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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할머니의 멀티버스

Netherlands
My Oma

2023.12.8-5.12 로테르담,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

● 문선아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 이미지 Kunstinstituut Melly 제공

Exhibition view of 'My Oma' 2023 Kunstinstituut Melly, Rotterdam NL Photo: Kristien Da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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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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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 전,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Kunstinstituut Melly, 이하 멜리)의 리서처가 연락을 취해왔다. 멜리 역시 유사한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당해 본인이 할머니를 주제로 진행했던 전시 <우리, 할머니>(탈영역우정국, 2022.9.5-2022.9.25)에 대한 정보를 더 듣고 싶다고. 흔쾌히 승낙해 전시에 대한 인터넷 가상 투어를 진행했고, 전시의 모티프부터 전시 내용과 고민, 받았던 관람객의 리뷰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를 온라인 회의에서 공유했다.

당시 멜리는 기관 20주년을 기념하는 꽤 큰 규모의 프로젝트 기획을 ‘조부모(grandparents)’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시작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방향성과 구획을 못 잡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게 본인은 이 프로젝트의 어드바이저가 되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완성된 프로젝트 <나의 할머니(My Oma)>를 확인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가는 길은, 같은 주제 아래 태어난 다른 다중우주(멀티버스, multiverse)를 확인하러 가는 발걸음으로 설레었다.

로테르담에 위치한 명실공히 네덜란드 대표 현대미술 기관으로 꼽히는 멜리는 과거 위떼드위뜨 현대미술센터(Witte de With Centrum voor Hedendaagse Kunst)라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 현대미술계에서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한 2017년쯤부터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주의를 위해 헌신한 17세기 해군 제독 위떼 코넬리존 드 위뜨(Witte Corneliszoon de With)를 기념하는 거리명에서 비롯한 공간명이 문제였다. 여러 논의를 거쳐 2021년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 이름은 1990년부터 건물 외관에 설치된 켄 럼(Ken Lum)의 광고판 작업 <Melly Shum Hates Her Job>(1989)에서 따온 것이었다.

자기 일이 싫다고 말하며 사무실에서 웃고 있는 아시아계 젊은 여성 멜리 셤(Melly Shum)은 멜리 건물의 외관에서 항상 반(反)영웅적인 노동계급 이민 여성을 상징해 왔는데, 따라서 이 이름 변경은 앞으로 멜리가 나아갈 방향성을 천명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지점에서 2018년부터 멜리의 디렉터로 활동한 소피아 헤르난데즈 총 쿠이(Sofía Hernández Chong Cuy)가 멜리를 떠나며 선택한 마지막 주제가 ‘할머니’라는 주제로 수렴한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우리 주변에서 역사를 견디고 살아온 여성은 분명 또 다른 멜리 셤이기 때문이다.



Judy Watson <joyce with queensland tenure map>
 2021 Synthetic polymer paint and graphite 
on canvas 221×175.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ilani Gallery, Meeanjin / Brisbane 
Photo: Carl Warner



<나의 할머니>는 동명의 그룹전을 중심으로, 오프닝 위크 기간(2023.12.8-2023.12.10) 동안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진행된 할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은 토크, 강연, 공연 등을 선보이는 ‘보이고 말하라(Show and Tell)’ 프로그램과 멜리가 아마르테(Amarte) 재단과 협력해 할머니나 조상의 지식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이나 사운드 아트 공모를 진행해 콘서트 및 사운드 공연을 라인업한 ‘나의 할머니를 위한 음악(Music for My Oma)’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전시에만 작가 23팀이 참여하고, ‘보이고 말하라’에 9팀의 예술인이, ‘나의 할머니를 위한 음악’에 11팀의 음악가 및 사운드 아티스트가 참여했으니 작지 않은 규모다. 디렉터 총 쿠이를 필두로, 로사 드 그라프(Rosa de Graaf), 제시 코에이만(Jessy Koeiman), 줄리아 모쿠테(Julija Mockute), 비비한 지헐(Vivian Ziherl), 멜리의 총 여섯 스태프가 공동 큐레이터로서 힘을 모았다.

