이 노골적으로 미술관을 모방한 지 오래되었고, 미술관 건축 역시 세속적인 건축의 수법을 거리낌 없이 차용하고 재현하는 현실은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건축의 문제의식에서 성스러움의 담론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리풀 개방형수장고 지명설계공모’에서 헤르조그 & 드뫼롱(Herzog & de Mueron)의 제안이 당선되었다. 공개 설계심사에서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는 예술 수장고가 지녀야 할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예술의 공간’은 백화점처럼 모든 것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처럼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아무리 시민들을 향해 ‘보이는 수장고’라 할지라도, 개방성은 적절한 수준에서 최소화되어야 하며, 본질적으로 예술적 미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폐쇄적인 상자’의 신비로움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Da Yu Art Museum © Yuan Architects



그의 표현은 ‘수수께끼’, ‘신비로움’, ‘호기심’과 같은 단어들로 묘사되었으나, 이는 포괄적 의미의 ‘성스러움’과 어렵지 않게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성스러움의 어원이 ‘지정되고 제한되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사케르(sacer)’뿐 아니라 ‘신비로움 또는 신’ 자체를 의미하는 ‘누멘(numen)’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알 수 없이 신령한 무언가를 성스러움으로 지정, 제한하기에 앞서 먼저 감각되는 본능이 바로 신비로움의 감정 아니던가. 신비로움은 성스러움의 세계로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과도 같다. 성스러움과 관련된 질문은 옆으로 제쳐 두더라도, 예술 작품과 신비로움의 관계는 답하기 어렵지 않다. 뛰어난 예술 작품의 첫인상은 예측불가한 수수께끼, 미스테리와 같다. 예술의 공간인 미술관의 건축 역시 다르지 않다. PA


글쓴이 남성택은 2013년부터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며, 프랑스 공인건축사, 스위스 건축학 박사다. 2019년 뉴욕대학교 The Institute of Fine Arts의 방문학자였다. 『오늘의 건축을 규명하다』(2019)를 번역했으며 건축전문도서 시리즈 『아키라우터』(2021, 2022, 2023)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을 중심으로 디자인, 도시 이론에 이르기까지 스케일 구분 없이 삶과 연결된 인위적 공간 환경에 대한 구성, 구축, 공간 이론 연구 및 건축설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글쓴이 이단비는 건축학 박사이며 한양대학교 건축-오브제-도시(Architecture-Object-Urbanism, AOU) 이론 연구실 소속 연구원이다. 2010년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캠퍼스(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건축학사, 2012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에서 건축석사를 취득했다. 2016년부터 남성택 교수의 지도 아래 ‘19세기 예술적 성스러움의 건축으로서 미술관과 20세기 초의 성상파괴적 변화’라는 제목의 연구를 수행했고 2024년 2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Lausanne, 
Lausanne, Switzerland © Barozzi Veiga



Special Feature No.2

1. 바로찌 베이가(Barozzi Veiga)

Q. 여러 미술관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주요 프로젝트와 각각의 특성에 관해 이야기해준다면.

:  미술관 건축은 우리의 커리어 시작 단계부터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11년, 스위스 로잔의 새로운 예술지구 플랫폼 10(Platforme 10)의 마스터플랜에 참여하게 됐을 때 방향성은 보다 분명해졌다. 10년 간의 도시 개발 끝에 진행되는 플랫폼 10은 로잔 중심부, 옛 기차 수리 차고가 있던 자리에 2만 5,000㎡ 규모의 예술 허브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복잡하고 혼재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주요 예술기관 세 곳, 주립미술관(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이하 MCBA), 사진예술 박물관(Musée de l’Elysée), 현대 디자인 응용예술 미술관(Musée de Design d’Arts appliqués Contemporains)을 연결한다.

1만 개가 넘는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MCBA는 로잔의 새로운 변화의 주체로 예술적, 문화적 활동을 영위할 진보적인 미래를 상징한다. 아치형 창문, 긴 홀, 높은 층고, 순환 통로 등과 같은 형태를 적용했고, 내부는 유기적인 방식의 플라스터와 테라조의 그레이 색조를 바탕으로 자연광을 확산시켜 밝고 진취적인 새로운 스테이션 공간을 구축코자 했다.

그리고 같은 해 말, 빌라 플란타(Villa Planta)를 확장한 분드너 쿤스트뮤지엄 쿠어(Bündner Kunstmuseum Chur) 디자인에 착수했다. 도시의 앙상블을 위해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확장된 건물 사이 건축적 대화가 오가는 연속체로 확립될 수 있도록 구조와 장식을 바탕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편 파사드의 구성 체계를 조정해 표현력과 자율성을 강화한다.


Q. 미술관 건축물은 여타 프로젝트와 차이점이 있는가.

:  무엇보다 공공건축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성을 기조로 우리는 각 기관의 특성을 드러내는 건물을 설계한다. 물론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이 산재한다. 대표적으로 채광이다. 빛이 어느 쪽에서, 얼마나 비추는지 등이 미술관 건축에선 중요한 요소다. MCBA의 경우 꼭대기 3층 천장 전체를 뚫어 풍부한 일광을 유입하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공간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작품이 손상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강한 직사광선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양장치를 덧대 빛의 양을 조절했다. 일차적으로 반사된 빛은 전시공간 내에서 유려하게 발한다. 3층을 제외한 각 층의 전시실은 빛의 강약을 조절해 관람객들의 시각적 환기를 이끌어 내는 동시에 생동감 있는 전시공간을 형성한다.

외관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으로 설계했다. 광장 남쪽의 경우 빛이 거의 차단되도록 설계했고, 이와 반대로 북쪽은 투과성을 열어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건축물 겉면에 돌출된 부분이 차양장치의 역할을 하며 자연광을 일차적으로 걸러 실내로 유입한다.


Q. MCBA에 관해 더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차 트랙과 평행한 외관, 바(Bar) 타입의 특징적 파사드 등 도시의 주변 맥락과 상호작용하는 흥미로운 건축 요소들이 많다. 보다 자세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한다면.

:  로잔시는 당시 현존하는 대부분의 구조물을 철거하면서도 특정 건축적인 파편은 유지하기를 원했다. 추구하는 바가 굉장히 명확했기 때문에 설계보다 개념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광장으로서 새로운 미술관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 오래 간 고민했다. 이후 프로젝트는 두 가지 본질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도시 공공공간의 의의, 선재성과 정서적인 관계의 구성이 그것이다.

