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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2, May 2024

박성원
Park Sungwon

유리 속의 나

● 조새미 미술비평가 ● 이미지 갤러리 스클로 제공

'유리조형' 전시 전경 2016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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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새미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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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만큼 테크닉이 작품의 내용을 앞서 관람자를 현혹하는 재료는 드물 것이다. 표면 반사가 수반되어 빛의 굴절과 함께 시각적인 화려함이 보는 이의 시선을 강탈하고 만다. 달리 말해 어느 수준의 테크닉을 보유했다면 시각적인 현란함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도 바로 유리다. 흙이자 모래였던 재료는 가열된 상태에서만 형태를 움직일 수 있기에 불의 예술이기도 하다. 1,000℃를 넘나드는 유리를 다루는 과정은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까다롭다. 유리는 양면적인 특성이 있는데 “액체의 기억을 갖고 있는 고체”이자 연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광물질만이 가지는 강인함도 표현된다.

박성원은 이런 유리를 주재료로 인간의 모습을 때로는 추상적으로, 때로는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유리에 관해 “고체와 액체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 매혹과 폭력 사이, 형태와 형태 아닌 것 사이의 가파른 경계선 위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 재료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녹아 있는 유리물의 상태를 ‘카오스’라 지칭하며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 관해 “카오스에게 질서를 갖춘 형태가 되어줄 것을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자신이 유리와 물아일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는 작가가 유리를 주된 매체이자 심리적 동일체로 여기고 있음을 방증한다. 작가의 눈에는 그의 마음이 평온할 때 작업이 웃고 있는 것처럼, 우울할 때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유리조형> 전시 전경 2016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한국에서 유리를 재료로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향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현대도자공예나 금속공예에 비해 그 시작이 조금 늦었다. 영미권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현대 유리예술의 움직임이 워크숍 형태로 한국에 전해졌을 때, 박성원은 그 움직임의 한가운데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산업현장을 제외하고는 현대유리예술을 위한 시설은 미비했다.


1997년 남서울대학교에 설립된 ‘유리조형연구소’ 등을 비롯해 경희대학교, 국민대학교에서 유리 예술에 관한 제도적인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도 몰드에 유리를 부어서 제작하는 캐스팅(casting) 기법이나 여러 유리 조각을 높은 온도에서 녹여 하나로 만드는 퓨즈드 글라스(fused glass) 기법은 구현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나, 유리 불기(blowing)를 할 수 있는 시설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1997년 영국 유학을 마치고 활동을 시작하려 했던 박성원은 1년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유리 조형을 위한 시설과 교육을 책임질 교수직을 담당하게 되었고, 용해로, 유리 가마, 블로잉 시설, 서냉 가마 등 실습실 시설과 관련 교육과정을 수립했다.



<PARADOX of Being Others> 
전시 전경 2011 갤러리 스클로



거대한 혈관

작가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조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념과 입장을 구체화하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상상 속의 파티 Ⅲ>(2016)은 유리 파이프가 공중에 매달려 폭 3m의 구(球)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블로잉 기법으로 제작한 150여 피스의 구불거리는 형상의 유리 파이프를 혈관에 비유했다. 이 기술은 뜨거운 유리를 불에 가열한 후 유리에 부착된 관을 통해 숨을 불어넣어 유리를 부풀려 원하는 형태로 조형하는 수공예 기법이다.


도가니 안에서 끓고 있던 유리를 대롱 끝에 붙여 숨을 불어넣는 순간. 뜨거운 유리 파이프 안에 작가가 내뱉은 숨의 열망과 불안이 공존한다. 유리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작가는 자신의 외부에도 존재하고 있게 되며, 공기는 작가의 외부에서 유동하고 흐르게 된다. 이는 “촉각적으로 주변 환경과의 지각적 교감을 중재”1)하는 상황에 놓임을 의미한다.



