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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2, May 2024

양숙현
Yang Sookyun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질량을 가지는 것, 웨어러블의 피부

● 강민형 미술기획자 ● 이미지 작가 제공

'From the OOX' 2020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2채널 비디오 인터랙션 백남준아트센터 제작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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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형 미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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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부터 꾸준히 활동해 온 양숙현의 이름 앞에는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붙기에, 나는 그의 작업을 돌아보는 것이 한국 미디어 아트계의 지난 15여 년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작가가 다뤄온 주제와 매체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활동한 환경이 한국 미디어 아트의 주요한 무대였다는 것을 짚는다. 따라서 이 글의 끝에서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와 함께 미디어 아트계가 기술 매체를 어떤 시점으로 소화했는지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것이 작가의 작업을 안팎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양숙현은 초기에 몸을 하나의 경유 장치로 보고 여러 인풋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몸은 작가가 세팅한 신호를 읽어,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받아 그것을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형식의 작업은 초기에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특히 신체와 소리를 연동시켰다는 점에서 <개구리 실로폰>(2010)1)은 ‘포터블 전자악기’로, <슈퍼 크래프트 시리즈-손>(2014), <깍지>(2017), <똬리>(2017) 등의 작업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로 불렸다.


이 시리즈는 추후 웨어러블에 대한 개념적 작업인 <미래를 위한 웨어러블>(2022)로 발전되었으며,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2023)과 같은 가장 최근 작업에서는 웨어러블을 외래종과 연결해, 생태와 존재 다양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이 신체 인식의 확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면, 최근작은 그 신체성이 규정되는 것조차도 인간 중심적이고, 그로 인해 기술, 예술계의 다양성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포함한다.



<미래를 위한 웨어러블> 2022 
2채널 생성 인공지능 비디오, LED 디스플레이 1분



이러한 변화를 보면, 작가의 관심과 연구의 발전도 눈에 띄지만, 그와 일맥상통하지는 않더라도 동시에 미디어 아트계가 무엇에 주목해 왔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 흐름에 따라 작가의 작품에 붙는 수식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양숙현의 초기 작업이 발표되던 2010년대 전후 미디어 아트계는 놀이적 요소가 강한 인터랙티브가 흐름을 쥐고 있었기에 소리와 신체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작업을 인터랙티브나 악기 작업으로 명명했다. 이후 디지털 디바이스를 신체에 장착하거나 신체와 연동하는 작품이 늘어나 감각, 감정, 행동과 같은 인간이 가진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미디어 아트 작업이 많이 소개되었고, 스마트 디바이스가 늘어나며 점차 웨어러블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맥락에서 작가의 웨어러블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작가는 자연스럽게 ‘입은 듯’한 웨어러블의 디자인과 기능에 관심을 두기보다, 웨어러블을 신체에 부착시키며 신체와 그 디바이스의 좁은 틈, 보이지 않는 공간을 발견하게 하는 것에 주목해 왔다. 따라서 전시장에서 이를 착용하는 관객은 하이브리드적 존재를 구성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터랙티브 장치, 포터블 전자악기,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웨어러블로 불려 왔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 이면, 비인간적인 관점에 있다.


그러한 의도를 알 수 있는 예시로 자율적인 인간 신체에 반하는 다음과 같은 연구를 들 수 있다. <Volumetric Data Collector>(2018)2)는 자율 의지를 가진 신체라는 극도로 인간적인 가치를 의도적으로 삭제, 회피하고, 기술(라이다 센서)의 인풋에 의존하여 환경을 해석하도록 도구화한다. 라이다 센서를 ‘입은’ 인간은 목적을 알 수 없는 하이브리드적인 존재로 이를 작가는 “기술에 포획 당하는 인간”으로 칭한다.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 2023 
3D 프린팅, LED, 전자회로, 생성 인공지능 
영상 2분 30초 360×360×300cm



신체에 직접적으로 ‘착용하는’ 것을 웨어러블(wearable, 착용할 수 있는)이라고 부른다면, 이 작업은 입는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오히려 ‘착용당하는’ 것(wornable, 착용당할 수 있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able’을 붙이는, 인간 중심의 기술 해석을 반대로 보려는 시도 중 하나로, 작가는 외래종에 -able(wearable)을 접목한다. 토착 존재는 아니지만 정착하게 된 외래종에 빗대어 기술을 읽는 연구가 그의 가장 최근의 관심사이다.