프로젝트 소개에 따르면 <나의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에서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실제 인물이며, 때로는 상상(추상적인) 인물인, 즉 이미 자각을 지닌 인물(선지자)이자, 특정한 시간을 살아간(기록자) 인물로서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고, 이들을 주체성을 지닌 복수(plural)의 주인공이자 사회적 투영의 대상으로 다룬다. 어드바이저로서 <우리, 할머니>의 내용을 공유한 이후 전시 준비가 진행될수록 회의가 자주 있지는 않아 멜리가 조언의 어디까지를 참고할 것인지 그 결과가 궁금했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전체적인 방향성과 텍스트상으로는 꽤 많은 부분 <우리,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또한 구조적으로도 꽤 영향을 받은 듯 보였는데, ‘할머니의 일기’, ‘시대의 할머니’, ‘할머니 되기’ 세 개념어로 구성되었던 <우리, 할머니>와 달리 <나의 할머니>는 ‘유대(Bonds)’, ‘유산(Heritage)’, ‘뿌리뽑힘(Uprootedness)’, ‘이상화(Idealizations)’ 총 네 개의 개념어로 구획됐다. 크게 보자면, 보통 할머니들의 면면을 담아내며 할머니와 손주가 함께 쓰는 공동의 일기를 지향한 ‘할머니의 일기’는 다양한 대인관계와 가족 관계를 탐구하는 ‘유대’로, 각 시대상 속의 할머니들이 겪었던 상황을 시대사와 개인사적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지워진 역사를 기반으로 할머니들의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 ‘시대의 할머니’는 음식문화의 전수, 정신적·물리적 유산 등을 통해 할머니의 미시사와 구술사를 재구성한 ‘유산’과 할머니의 추방, 이민, 적응의 역사를 재구성한 ‘뿌리뽑힘’으로, 할머니의 정체성을 가로질러 보편 개념의 할머니에 균열을 가하고 확장한 ‘할머니 되기’는 할머니의 대안적 원형을 찾는 ‘이상화’로 변경된 셈이었다.



Charlie Koolhaas <Harriët Freezerstraat>
 2023 Photographs Courtesy the artist



건물 외벽에 1점, 1층에 1점의 작업을 제외하고 전시는 멜리의 2·3층 공간에서 구현됐다. 3층에서는 ‘유산’과 ‘뿌리뽑힘’이, 2층에서는 ‘유대’와 ‘이상화’에 대한 작업이 선보였다. 널찍한 두 층에 걸쳐 작업이 여유 있게 펼쳐져 있었는데, 천고가 높아 다소 비어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카트리나 세다(Kateřina Šedá)의 벽지 작업 <It Doesn’t Matter>(2005–2007) 등 다양한 벽지 작업이나 마르코스 쿠에(Marcos Kueh)의 설치 작업 <EXPECTING>(2023) 등 천고에 실로 거는 작업을 곳곳에 조각을 배치해 밀도를 높인 공간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인 동선은 3층에서 시작해 2층으로 이동한다. 3층의 ‘유산’에서는 방 하나를 영화 세트처럼 식당으로 꾸민 실비아 마르테스(Silvia Martes)의 영상 설치 작업 <Heru Ku Heru pt.1(Iron With Iron pt.1)>(2023)이 눈에 띄었다. 카리브해 섬인 퀴라소의 식당을 방문하는 인물들을 추적한 허구 이야기와 카리브해에 뿌리를 둔 네덜란드 주민들의 논픽션 인터뷰를 교차해 퀴라소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한 이민자 후손들의 복잡한 역사를 식민주의와 연관해 다루고 있었다.

또한 펀다 바이살(Funda Baysal)의 3D 페인팅 조각 <Timely, on time>(2023)은 땅에서 막 난 것 같은 약간은 유기적이고도 기이한 외관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작가의 할머니는 가계 수입의 주요 원천인 농업과 채집을 담당했고, 작가는 할머니와 함께 차나무 잎을 수확했던 즐거운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한편 같은 층의 ‘뿌리뽑힘’에서는 하나 밀레틱(Hana Miletić)의 펠트 직조 조각 <Felt workshops XII-XXII>(2022-2023)가 발길을 붙잡았다. 작가의 가족은 구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수공예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고,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는 지난해 11월 로테르담 지역 예술 단체인 스토리하우스 벨베데레(Verhalenhuis Belvédère)의 이민자들과 함께 진행한 펠트 워크숍의 결과물이 선보였다.