즉 도시의 정체성과 MCBA의 주요 디자인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것이 프로젝트 성취 측면에서 주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대표적으로 미술관 로비에 투영됐다. 천창, 측창으로 다량의 빛이 들어와 가장 밝은 공간인 로비는 실외만큼 실내에도 충분한 밝기를 확보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동선을 유도한다.

더욱이 초기부터 미술관과의 직접적이고 강렬한 협업을 구축함으로써 전시공간의 다양한 요소에 대해 열린 토론을 진행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중요한 과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명확한 전시 레이아웃, 높은 수준의 기후 및 조명 제어 및 전시공간 측면에서 최대의 유연성을 실현할 수 있었다.


Q.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사회적, 생태학적 소용돌이에 직면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건축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저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프로젝트들과 마스터 피스의 차이는 분명하다. 새로운 것을 드러내고 그것이 놓인 맥락 안에서 전에 없던 관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말이다. 자명하게도, 이는 기술적이고 건설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성찰을 요구한다. 마스터 피스의 탄생은 바로 이 자극의 총체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건축물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하나의 상징, 영감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Q. 미술관뿐 아니라 상을 수상한 폴란드 슈체친 필하모닉(Szczecin Philharmonic)에서도 바로찌 베이가만의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건축적 측면에서 미술과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  미술관은 연속적인 공간에 가깝고 필하모닉은 중앙 집중돼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공통적인 부분이 더 많다. 특정 기능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중을 위해, 대중에 의해 완성되는 문화적이고 시민적인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용도로 이용되든 공공건축물은 도시와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와 위치를 점하기 마련이다. 그

렇기에 미술관이나 필하모닉 프로젝트의 구상 초기 단계부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 수반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요소들은 모두 부가적이다. 장소의 특수성과 형식의 자율성, 둘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이 구현된 건물이야말로 과거와 공명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제공함으로써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Q. 향후 프로젝트에 대해 귀띔해준다면.

:  현재 스페인과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영국, 아랍에미레이트,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곧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북유럽 새로운 미술관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파브리치오 바로찌(Fabrizio Barozzi)와 스페인 출신 알베르토 베이가(Alberto Veiga)가 이끄는 바로찌 베이가는 200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설립됐다. 유럽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바로찌 베이가는 2015년 폴란드 슈체친 필하모닉으로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축상인 ‘미스 반 데어 로에 상(Mies van der Rohe Award)’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다. 2018년에는 분드너 쿤스트뮤지엄 쿠어를 통해 엄격한 심사기준을 바탕으로 영국 왕립건축협회가 수여하는 ‘RIBA 국제상(RIBA Award for International Excellence)’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에서 예술, 건축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인 ‘이탈리아 대통령상(Premio Presidente della Repubblica)’를 수상하며 그 실력과 입지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M+, Kowloon, Hong Kong 
© Herzog & de Meuron Photo: Kevin Mak



2. 헤르조그 앤 드뫼롱(Herzog & de Meuron)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하 HdM)은 “모든 종류의 형태와 재료의 관습적인 용도를 뒤집고, 지역과 용도의 특성에 맞게 재료를 재해석해 건축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독특하고 유니크한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 각 지역 현장에 맞춘 특성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들의 작업은 단순 건축물을 넘어 지역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폐전력 발전소에서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있다. 건축 리모델링의 성공적인 선례로 언급되는 테이트 모던은 계단식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서로 겹쳐 쌓이는 수직적인 느낌이 시각적인 흥미를 높이는 한편 건물 외관은 벽돌과 콘크리트의 조합을 통해 견고함과 무게감을 더한다. 과거 이미지를 탈피하고 런던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테이트 모던은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 가치를 높인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활용된 버드 네스트(Bird’s Nest) 경기장도 빼놓을 수 없다. ‘새의 둥지’라는 뜻의 이 건축물은 ‘중력’을 키워드로 무게의 한계를 균형으로 극복하는 ‘불안한 안정’을 형상화했다.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구조, 중력과 기타 하중의 힘을 견뎌낸 설계 방식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올림픽에서도 버드 네스트는 최고의 주경기장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처럼 HdM은 단순히 일상생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축물에서 나아가 디자인과 문화 진화에 지속적인 영감을 선사하는 물리적인 구현체를 위시한다. 마틴 크뉘젤(Martin Knüsel)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적 맥락과 문화, 환경에서 건축적 영감을 받고 재료, 재질, 공간과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해나가는 HdM의 건축 이야기를 들어보자.



Erweiterung MKM Museum Küppersmü, 
Duisburg, Germany © Herzog & de Meuron 
Photo: Simon Menges



Q. 예술과 작가, 큐레이터와 대중을 위한 공간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  예술 공간이 예술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말해 건축가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공간에서 유연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HdM은 예술가와 큐레이터 그리고 예술 그 자체가 다양한 요구사항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비율, 크기, 형태, 재료 혹은 조명 등이 차별화되는 흥미로운 공간과 갤러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과 상호 작용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술관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 주어진 문화적 또는 도시적 맥락에서 미술관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은 우리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든다.


Q. HdM의 예술 공간은 지속적으로 공공공간의 창조를 강조해왔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해준다면.

: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Turbine Hall)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발전소에서 도시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급진적인 유형의 공공공간으로 ‘발견된 공간(found space)’은 거대한 전시 설치의 장이자 기관의 심장부 그 자체다. 테이트 모던은 미술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엘리트주의 공간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공공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꼭 터바인 홀처럼 거대한 크기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 있는 송은을 예로 들어보자. 왕복 10차선 도로에 위치한 송은은 예술 기관으로서 친밀하고 대중적인 장소로 놀라움을 자아내는 한편 새로운 형태의 작은 공공정원으로 기능한다.

도시에서 가장 번화하고 상업적인 지역 중 한 곳인 청담동 중심부에 자리한 이 비영리 전시공간은 보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여 한국 작가들과 국제 동시대 미술을 조명하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술과 사람들을 함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예술과 예술가, 대중과 컬렉터 모두에게 유효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성된 작은 정원은 방문객을 기관으로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강남의 주요 거리 중 하나인 도산대로와 건물 반대편의 소규모 도심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Q. 최근 지속 가능한 미술관, 친환경 디자인 등 기관의 원칙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HdM은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

:  건물을 건설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자원을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생산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더욱이 예술 공간의 경우 가치 있는 컬렉션 보호를 위해 온도, 채광, 습도 등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이는 높은 에너지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건축가와 클라이언트는 건물을 짓고 운영할 때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만 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설계한다.