<유리조형> 전시 전경 2016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미술가 곽인식은 “나는 일체의 표현행위를 멈추고 사물이 하는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이다”2)라며 예술가가 작품을 ‘만든다’는 접근보다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그런데 도가니에 녹아 있는 유리의 경우, 작가가 유리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 적확한 온도에 맞춰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율동,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몸짓이 없다면 뜨거운 유리가 자신을 보여줄 리 없다. 녹아 있는 유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작업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박성원은 유리의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는 작업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다. ‘얼굴’ 연작(2008-2011)은 핫 캐스팅(hot casting), 블로잉, 퓨징(fusing) 기법을 혼용한 작업이다. 퓨징 기법은 팽창률이 맞는 판유리 혹은 유리봉을 잘라 원하는 형태로 구성한 후에 열을 가해서 서로 녹여 붙이는 기법이다. 이 기법이 어려운 이유는 합치려는 순간 모든 부분의 수축률과 온도가 동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녹거나 깨지거나 서로 붙지 않게 된다. 유리는 색에 따라 수축률이 다르다. 예를 들어 주황색 유리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도가 높아 성형하기 까다롭다. ‘얼굴’ 연작을 위해 작가는 각기 다른 회사의 각기 다른 색 유리봉의 수축률과 녹는점을 가능한 한 범위 내에서 모두 조사, 실험, 기록했다. 작가는 화학적 물성의 변수를 조율해 각기 다른 색을 그 색의 특성을 보유한 상태로 특이한 자소상(自塑像)을 만들었다.



<새> 설치 전경 2010



나무와 유리


이후 박성원은 좀 더 조각가적인 직관으로 작업한 작품을 발표했다.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2013), <생각하는 남자>(2013), <빗속의 남자>(2013), <수염 있는 남자>(2014), <벽에 기댄 남자>(2016), <빅 맨>(2016), <빅 맨 II>(2023)과 같은 작업이 그것이다. 작가는 나무와 유리라는 두 가지 이질적인 실체를 결합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는 이 같은 경우 “작품은 환상(fantasy)의 시간 속에 둘러싸이게 된다”3)고 기술했다. 관람자가 자신의 연상 작용을 투사해 확장된 경험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나무의 형태를 먼저 관찰해 몸의 형상을 찾아 조각했다. 그 후에 유리로 캐스팅할 두상의 크기, 형태, 위치 등을 정했다. 두상의 경우 먼저 흙으로 형상을 빚고, 석고 틀을 만든 다음, 유리물을 석고 틀에 부어 두상을 만든다. 제대로 식히기 위해서는 몇 주가 소요될 터이다. 식은 두상을 그라인딩 및 사포 등으로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 다시 가마 안에 넣어 서서히 온도를 올린다.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고온조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Mask 2> 2009 75×44×8cm




온도가 너무 낮으면 머리카락 형상의 유리 피스가 붙지 않고 깨질 것이고, 너무 높으면 두상이 녹아 주저앉게 된다. 가마에서 두상을 꺼내는 픽업 과정이 무사히 진행되면 작가는 500℃까지 달궈진 두상에 고온 접합 기법을 이용해 유리 가닥을 붙이게 된다. 퓨징 기법으로 머리카락을 표현했기에 캐스팅으로는 확보되기 어려운 수준의 영롱함을 느낄 수 있다. 유리와 나무로 이루어진 신체의 표면 위로 보호막처럼 허구적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향수(鄕愁) 혹은 중장년기의 환상에 근거한 심리적 시간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일련의 작업에는 작가가 직접 체코의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안경 등 초현실주의 오브제를 연상시키는 사물도 개입되어 있다. 이 특별한 오브제로 인해 관람객은 자신이 속한 현실처럼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실제적 현존감, 밀도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작업을 “실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Mask 9> 2010 88×24×13cm



박성원은 생애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유리 조형에 일관되게 천착해 왔다. 이는 유리조형 기술이 개입된 자서전인 셈이다. 작가의 작업에는 숨과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관람객은 그의 작업을 대면했을 때 작가의 절박함과 외로움에 심리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뜨거운 유리 안으로 숨 쉬는 순간과 유리 피스가 압력으로 용융하는 순간이 더해져 물결치는 시간 속에서 유리와 작가는 하나가 된다.PA


 [각주]
1) Tim Ingold, The Life of Lines: 차은정 외 옮김,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이비, 2024[2015], p. 157

2) 곽인식, 「사물의 언어를 듣는다」. 『미술수첩』, 1969. 7
3) Rosalind E. Krauss,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윤난지 옮김, 『현대조각의 흐름』, 예경, 2009, p. 150



박성원 



작가 박성원은 1963년생으로 국민대학교 금속공예과 졸업 후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도자유리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유리예술에 있어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면서 거친 유리의 양면성을 활용해 작품으로 승화해 왔다. <시간 속 들숨, 내쉬는 삶>(포스코 미술관, 2017), <Casting Me, Carving You>(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16), <PARADOX of Being Others>(갤러리 스클로, 2011) 등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GLASS48. Habatat Direct Event>(하바타트 갤러리 온라인, 2020), <Collect>(서머셋 하우스, 2020)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1998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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