Exhibition view of <My Oma> 2023 
Kunstinstituut Melly, Rotterdam NL
 Photo: Kristien Daem



2층의 ‘유대’에서는 불레베즈웨 시와니(Buhlebzwe Siwani)가 할머니, 어머니, 작가 자신과 아들, 총 4대에 걸친 자기 가족의 모습을 제작한 실물 크기 녹색 비누조각 <Isaziso 1996>(2023)을 전시했다. 남아프리카 지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이 초록 비누로 할머니는 어린 작가를 씻기곤 했는데, 따라서 이 비누와 재료, 그리고 그 향은 개인사적, 문화적 가치를 매개하고 있었다. 한편, 같은 층의 ‘이상화’에서는 호타 몸바사(Jota Mombaça)의 <Absence Vessel, or I had to invent a face for you, and now it is your flesh that I am>(2023)이 다채로운 조명과 서늘한 음향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작가는 브라질 내 인종 및 젠더 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한 할머니의 부재를 속이 빈 세라믹과 폐허적 설치를 통해 재현했는데, 이 작업은 작가의 정체성을 빌어 브라질에서 할머니 연령에 도달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극히 드물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벽면에는 아트 콜렉티브 마이오르(A Maior)의 같은 사진 벽화 작업 <Fall/Winter 2023>(2023)이 몸바사 작업의 조명을 받아 기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이오르는 작가 브루노 주(Bruno Zhu)의 부모가 운영하는 상점의 이름으로, 작가는 2016년부터 이 매장에서 직원, 지역 쇼핑객, 작가, 가족 등이 참여하는 전시를 개최하며 콜렉티브를 형성했다. 주는 중국에 거주하는 할머니 유 얀(Yu Yan)과 자주 협력해 패션 룩북 시리즈를 제작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는 대형 코스메틱 캠페인 광고 2점을 전시장에, 또한 할머니의 평상시 모습을 담은 광고판 1점을 제작해 멜리 건물 외부 <Melly Shum Hates Her Job> 옆에 선보였다.

언급하지 못한 더 많은 작가가 할머니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 있었다. 작가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전시에 담겼고, 특히 오프닝 위크 기간 동안 진행된 두 프로그램은 퍼포먼스와 공연을 통해 관람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경험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작가 수가 많아서일지, 전시 주제를 향한 집중도가 떨어졌다. 가족과 여성, 이민 등에 대한 주제가 훨씬 더 커서 할머니가 없거나 아주 작은 교집합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이러한 지점은 과연 할머니라는 주제나 네 개의 개념어로 나눈 전시 구획이 개별 작품들과 꼭 들어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hibition view of <My Oma> 
2023 Kunstinstituut Melly, Rotterdam NL 
Photo: Kristien Daem



개인적으로는 텍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높은 영향력과는 달리, 최종결과물로서의 두 전시 <우리, 할머니>와 <나의 할머니>가 꽤나 달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전시라는 형식이 작가와 작업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사한 주제와 구조를 공유하더라도 참여 작가가 다르고 선보이는 작업이 다르면 다른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전시를 관람하고 두 프로그램을 경험할수록, 뭔가 더 다른 근본적인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누가 주체인가가 조금 달랐다. <우리, 할머니>에서는 실제나 추상의 할머니와 작가의 ‘관계’가 주체인 경우가 많았다면, <나의 할머니>에서는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은 ‘작가’들이 주체인 경우가 많았다.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전시 구성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멜리뿐아니라 모든 개별 작가가 모두 다른 ‘할머니의 멀티버스’를 꿈꾸고 있었다.PA


글쓴이 문선아는 다양한 관점에서 현 시대성을 관찰·파악하여 이를 기반으로 예술의 의미를 묻고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하는 기획을 진행해 왔다. 식민주의-냉전-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관계를 묻고자 동두천에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와 아프로아시아 - 에코뮤지엄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각주]
* 본인이 진행한 전시 <우리, 할머니>는 새로운 세대의 선지자이자 페르소나이며, 시대의 기록자인 할머니들의 삶을 다시 소환해 이들이 어떻게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해왔는지를 살피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전시였다. 할머니들이 겪은 개인사와 시대사를 교차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이거나 언니였고, 엄마였고, 아내였고, 그 스스로였던) 할머니라는 인물을 다각적으로 조명해 입체적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연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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