서울에 조성되는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의 경우 콘크리트의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지 자체에 있는 흙이나 편마암, 기반암과 같은 요소를 건물 덩어리에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외부에는 흰색 태양광 패널 층이 전체 스토리지 블록을 감싸 운영에 사용되는 에너지양의 1.5배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새롭고, 환경친화적인 기술이 햅틱의 특성과 건축의 표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관찰하는 일은 많은 흥미로운 지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미술관은 보존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변화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미술관과 건축가 역시 스스로를 변형시키고 재창조할 의지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 Art, Hong Kong 
© Herzog & de Meuron Photo: Iwan Baan



Q. 혁신적인 접근 방식과 예술 소비의 변화하는 특성을 고려할 때 미술관 건축의 미래에 대한 HdM의 비전은 무엇인가.

:  정해진 답은 없다. 예술 공간은 컬렉션과 큐레이터 그리고 주변 공동체에 적합한 규모로 조성되어야 한다. 어떤 기관은 완전한 유연성을 갖는 것이 중요할 수 있고 혹은 정확하게 구분되는 일련의 공간이나 이웃이나 도시가 이용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뤄야 한다. 예술이 어떻게 국경을 허물고 장벽 없이 다가갈 수 있는지, 어떻게 기존의 예술 공동체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지 말이다.


Q. HdM이 생각하는 건축이란 무엇이며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  건축은 단지 물리적인 그리고 건축 그 자체의 다양함에 의해 존속될 수 있는 것일 뿐,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사상과 개념을 전달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바로 건축의 물질성이다. 초기에 우리는 모든 종류의 형태와 재료에 대해 관습적인 용도를 뒤집는 수많은 실험을 했고 그것으로부터 찾아낸 숨겨진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것이었다. 우리는 설계 의뢰를 받아들이기 전, 과연 상업적인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을지 여부를 자문한다. HdM의 강점은 모순을 허용하는 건물을 개발하는 데 있다. 오직 한 가지 용법이나 형태 또는 이데올로기적 해석이 투영된 프로젝트는 참여하는 것을 지양한다.


Q. 차기 프로젝트 중에서도 특히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어떤 개념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건축적인 측면에서 아카이브와 미술관은 어떻게 다른가.

:  서울시립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의 소장품을 공유하는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금속, 세라믹, 나무, 필름 등 재료별로 각기 다른 기후 조건을 갖춘 4개의 공간으로 조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는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사용되도록 설립되고 있다. 학자와 전문가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완전히 개방되는 이 수장고는 단순히 작품을 보관하는 역할을 넘어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혁신적인 공공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매우 조밀한 방식으로 공개되는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1층과 지하 1층은 기획전을 진행하는 전시장으로 구성된다. 특히 1층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관람객을 초대하고 주변 정원 공간과 원활하게 융합하는 전시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극명하게 다른 두 가지 개념의 공간을 다룬다. 원뿔 모양의 보이드를 적용해 컬렉션의 여러 층위를 개방적으로 드러내는데, 개방적이고 접근 가능한 공간과 폐쇄적이고 내향적인 공간을 동시에 결합한다. 이는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물론 방문객들에게 주요한 건물의 지향 요소로 인식될 것이다. PA



PAMM, Miami, U.S.A. © Herzog & de Meuron
 Photo: Roland Halbe



HdM은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다. 1978년 스위스 바젤에 건축 설계 사무소를 설립해 크리스틴 빈스웽어(Christine Binswanger), 아스칸 머겐탈러(Ascan Mergen-thaler), 슈테판 마바흐(Stefan Marbach), 에스더 줌스테그(Esther Zumsteg) 등의 시니어 파트너들과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미국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2001), 영국 ‘RIBA 로열 골드 메달(RIBA Royal Gold Medal)’(2007), 일본 ‘프리미엄 임페리얼상(Praemium Imperiale)’(2007), ‘MCHAP상(Mies Crown Hall Americas Prize)’(2014) 등 수많은 건축상을 수상했다. 2008년 중국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했고 런던 테이트 모던, 도쿄 프라다 아오야마 등의 프로젝트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 유럽, 미주, 아시아 등지에서 각종 건축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Serpentine Pavilion 2023,
 London, UK Courtesy: Serpentine 
© Lina Ghotmeh Photo: Iwan Baan



3. 리나 고트메(Lina Ghotmeh)


Q . 건축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구상부터 설계까지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  나의 건축 세계는 고향인 레바논 베이루트로부터 시작됐다. 베이루트는 여러 문명을 꽃피운 곳이자 끊임없는 전쟁으로 여러 차례 매몰된 곳이다. 폐허가 된 건물들을 보며 건축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아름다움을 통해 함께하는 삶이 가능하리란 희망을 품었다. 이것이 내가 건축가로 일하게 된 동기다. 자연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풍경, 그 풍경의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다양성과 차이에 의해 풍요로워지고, 화해의 방법으로서의 건축 말이다. 이를 위해 ‘미래의 고고학’이라는 방법론을 구축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과거를 발굴하는 고고학에서 탄생하는 나의 작업은 장소, 환경, 자연, 천연자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Q.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축가로서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  나는 건축에 대해 관계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우리 사이의 연결 고리와 삶을 깊이 관조하고 존중한다. 어떤 도그마(dogma)나 건축 스타일, 전문 용어를 넘어서는 것이다. 오늘날 휴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 생활 환경을 존중하고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휴머니스트적 건축은 자기중심적 행위가 아니라 건축을 통해 의미를 창출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라 하겠다.


Q. 2023년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 프로젝트에 선정돼 <아 타블르(À Table)>를 공개해 큰 화제를 모았다. 어떤 작업인가.

:  <아 타블르>는 무엇보다 장소의 역사와 주변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일체감을 갖고 모여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어떻게 하면 파빌리온이 지식을 쌓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유형학의 역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파빌리온의 어원은 나비를 뜻하는 단어 ‘파피용(papillon)’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시성을 내포한다.

땅에 가볍게 앉은 듯한 주름진 지붕 구조가 이러한 특성을 반영했다. 한편 모임의 공간 측면에선 그리스의 심포지엄(symposium)에서 영감을 얻었다. 의사 결정권자들과 철학자들이 대규모 연회장에 모여 테이블을 놓고 주요한 사안에 대해 함께 결정을 내리던 사회적 이벤트에서 기인해 열린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서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작용을 장려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


Q.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부터 향후 사우디아라비아 알울라에 세워질 현대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뮤지엄 작업을 해오고 있다. 다른 건축물과 비교해 뮤지엄 건축이 갖는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인가.

:  뮤지엄 건축은 본질적으로 비범함을 추구하는 반면 건축가는 ‘일상적인’ 유형학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뮤지엄은 탁월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지기 때문에 탁월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평범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비범함의 장소이자 필수적인 문화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사회적 상호 작용의 한계를 뛰어넘고 비판적 사고를 수용할 수 있으며, 평범한 것을 숭고하게 만들 수 있는 활성화된 장소가 되어야 한다.


