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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2, May 2024

주디 시카고
Judy Chicago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 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 ● 이미지 작가 제공

‘The Dinner Party’ 1974-1979 Ceramic, porcelain, textile 1,463×1,463cm Brooklyn Museum, Gift of the Elizabeth A. Sackler Foundation, 2002.10 © Judy Chicago/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onald Woodman/ARS,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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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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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들, 좀 찾아봐! 찾아보라고!(Research! Girls! Research!)” 85세의 거장은 일갈한다. 여성 작가로서,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모로서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고생을 하고 있는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더니 대뜸 호통이다. “내 앞에도 그 이전에도 여성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렸던 선배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는지 좀 찾아보라고!” 기 센 언니의 원조라고 해야 할까. 핑크색 머리, 핑크색 안경과 반짝거리는 스팽글에 눈부신 재킷을 입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뉴 뮤지엄(New Museum)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페미니즘 아트’를 최초로 규정한 시카고의 대규모 회고전 <허스토리(Herstory)>를 개최했고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이를 올해의 전시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의 중심에 팔순이 훌쩍 넘는 나이에도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로 청중과 소통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있었다.



Installation view of <Judy Chicago: Herstory>
 New Museum, New York, 2023 Featuring 
<Extinction Relief>2018  and other works from 
<The End: A Mediation on Death and Extinction>
 Photo: Donald Woodman/ARS, New York



“페미니스트 아트라는 말, 그때 처음 만들어졌지”

작가는 1939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주디 코헨(Judith Cohen). 양친 모두 유태인으로 특히 아버지 쪽은 대대로 랍비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랍비가 되길 거부하고 노조 교섭자로 활동했다.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것이 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덕목이며 덕분에 예술가로 자신의 작업이 변화를 일으키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버지의 영향은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프레스노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Fresno)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때 시작한 페미니스트 미술 프로그램은 아버지가 쓰던 노조와 교섭방법에서 착안했다.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남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페다고지(Pedagogy)였다.”(뉴 뮤지엄, 작가와의 대화, 2023)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작가와 갓 스물을 넘긴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여학생들의 만남은 곧 폭발적 시너지를 낸다. 아직 자신의 시각언어를 완성하지 못했던 주디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조사와 그들의 작업에 대한 연구는 그 어떤 예술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던 영역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주디는 곧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로 옮긴다.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과 함께. 그러나 이제 막 개관한 학교는 수업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화가인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와 함께 ‘여성의 집(Womenhouse)’(1972)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성의 경험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위한 공간이었다.

프로젝트는 센세이션한 만큼 성공적이었다. 시카고는 ‘여성의 집’에 대해 “서양미술 최초의 여성-중심 예술 설치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임신, 출산, 성폭력, 자위, 성차별과 같은 여성에 한정된 경험들이 작업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는 ‘페미니스트 아트’라는 말도 이때 처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나는 끊임없이 여성임을 가리고 없애 가며 작업하라고 배우고 강요당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지겨워졌다. 여성임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이 어때서.”



Installation view inside <The Female Divine>
 2020 Dior’s Spring-Summer 2020 haute couture
 runway show at the Musée Rodin, Paris, FR  
© Judy Chicag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onald Woodman/ARS, New York



“그 작가를 전시할 거면, 내 지원금은 철회하겠소”


‘다름’을 드러내는 것은 가장 전복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성임을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디의 작업은 ‘래디컬(Radical)’ 딱지가 붙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디너파티(The Dinner Party)’(1974-1979)는 ‘여성 역사에 대해 무지한 사회에, 여성의 풍부한 유산이 지닌 현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작했다.


초기 아이디어는 ‘산 채로 먹힌 25명의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25개 도자기 접시를 벽에 거는  것이었는데,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대신 ‘삼켜지고 가려졌던 방식’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5년 동안 400여 명이 참여해 숨겨지고 지워진 선대 여성의 역사와 업적(여성의 삶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이들)을 찾아냈다. 아이디어가 발전하면서 최종적으로는 1,038명의 여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확대됐다.

완성된 ‘디너파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Ultima Cena)>(1495-1498)처럼 저녁 만찬 형태다. 절대자와 12명의 남자 제자 대신 삼각형의 대형 식탁 위에는 39명의 여성이 자리하고, 999명의 이름이 플로어에 새겨졌다. 삼각형의 첫 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유대교, 그리스ˑ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의 이름이, 두 번째 변엔 마르첼라(Marcella)부터 안나 반 슈르만(Anna van Schurman)까지 평등권을 위해 투쟁한 여성들이, 마지막 변엔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아이콘인 앤 허친슨(Anne Hutchinson)부터 여성작가로 개인의 창의적 표현에 거침없었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자리가 마련됐다.




<What if Women Ruled the World?> 2020
Embroidery and brocade on velvet backed fabric
Executed by the Chanakya School of Craft, Mumbai,
India 518.16×365.76×1.27cm Installed in Dior’s Spring-Summer
 2020 haute couture runway show Collection of the Jordan Schnitzer
 Family Foundation © Judy Chicag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onald Woodman/ARS, New York



각 자리에는 자리 주인에 영감을 받은 접시, 러너, 냅킨 등이 놓였는데, 모두 여성 성기를 형상화했다. 회화 특히 추상화가 전통적 남성 작가들의 영역으로 치부됐던데 비해 도자, 섬유 같은 공예는 여성의 시각언어로 분류된 것을 시카고는 오히려 적극 활용했다. ‘여자들이나 하는 것’을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치환하며 가장 컨템포러리한 설치작업으로 풀어낸 것이다. 또한 최근 인물일수록 테이블 위를 점령하다시피 표현한 것은 작가의 위트였다.


