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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0, Mar 2024

루이스 부르주아: 직조된 기억이 남긴 영원한 흔적

Australia
Louise Bourgeois: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

2023.11.25-4.28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이미지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제공

Installation of 'Maman' at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November 2023 © The Easton Foundation/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Felicity Jen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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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은 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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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이하 AGNSW)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시드니 모던 프로젝트(Sydney Modern Project)’가 2022년 12월, 또 하나의 새로운 미술관의 완공을 알리며 그 베일을 벗었다. 반세기 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대중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와 견줄만한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예술기관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AGNSW의 당찬 야심을 드러낸다.

시드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탕으로 공공 예술 정원으로 연결된 두 개의 미술관은 건축과 환경의 조화를 보여주면서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선보인다. 막대한 예산과 후원금으로 완공된 AGNSW의 새 미술관은 개관 당시 공사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와 함께 그동안 전시되지 않았던 미술관의 다채로운 소장품을 소개했다. 한편 AGNSW는 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1월부터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전시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를 선보이고 있다.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Archival polyurethane, resin, wood, fabric, 
red light 237.8×362.3×248.6cm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 The Easton Foundation
 Photo: Ron Amstutz



미술관 건립으로 ‘시드니 모던 프로젝트’가 끝난 건 아니다. 애초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예상한 AGNSW는 미술관의 비전과 철학을 새로운 전시와 프로그램에 담아내면서 프로젝트를 구현해 나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전의 성격을 띤 부르주아의 전시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부르주아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해주는 이번 전시는 현재 진행 중인 AGNSW의 바실리 칸딘스키(Vasily Kandinsky), 시드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의 태시타 딘(Tacita Dean)과 함께 ‘Sydney International Art Series’에 속한다.

특히 뉴욕 이스턴 재단(The Easton Foundation)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현된 부르주아의 전시에서는 1940년대 초창기 조각부터 1990년대-2000년대에 걸친 부드러운 직물 작업 그리고 말년의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13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호주에서 부르주아의 작품이 소개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토록 광범위한 작업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0년에 달하는 그의 예술 행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호주에서 진행된 세계적인 여성 예술가의 개인전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새로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훌륭한 기획으로 부르주아의 예술 언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가 탐험했던 형식과 개념의 과정을 유기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Louise Bourgeois: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 
25 November 2023 - 28 April 2024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 The Easton Foundation/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Felicity Jenkins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AGNSW 본관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거미 조각 <Maman>이다. 1999년 처음 제작된 이래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부르주아의 대표작으로 호주에서는 처음 대중에 공개됐다. 부르주아의 특징적인 테마를 표현한 <Maman>은 영웅적인 남성 인물을 주로 다루었던 조각의 역사에 있어서 드물게도 모성을 상징하는 조각으로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익히 알려진 바, <Maman>은 태피스트리 복원 사업을 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부르주아가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부모의 불화, 아버지의 불륜, 어머니의 이른 죽음 등 예민한 소녀를 지배했던 어두운 정서는 훗날 부르주아가 예술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작품세계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테마가 되었다. 부르주아는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던 어머니를 거미와 동일시하여 현대의 아라크네(Arachne)로 형상화했다.



<Untitled (with Hand)> 1989
 Pink marble 78.7×77.5×53.3cm 
© The Easton Foundation Photo: Peter Bellamy 
Private collection, New York



<Maman>을 거쳐 신관 건물에 들어서면 상반된 두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진다. 부르주아의 2007년작과 동일한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라는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시는 낮과 밤이 지배하는 대조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미술관 2층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밝은 조명으로 연출한 낮의 세계에서 바로 그 아래층의 어두운 밤의 세계로 옮겨간다. 빛과 어둠이 상징하는 대립은 결국 사랑과 분노, 평화와 혼돈, 의식과 무의식 등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삶의 이중성과 심리적 긴장감을 미묘하게 드러낸다.

또한 육중한 청동과 철부터 가볍고 부드러운 천과 실까지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각각의 작품에 기억, 취약함, 시간의 흐름 등 복잡한 층을 더한다. 한편 큐레이터 에밀리 설리번(Emily Sullivan)은 이번 전시에서 낮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Ode à la Bièvre>(2007)를, 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1974)를 꼽았다. 모두 부르주아의 예술 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업들로 자주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Untitled> 2009 Fabric, wood
44.5×27.9×24.1cm © The Easton Foundation 
Photo: Christopher Burke Collection 
The Easton Foundation, New York



콜라주 작업을 위해 직접 입던 옷을 사용하던 부르주아는 패브릭의 부드러운 촉감이 마치 과거의 기억을 만지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러한 작품으로 <Ode à la Bièvre>가 가장 대표적이다. 25페이지로 구성된 패브릭 책이자 낱장으로도 펼쳐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은 말년의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것으로 파리 외곽의 비에브르 강(Bièvre)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당시 살았던 집과 부모님이 운영하던 태피스트리 작업장 곁을 흐르던 비에브르 강은 부르주아에게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기억의 원천인 곳이다.

형제들과 배를 타고, 정원을 가꾸고, 복원 작업을 하던 직원들을 돕거나 부모님의 복잡한 관계를 중재하던 경험.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 강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아버지에게 극적으로 구조된 일 등 비에브르 강이 작가에게 불러일으킨 인상은 변화무쌍한 날씨나 일상의 기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물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부드러운 잔물결의 수평적인 움직임과 나선형 패턴 등 고요하고 평화로운 푸른빛의 이미지들은 노 작가의 기억을 새겨 놓은 시각적인 시(詩)가 아닐까.



Installation view of the
 <Louise Bourgeois: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
 25 November 2023 - 28 April 2024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 The Easton Foundation/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Felicity Jenkins



신관 건물의 구조를 가장 잘 활용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 밤의 전시실에서는 <Arch of Hysteria>(1993), <Crouching Spider>(2003) 등 부르주아의 다양한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의 강렬한 인상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1975년, 루시 리파드(Lucy Lippard)의 에세이 「Louise Bourgeois: From The Inside Out」이 『아트포럼(Artforum)』에 실릴 당시 표지에 사용되면서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은 복잡한 주제에 접근하는 부르주아 특유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덩어리 같은 형상들이 제물처럼 바쳐진 가운데 식사를 하던 가족.

아버지를 뜻하는 다리와 생식기. 복수와 보상을 상징하는 붉은 불빛 속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은 아버지를 붙잡아 찢고 집어삼켜 먹어 버린다. 조각적 카타르시스로 가득한 이 사악한 희극은 평생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부르주아가 창조해 낸 부조리극의 무대다. 그는 공격적인 형상을 통해 가족과 성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다루면서 아버지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반항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는 부르주아의 작업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면서 도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된 이후, 부르주아는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작가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된 중요한 작품이다.



<Has the Day Invaded the Night
 or Has the Night Invaded the Day?> 
2007 Aluminium, stainless steel, steel, diodes
 581.7×320×299.7cm © The Easton Foundation
 Photo: Christopher Burke
Private collection, New York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 부르주아의 독특한 시각을 탐험하게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무수한 이야기를 속삭이며 각자의 해석을 찾도록 격려한다. 작가가 시각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를 경청할수록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부르주아의 정신분석학적 저술과 일기가 제공하는 정보 또한 이 수수께끼 같은 예술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유년의 기억으로 완성된 일기 같은 조각작품들. 한 세기를 살다 간 예술가가 우리에게 남긴 영구적인 유산이다.PA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면서 국내 매체에 호주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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