Q.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은 당신 커리어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던 작업으로 평가된다. 작업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  에스토니아는 여러 차례의 점령을 견디고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재건해 온 나라다. 그리고 박물관은 이러한 역사의 결정체다. 에스토니아의 문화 수도인 타르투에는 구소련 시기, 발트해 연안 국가 중 가장 큰 비행장 부지가 있었다. 바로 박물관이 세워지는 그 장소다. 과거 공군 기지였던 이곳의 아픈 역사를 변화시켜야 하는 영토적 책임이 따랐고, 나는 타르투의 자연과 기후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과거의 흔적과 소통할 수 있는 서정적 맥락을 끌어내기 위해 박물관이 도시 재생의 기능을 수행하고 열린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옛 활주로를 개방형 플랫폼으로 변형시키고자 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날아올라 미래를 향하듯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능동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박물관 건물과 활주로를 연결한 것이다. 공중에 항공기 캐노피가 떠 있는 듯한 기념비적인 광경, 때로는 활주로를 떠나 무한대로 비상하는 풍경으로 비치는 에스토니아 박물관은 개방된 국가적 정체성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2022년 출간된 안드라스 산토(András Szántó)의 『미래의 뮤지엄 상상하기(Imagining The Future Museum)』에 참여해 미술관 건축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당신이 상상하는 미래의 뮤지엄은 어떤 것인가.

:  자유의 장소이자 학제적 공간이며 삶과 문화로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학습과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고, 우리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줄 곳이다. 하얀 상자와는 거리가 먼 다공성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에 접속해 다시금 확인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Q. 베이루트, 키이우, 타르투 등 당신은 과거의 역사와 상흔이 남은 ‘기억의 장소’에서 자주 작업을 했다. 앞서 말한 ‘미래의 고고학’의 개념이 구체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가.

:  각 프로젝트에 대해 역사적이고 물질적으로 민감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모든 작업은 철저한 역사적 조사 과정을 거쳐 발전되고, 그 결과 건축은 사람들의 기억과 감각을 되살리는 과정에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개입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에 기반해 생태학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구상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 지역의 자원을 사용해 재료의 본질을 표출하고 새로운 미학을 도출해내고자 한다. 나는 건축이 우리 사회에 지식을 구축하는 도구이자 사람과 삶을 돌보는 도구라 믿는다.


Q. 2027년 문을 열게 될 알울라 현대미술관은 현재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  사람이 없는 뮤지엄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뮤지엄과 주변의 자연환경, 농업지대, 지역 사회의 사이를 잇고 소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다양한 요소들을 긴밀히 연결해 참여와 포용, 상호 작용이 가능한 공간을 구축하고 예술, 자연, 문화, 지역 사회의 간극을 좁히고자 한다. 알울라 현대미술관은 흙으로 지어진 건축물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 지식의 장으로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자연과 환경, 예술이 어우러진 현대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창의적인 여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원 파빌리온은 알울라의 독특한 장소적 본질을 반영, 예술과 자연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보여줄 것이다. 갤러리는 광활한 사막부터 오아시스 주변의 미기후에 이르기까지 알울라의 다양하고 놀라운 풍경을 선사하면서 이 땅과 유산에 깃들여진 정신을 일깨우는 공간이 될 것이다. PA


리나 고트메는 1980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건축특수학교(École Spéciale d’Architecture de Paris)를 졸업했다. 2005년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Estonian National Museum) 국제 공모전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2016년 ‘AFEX 그랑프리(Grand prix AFEX)’와 건축 아카데미 ‘Dejean’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2027년 완공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알울라 현대미술관(AlUla’s Contemporary Art Museum) 설계 건축가로 선정됐으며, 매년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해 건축 비전을 제시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 건축가로 초청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Nomadic Museum - New York 
© Shigeru Ban Architects 
Photo: Michael Moran



4. 반 시게루(Shigeru Ban)

자연과 인공은 반(反)의 영역에 놓여 있다. 동시에 무수한 순간을 공유하며 수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건축은 자연과 인간의 기억을 담고 정서를 새겨 나가는 인공의 언어 가운데 하나다. 공간과 구조를 설계하고 조직해 사람들의 생애에 스미는 기능적, 심미적, 문화적 요소를 표현하는 데에 건축의 정수(精髓)가 있다. 건축가 반 시게루는 자연과 인간을 지키는 건축물을 만든다. 대나무, 직물, 재활용 종이 섬유와 같은 비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하며 지속 가능한 건축이 나아갈 수 있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온 그다.

완전한 호기심과 헌신(total curiosity and commitment), 끝없는 혁신(endless innovation), 틀림없는 눈(infallible eye), 예리한 감수성(acute sensibility). 이는 시게루가 2014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할 때 심사위원장 피터 팔룸보 경(Lord Peter Palumbo)이 그를 ‘Architectural Pantheon’이라 칭하며 언급한, 건축가로서 그가 갖춘 덕목이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어 소외된 난민들이 머물러야 하는 곳. 반 시게루가 거기에 있다. 그는 인재(人災)의 원인은 천재지변이 아닌 건축가의 손길로 태어난 건축물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마저 황폐화된 이들을 위한 쉼터에도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음을, 쓸모를 다한 종이 기둥이 건축 재료로써 새 숨을 부여받을 수 있음을 그가 지나 온 궤적이 보여준다.

그렇게 건축가가 건축물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건축가로서 사회에 베풀 수 있는 몫이 존재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 믿음이 반영된 미술관은 어떠한 빛과 그림자의 교차로 설계되었을까. “사람들 곁에서 호흡하며 기꺼이 향하고 싶은 마음을 안기는 미술관, 누구나 언제든 자유로이 오가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상 속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건축가 반 시게루를 서울에서 만났다.


Q.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미술관 프로젝트를 직접 설명한다면.

: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의 별관인 퐁피두 메스 센터(Centre Pompidou-Metz)는 파사드의 개방 가능한 유리 셔터를 통해 내외부가 자유롭게 순환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오이타 현립 미술관( Oita Prefectural Art Museum, OPAM) 역시 유연성을 고려해 만든 곳이다. 외관의 삼나무 버팀대와 적층 목재 그리드는 오이타 전통 대나무 공예품의 패턴에서 영감 받아 완성했다. 뉴욕, 산타모니카, 도쿄 등지를 이동하며 운용했던 노매딕 뮤지엄(Nomadic Museum), 공원과 하나로 통합된 유형인 타이난 미술관(Tainan Art Museum)도 있다.