파격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작품에 당대 최고의 아트 크리틱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의 힐튼 크래머(Hilton Kramer)는 “디너파티가 예술인가? 그런 것 같다. 요즘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나? 그러나 매우 나쁜 예술이고, 실패한 예술이며, 정치적 대의에 빠져 그 자체로 독립적 예술로의 생명력을 얻지 못했다. 나 같은 남성 관찰자에게는 터무니없이 비방하는 여성 상상력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하고, 교훈적이고, 암시적이고, 화려하게 복음적이며, 재치나 아이러니가 전혀 없다.”


눈물을 쏙 빼놓는 혹평에도 ‘디너파티’의 파급력은 시들지 않았다. 1979년 3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Art Museum)에서 처음 선보인 작업은 전시기간 3개월 동안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작품은 곧 유명 미술관 순회전에 돌입한다. 6개국에서 16회 넘게 전시됐고, 어림잡아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일부 패트론들은 미술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을 전시할 거라면 내가 쓴 수표를 취소하겠다’는 요지였다. 시카고는 “그때야 예술의 힘을, 그 잠재적 힘을 봤다”고 말한다. 예정된 기부를 거부한다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예술이 우리 인간 삶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Birth Garment 2: Flowering Shrub> from the ‘Birth Project’
1984 Dyeing, spinning, weaving, and needlepoint on fabric
111.76×109.22cm Executed by Penny Davidson and Sally Babson
Collection of Albuquerque Museum © Judy Chicago/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onald Woodman/ARS, NY



논쟁과 투쟁 사이…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디너파티’로 첫 단추를 끼운 시카고는 본격적으로 (이른바) ‘페미니스트 아트’의 본령으로 활동한다. 서양미술에 출생을 주제로 하는 도상학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시작한 ‘탄생 프로젝트(Birth Project)’(1980-1985), 권력이 어떻게 남성에게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 ‘권력놀이(PowerPlay)’(1982-1987),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담은 ‘홀로코스트 프로젝트(Holocaust Project)’(1985-1993)로 이어진다. 모두 ‘디너파티’처럼 협업을 기본으로 하며 장시간에 걸친 리서치가 특징이다. “내 예술의 목표는 내 이름을 날리고 싶은 게 아니다. 예술로 공헌하는 데 있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그 출발부터 완성, 전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참여자를 양산하고 관심을 끌어낸다. 이 같은 배경을 담아낸 책도 출판했음은 물론이다.


‘아주 작은 차이’를 드러내는 그의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변동을 가져왔다. 논쟁과 투쟁 사이에서 작가로, 학자로, 연구자로, 페미니스트로 성장한 시카고에 대한 평가는 2002년 브루클린 뮤지엄(Brooklyn Museum)이 ‘디너파티’를 영구소장하면서 일단락됐다. ‘차이’를 드러냈던 페미니즘을 넘어 환경문제, 인종학살, 사회적 불평등 등 의제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근작 ‘최후: 죽음과 멸종에 관한 명상(The End: A Meditation on Death and Extinction)’(2012-2018) 시리즈와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어떠했을까를 가정한 <여성 신성(The Female Divine)>(2022)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대안’을 꿈꾼다.




<Birth Trinity> from the ‘Birth Project’ 1983 Needlework
 on 15.24cm mesh canvas 129.54×330.2cm Needlepoint by
Susan Bloomenstein, Elizabeth Colten, Karen Fogel,
Helene Hirmes, Bernice Levitt, Linda Rothenberg, and
Miriam Vogelman Collection of The Gusford Collection
© Judy Chicago/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onald Woodman/ARS, NY



Installation view of <Judy Chicago: Herstory>
New Museum, New York, 2023 Featuring <Trinity>
1965/2019 and <Rainbow Pickett> 1965/2021
Photo: Donald Woodman/ARS, New York



뉴 뮤지엄의 회고전은 한 개인 작가의 예술세계를 통해 미국 현대미술에서 여성미술사의 복원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 속의 전시로 <숙녀들의 도시(The City of Ladies)>가 열렸다. 최초의 추상화가인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초현실주의 작가 에일린 아거(Eileen Agar), 중세시대 지식인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작가이자 사상가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여성 작가인 오키프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등 80여 명의 여성 및 젠더퀴어 예술가, 작가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모았다.


15세기 작가인 크리스틴 드 피산(Christine de Pisan)의 동명작품 ‘Le Livre de la Cité des Dames’에서 제목을 딴 전시는 여성을 배제한 채 서술된 역사에서 여성을 발굴하고, 회복을 외치며, 여성 작가들이 ‘갑툭튀’가 아닌 역사의 한 축으로 존재했음을 상기시킨다.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기록이 있으매, 존재를 인식한다. 시카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바꾸려면, 너의 시선으로 오롯한 이야기를 쓰라고. PA



Portrait of Judy Chicago
 Photo: Donald Woodma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작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1939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태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수학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여성만이 지닌 서사를 역사와 문화예술의 방면에 녹여내기 위해 회화, 설치작업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로 자신의 예술적 성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 왔다. 2018년 『타임(TIME)』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인 그는 미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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