외래, 하이브리드의 또 다른 예시로 양숙현 작가는 위에 소개한 신체에 데이터를 접목한다. <SENSORY, CRYSTALLIZED>(2018)는 3D 모델링과 VR 사이의 번역 불가능한 데이터, 즉 일종의 글리치(glitch)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VR의 어떤 행위를, 그러니까 대부분의 우리에게 주어진 자율성 있는 몸을 가진 건강한 신체가 행한, 인간적인 가치를 무척이나 지니는 어떤 동작 행위를 VR로 기록한다. 그리고 이를 3D 프린팅, 즉 질량이 있는 것으로 만든다. 먼저 미디어 아트계의 유행에 따른 단편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VR 디바이스와 연결되어 행하는 어떤 행위는 모두 데이터이므로 비가시적이고, 반대로 신체는 가시적이라는 결론이 그러하다.


또한 수많은 여타의 작업처럼 가상과 현실을 오간다는 설명을 붙여 VR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계의 푸석푸석한 정형 표현이 아닐까. 불변하는 기존의 미디어 아트의 공식으로 말하자면, ‘신체->데이터->물질’, 즉 ‘행위->가상->실제’라는 군더더기 없는 문법으로 나열될 수 있으며, 아마 이 단어들은 미디어 아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들이겠지만, 양숙현 작가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것이 “->” 의 공식으로 표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호는 이따금 유효하지 않다.



<When Plants Migrate> 2023 3D 그래픽, 
멀티채널 프로젝션 600×2100×330cm 
사운드: 캇 오스틴



만약 위의 불변의 공식이 깨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기술을 이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 답 중 하나인 <만날 수 있는 데이터>(2019), <OOX에서 온>(2020)은 데이터가 가진 부동의 정의를 뒤집으며 결함, 문제, 버퍼링, 허물어지는 세계를 그린다. 작가의 작품에 따르면, 모든 데이터는 변환될 수 없으며, 순수하게 아웃풋을 내주지도 않고, 되려 열화되어 사라지고, 예상치 못한 곳에 붙어 하이브리드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어떤 개념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읽다 보면 데이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또한 15년 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작업뿐 아니라 최근 미디어 아트계의 흐름 내에서도 이러한 데이터 물질화의 문법을 전복시키는 작업이 종종 등장한다. 이제 어떤 맥락에서 데이터는 하나의 자원이며 그렇다면 더 나아가 개념적으로는 질량을 가지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양숙현 작가는 더욱 확실하게 신체->데이터->물질, 행위->가상->실제라는 기존의 공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그것에 열광하며 소비하는 우리도 모두 데이터의 일부로 환원될지도 모른다는 것, 글리치라는 오염 상태는 인간도 자연도 사회도 재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 2023
생성 인공지능 이미지



그 어떤 기술도 현실을 반영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 근면하게 우리의 세상을 데이터 속의 세상으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인식을 뒤트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데이터의 추상화를 의심한다. 또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을 우리 몸에 “착용”시켜 자율성이 있다고 여겨진 우리의 신체를 커다란 착각 속에 빠뜨린다. 우리가 착각에 맞닥뜨리는 착용의 그 순간에 데이터는 마치 원래 나의 거죽이었던 것처럼 웨어러블의 피부로 위장한다.

디지털 기술에 있어 외래성은 어디서 오는가. 미디어 아트는 그동안 픽셀, 데이터와 같은 디지털상의 개념을 비가시적이고 비물리적인 것으로 누누이 단정해 왔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계의 초기 작업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 혹은 그 반대로 변환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 가청화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가시-비가시, 가청-비가청의 양쪽을 친절하게 변환하는 작업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웨어러블> 2022 
생성 인공지능 이미지



미디어 아트가 단정해 온 “디지털은 비가시적이고 비물리적”이라는 정의는 재고될 수 없는 진리인가. 이러한 오래된 정의에서 한 발짝 나아가, 질량을 가지는 것과 디지털 연산 사이의 관계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는 없을까. 이에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는 이 글의 제목을 “신체와 물질”로 이름 붙일 수도 있었지만, 이 케케묵은 개념과 단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질량을 가지는 것”으로 적어본다. 양숙현 작가의 작업이 시사하듯, 외래성은 이렇게 확고한 문법을 다시 읽고 새로 읽으려는 시도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PA

 [각주]
1) 전파상 (양숙현, 박얼, 나대로)
2) 서울 라이다즈 (양숙현, 최진훈, 현박)



양숙현 



작가 양숙현은 1982년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영상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개인전 <소멸하는 물질 감각: 헤비타트 데이터>(대포마을 초소, 2023)와 <물질, 감각, 생성>(새탕라움, 2018)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만 <제로원데이_01 헤비타트> (에스팩토리 성수),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라티오>(제주도립미술관), <유 세미나에서 지구까지>(문래예술공장), <포킹룸: 아드레날린프롬프트>(탈영역우정국) 그룹전에 참여하는 등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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