히로시마 오타케시의 알록달록한 육면체 모양 갤러리 시모세 미술관(Simose Art Museum)은 세토 내해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부지가 히로시마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미술관을 찾는 이들을 꾸준히 늘리기 위해선 시선을 끌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임시 전시관 형태의 컨테이너 갤러리 페이퍼테이너 뮤지엄(Papertainer Museum)을 제작했다.


Q. 당신이 설계한 미술관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있나.

:  퐁피두 메스 센터와 오이타 현립 미술관의 경우, 두 미술관 모두 연결을 통해 안과 밖의 풍경을 잇도록 설계했다. 전자는 도심과 북쪽으로 격리된 소도시라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후자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부지 조건에서는 차이가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닫혀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주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연속성을 건축적 요소로 구현하면 ‘열린 미술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퐁피두 메스 센터는 전면의 올라가는 유리 셔터가, 오이타 현립 미술관은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는 접이식 유리문이 그 역할을 한다. 특히 오이타 현립 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벽과 기둥이 없다. 스크린처럼 옮길 수 있는 가동 칸막이를 설치해 진행 중인 전시를 다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열린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Nomadic Museum - New York 
© Shigeru Ban Architects 
Photo: Michael Moran



Q. 건축가에게 미술관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인가.

:  상업용 오피스 빌딩이나 주택, 아파트 같은 작업은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지만 미술관은 모든 공간을 다르게 접근하고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처음으로 작업한 미술관 프로젝트가 2003년 공모에서 당선되어 맡은 퐁피두 메스 센터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파리에 사무실을 빌리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학생들을 파리로 데려와 퐁피두 센터 옥상에 사무실을 지었다. 종이관과 목재 이음새로 만든 35m 길이의 사무실에서 임대료 없이 6년을 보냈다. 퐁피두 센터는 세계적인 두 건축가 리차드 로저(Richard Rogers)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작업한 혁신적인 건축물이다. 그런 건축물의 분관을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큰 보람을 느꼈다.


Q. 퐁피두 메스 센터 측에서 특별히 요청한 것은 없었나.

:  처음 설계할 때부터 가장 주된 요청이 큰 전시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퐁피두 메스 센터 건축의 주요 목적이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천장이 있어 퐁피두 센터에서 규모 문제로 공개할 수 없었던 큰 작품을 전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퐁피두 메스 센터는 세 개의 갤러리 튜브와 모자 형태로 생긴 목재 지붕 구조물이 그 위를 덮는 구조다. 튜브와 지붕 사이의 공간들을 활용해 넓은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Q. 뮤지엄을 이동시킬 생각은 어떻게 했나. 접근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노매딕 뮤지엄은 2000년에 캐나다 사진작가 그레고리 콜버트(Gregory Colbert)가 본인 작품을 전 세계에 전시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동식 뮤지엄을 원한다며 외뢰해 온 프로젝트다. 뮤지엄 자체를 도시에서 도시로 국가에서 국가로 옮긴다는 발상부터 도전이었다. 건축이란 원래 고정을 전제하는 것 아닌가. 건축물을 옮기려면 쉽게 짓고 해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역사상 그런 뮤지엄은 없었다.

특히 고민했던 부분은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해야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재료를 효율성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고안해 낸 것이 중고 컨테이너다. 컨테이너는 옮길 필요도 없이 어디서든 빌려 재활용할 수 있으니까. 나는 작업할 때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 또 저번과 다른 어떤 도전을 할 수 있을지 늘 묻는다. 도전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않나.



Centre Pompidou-Metz
© Shigeru Ban Architects Photo: Didier Boy de la Tour



Q.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술관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 있나.

:  유연성(flexibility). 미술관뿐 아니라 나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Q. 건축과 미술을 비교한다면.

:  둘은 동기부터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건축은 일반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를 받아 시작되는 반면 미술은 요청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외부에 작가 본인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하는 행위이지 않나. 건축과 미술이 비슷하다고 느낀 경험이 있는데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설치미술을 봤을 때였다.

그는 장소를 둘러본 다음 이를 통해 얻은 영감을 근간으로 조각 작업을 한다고 한다. 건축 역시 부지에서 받는 인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이기에 둘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도 굉장히 건축적이라고 생각했다.


Q. 건축 재료로 나무와 종이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  어릴 때부터 목수가 되고 싶었다. 최근 들어 목재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을 뿐 옛날부터 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다. 버려진 나무 조각을 모아서 작은 모형을 만들곤 했다. 나무와 종이는 사용하기 까다롭다. 철골은 무엇이든 접합을 하면 어느 형태로도 만들 수 있는데 목재는 목재만의 고유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활용법도 따로 있고 다루는 방법도 제한적이다.

그렇게 직면하는 제한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고 해내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어서 나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단순히 아름답기 위한 장식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다. 종이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재료라도 낭비하지 않는 것을 무척 중요시 여긴다. 지관을 건축에 적용하게 된 계기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Q. ‘새로’보다 ‘다시’를 추구하는 건축가인 것 같다. 평소 삶에도 적용되는 가치관인가.


:  새로 사는 건 거의 하지 않는다. 써 오던 물건을 계속 쓴다. (손목 위 시계를 보여주며) 5,000엔(한화 약 5만 원) 주고 산 카시오 시계다. 사용한 지 30년 정도 됐다.


Q. 축가로서의 지향점을 아우르는 한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  혁신(innovation).  PA



Centre Pompidou-Metz
 © Shigeru Ban Architects 
Photo: Didier Boy de la Tour



반 시게루는 195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뉴욕 쿠퍼 유니언 대학교(the Cooper Union) 건축학부를 졸업한 후 이소자키 아라타(Arata Isozaki) 아틀리에에서 근무했다. 1985년 반 시게루 건축사무소를 설립했으며, 1995년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컨설턴트 역임과 더불어 NGO VAN(자원봉사 건축가 네트워크)을 조직했다. 미술관을 제외한 주요 프로젝트로는 후지산 세계유산센터(Mt. Fuji World Heritage Centre)와 라세느 뮤지컬의 복합시설(Musical Complex of La Seine Musicale) 그리고 스와치 오메가 본사(Swatch Omega Headquarters) 등이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 건축 아카데미 금메달(2004), 아널드W. 브루너 기념상 건축부문 세계건축상(2005), 일본 건축학회상(작품 부문)(2009), 뮌헨 공과 대학교 명예박사(2009), 프랑스 국가 공로 훈장 오피시에(2010),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Commandeur)(2014), 프리츠커 건축상(2014), JIA 일본 건축 대상(2015), 테레사 수녀 사회 정의상(2017), 아스투리아스 공주상(2022)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현재 그는 지난 1월 1일 일본 이키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현장에 들어설 가세 주택 설계를 마쳤으며, 러시아 침공으로 부상 입은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Lviv) 시립병원 증축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며 여전히 세계 각국의 재난 현장에 머물고 있다. 또한 다음 세대에게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본인이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믿으며 2023년 4월부터 시바우라 공과대학(Shibaura Institute of Technology)의 특별 초빙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24년 하반기부터 5년간 개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퐁피두 센터의 외관 전경 이미지 제공: 심소미




Special Feature No.3
미술관 건축의 미래와 생태적 전환
●  심소미 독립큐레이터


기후범죄자라는 오명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미술관 건축

2022년 독일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 인근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건설 현장에서 환경단체들이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 이곳은 베를린에 새로 생길 20세기 뮤지엄(Museum of the 20th Century)의 부지였다. 2016년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디자인이 최종 선정되었을 때, 전 세계 미술계는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 견줄 만한 미술관이 베를린에 생길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건축 비평가들은 이 미술관이 미래에 기후 범죄자가 될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이유는 기후위기에 부적절한 건축 자재와 에너지를 과도하게 필요로 하는 건축 구조 때문이었다. 건축물의 주요 자재인 과도한 콘크리트와 투명한 내부 구조가 에너지 소비를 촉진해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 ‘화석연료 시대의 기념비’1)라는 힐난까지 더해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건축가는 콘크리트 사용 범위를 일부 축소하고, 재활용 콘크리트를 도입하겠다는 변경 계획과 함께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스타키텍트(Starchitect)의 디자인으로 건축가의 명성에 의존해 온 미술관 건축에 있어 생태적 고려가 얼마나 부재해왔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20세기 뮤지엄의 사례는 2020년을 전후로 급격하게 고조된 기후위기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생태적 전환이 미술관 건축에서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팬데믹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휴관할 수밖에 없었던 미술관을 떠올려 본다면, 미술관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에 대응책을 마련하고, 도래하는 생태적 위기에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각성이다. 미술관이 정치, 사회,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대안적 상상과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감도 생겨났다.



Het Nieuwe Instituut Podium 
© MVRDV Photo: Ossip van Duivenbode



따라서, 미술관 건축의 미래는 사실상 기후위기의 적신호에 맞선 생태적 실천 방식으로 모색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술관 건축은 문화 경제 효과와 도시 상품화 과정에 일조하면서 서구 남성 건축가들이 점유한 스타키텍트 중심으로 주목받아 왔다. 따라서 오늘날 미술관 건축에 요구되는 생태적 각성은 사실상 건축의 지배적 구조에 맞서 건축의 생태적 가치를 모색하는 대안적 움직임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이러한 동향은 문화 전략가로서 미술관 동향을 관찰해 온 안드레스 스잔토(András Szántó)가 최근에 발간한 『미래 뮤지엄을 상상하기: 건축가와의 24가지 대화』(2023)에서 분석된다.2) 도시 경제적 측면에서 추진되어 온 ‘포스트-빌바오 스타일’이 더 이상 미술관 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있어 미술관 건축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24명의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과 논의를 통해 접근해 보고자 한 것이다.

1990년대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된 뮤지엄 건축 열풍은 기후위기가 전면화된 현재, 지속 가능한 모델이기는커녕 과도한 자원 소비, 에너지 소비 등의 문제로 기후 파괴범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지구 곳곳에서 기후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뮤지엄 건축의 문화 산업적 효과와 경제적 인센티브는 매우 단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미술관은 문화 활동이 야기하는 탄소 배출을 축소하고 친환경적으로 미술관을 지속해 나가는 실천적 측면을 우리 사회에 제시해야 하는 환경적 책임감이 부여되었다. 이는 분명 오늘날 미술관이 곧 문화상품이라는 성장 중심적 경제 하에서 탄소 시장을 암암리에 옹호해 왔던 건축 디자인에 맞선 생태 기반의 건축적 실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건축전 독일관
 <Open for Maintenance> 전시 전경 2023
이미지 제공: 심소미



지속 가능한 미래로 움직이기 위한 미술관 리노베이션3)


1년 전 프랑스에서는 한 미술관의 장기 휴관 계획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의 주인공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인 퐁피두 센터다. 건축물 노후로 인한 보수 공사로 3-4년을 휴관하겠다는 발표였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휴관을 감행해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시민들의 비아냥이 커지자,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퐁피두 센터는 2023년에 예정됐던 폐관 절차를 올림픽 이후인 2024년 하반기로 늦추기로 했다.

퐁피두 센터의 보수 공사는 미술관 건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키는 사례다. 1980년대 개관한 퐁피두 센터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미술관의 소비적 건축화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할 정도로 성공적인 문화 산업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해 왔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앞서 살펴본 베를린의 20세기 미술관의 건축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퐁피두 센터의 경우처럼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퐁피두 센터는 개관 후 여러 번의 재보수에도 불구하고, 첨단 건축 기술을 압도한 시간의 궤적과 파리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서 과도한 사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UCCA Dune Art Museum 
© OPEN Architecture Photo: WU Qingshan



문화 산업과 도시 자본의 유착 관계를 예견한 보드리야르의 비판처럼 예술 작품은 군중이 소비하는 상품이 되었고, 미술관은 마케팅 사이트가 되었으나, 건축물은 소비의 중력으로부터 스스로 견뎌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새로움을 향한 기대가 녹이 슬어 노출된 검은 쇳덩어리로 전환될 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물질성은 서로를 반목하는 대립적 물질성으로 분리된다. 이 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과 불화를 조율하는 것이 바로 리노베이션이라는 물리적 재생 방식일 것이다.

최근 프랑스 문화부가 퐁피두 센터의 개보수 작업에 대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리노베이션의 범위는 건물 표면의 석면 제거 및 부식 처리, 난방 및 냉방 시스템 정밀 검사, 에스컬레이터 및 엘리베이터 교체, 화재 안전 장비 보완, 장애인 접근로 보완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접근성 향상 및 에너지 최적화를 위한 건물의 각종 기능을 전체적으로 수리하는 데 집중된다. 이 5년간의 보수 공사를 두고 퐁피두 센터 측은 ‘내일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명제를 전면에 내세웠다.4)

이는 1977년 퐁피두 센터 개관식에서 프란시스 퐁주(Francis Ponge)가 창조한 신조어인 ‘moviment’라는 개념을 다시금 등장시킨 것으로, 환경적 책임과 역할, 열린 미술관이라는 목표를 강화해 2024년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추가적인 건축이나 증축 없이 현재 건축의 물리적 범위에 머무는 방식으로 환경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목소리는 오늘날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과 건축적 쇄신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핀다.



Buffalo AKG Art Museum 
© OMA Photo: Marco Cappelletti



도시공간과 생태 환경을 향해 열린 미술관 건축


베를린의 20세기 뮤지엄의 건축을 둘러싼 논쟁, 파리 퐁피두 센터의 개보수 계획은 사실상 ‘미술관이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동시대 다수의 뮤지엄에 해당되는 보편적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국내의 상황으로 ‘미술관 건축의 미래’라는 주제를 대입해 본다면, 퐁피두 센터가 전면적으로 시도한 5년의 보수 공사 계획이야말로 급진적인 건축의 방식이라고 하겠다. 한국에서 5년이라면 미술관뿐만 아니라 신축 아파트 단지를 짓고도 남는 시간인 데다, 보수 기간을 기다릴 정도로 한국사회의 인내심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퐁피두 센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건축적 논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두고 함께 분석해 볼 수 있다. 고철 덩어리와 같은 퐁피두 센터의 유약한 외피에 대비되는 과천관의 강인한 화강암 건축은 그로 인해 구시대적 건축으로 보일 수 있는 편견에 맞서는 물리적 재생 방식과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쉼 없이 요구되는 장소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정다영 학예사가 밝힌 “건축의 속도는 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미술관 공간은 물리적인 변형을 요청받고 있다. ‘현대’ 미술관이 현대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여 물리적인 재생을 앞두고 있는 셈”5)이라는 문제의식과도 상통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제는 생애 주기를 고민하는 무수한 미술관들의 고민과 맞닿는다.

미술관 건축이 과거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빌바오, 테이트 모던 등과 같이 건축적 개성과 혁신으로서 주목받았다면, 최근에는 미술관이 지닌 고유한 건축적 자원을 도시환경 및 도시경관과 연결해 열린 건축성을 구축하는 시도로 변화되는 중이다. 국내 미술관 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건축적 입지와 미술관을 연계하는 프로젝트로서 건축의 물리적범위와 실천에 대한 도전적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MMCA 과천 프로젝트’ 일환 2021년 과천관 순환 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 쉼터’와 2022년의 ‘옥상정원’을 들 수 있다.



Water Conservancy Center
 © DnA_Design and Architecture
Photo: Wang Ziling



특히 3곳의 순환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 버스 쉼터로서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2021)는 건축적 실천을 인식하는 고정관념에 맞서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을 예술적 경험이라는 장으로 매개하며 미술관의 공간적 범위를 주변 환경으로 확장시켜 보인다. 이는 호수와 산 등허리를 뱅그르르 돌아 서울대공원과 동물원을 지나 산의 능선에 가까워지며 미술관에 도달하는 버스의 여정을 아우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다수의 관람객이 도달하는 데 이용하는 미술관 버스의 경로까지 공간적 범위를 넓히며 미술관 밖의 환경 및 이웃과 소통하려는 시도다. 버스를 타고 산을 굽이굽이 돌아 미술관으로 향하면서 경험하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을 예술 버스 쉼터에서의 건축적 개입으로 연결해 봄으로써, 미술관과 도시환경 그리고 생태적 이웃에 대한 폭넓은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천관이 주변 환경을 건축적으로 매개하고 있는 실천과 관련해 살펴볼 해외 프로젝트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건축, 디자인 및 디지털 뮤지엄 헷 니우어 인스티튀트(Het Nieuwe Instituut)를 들어 볼 수 있다. 이 뮤지엄에서는 2022년에 건축가 MVRDV를 초대해 미술관의 건축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설계한 29m 높이의 옥상 플랫폼인 ‘더 포디움(The Podium)’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바 있다. 도시 전체로 시원하게 열린 전망과 하늘로 올라가는 분홍색 계단 디자인이 시각에 먼저 들어오나, 이 옥상 플랫폼의 디자인에서 주요하게 고려된 것은 친환경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건축 재료다.

옥상 플랫폼을 설계하는 데 사용된 재료는 임시적 비계 구조 및 바닥 마감 재료로, 프로젝트 후 재사용이 가능한 재료를 도입하며 생태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건축적 의도를 지닌다. 또한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뮤지엄의 옥상 공간을 관람객에게 열린 공간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도시공간을 새로운 관점으로 경험하게 한다.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이 디자인한 게티 센터
(Getty Center)의 센트럴 가든(Central Garden)
이미지 제공: 심소미



미술관의 생태적 연결고리는 가깝게는 전시공간의 주변부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술관의 통로, 중정, 공용공간, 정원 등 전시장 주변부에 존재하는 여러 내외부 공간으로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게티 센터(Getty Center)는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화이트 풍의 미니멀하고 우아한 건축물로도 유명하지만, 이 뮤지엄의 진짜 명소는 따로 있다. 바로 작가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이 디자인한 ‘센트럴 가든’이다.

“정원은 매 순간 살아있고 변화하고 있다”는 모토를 바닥에 새길 정도로 생태계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중요시한 이 정원에는 자연 계곡과 연못, 나무 미로, 분수대, 산책로 등이 조화롭게 조성되고, 다양한 관목, 허브, 꽃이 매 계절을 빛내고 있어 1997년 이후로 근 27년간 게티 센터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주요 명소가 되었다. 또한 정원은 멀리 보이는 산맥, 로스앤젤레스의 도심 전경 그리고 멀리 아래로 굽이치는 태평양의 잔잔한 풍경을 미술관 건축의 시각적 범위로 매개한다.

앞서 소개한 세 뮤지엄의 사례는 ‘미술관의 건축이 어떻게 문화적 장을 넘어 도시 환경과 생태 환경 사이의 간극을 매개하고 연결해 나갈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도전적으로 응답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꽃의 향기에 심취하고, 자연의 다양성을 음미하고 놀라는 순간들, 도시공간의 스카이라인에 넋을 놓기도 하고, 일상 공간의 토폴로지(topology)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장을 미술관의 건축적 실천이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교감적 측면은 미술관 건축이 조경, 이웃, 도시환경과 긴밀하게 상호 교감하며, 일상과 문화적 경험의 간극을 생태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FLUGT Refugee Museum of Denmark
 © BIG - Bjarke Ingels Group 
Photo: Rasmus Hjortshøj



미술관 내부 공간 조성에 있어서의 전환

리노베이션 및 개조는 건축에서 생태적 실천을 위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매번 새로운 전시공간을 구축해야 하는 미술관에서는 전시공간 조성 시 주요하게 고려되는 사안이다. 2023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건축전에서 건축적 실천은 특히나 생태 위기와 관련한 전환에 주목해 재료, 디자인, 시공, 유통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됐다. 이를 전면적인 주제로 내세운 독일관의 경우, 바로 이전 회차인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폐기된 자료를 40여 개의 국가관으로부터 수집해 이를 현장에서 워크숍을 통해 재활용하는 프로젝트 ‘Open for Maintenance’를 전시 기간 내내 수행했다.

1980년대 베를린의 스쾃(squat)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독일관 전시장 전체를 건축 폐기물을 수집하고 처리하는 재활용 센터 혹은 업사이클 센터 변모시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빼곡히 쌓인 널빤지 더미, 말린 카페트 더미는 하나의 전시를 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건축 폐기물들이 등장하는지를 관람객에게 의미심장하게 전한다. 이 폐기물은 전시 기간 내 현장 워크숍을 통해 리폼되고 리사이클 되어 베니스 내 신청자에게 전달되는 유통구조를 지니고 있어, 로컬 자원, 에너지 절감, 재활용, 건설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건축 요소를 얻는 것에 대한 발상을 전환시켜 보인다.


비엔날레가 소비한 건축 자재들이 다른 사물이 되어 도시와 교환 관계를 형성한다는 계획이 갖는 과정처럼 전시장에는 이에 참여하는 테크니션, 활동가, 제작자의 움직임이 역동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매년 수백 톤의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비엔날레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자원을 생태적으로 순환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의식과 창의적 관점을 전한다.



FLUGT Refugee Museum of Denmark
 © BIG - Bjarke Ingels Group 
Photo: Rasmus Hjortshøj



전시 제작과 관련한 생태적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국내 미술관에서도 최근 탄소 발자국 절감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찍이 부산현대미술관에서 2021년에 선보인 전시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은 미래 뮤지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전시로 평가받았다.

전시 제작의 미학적 측면에서 이전 전시의 폐기물을 그대로 노출해 새로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소비와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는 동시에 재활용에 대한 미학적 도전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전시구성이 특히나 돋보였다.

전시에서는 전체적으로 석고벽 대신 조립식 모듈 벽체를 사용하고, 항공 운송을 최소화해 로컬 제작을 유도하고, 페인트와 잉크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 다양한 경로와 형태로 생태적 실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성공적인 전시와 작품을 위해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하고 막대한 양의 전시 폐기물을 배출해 왔던 미술관의 관행에 대한 제도 비판적 건축 실천이 수행된 것이다. 이 전시를 들어 언급한 온실가스 감축, 친환경 자재 사용, 폐기물 감축 및 재활용, 에너지 사용 절감 및 재생에너지 사용을 통한 생태적 전환은 오늘날 미술관에서 전시 제작 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필수적인 선언이 되어가고 있다.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설치 전경 2021 사진: 박수환



성장 중심의 건축관에 맞서는 생태 공유지를 항하여


『래디컬 뮤지엄』의 저자 미술사학자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동시대 미술관의 비전을 “이미지의 층위, 즉 새로운 것, 쿨한 것, 사진 찍기 좋은 것, 잘 디자인된 것,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것의 층위에서 동시대성이 상연되고 있다”6)고 말하며 전 세계적으로 참여 경제에 동참하기 급급한 미술관을 비평적 관점으로 조망했다. 비숍의 견해는 미술관 건축의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미술관 건축에 대한 미래적 가능성은 결코 문화 경제와 도시 상품적 측면에서 평가할 수 없다. 전 지구적 삶을 위태롭게 하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생태적 전환 없이는 어떠한 경제적 효과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건축 모델을 생태적으로 도모하는 것은 성장중심주의와 소비적 건축 방식에 탈피해 건축의 사회적 역할, 공공성을 모색하는 대안적 실천과 관계가 깊다.



Musée de la Marine 
© Maxime Verret for h2o architectes and Snøhetta
 (scenography Casson Mann)




이는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Mark Fisher)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에서 관람객 없는 박물관으로 등장한 한 발전소의 디스토피아적 장면과도 관계될 것이다.7) 자원 추출주의의 공모자이자 기후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한 미술관 건축의 생태적 전환은 미래 세대에게 미술관을 특권적인 공간이 아닌, 위기에 맞서 사고의 전환을 도모하고 친환경적 행동을 촉구하는 실천의 공간으로서 다가가게 할 것이다.

또한 미술관 건축을 문화 경제적 측면에서 소비해 온 경제사회적 행태를 경계하고, 주류 건축의 패러다임에서 소외되어 왔던 친환경적 건축 디자인 방식에 대한 새로운 챕터가 전개될 것을 예고해 보인다. 이렇듯 심화된 기후위기의 세계에서 미술관 건축은 성장 중심 사고관에 맞서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대안적 공유지로서 내일을 향해 고치고, 재활용하고, 교환하고, 도시공간과 상호 소통하며 공생하는 생존 모델을 어느 때보다도 열띠게 모색 중이다. PA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 전경 2021 부산현대미술관



글쓴이 심소미는 파리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이자 연구자로, 신자유주의 도시와 예술 실천의 관계를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도시연구에 걸쳐 탐구하고 이를 큐레토리얼 담론으로 재생산하는 데 관심을 둔다. 2023년 프리즈(Frieze)-브레게(Breguet) 파트너십 큐레이터를 역임했고,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시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각주]
1) Criticism mounts of ‘climate killer’ modern art museum in Berlin, The Guardian, 2022.11.27 참조
2) András Szántó, Imagining the Future Museum. 24 Dialogues with Architects, Hatje Cantz, 2023
3) 퐁피두 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교 분석하는 글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다영 학예사가 기획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의 주제를 확장한 앤솔로지로서 발간된 출간물 『미술관을 위한 주석』(안그라픽스, 2023)에 기고한 필자의 글 <에이징 뮤지엄: 시간을 재영토화하기>의 일부를 발췌해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4) 퐁피두 센터 웹사이트(centrepompidou.fr), 프랑스 문화부 프레스 참조, 2023-2024
5) 정다영 외 공저, 『미술관을 위한 주석』, 안그라픽스, 2023, 참조
6) Claire Bishop, Radical Museology: Or What’s Contemporary in Museums of Contemporary Art?: 우현정 외 옮김, 『래디컬 뮤지엄.』, 현실문화, 2016, 참조
7) Mark Fisher, Capitalist Realism: 박진철 옮김, 『자본주의 리얼리즘』, 리시올, 20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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